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639
추천수 :
372
글자수 :
205,830

작성
23.06.09 16:14
조회
88
추천
9
글자
12쪽

나은과 나비 (2)

DUMMY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로 나은은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자신 때문에 오빠가 변한 것 같았기에.


‘피아노··· 친다고 했지?’


영상 속 그의 실력은 상당한 기간을 연습한 듯했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오직 독학으로만.

그렇게 좋아하는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학원도 다니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엄마, 아빠. 오빠 말도 좀 들어주면 안 돼?”


나은은 부모님께 조심스레 말했다.

오빠의 말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그러나, 부모님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너한테까지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구나.”


엄마와 아빠 또한 지금까지 오빠에게 했던 본인들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그저 오빠라고 동생인 나은과 비교했던 지난날들을.


“뒤늦게 아빠도 노헌이한테 말을 걸어봤는데···.”


이미 오빠의 마음엔 거대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침묵이라는 벽이.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 그가 부모님께 뭔가를 부탁한다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오빠한테 말해볼게.”


그래서 그 역할을 자신이 맡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기에.


그 후 나은은 항상 대화할 기회를 찾아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오빠는 늦은 시간이 돼서야 집에 들어왔고, 잘 보이지 않았다.

이젠 완전히 자신을 피하는 걸까··· 하던 생각마저 들던 어느 날.

우연히 집에 돌아온 오빠와 마주쳤다.


“오빠, 요즘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그냥, 피아노 연습 좀 하다 왔어.”


또 다.

벌써 두 번째로 듣는 말, 피아노.

같은 집에서 사는 데도, 이렇게 좋아할 줄은 전혀 몰랐다.


“오빠, 학원도 안 다니잖아, 연습은 어디서 하는 건데?”


나은의 집에는 피아노가 없었다.

그렇다고 노헌이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어, 어? 그··· 리나네 집.”


오빠의 입에서 나온 건 생각지도 못한 장소였다.


“뭐? 리나 언니 집? 프랑스로 유학 갔다면서.”

“피아노 연습할 때가 없어서 빌렸지.”


충격적인 대답.

친구에게 빌릴 정도로 좋아하는 피아노, 그런데도 가족에게 부탁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이제 됐지?”


귀찮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려는 오빠.

지금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되잖아···.”


그러나 그녀는 끝내, 꺼질듯한 목소리로 서서히 닫혀가는 그의 방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오빠와 마주치는 일은 더욱 적어졌다.


‘이대로, 더 멀어지는 걸까···?’


그런 울적한 기분이 들던 순간.


“엄마, 아빠. 저 독일에 좀 다녀와도 될까요?”


기적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듣는 오빠의 부탁.

물론 내용이 조금 뜬금없긴 했지만, 내용보단 그 시도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허락해주시는 부모님.


이 모든 장면을 나은은 자신의 방문 틈 사이로 지켜보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오빠.


“솔직하게 말하면 들어주실 거라고 했잖아~ 내 말이 맞지?”


이제야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오빠는 독일에 갔다 온 이후로도, 피아노를 연습한다며 늦게 들어오긴 했지만, 이전과는 달리 종종 먼저 말을 걸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은은 집에 도착한 상장을 발견했다.


“학년 대상?”


그것은 오빠의 것이었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콩쿨에 나가 상 탈 정도라니.

혹여나, 전공이 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그는 예술고등학교가 아닌 일반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설마, 부모님이 허락해주지 않을까 봐, 포기한 거야?’


대체 어째서.

독일에 가는 것도 허락해주셨는데.

이제야 오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됐는데.


그를 따라온 콩쿨.

나은은 지금 막 무대에 선 오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정말 그랬던 거라면.


오빠는 나 때문에 꿈을 포기한 거야?


그 순간, 한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한 소년이 있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특출난 부분이 없던 소년, 그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어.”


끊임없는 억압, 누구보다 뛰어난 동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자신.

이 모든 건 어른이 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았다.

때론 눈물이 날 만큼 억울하고, 지금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더라도, 참았다. 아직 자신은 어렸고, 세상에 나아가기엔 부족했으니까.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어른은 뭐라고 생각해?”


당연한 질문에 소년은 코웃음을 쳤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요.”


가족의 곁을 떠나,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질문한 사람은 이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요즘 어른들도 그렇게 자유롭진 않아.”


단순히, 아이의 입장으로선 동경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현재 나이로선 불가능한 일들을 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것은 사회적 지위로서의 어른일 뿐이었다.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 어른이 될 수 없어.”

“뭐라고요?”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껏 참아온 자신은 대체 뭐가 된다는 말인가.

어른이 되기만을 바랐던 지난날들은 어디로 간 거란 말인가.


“그럼, 저는 대체 뭘 하고 있던 건데요···.”

“아니, 잘했어. 하지만, 네가 어른이 되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해.”


그것은 준비.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예쁜 나비도 처음부터 예뻤던 건 아니야.”


처음엔 모든 사람에게 꺼려지는 못생긴 애벌레였다.

남들과 비교당하고, 특출난 부분 하나 없는 벌레.

그저 적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그것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 위해 한 가지 시련을 겪어.”


성장을 멈추고, 자신의 몸을 칭칭 묶어 꼼짝 못 하는 번데기가 된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참고 인내하며―


“봐요! 참고 인내하는 거라잖아요. 대체 제가 여기서 뭘 더 해야 하는 건데요?”

“끝까지 들어봐.”


참고 인내하며, 세상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한다.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과정, 그것이 우화.

하지만, 나비에게 있어서 우화란, 목숨이 걸려 있는 사투였다.


만약 우화 하는 도중, 땅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날개는 펴지지 않고, 그대로 굳어버리기 때문, 그렇다면 영영 날 수 없게 된다.


“어른도 마찬가지야, 만약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까?”

“날 수 없게 되겠···죠.”


자유? 선택? 모두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에 따른 책임.


“그래.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은 어른은 더 이상 날 수 없어.”


날지 못하는 나비에게 남은 건 죽음뿐, 책임지지 못하는 어른에겐 그것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날 수 있는 「나비」가 되어야 해.”


소년은 고민했다.

그 준비가 무엇인지.

날 수 있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건 학교에서도 가르쳐 준 적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거라고.


피아노를 치며, 여러 사람을 만났고, 부족한 자신의 곁엔 항상 피아니스트가 남아있었다.

천재라고 불리는 그에게도, 그의 뒤를 따라 유학을 간 친구에게도, 한국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중학생에게도 다들 부족한 점은 있었다.


그런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모두,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야 알았어.”


후회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남들보다 늦었을지라도, 아직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의 곁엔 천재 피아니스트가 있었으니까.


소년은 오로지 달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하게 달릴 뿐이었다.

지금도 앞서있는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무대에서 다시 만나자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선생님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게.


그리고 그는 마침내 오늘.



「나비」가 될 수 있었다.



연주는 단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주회장에 있는 모두에게 이 순간을 새기기엔 충분했다.


이후 날아오른 나비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입에 담았다.


새로운 천재의 탄생이라고.



♪♪♪



숨이 막힐듯한 분위기.

어느 대기실에서 두 사람은 모두 똑같은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예선이랑 본선은 분명 일주일 차이지?”

“···그래.”

“그런데 어떻게―?”


연주가 변한 거야?


하린은 예선 때 노헌의 연주를 떠올렸다.

학년 대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그의 모습.

콩쿨에서의 감을 잡아가는지, 영상 속 「겨울바람」을 쳤을 때의 실력이 조금씩 나타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단 1분이었지만, 무대에는 노헌이 아닌, 강현묵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그렇게 하린이 중얼거리는 사이.

또 다른 한 사람, 준서 역시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번 대회에선 상도 못 타겠네.’


저번 예선 때는 비록 자신의 실수였지만, 이번만큼은 잘 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잘 쳐도, 이번 노헌의 연주는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오늘은 선생님도 보러 오셨는데 상을 하나도 못 탔다간···.’


안 봐도 눈에 선한 모습에 준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그리고 그 시각, 노헌은.


“오빠! 진짜로 나 때문에 피아노 포기한 거야?”

“뭐?”


연주회장 바깥, 한구석으로 여동생, 나은에게 끌려온 상태였다.


“그렇게 피아노를 좋아하면서, 그런 실력이 있으면서, 피아노를 포기한 거냐고!”

“아니, 포기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노헌은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말을 잇는 나은.


“오빠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이 얼마나 수군거렸는지 알아? 새로운 천재의 탄생이니, 강현묵 피아니스트를 봤다더니, 다들 오빠를 칭찬했어!”

“어··· 어? 그 정도였다고?”


물론, 오늘 연주가 지금까지 쳤던 것 중 가장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 극찬받기도 했고, 연주를 끝내고 나왔을 때 원석과 예원의 얼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표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왜 내가 피아노를 포기했다는 결말이 나온 거야?”

“그야, 오빠··· 일반고등학교 진학했잖아.”

“아, 뭐야. 그런 거였어?”


나은은 자신 때문에 노헌이 피아노 학원도 못 다니고, 부모님께 비교당해, 결국 피아노를 포기한 줄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거라니?! 엄마, 아빠한테는 내가 같이 말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오빠, 피아노 포기하지 마!”


마치 자기 일처럼 말해주는 그녀의 모습에 노헌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어? 고맙네.”

“그러면 포기 안 할 거지?”

“응, 애초에 포기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노헌은 앞으로 예술고등학교에 편입할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어··· 어? 그럼 지금까지 내가 했던 걱정은···?!”


그제야 깨달은 듯, 머리를 부여잡는 나은.

노헌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해, 네 탓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나은을 질투해서, 피한 적도 있었다.

분명, 동생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당시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는 것 같아 그랬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그저 어리게만 생각했던 동생은 어느새 생각보다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그리고 고마워, 네 덕분에 엄마, 아빠한테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다행이다··· 포기한 게 아니었다니.”

“참고로 네가 방금 말한 것처럼, 같이 옆에 있어 줘야 한다?”

“당연하지!”


오빠의 말에 나은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순간.


“어?”

“왜?”


그녀의 눈에 아른거리며 날아가는 노란빛이 보였다.


“나비···.”

“뭐? 아직 2월인데?”


노헌이 허둥지둥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거 아니야?”

“으응, 그런가 봐.”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은의 눈은 여전히.

오빠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나비」를 쫓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 비밀 (수정) +4 23.06.25 90 6 11쪽
38 탑의 정상 +2 23.06.24 65 6 11쪽
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8 6 11쪽
36 축제 +3 23.06.21 77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89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6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9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4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1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7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0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2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