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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라한의 서재입니다.

모래 위 연금술사(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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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둘라한
작품등록일 :
2023.08.08 03:19
최근연재일 :
2023.10.0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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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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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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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6. 은비늘

DUMMY

드라이아이스를 물속에 집어넣은 듯한, 하얀 연기가 난장판이 된 미니버스의 바닥을 뒤덮으며, 침대 맞은 편 기계에서 하나의 갑옷이 튀어나왔다.

중세 시대의 갑옷처럼 은빛의 강철로 이루어진 몸체와 연결된 부위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깔끔하게 처리된 마감, 시야 확보와 전투에 필요한 정보들을 띄우기 위한 안면부의 디스플레이까지.


“이건, 파워 슈트잖아.”


카밀라가 꺼낸 최종병기는 내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파워 슈트였다.

나는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곤,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카밀라의 파워 슈트를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 카밀라의 파워 슈트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무 슬림한데?’


내가 봤던 파워 슈트와 다르게, 카밀라의 파워 슈트는 유난히 슬림하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파워 슈트는 전투를 위한 기능들이 다수 들어가 있다.

기본적으로 파워 슈트를 원활하게 움직이고 강한 힘을 내기 위한 인공 근육과 적들을 공격하기 위한 무장, 공격에서 버텨내기 위한 두꺼운 외부 장갑과 방어구.

공중전, 수중전 등등 다양한 상황을 위한 부스터와 같은 추가 장비, 전투에 보조를 해주는 AI와 보조장비 등등.

기능이 많으면 많을수록 파워 슈트가 두꺼워야 하는데, 카밀라의 파워 슈트는 다이어트를 한 것처럼 홀쭉했다.


[은비늘]

레어 메탈과 보급형 외부 장갑, 연산 보조 AI, 데스웜 가죽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된 파워 슈트이다.

재료가 부족할 걸 상정하고 설계 및 제작되었기에, 일반적인 파워 슈트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지만.

파워 슈트의 본질인, 탑승자의 보호 및 보조 효과만큼은 보급형 파워 슈트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다.

※ 배터리 용량이 적어 오랫동안 활동할 수 없으며, 자가발전 또한 불가능하여 외부에서 전력을 충전해야 한다.

※ 냉각 시스템의 부재로 탑승 후, 오랜 기간 사용할 경우 내부의 온도가 올라 파워 슈트가 망가질 가능성이 있다.

※ 보조장비의 부재로 공중전, 수중전 등 다양한 상황에서 활동이 어렵다.

※ 단 한사람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그 사람을 제외한 이가 탑승할 수 없다.

착용 제한 : 카밀라 실버 스케일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특성 역시 카밀라의 파워 슈트가 상당 부분 문제가 있다는 걸 알려 왔다.

카밀라와 함께 엔지니어 활동을 하면서 봤던 파워 슈트들이, 부품 하나 얻기 힘들 정도로 다 망가져 있었다는 걸 떠올리면.

부족한 재료로 이 정도를 만들었다는 것에 감탄해야 하겠다만···.


“괜찮나?”


지나가는 차량을 습격하고자, 고래 사냥을 할 때 사용하는 포경 작살을 가지고 다니는 약탈자들 상대로 불안한 건 사실이다.

나는 아직 전투 인원이라 하기 뭣한 햇병아리인지라, 실질적으로 카밀라 혼자서 다섯 대나 되는 차를 타고 온 약탈자들과 싸워야 하는데.

‘넷 다이버’에서 최종 장비라며 파워 슈트가 칭송받긴 했다만, 무적은 아니었으니까.


위이잉 철컥


카밀라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파워 슈트에 다가갔다.

그러자, 파워 슈트 [은비늘]은 카밀라를 인식했는지, 연결 부위, 접합 부위 하나 보이지 않던 매끈한 금속판을 분리하며 자신의 내부를 드러냈다.

[은비늘] 내부는 데스웜의 가죽으로 랩핑되어, 내부의 부품들이 보이지 않았으나.

연면부 디스플레이에 띄워져 있는 정보들만 보면, ‘넷 다이버’에서 보았던 파워 슈트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카밀라가 [은비늘] 안으로 들어가자,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철커덕하는 금속음과 함께 [은비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후우우, 춥네.-


[은비늘]을 타고 있는 탓일까? 카밀라의 목소리에 전자음과 같은 노이즈가 끼워져 들려 왔다.

카밀라는 가볍게 움직이며, [은비늘]이 자신의 뜻대로 잘 움직이는 건지 확인했다.

몇 번 몸을 움직이며, [은비늘]을 확인한 카밀라는 큰 문제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총을 챙겼다.

안 그래도 작은 크기인 카밀라의 총은 [은비늘]을 입은 카밀라의 손에 들려 있자, 더욱 작아보였다.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나 있어.-


카밀라는 그렇게 말을 한 뒤, 가볍게 점프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카밀라의 [은비늘]은 안 그래도 걸레짝처럼 찢어져 있는 미니버스의 천장을 뚫고 바깥을 향했다.

그와 동시에 미니버스의 프레임을 꽉 쥐고 있던 작살의 끈을 잘라냈는지, 미니버스가 급발진하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으아아악! 말 좀 해주지!!!”


나는 급발진으로 휘청거리는 미니버스를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핸들을 강하게 붙잡고 액셀을 발에서 뗀 뒤, 브레이크를 살살 밟았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유리창을 깨고 바깥으로 튀어 나갈 수 있으니까.

바닥이 모래들이라 그런지, 미니버스는 한참을 앞으로 나간 뒤, 멈추어 설 수 있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카밀라가 약탈자의 발목을 잘 잡아줘서 그런 건지, 주변에 나와 미니버스를 노리는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후우.”


나는 잔뜩 올랐던 긴장감이 살짝 완화되는 걸 느끼며 긴 한숨을 내뱉었으나.


콰과광!


이내 뒤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폭음에 다시금 핸들을 움켜쥐었다.

카밀라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오직 하나, 샷건 뿐이었다.

저렇게까지 큰 소리를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퍼버벙!


내 추측에 힘을 실어주려는 듯, 연속적으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젠장.”


파워 슈트가 폭발에 좀 휘말렸다고 망가지는 일이 없겠다만.

계속해서 폭발에 노출이 된다면 파괴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카밀라의 파워 슈트에는 보조장비가 하나도 없는 상태,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미니버스를 타고 상대한테 꼴아박기? 그건 자살행위 밖에 안 될텐데?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 해봤자, [비단뱀] 한 정뿐인데?


“가자.”


운전대를 붙잡고 한참 동안 고민하던 나는, 미니버스의 시동을 꺼버리고 키를 챙긴 뒤, 바깥으로 나왔다.


*


아직 해가 중천에 걸려 있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습격을 강행한 약탈자들의 공격은 무자비했다.

땅바닥을 완전히 파헤쳐 버리려는 듯, 어느 한 곳을 향해 계속해서 미사일 같은 걸 쏘아댔는데, 얼마나 많은 폭발을 쏘아댄 건지, 폭발에 휘말린 모래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나는 [화살막이의 로브]가 내 몸에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한 다음,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몸을 낮춘 채, 격전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격전지 근처로 다가오자, 폭음이 더는 들리지 않았으나, 폭음만큼이나 커다란 총성이 내 귓가를 아프게 만들었다.


투두두두두-


근처로 자세히 가보니, 약탈자들이 자신들의 자동차를 엄폐물 삼아, 폭발로 인해 생긴 구덩이 안으로 총알을 말 그대로 쏟아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구덩이 안에 있는 건, 연이은 폭발로 인해 표면이 붉게 달아오른 카밀라와 [은비늘]이었다.

연속된 폭발에도 큰 문제가 없었던 건지, 약탈자들의 총알을 막아내는 [은비늘]이었으나, 총알에 실린 충격량까진 이겨내지 못했는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속절없이 밀리기만 할 뿐이었다.


‘못해도 부스터가 있어야 했는데.’


파워 슈트의 부스터는 모 게임의 플래시라는 스펠처럼 필수적이다.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파워 슈트도 집중 공격을 당하게 되면 망가지기 마련이며, 지금처럼 움직임을 방해하는 방법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기에.

그 자리에서 탈출하거나 돌진할 수 있게 해주는, 부스터가 진짜 필수다.


‘카밀라도 나름 힘을 내긴 했는데···.’


카밀라가 속절없이 밀린 건 아니다.

미니버스에 작살을 쏘아, 천장을 찢었던 차량 두 대를 전복시키고 차량에 타고 있었던 몇몇의 인원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으니까.

그러나, 그 정도로는 어떻게든 우리를 털어먹기로 작정한 약탈자들을 막아내기엔 무리였다.


-개자식들!-


카밀라가 어떻게든 용을 쓰며 움직이려고 하자, 약탈자들은 식겁했는지 총성이 뚫을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로 서로에게 소리쳤다.


“빨리빨리 준비 안 해!?”


“하고 있으니까, 닥치고 있어!”


“대낮에 열 식히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냐!?”


그들의 소리가 난 곳을 자세히 바라보자, 열을 받아 새빨갛게 달아오른 주포를 열심히 식히고 있는 약탈자들의 모습과

주포 근처에 몰려 있는 폭약들을 볼 수 있었다.

저걸 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될 거 같은데, [비단뱀]으로 쏘기엔 거리가 상당했으며, 폭약만을 지키는 약탈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화살막이의 로브]의 은신 효과를 사용한다면 접근은 할 수 있겠다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후우우.”


미니버스에서 느꼈던 죽음의 공포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내가 공포에 갈팡질팡하는 동안, 약탈자들은 잠시 총을 쏘는 걸 멈췄다.

왜 갑자기 총을 쏘지 않고 조용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곳에 약탈자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확성기를 들고 저벅저벅 구덩이 앞으로 나아갔다.

얼굴에 큼지막한 흉터와 총으로 된 의수를 달고 있는 약탈자 대장은 가만히 앉아, [은비늘]이 받은 열과 충격을 점검하는 카밀라에게 말했다.


=아아, 거기 오아시스의 마녀.=


오아시스의 마녀?

도시의 사람들이 카밀라를 마녀라고 부르던데, 그래서 오아시스의 마녀인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낄낄거리며 웃는 낯짝으로 말하는 약탈자 대장의 모습에, 카밀라는 당장이라도 씹어 죽이겠다는 듯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


=들어보고 말하지? 어차피 움직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거 아니야?=


정곡을 찔린 카밀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약탈자들은 -좋아, 좋아.-라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제안은 간단해. 지금이라도 항복하고 내 가랑이 아래로 기어들어 오면, 내 첩으로 받아주지.=


너무나 흔한, 소설이나 만화에서 등장했다가 1화 만에 죽어버리는 악당들의 대사를 내뱉는 약탈자 대장.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들이 어떻게든 잘 헤쳐나가겠지, 혹은 잘 파훼하겠지. 생각하며 곧 나올 사이다에 환호했겠지만.

막상, 내가 주인공의 입장이 되자, 눈앞이 캄캄했다.


“아니, 대장! 우리한테도 맛 좀 보게 해준다며!”


“옳소! 옳소!”


=다 닥쳐 이 새끼들아!=


약탈자 대장의 외침에 부하들은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 건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약탈자 대장은 자신의 근처에 있는 부하의 뒤통수를 가볍게 후려치며, 카밀라에게 말했다.


=딱, 10초 준다. 10초 뒤에는 우리 애들을 죽인 만큼 낳아야 할 거야?=


약탈자 대장의 말에 부하들은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다.

그러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자기들끼리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약탈자들의 흑심 가득한 목소리에, 카밀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개소리.-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수많은 폭격과 총알 비에서도 망가지지 않은 총을 꺼내 약탈자 대장에게 겨누고 총을 쏘았다.


탕!


총알을 개량이라도 한 걸까? 본래대로라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였으나.

수 개의 쇠 구슬들은 상당한 거리가 있는 약탈자 대장에게 정확히 날아갔다.

하지만.


티디딩


=그래, 이래야, 내가 아는 마녀지.=


피부를 강철합금으로 바꾸기라도 한 걸까? 쇠 구슬들이 약탈자 대장의 얼굴과 몸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는 듯, 낄낄거리며 말했다.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쏴.=


“예! 대장!”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술봉이라고 불리는, 바주카포의 포탄이 카밀라를 향해, 아주 정확히 날아갔다.


퍼어엉!


폭탄이 터지고 모래가 비산하며, 모래의 비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좀 이동을 해서 그런지, 카밀라가 폭발에 휘말려 검게 타들어 간 모래,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보자.”


카밀라에게 모든 총알과 폭탄을 쏟아붓고 음담패설과 갖가지 욕설을 내뱉는데, 집중하는 약탈자들의 모습에.

나는 [화살막이의 로브]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 쓰고 모래에 납작 엎드려, 아주 천천히 저격하기 좋은 포인트로 기어갔다.


작가의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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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 들켰다. +1 23.09.21 520 40 14쪽
32 31. 나의 완벽한 친구 +4 23.09.20 541 41 13쪽
31 30. 재료 구매 +2 23.09.19 537 38 13쪽
30 29. 전리품 +1 23.09.18 564 34 14쪽
29 28. 뒷정리 +4 23.09.15 583 39 13쪽
28 27. 첫 살인 +3 23.09.14 583 39 16쪽
» 26. 은비늘 +1 23.09.13 594 39 13쪽
26 25. 약탈자들의 습격 +1 23.09.12 614 35 13쪽
25 24. 고백 +3 23.09.11 641 41 14쪽
24 23. 죄의 무게 +1 23.09.08 700 35 12쪽
23 22. 깃털 도시 +4 23.09.07 700 35 13쪽
22 21. 운전할 때는 라디오지 +4 23.09.06 727 46 13쪽
21 20. 첫 상행 출발 +7 23.09.05 775 43 16쪽
20 19. 첫 상행 준비 +3 23.09.04 839 41 13쪽
19 18. 사격연습 +7 23.09.01 937 47 15쪽
18 17. 연금술 +4 23.08.31 922 5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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