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626
추천수 :
372
글자수 :
205,830

작성
23.06.21 00:16
조회
76
추천
6
글자
12쪽

축제

DUMMY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화목했던 가정도, 희망찬 고등학교 생활도, 세 남매가 꿈꿨던 미래도.

다행히 아빠는 여러 차례의 수술을 겪고 무사히 일어나셨지만, 한 번 무너진 집안을 되살리기란 쉽지 않았다.


“아빠가··· 미안하다.”


무거운 어깨가 축 늘어진 아빠의 모습.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 남매 모두 알고 있었다.

음악이란 돈이 많은 과목이란 걸.


결국, 세 남매는 하람예고 진학을 포기하고, 기존에 다니던 중학교의 바로 옆, 현성고등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잡았던 꿈을 놓는 건 쉽지 않은 법, 세 사람은 모두 밴드부에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음악은 즐거웠지만, 마음 한구석에 드는 공허감은 여전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승아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음악이란 길은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저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국립대에 입학하는 것이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목표일 뿐이었다.


밴드부를 그만두는 것 역시 마음을 굳게 먹기 위함이었다.

한때는 찬란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서.


“이제야, 결심했는데.”


눈물을 머금고 버렸던 하람예고의 합격증.


“포기할 수 있었는데.”


남몰래 눈물 흘리던 아빠의 모습.


“그런데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자신처럼 포기한 줄 알았지만, 여전히 나아가고 있던 서아와 민섭.

지금도 그녀의 눈앞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는 후배.

모든 장면이 승아의 머릿속을 뒤죽박죽 섞어놓았다.


“알바하는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값비싼 악기와 학비는 알바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남들은 모두 연습하고 있을 시간에 알바를 한다는 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학업, 알바, 음악을 병행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된 일이었으니까.


“너는 지금 내가 어떤 심정인지 모르잖아.”


승아는 자신의 후배가 부러웠다.

현실에 관한 걱정 없이 음악을 할 수 있는 노헌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간절한 일인지 모를 그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녀의 진심이었다.

서아, 민섭과 함께 밴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고 싶었다.

이번 축제가 마지막 무대가 아니었으면 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걸···.”


참고 있던 눈물이, 마음이 쏟아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노헌.

그도 승아와 똑같지는 않지만, 또 다른 과정을 걸어온 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비록 자신만의 오지랖에 불과할지라도.


‘도와주고 싶어.’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현묵이 자신을 찾아주었던 것처럼, 이번엔 자신이 그녀를 찾아주고 싶었다.


‘어떤 방법이 없을까?’


물론, 신 씨 가정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없었다.


‘승아 누나한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 아! 그렇지!’


그 순간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그때처럼 된다면 그녀가 음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노헌은 곧바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위잉―


뒤이어 온 답장에는 긍정의 대답이 실려 있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은 끝냈다.

남은 것은 단 하나.



“포기는 축제가 끝난 뒤 해주세요.”



축제 공연뿐이었다.



♪♪♪



축제 전, 마지막 한주.

음악실에 세 사람의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피아노, 기타, 그리고 드럼.

이젠 완벽하디 완벽한 합주, 그러나 한 가지 부족했다.


노헌은 조용히 음악실 문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 순간, 문틈 사이로 마주친 누군가의 눈동자.

그녀는 바로···.


“그··· 안녕.”


신승아였다.


그녀가 음악실에 들어오자, 한순간에 끊긴 연주 소리.

오직 싸늘한 침묵만이 이 자리에 맴돌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신 씨 세 남매.

노헌이 그들의 눈치를 슬그머니 보고 있을 그때.


“뭐해?”


서아가 승아 쪽을 흘겨보며 말했다.


“빨리 마이크 안 잡고.”

“아, 미안.”


그제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승아.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 순간이었다.


“자, 그럼 시작한다.”


민섭의 말과 함께 터져 나오는 드럼 소리.

그에 맞춰서 노헌과 서아의 반주가 어우러졌다.

모두가 기다리는 가운데···.


“한~순간―.”


승아의 청아한 목소리가 음악실에 울려 퍼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러모로 복잡했던 연습은 동아리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마무리됐다.

모두가 각자의 교실로 돌아가려 하던 참.


“저기, 미안해.”


승아가 사과를 해왔다.


“밴드부 부장으로서 이런 책임 없는 행동 해서 미안해, 조금 감정적이었던 거 같아.”


확실히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축제를 앞두고 밴드부 연습을 빼먹은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잘못이었다.


“뭐, 이제야 알면 됐어.”

“노헌이한테는 따로 사과해.”

“안 그래도, 저번에 둘이 만났을 때 받았어요.”


도서관 앞에서 헤어지기 전, 승아에게 받은 사과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럼, 됐고.”


그 말을 끝으로 교실로 돌아가는 서아.


“그래도 네 덕분에 어떻게든 한시름 돌렸네, 고마워.”


민섭 역시 노헌의 등을 두드려준 뒤, 서아의 뒤를 따랐다.


이 자리에 남은 건, 승아와 노헌뿐.


“누나, 저랑 나머지 연습하실래요?”

“나머지 연습?”


오늘 했던 연습에서도 잘 불렀지만, 축제 때를 위해선 약간 아쉬웠다.


“학교 끝나고 음악실에서 같이 연습하죠.”



♪♪♪



어느덧 찾아온 축제 당일.

모두가 들뜬 분위기 속에서 단 네 명만이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허설 때 잘했으니까, 긴장하지 마!”


무대의 뒤편.

공연을 바로 앞둔 밴드부였다.


“자, 이제 입장해주시면 됩니다!”


학생회의 말에 따라 그들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눈에 보이는 것은 미리 설치해둔 악기들.

무대 왼쪽에 전자 피아노가, 오른쪽에 기타가, 가운데 뒤쪽에는 드럼이, 마지막으로 정 중앙에 놓여있는 무선 마이크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네 명은 긴장된 눈빛을 교환했다.


곧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 무대의 막.

그 너머로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이노헌! 멋있다!”

“보여줘~~!”


준모와 친구들.


“밴드부가 네 명밖에 안 돼?”

“저기 세 남매 있는 동아리라, 부담스러워서 사람이 안 모인데.”


수군거리는 학생들, 그리고···.


‘왔구나!’


노헌의 시선이 멈춘 곳에 기다렸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을 봤는지, 엄지를 척 내밀었다.

반가운 마음이 드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드럼 소리.


박자에 맞춰, 노헌은 건반을 눌렀다.

동시에 들려오는 서아의 기타 연주.

리허설 때처럼 완벽한 호흡이었다.


이제 남은 건 승아의 노래.

이때를 위해서 일주일간 콩쿨 연습 시간까지 줄여가며 연습을 도왔다.

결과는 리허설 때 확인했지만, 실전은 항상 떨리는 법.

그래도 그녀를 믿었다.


‘분명 할 수 있어!’


그런 그의 마음이 통한 듯―


‘그래, 해보자.’


수많은 관중을 바라보며, 승아는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음색.

아직 여름이 되지도 않았지만, 마치 시원한 파도가 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노헌이 덕분이야.’


비록 그는 이 축제가 끝난 다음에 포기하라 했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그저 위로라고 느껴졌다. 학교가 끝난 후 같이 나머지 연습을 해준 것 역시.


‘그래도 재밌었어.’


이것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만, 화려하게 장식해준 그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처음 밴드를 시작했을 때의 열정.

처음 무대에 섰을 때의 설렘.

처음 느꼈던 좌절감.


승아는 모든 것을 목소리에 실어 보냈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 무대를 뜨겁게 달구는 열기, 잊히질 않을 것 같은 이 아름다운 광경 모두 그녀가 한없이 원했던 것들이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모두 마무리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끝이 나기 전에.


“잠시 세상은 잊을게~!”


이 순간이라도.

신나게 즐기고 싶어.



♪♪♪



“와, 최고였어!”

“보컬 누나, 가수 지망생이야? 엄청 잘 부르던데?!”

“아니, 연습을 얼마나 한 거야? 난 진짜 밴드 보는 줄 알았어!”


공연이 끝나자, 수많은 칭찬이 쏟아졌다.

이제야 한 달여간의 여정이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노헌은 시끌벅적한 인파를 뚫고, 기다렸던 남자를 만나러 갔다.


“어땠어요?”

“이야~ 정말 최고였어요! 이거라면 분명 뛰어넘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이런 훌륭한 공연도 찍을 수 있게 해주시다니.”


목적을 달성한 둘은 웃음을 나누고는 이내 헤어졌다.

그렇게 노헌이 음악실로 돌아오자, 세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축제인데 우리도 즐겨야지.”

“뭐 먼저 먹을래?”


저번 주까지만 해도 싸늘했던 분위기는 꿈이었던 것처럼 화목해진 세 남매.

그들과 함께 축제를 돌아다니기로 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이제 말해봐.”

“그래, 다 들어줄게.”

“오늘 봤지? 우리 인기 엄청 많았다고?”


잊힌 줄로만 알았던 연애 상담이 갑작스레 되살아나 버렸다.


“무슨 고민인데?”

“분명, 저번에 차였다고 했었지?”

“너무 집착하는 남자는 인기 없어.”


축제를 돌아다니며, 여러 음식을 구매한 네 사람은 음악실에서 나눠 먹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여자애가 너한테 벚꽃 보자고 데이트 신청했다고?”

“그리고 노헌이, 네 마음을 아는데,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고?”

“심지어 너는 고백도 안 했다고?”


여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바라보는 선배들.

그들은 입을 모아 똑같이 말했다.


“그거, 어장관리 아니야?”


어장관리란?

이성에게 접근했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대상이 자기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말했다.


“그러니까, 즉 자신이 갖기엔 싫고, 남 주기에는 아깝다는 거 아니야?”

“와, 진짜 나빴다.”


하지만, 노헌은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


지금까지 그가 봐왔던 하린은 그런 못된 심보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노헌아, 원래 어장 속 물고기들은 다 그렇게 말해.”

“넌 이미 걸려든 거야.”

“그런데 좀 의아한 부분이 있긴 한데···.”


무언가 생각에 잠긴 서아.

그녀는 신 씨 세 남매 중 유일하게 하린을 본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걔 노헌이한테 호감 있는 거 같긴 하던데?”


노헌과 하린이 그녀가 알바하는 카페에 왔을 때, 서아는 그에게 귓속말을 했었다.

비록 그때도 연애 조언이긴 했지만, 말을 끝내고 고개를 돌리자―


“질투하던데?”


어이없어하던 하린의 표정.

그것은 분명 질투의 증거였다.


“에이, 아니지. 감히 자신을 두고, 신서아 같이 못생긴 애랑 이야기하다니, 하고 화가 난― 아악!”

“말 제대로 하자, 막내 민섭아.”


투덕거리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노헌은 남은 한 사람, 승아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추측이니까 너무 믿지는 마. 중요한 건 네 마음이니까. 그래서 너는 그 애를 좋아해?”

“잘··· 모르겠어요.”


벚꽃을 봤던 날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두 사람은 연락 중이었다.

그저 단순한 일상이나, 취미, 성격 같은 이야기였지만, 어쩐지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어차피, 그 애도 기다려달라고 했고, 너도 아직 네 감정을 모른다면, 지금처럼 흘러가도 괜찮을 거 같아.”

“그래, 내가 그때도 말했듯이 걔는 천천히 다가가야 할 스타일이야.”


결국, 연애 상담은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



다음 주, 월요일.

노헌이 평소처럼 등교했을 때였다.


“야야, 이노헌! 이제 완전 유명인이네!”

“이러다 TV도 나가는 거 아니야?”

“뭐가?”


아침부터 호들갑을 떠는 친구들.


“이거 안 봤어?”


준모가 내민 휴대폰엔 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축제에서의 밴드부 공연이.

그리고 그 조회 수가 자그마치―



100만을 돌파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 비밀 (수정) +4 23.06.25 89 6 11쪽
38 탑의 정상 +2 23.06.24 64 6 11쪽
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8 6 11쪽
» 축제 +3 23.06.21 77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88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6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99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8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3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7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0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4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6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0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2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2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3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