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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의 그린라이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르웨느
작품등록일 :
2023.06.03 12:30
최근연재일 :
2023.06.24 11:27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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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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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 책임은 없다는 건 명확히 해야 하니

DUMMY

억지로 밀려 나온 이자 학생은 개수대를 보자 알아서 걸어가 얼굴과 손을 씻었다. 여태까지 봤던 것 중에서 인상이 가장 험악하다. 화를 낼 수 있는 쪽이구나, 대견하군. 곁에 서서 내 손도 씻었다.


계속 저기압인 게 씻는 게 급한 거 같아서 근처의 대중목욕탕을 검색했다. 괴물들이 나올 곳을 구분하지 못하다 보니 사회가 이전처럼 돌아가려 하는 지금에도 아직 회복되지 못한 것들이 많다.


목욕탕이 그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가끔 뉴스에 나온다. 목욕탕에서 괴물 출현해 이용객들 알몸으로 시설 탈출, 이런 제목으로. 발가벗고 죽더라도 집에서 죽지, 목욕탕에서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고 이용객의 수가 크게 줄어 장사가 잘 안 된단다.


“휴대용 샤워용품 키트도 사고 싶은데 여기서 결제해도 될까요? 여기요.”


시설 이용비 외에도 아무거나 사 먹을 수 있게 5만원 더 계산했다.


“옷 사올 테니까 천천히 씻고 와. 혹시 내가 늦으면 먹고 싶은 거 달라하고.”


탈의실 열쇠를 받은 이자가 조용히 걸어 들어간다.


“자야 학생.”


그래도 부르니까 돌아는 봐주네. 히죽 웃으며 손을 들었다.


“안 늦어도 빠유는 잊지 말고.”


빠유를 싫어하는 걸까, 친한 척하는 게 싫은 걸까. 점점 더 노려보는 것 같네.

휴대폰을 꺼내어 마저 검색하면서 욕탕 사장님에게도 여쭈었다.


“여기 학교 앞에 문구점이 없던데 요즘 애들은 체육복 어디서 사요?”


나 때는 학교 앞에 문방구만 일고여덟 늘어서 있어서 병아리도 사고 컵떡볶이도 사 먹고 그랬는데, 지금 이렇게 수가 많이 준 건── 너무 많이 죽었지.


“학교 체육복? 글쎄, 나도 모르것는데.”


남자 사장님은 그러면서 마눌님께 전화해 물어봐 주셨다. 친절도 하시지. 그렇게 알게 된 정보로 요즘은 중간 유통 업자를 통해 학기 초에 단체로 구매하기 때문에 그리로 찾아가야 한다는 거였다.


‘거리가 좀 있네.’


남자들 씻고 나오는 속도 생각하면 이자가 좀 기다리게 될 것이다. 고민은 오래 하지 않았다. 우선 근처 대형마트부터 가자.


츄리닝하고 속옷이면 되나. 사는 김에 매장에 진열되어 있던 심플한 캡모자 하나까지 구매했다. 어, 전화 왔네. 발신자는 연산중 행정실이다.


“네, 해결사 신호입니다.”

“예, 신호님. 연산중학교 행정실무사 김나영입니다. 오늘 학교에 방문하셨다가 불미스러운 장면을 목격하셨다죠.”


이것 참, 학교 폭력이 문제다. 사고를 친 당사자들은 별 탈 없는데 사고가 드러나 이슈화되면 여러 사람이 입장 곤란해지지.


“우리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매우 부끄럽고 교장 선생님께서도 단단히 노하셔서 교내 실태를 확실히 파악하겠다고 하셨답니다.”


대본이라도 쓴 걸까, 아니면 직업상 늘어놓기가 익숙한 것일까. 재관부도 그렇고 사무직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참 말이 길어진다. 음, 사무직만 그런 건 아닌가.


뒷말을 요약하자면 담임교사에겐 담당 학급 학생의 보호‧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단다. 이자 학생이 외출해야 한다 치더라도 그건 담임이 해야 할 일이라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라는데 다음부터 주의하겠다고 답하고 끊었다.


더 말할 게 없는 건 아니지만 행정실 사무직이 뭘 어쩌겠어. 대화도 통하는 대상에게 해야 하는 거다. 연결이 끊긴 휴대폰을 귀에서 떼며 눈앞의 신호등과 눈싸움도 중단했다.


목욕탕에 돌아가니 그사이 남자 사장님과 교대했는지 앉아 있는 여자 사장님에게 사정을 말하고 남자 탈의실 안에 들어가 이자를 불렀다. 후다닥 와서 후다닥 종이백을 채어가는 게 좀 웃기네.


“이거 학교 체육복이 아닌데요.”


그렇게 다 차려입고 나온 이자 학생이 모자를 푹 눌러쓴 상태로 감사 인사를 표했다. 대충 그랬던 걸로 듣자.


“그거 취급하는 곳이 멀더라, 학교에서도 전화 왔고. 일단 돌아가자.”


목욕탕을 빠져나와 보도에 섰다. 급한 대로 씻고 옷도 갈아입었으니 나온 이유는 해결된 거지.


솔직히 말해 이대로 딴 길로 새고 싶다. 물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그리고 그건 이자 학생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는 먼저 운을 떼지 않는다. 그래, 아쉬운 쪽이 발품 팔아야지 어쩌겠어.


“학교엔 언제 말할 거야?”

“뭘요.”

“너 발현자잖아.”

“아닌데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수한 물음표를 끌어내린다. 부정을 할 거라곤 1도 생각 못 했네. 이거 농은 아니지? 농을 거는 것이라기엔 이자 학생이 날 그렇게 편하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럴 성격으로도 안 보인다.


그럼 재관부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건가. 아직도 그런 소문을 믿는 이들이 있다. 연고 없는 고아나 노숙자는 발현자 등록을 하면 정부의 비밀실험실로 끌려가서 실험체가 된다는 거. 뭐 근데 직접 당한 입장에서 없다고도 말할 수 없고 진짜 있다고도 말할 수 없네.


그 외 부정할 이유가 또 뭐가 있을까. 그냥 밝혀지기 싫다? 발현한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발현자라는 것을 등록하고 나면 삶은 꽤 달라진다. 그 일진 애들만 해도 보복이 두려워서 투명 인간이 되어줄 거였다. 그것만으로도 감추고 싶은 생각은 안 들 텐데.


다 늙어빠져서 이제 이 나이대 청소년이 할 법한 생각이 뭔지 모르겠네, 으으. 넘겨짚는 건 여까지 하자. 진심은 상대에게서 봐야지.


그러기 위해선 역시 나부터 진심이어야지.


“난 네가 발현자였으면 좋겠어.”


돌아오는 답이 없다. 그건 익숙하다.

답 없이 시뻘겋기만 한 대가리들을 햇수로만 16년이나 봐왔으니 익숙해.


하지만 이건 낯서네.

이자 학생이 내딛는 길의 신호등은 초록 불을 켜준다. 이제.

나아가도 된다.




귀교하니 벌써 3교시 수업 진행 중이라 이자 학생은 교실로 돌려보내고 나는 교감실로 연행되었다.


아까 행정실 직원이 전화할 때만 해도 교장이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교감이라. 직급으로 따지면 교장의 바로 아래일 테고 일반적인 승진 루트를 생각하면 외부에서 보는 학교의 질서와 평화에 교장보다 더 민감할 위치다.


선입견을 떠올린 탓인가 상석에 앉은 교감 선생님이 나에게 매우 유감인 표정으로 보인다.


“봉사 첫날부터 모교에서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여 면목이 없군요. 신호 해결사님은 이자 학생과 아는 사이이신가요?”


간단히 통성명을 주고받고 대화가 시작된다. 나는 할 말 없는데 상대가 나한테 용건이 있다. 이자 학생과 나의 관계가 거꾸로 된 상황이로군. 그러면 즐겨야지.


“나흘 전 이곳에 출현한 괴물을 처리하면서 그때 잠깐 안면을 텄습니다.”


정확히는 처리 후지만 하나하나 다 설명할 건 없지. 그보다는 교감 선생님이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 궁금했다. 이자의 개인정보라도 누설해주려나.


“그때도 신호 해결사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었죠. 그럼 이자 학생과는 모르는 사이라는 거군요.”


간을 보는 건가, 뜸을 들이는 건가. 부드럽게 그렇죠, 덧붙였다. 교감 선생님의 시선이 냉랭해진다. 이게, 쪼끔 그렇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일 텐데 웃음이 나려고 해서 나도 최선을 다해 입꼬리를 굳혀야 했다.


“해결사님은 선의로 그런 것이겠지만 본교에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이니만큼 교권을 침해하는 행동은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등교한 학생을 끌고 나갔다 사고가 생겼다면 그건 누가 책임집니까. 물론 책임 소지를 따지자고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아닙니다.”


책임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치곤 막무가내란 단어가 너무 적나라합니다, 교감 선생님. 내용 자체는 돌려 까기지만 현 세태 생각하면 저 사람의 말이 맞다.


녹색어머니회 하면서 자주 봤다. 학부모가 동행하지 않으면 조퇴조차 못 시켜서 아픈 애기들이 양호실에서 응급처치받으며 기다리는 모습 같은 거.


세상이 흉흉해서 미성년자 보호하겠다고 절차가 엄격해진 건데 막상 현장에 대입하면 아다리가 안 맞는 현실 말이지.


“학교에 온 모든 학생은 본교의 교사들이 책임지고 안전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우리 학교 선생님들에게 인도하면 됩니다. 그게 학교 선생님이 할 역할이니까요. 신호 해결사님이 해결사로서 시민들을 괴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듯 말입니다.”


같은 말을 다른 말로 계속 반복하는 것 같네. 봉사 활동하러 왔으면 나대지 말고 괴물 나타나는 거나 감시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호하실 건데요?”

“이미 보셔서 아시겠지만 사실 이자 학생의 문제는 예전부터 교사들 사이에서 고민거리였습니다. 저희들도 나름대로 해결하기 위해 여러 캠페인을 시도해봤지만 학생들은 한창 충동적이고 감정적일 나이지 않습니까. 어느 것도 효과를 봤다 할 만한 게 없지만 우리 연산중학교 선생들은 학생들이 무사히 본교를 졸업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강구할 것입니다.”


이거 연설이지? 손뼉을 쳤다. 교감 선생님이 또라이 보듯이 쳐다본다. 이게 아닌가. 하지만 상대가 문제의 본질에 진지하지 않으니 나도 진지해지기 어렵다고.


폰을 꺼내서 영상 하나를 틀었다. 별 건 아니고 며칠 전에 막다른 골목에서 폭력 행위를 하던 원효 학생 무리를 찍은 영상이다. 누가 봐도 연산중학교 교복인 옷을 입은 애들이 욕설과 심한 발길질을 행하고 있다. 그때 일진 애들에게는 인터넷에 올리겠느니 했지만 개인 변호사에게만 보내고 따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감 선생님도 처음 보는 영상일 거다.


“하, 학교에서 촬영은 학생들의 사생활 침해입니다!”

“그래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거 교외에서 찍은 거니까요.”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은 동요네. 정말로 노력했는지, 면피할 빌드업을 쌓는 것인지는 관심 없다. 다 큰 어른끼리 알면서 뺄 거 없지. 사회란 게 원래 결과만 놓고 얘기하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 대화 내용도 녹음하는 중이거든요.”

“예?”


액정의 하단부에서 숨김 목록을 터치해 녹음 진행 중인 앱을 띄웠다. 별로 얘기한 것 같지 않은데 17분이나 지났네.


“제 직업상 구해주면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사람이 많아서요. 학생이 위험하면 교사에게 양도하고 할 일 하라? 알겠습니다, 양도 후 혹여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제 책임은 없다는 건 명확히 해야 하니 바디캠 하나 정도는 켜고 다녀도 되겠죠, 교감 선생님.”


작가의말

빠유: 바나나 우유의 준말.

모르지 않으시겠지만 적을 말이 없어서 채웁니다. 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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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착각을 깨줄 방법이 없네. 23.06.13 20 0 10쪽
» 7. 제 책임은 없다는 건 명확히 해야 하니 23.06.12 29 0 11쪽
6 6. 오냐, 어디 1억짜리 진심 한 번 들어보자. 23.06.10 20 0 11쪽
5 5. 넌 언제까지 솔로할 거냐. 23.06.09 24 0 11쪽
4 4. 야, 너구나? 근데 눈을 왜 그렇게 떠. 23.06.07 24 0 10쪽
3 3. 거기 누워 있어! 23.06.06 2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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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저는,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23.06.03 7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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