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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차 님의 서재입니다.

진시황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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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차
작품등록일 :
2024.07.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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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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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두 번째 상소문

DUMMY

================



유목민족들의 침략은 언제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렇기에 북쪽에 위치한 진(秦)나라와 조(趙)나라, 연(燕)나라는 국경을 중심으로 길게 이어지는 장성을 건설하여 유목민족들의 침공에 대비했다.


영토와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중원과 야만족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자마자 상장군(上將軍) 몽염을 파견하여 중원의 국가들이 건설했던 장성을 하나로 연결하도록 명령했다. 그것이 바로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시작이다.


“올해 안에 안문군까지 장성을 연결하란 말이오?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소장들은 그저 황명을 받들 뿐이옵니다···.”


봉래산의 도인이 발견한 천록비결(天簏秘訣)이라는 고서에서 망진자호(亡秦者胡)라고 적힌 글귀가 풀이되었다.


망진자호.

진나라는 오랑캐에 의해 멸망하리라.


그렇게 망진자호를 해석한 시황제가 오랑캐들의 침략을 저지하고자 만리장성 건설을 명령했다는 설화가 세간에 떠돌았다. 당연히 신빙성이 결여된 이야기였지만 그만큼 시황제가 편집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유목민족들의 침입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광기에 씌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지. 전국에서 징발한 수십만 명의 백성들을 용광로에 쏟아내듯 만리장성 건설에 갈아 넣다니···.’


채찍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감독관.


그리고 매를 맞으면서 육중한 바위와 흙더미를 운반하는 노역꾼들.


수천만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고혈을 쥐어짜내어 바위와 흙더미를 운반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작업이 늦어지면 모진 매질과 함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지옥이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지옥이 분명했다.


나태하고 게으른 인간들이 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히 되풀이되는 노역에 시달리게 된다지. 하지만 노역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은 모두 무고했다. 중죄인이 노역장으로 징발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진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육국의 백성들이었다.


“으아악! 파, 팔이···!”

“제, 제발 조금만 쉬게 해주시오!”


쿠웅!


육중한 바위를 등에 짊어진 채로 발걸음을 옮기던 인부가 그대로 깔리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쓰러졌던 인부들을 향해 채찍질이 이어졌다.


지옥을 방불케 하는 처절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장소가 이 노역장뿐일 리가 없었다. 장성을 축조하는 모든 노역장에서 아비규환의 현장이 반복되고 있으리라.


“닥쳐라!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느냐!”

“폐하의 명이다! 올해 안에 축조를 끝내야 한단 말이다!”


토악질이 나온다.


뇌리를 옥죄는 현기증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이 바위에 깔려 죽었음에도 감독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처참하게 짓눌린 시체를 그대로 방치하면서 노역꾼들에게 매질을 반복했다.


“으으···! 으아악!!”

“그, 그만! 일하겠소! 열심히 일할 터이니···!”


죽음의 노역장.


노역장에 끌려오게 되면 살아서 나가지 못한다.


육국의 백성들 중에 장성과 아방궁의 노역장에서 죽지 않은 가족과 친지가 없다, 라는 살벌한 소문이 세간에 횡행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죄인들을 동원하여 운용하는 탄광처럼 계속 혹사시키니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게 모두 편집증에 가까운 의심과 두려움 때문이지. 본인의 의심과 두려움이 선조들이 이룩한 진나라를 서서히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시황제는 북방의 유목민족들로부터 진나라를 지키고자 만들어졌으나, 수많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내어 탄생한 만리장성은 오히려 진나라의 멸망을 앞당기는 망조(亡兆) 역할을 하게 된다.


당장이라도 빌어먹을 만리장성 축조를 중단할 것을 명령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무의미한 만용일 뿐이다.

토목공사 현장을 당장은 멈출 수 있겠지만 시황제에 의해 공사가 재개될 테니까.


황제의 명령으로 시행되고 있는 토목공사를 강제로 중단하는 것은 명백한 반역이다. 노여움을 받아 만리장성 현장으로 좌천된 주제에 토목공사를 중단하는 무리수를 범해버린다면 시황제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리장성의 완공을 강행하려는 시황제의 고집부터 꺾어야 돼. 하지만 어떻게 하지? 빌어먹을 독불장군을 설득할 만한 묘안이···. 일단 은리한테 물어볼까?’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대부분은 본인의 신념을 관찰하려는 끝까지 독불장군이었다.


특히 그들 중에서도 진시황은 손에 꼽히는 쇠고집으로 유명했다.


불로불사(不老不死).

그것을 손아귀에 거머쥐고자 그동안 국고를 방탕하게 소진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시황제는 결코 본인의 결정을 철회했던 적이 없었다. 설령 본인이 틀렸다고 해도 결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망령된 면모마저 보일 정도였다.


“공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노역장의 감독은 소장들이 맡겠사옵니다.”

“······.”


유목민족의 침략보다 무서운 것이 만리장성 축조로 인한 백성들의 한탄과 분노였다.


외침(外侵)은 물리치기만 하면 해결된다.

하지만 내환(內患)은 통치를 병들게 하는 역병이 되어 나라를 무너트릴 것이었다.


망진자호의 공포에 빠진 시황제를 설득할 수 있을까?


아니,

반드시 해내야 했다.


진나라의 멸망을 촉발시키는 대규모 민중봉기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가혹한 토목공사를 중단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기필코 독불장군의 고집을 꺾고 말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내렸다.



* * *



토목공사의 중단은 불가능하지만 고문에 가까운 혹독한 노역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것은 가능했다.


정량의 식량배급을 명령하고 휴식시간을 보장하라.


그리고 환자와 노약자들을 노역장에서 제외할 것을 덧붙였다.


임시방면일 뿐이다.

일단 명령은 내려두었지만 모든 노역장들이 지킬 리가 없었다.


만리장성 축조가 중지되어야만 비로소 죽음의 노역장이 문을 닫게 되리라. 토목공사를 재촉하는 황명이 언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최대한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노역장의 백성들에게 하해와도 같은 은혜를 베푸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귀관은 의거육장의 일원이로군.”

“하핫! 공자께서 그렇게 불러주시니 황송하옵니다.”

“상군과 북지군의 백성들이 의거육장을 칭송하는 목소리를 들었네. 과연 유명하더군.”


의거육장(義渠六將)은 옛 의거의 땅이었던 상군(上群)과 북지군(北地郡)에서 크게 활약한 상장군(上將軍) 몽염 휘하의 여섯 장수들을 일컫는 명칭이다.


조금 낯간지럽지만 훌륭한 병칭(竝稱)이라 생각한다.


강족과 흉노족을 대파하고 오르도스 고원을 정벌한 진나라의 맹장들이 아닌가.


북방의 정예군단을 아군으로 두기 위해선 상장군 몽염을 위시한 휘하의 측근들도 당연히 포섭해야 할 터였다. 잠시 안면을 트고자 길게 인사말을 나누기로 했다.


“소장은 상장군의 휘하에서 비장을 역임하고 있는 왕공염이라 하옵니다.”

“반갑네, 왕공염 장군.”

“공자께선 둔영에 어인 일이시옵니까?”

“상장군을 만나러 왔네만. 그런데 도통 길을 몰라서 잠시 헤매고 있었네.”


둔영을 둘러보던 도중에 왕공염과 조우하게 된 것이었다.


곤혹을 토로하자 왕공염은 흔쾌히 둔영을 안내해주었다.



* * *



상장군 몽염의 치소를 방문하기 위해선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대규모 정예군단을 통솔하는 총사령관의 집무실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부소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경우였다.


왕공염과 함께 치소에 도착하자마자 경계를 서던 몽염의 무관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죄송하옵니다. 상장군께선 잠시 바깥에 나가셨습니다.”

“그런가.”


집무실에 들어서자 흑색의 궁장(宮粧)을 차려입은 묘령의 여인과 마주하게 되었다.


책상에 널브러진 죽간들을 보건대 따로 분류하고 있던 듯했다.


젊은 애첩인가.

집무실에 애첩을 들이다니 대단하기도 하시지.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에 몽염에게 혼기를 놓쳐버린 외동딸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치소까지 오는 도중에 왕공염에게 들은 덕분이었다.


하마터면 명문가의 여식에게 무례를 범할 뻔했군.


흑단처럼 아름다운 흑발을 늘어트린 여인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면서 헛기침을 했다.


“소녀는 상장군 몽염의 여식인 몽연화라고 하옵니다. 그동안 풍문으로만 듣던 공자를 직접 알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딱히 좋은 풍문은 아니었을 텐데···. 아무튼 반갑소, 연화 소저.”


중랑장(中郞將) 몽의가 팔불출처럼 조카딸의 용모를 호언했을 정도로 몽연화는 경국지색의 미색을 자랑하는 여인이었다.


새하얀 뺨과 도톰한 입술.

거기에 암사슴처럼 뻗은 목덜미까지.


특히 허리까지 늘어트린 흑발이 뇌쇄적인 매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수많은 사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절세의 미모였다. 하지만 나라와 아버지를 향한 충성심과 효심이 강했던 몽씨 가문의 아가씨는 스물다섯이 되도록 미혼을 관철하면서 군중에서 업무를 전담했다.


“아무래도 상장군과 엇갈린 모양이구려. 그럼 다음에 오겠소.”


분명 몽연화는 경국지색의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궁중에서 수많은 미녀들을 보면서 안목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부소였기에 무덤덤한 반응만 보였다.


각양각색의 매력을 자랑하는 미녀들로 가득한 궁궐에서 지내지 않았던가. 특히 시황제를 직접 보필하는 궁녀들은 모두 경국지색을 자랑하는 여인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중랑장의 말이 맞았군.

괜히 팔불출처럼 호언장담을 했던 게 아니었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상장군께서 치소로 돌아오시면 공자께서 찾으셨다고 기별을 올리겠사옵니다.”

“번거롭게 만들어 미안하오. 함양의 부황에게 서신을 보내려면 아무래도 상장군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니.”

“폐하에게··· 서신을 말이옵니까?”

“다시 상소문을 써볼 참이오.”


부소의 대답에 몽연화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상소문?

설마 폐하에게 다시 상소문을 올리겠다고?


공자 부소가 부황에게 상소문을 올렸다가 만리장성 현장으로 추방당했다는 소문은 최전선에서 복무하는 병사들도 모두 들었을 정도로 유명했다.


설마 함양에서 쫓겨난 것만으로는 부족했나.


추방당한 유배지에서도 황제의 노여움을 받게 된다면 당연히 중벌이 내려지겠지. 어쩌면 그대로 함양으로 압송되어 극형을 선고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묘한 자신감을 내비치는 부소의 모습에 몽연화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 * *



상장군 몽염이 돌아오자 부소가 자신의 심중을 밝혔다.


“폐하에게 상소문을 올려 장성의 완공을 내후년까지 유예해줄 것을 상주해볼 생각이오.”


몽염의 반응도 딸 몽연화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소의 호언에 아연실색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침음을 삼켰다.


“불가합니다! 공자께선 폐하의 진노를 어찌 감당하려 하십니까!”

“당연히 생각해둔 방안이 있소.”


예상했던 대답이다.


몽염이 노발대발하며 격앙된 모습을 보이자 부소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제안했다.


“폐하께서 심려하시는 두려움의 원인을 우리들이 모조리 토벌합시다. 그럼 폐하께서도 장성의 완공을 더 이상 강요하진 않으실 거요.”

“예?”

“그러니까 북방의 오랑캐들을 정벌하잔 말이오. 초원과 사막에서 활개치는 유목민족들을 모두 정리한다면 망진자호, 라는 말도 더 이상 나돌지 않을 테니.”

“으음···!”


부소가 양손을 책상에 올리면서 간곡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러자 몽염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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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환관을 끌어내려라 +17 24.08.12 14,213 370 12쪽
24 죽던가. 죽이든가(2) +17 24.08.11 13,829 390 12쪽
23 죽던가. 죽이던가. +20 24.08.09 13,957 364 12쪽
22 암습(3) +20 24.08.08 13,720 385 12쪽
21 암습(2) +20 24.08.06 13,670 366 11쪽
20 암습 +14 24.08.05 13,928 352 12쪽
19 공자가 실력을 숨김 +19 24.08.04 14,224 384 12쪽
18 신진군 +27 24.08.02 14,036 378 12쪽
17 위협 +15 24.08.01 14,003 371 11쪽
16 모래폭풍을 뚫다(2) +16 24.07.31 13,850 380 12쪽
15 모래폭풍을 뚫다(1) +19 24.07.29 13,854 365 12쪽
14 접전(4) +14 24.07.28 13,953 353 12쪽
13 접전(3) +17 24.07.27 14,040 347 12쪽
12 접전(2) +15 24.07.26 14,361 335 12쪽
11 접전(1) +13 24.07.25 14,672 335 11쪽
10 출진 +21 24.07.24 15,015 358 13쪽
9 대규모 원정 +14 24.07.23 15,319 364 12쪽
8 망진자호(亡秦者胡) +21 24.07.22 15,515 408 11쪽
» 두 번째 상소문 +18 24.07.21 15,898 406 12쪽
6 상장군 몽염 +13 24.07.20 16,354 394 11쪽
5 30만 정예군단 +18 24.07.19 17,241 387 13쪽
4 다시 돌아온다면 +15 24.07.18 18,003 431 13쪽
3 추방 +23 24.07.17 18,985 429 14쪽
2 진나라 황실 +17 24.07.16 19,805 463 14쪽
1 공자 부소 +43 24.07.16 23,079 48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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