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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야인무적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7.01 18:3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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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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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8,090

작성
24.06.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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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12쪽

해적-1

DUMMY

집으로 다가갈수록 한 사람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분께선 교도들을 외면치 않으시며, 교도들의 형제 또한 그분의 자식이기에 자신의 품에 거두어 영원토록 이상향에 머물게 하시니···.”


전우를 기린다더니 어떤 종교의 교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수상한 점이 있었다.

창문에 뭘 매달아 놓았는지 안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문틈 사이에도 무슨 조치를 해놓은 건지 불빛도 문과 벽을 연결해놓은 곳에서만 새어 나왔을 뿐이다.

거기에 이런 야심한 시간에 추모라니···.

북궁백은 담장 옆에 서서 내공을 끌어올려 청각을 높였다.


“...무생노모의 손길은 그대들의 고통을 거두어 안락한 잠자리로 인도하시노라.”

“진공가향(眞空家鄉) 무생노모(無生老母).”


북궁백은 종교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나 그래도 어떠한 느낌인지는 대략 알고 있다.

그런데 저들의 교리는 도가나 불가의 느낌과는 상당히 달라 보였다.

진공가향이나 무생노모라는 명칭도 처음 들어본다.

먼 옛날 복건성에 오랑캐가 많이 살았다더니 그들의 토착 신앙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 이후 한족이 대거 이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사이비인가?’


위소에 사이비라니, 예삿일이 아니다.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은 곧 파벌이 되고, 그 파벌이 커져 위소를 장악하면 군벌이 된다.

거기서 그치면 좋겠지만, 나라의 정세가 불안하면 반란으로 이어진다.


“이것으로 금일 집회를 마치도록 하겠소. 형제들께선 조심히 들어가시고 이전처럼 개인만의 공간에서 매일 기도를 올려주시기 바라오.”

“예. 사자님.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는 듯했다.

북궁백은 소리 내지 않고 은밀하게 그 자리를 벗어나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그 집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집회에 참여한 교도들은 대문으로 나오지 않고 날랜 몸놀림으로 담장을 넘어 어둠에 스며들었다.

막북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이라더니 은폐가 능숙하고 자연스러웠다.

북궁백은 그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집 안에서 불이 꺼졌다.

조금 더 기다렸으나, 더 이상 집에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들어가서 확인해볼까?’


북궁백은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별채로 발길을 돌렸다.

내일 떠날 건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지휘첨사에게 말해주면 알아서 하겠지.’


* * *


다음 날 아침, 북궁백은 평해위를 떠나 서둘러 복주로 향했다.

복건성 흥화군에서 보타암이 있는 절강성 주산군도까지는 천 리가 넘는다.

평지에서 걷기에도 쉽지 않은 거리인데 밀림과 산으로 가득한 복건성과 절강성의 지형을 고려하면 두 달을 내리 걸어도 도착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그 문제는 지휘첨사가 해결해주었다.


-복주에서 남경 천도 준비를 위한 자재를 실은 상선이 출발할 것이오. 그 배에 탈 수 있도록 서신을 적어주리다.


전 황제가 북경으로 천도를 마친지 이제 삼 년이 조금 넘었다.

황성을 짓는다고 거의 십오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인력과 자금을 투입했다고 알고 있다.

그 당시 고향에서 얼마나 많은 장인과 남자들이 북경으로 차출됐던가.

그런데 이제 즉위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새 황제가 다시 재천도를 원한다니, 절로 탄식이 나올 지경이다.

비밀이라며 입단속을 신신당부하던 지휘첨사의 얼굴에도 씁쓸함이 가득했다.


사흘 만에 복주에 도착한 북궁백은 곧바로 항구를 찾아갔다.

지휘첨사가 알려준 시박사(市舶司) 관원을 만나 서신을 전달하니 이틀 후 출발하는 배가 있다며 그 배에 타라고 알려주었다.

북궁백은 어쩔 수 없이 객잔을 잡았다.

그런 그를 발견한 이들이 있었으니,


“녀석이 돌아왔다고?”


인시의 지배자이자 경매장의 주인인 철 노인은 아끼던 붓을 단숨에 분질러버리며 되물었다.

그에게 보고를 올린 호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반 시진 전, 성내로 들어와 항구를 들린 후 객잔에 방을 잡았다고 합니다.”

“철면피한 인간이로고. 영원히 안 돌아올 것처럼 협박하고 떠나더니 그 낯짝을 들이밀어?”


철 노는 노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부러진 붓 조각을 아예 가루로 만들었다.

그가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가 있었다.

전에 북궁백이 방문하고 간 이후, 인시에 한 소문이 퍼졌다.

철 노가 무림인에게 굴복해 장부를 보여주었다는 소문이.

당연히 인시 내에 철 노에 대한 수군거림이 늘었다.

상인의 자존심을 버렸다는 둥,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는 둥.

평소에 면전에서 한마디도 못 하던 것들이 이제는 간혹 말꼬리를 잡기도 한다.


‘어떤 놈이 감히···.’


철 노는 그런 것보다 집무실에서 있었던 일이 밖으로 새어나갔다는 것에 더 화가 났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여섯 명이 전부였으니 알아내려면 알아내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부하들의 인망도 잃게 되니까.

지금 같은 분위기에는 조금 수그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항구는 왜 들렸는지 알아냈나?”

“시박사 관원을 만났다는 것 외엔 자세한 정황은 모릅니다.”

“그러고 나서 객잔을 잡았다? 그럼 배를 기다린다는 말인데···. 남쪽으로 내려갔던 놈이 다시 올라와 배를 타려는 건 북으로 올라가려는 것이겠지.”


거기까지 말한 철 노가 생각에 잠겼다.

일단 군함은 제외다.

하서양을 마치고 돌아온 지 넉 달도 지나지 않았다.

수군은 이제 막 정비를 마치고 간간이 훈련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해금령으로 인해 사무역은 불가능한 상태니 북으로 올라가는 상선은 특산품을 진상하거나 항주, 남경의 대시장에 올리기 위해 운송하는 것이 전부다.


‘그놈은 여자 노예를 찾고 있었지.’


그렇다면 환락의 도시, 항주가 가장 유력한데···.


‘됐다.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수순이지.’


고개를 저어 불확실한 추측을 털어낸 철 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박사에 갈 것이니 준비하라. 그리고 왕수에게 전갈을 보내라. 오늘 밤 그곳에서 보자고.”

“알겠습니다.”


* * *


이틀 후, 북궁백은 남경으로 가는 상선에 탑승했다.

북궁백이 여태껏 보지 못한 대형 상선 세 대가 한 번에 출항하는 대형 선단이었다.

호위하는 무인도 있고 상선 자체에 일부 무장을 갖췄으나, 해전에서 중요하다는 화포, 호준포(虎蹲炮)는 없었다.

이렇게 부실한 무장으로 바다에 나가도 되는가 싶어 함께 탑승한 관원에게 물어보니 해적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해안선을 따라가는 데다가 하서양을 떠났던 수군이 돌아와 해적들이 잠잠해졌다는 이유로 말이다.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기에 그런 줄 알았다.

그 믿음은 닷새가 지나기 전에 깨졌다.


촤악.


검은 파도가 정박한 배를 흔들었다.

침상에 누웠다가 배의 흔들림을 견디지 못한 북궁백은 바람이나 쐴 겸 갑판으로 나왔다.

구름이 껴 달조차 비추지 않는 암흑천지였으나 소금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때리자 그나마 속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을 벗어나야 제대로 잠을 잘 텐데···.’


바다에 나왔다고 해서 밤에도 항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해안선을 따라갈 때에는 암초가 숨어 있는 지역이 많아 야간 항해가 금지된다.

이곳 복녕 앞바다도 그중 한 곳이었다.

복잡한 해안선과 멀지 않은 섬들로 아무리 숙련된 선원들도 감히 야간 항해를 시도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저건···.”


인근에 있는 섬 뒤편에서 거뭇한 형상이 꾸물거렸다.

처음에는 파도인 줄 알았으나 점차 형상이 늘어나고 조금씩 커지는 모습을 보며 그것이 배라는 걸 알았다.

그 배들에서 전의가 일고 있다는 사실도.

북궁백은 선수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선원에게 다가갔다.

먼바다만 보고 있던 선원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신지···?”

“저기서 배들이 오고 있소. 선원들을 깨우시오.”

“이 밤 중에 무슨 배가···.”


선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북궁백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달빛도 없고 수면도 시컴해 하늘과 구분하기도 힘든데 이러한 곳에서 무언가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선원은 바다에서 평생을 산 뱃사람이다.

이곳도 수십, 수백 번을 지나다녔기에 머릿속으로 지형을 그릴 수 있는 수준이다.

웬지 두려움이 느껴지는 북궁백이 하도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터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다섯 척의 배를.


“해, 해적이다! 해적이 나타났다!”


대경한 선원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근처에 달아둔 북을 미친 듯이 난타했다.

이내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눈곱도 떼지 못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닻을 올려라! 빨리!”


선장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선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부산을 떠는 사이 관복조차 제대로 입지 못한 관원이 북궁백의 옆에서 부들부들 떨어댔다.


“해적이 어디서···.”

“해적들도 화포가 있소?”


북궁백이 묻자 관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오. 악명을 떨치는 해적단이면 있을 것이오. 허나 그들이 움직였다는 소문은 없었는데···.”


북궁백은 저들이 악명 높은 해적단이 아니길 바랐다.

막북에 있을 때 몇 번 화포를 본 적 있다.

길쭉한 원통형 쇳덩어리에서 날아간 철구가 말과 사람을 짓이기는 모습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다.

한 번은 전우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무림인은 화포를 막을 수 있을까?

심심풀이로 꺼냈던 이야기는 이내 격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검기로 잘라버리거나 피하는 건 가능해도 받아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아무리 유능제강의 묘리에 능한 무인이더라도 말이다.


“거리 이백 보!”


화포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서자 선장이 눈을 부릅뜨고 경고를 날렸다.

다행히 해적들에겐 화포가 없었다.

백오십 보, 백 보···.

돛을 활짝 편 해적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선원들은 겁먹은 얼굴로 창과 작살 등을 움켜쥐었다.

그들은 속으로 선장을 욕했다.

그냥 상선에 실린 물건을 넘겨주면 살 수 있는 것을.

해적들은 몸값을 지불한 이들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미신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선장은 그럴 수 없었다.

선원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엄연히 황실에 진상하는 물건들이었으니까.


‘넘겨도 죽을 거라면 차라리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선장은 난간에 붙어서 해적들을 주시하고 있는 북궁백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체구에 언월도를 쥐고 서 있는 모습은 위풍당당하기 짝이 없었다.


‘대단한 무장이라고 했으니 백병전에서 활약해주겠지.’


선장이 그런 기대를 하고 있을 때, 북궁백은 해적선에서 보란 듯이 내보이는 기도를 감지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저런 강자를 만나다니.’


발산하는 기도가 남궁기나 오원평 못지않다.

잔잔하면서도 극도로 패도적인 기질이 파도와 닮았다.

그의 출수 한 번이면 어지간한 무인들은 일격에 짓이겨질 것만 같다.

저런 자가 해적질이나 하고 있을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쉬익.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한 상선에 바짝 붙은 해적선에서 갈고리가 날아왔다.

갈고리는 정확히 난간에 걸리고, 해적선이 속도를 낮추기 시작하면서 팽팽하게 당겨졌다.

선원들이 갈고리를 떼어내려 하자 해적선에서 내력이 담긴 고함이 울려 퍼졌다.


“건들지 마라! 상선 통째로 용왕님께 공양드리기 전에.”


음파에 휩쓸린 선원들은 신음을 흘리며 귀를 막고 휘청였다.

대부분 반사적으로 난간을 붙들고 버텼으나, 기가 약한 이들은 몸이 난간에 걸쳐 바다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들을 구하시오!”


북궁백은 고함을 지르며 난간을 밟고 해적선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오장이 넘는 거리였지만, 상선의 난간이 더 높아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 순간 ‘훙’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엄청난 파공성과 함께 눈앞에 검붉은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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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노예의 행방-1 +2 24.06.11 1,177 24 13쪽
35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3 +2 24.06.10 1,207 24 13쪽
34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2 +2 24.06.09 1,185 23 14쪽
33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1 +2 24.06.08 1,218 24 13쪽
32 남창살인사건 -2 +2 24.06.07 1,210 23 13쪽
31 남창살인사건 -1 +2 24.06.06 1,226 24 13쪽
30 이별과 만남-5 +2 24.06.05 1,252 24 14쪽
29 이별과 만남-4 +2 24.06.04 1,267 2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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