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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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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638
추천수 :
372
글자수 :
205,830

작성
23.06.16 23:59
조회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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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벚꽃이 흩날리던 밤

DUMMY

‘진짜로···?’


노헌은 예전 준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걔는 너한테 관심 있는 거 같던데?”


하린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당황스러운 말.

솔직히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타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괜히 김칫국 마시지 않기 위해 노헌은 그동안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누가 봐도 데이트 신청이잖아?!’


다음 주, 토요일.

노헌의 동네에서 보자는 약속이었다.


“다음 주면 벚꽃도 필 텐데··· 설마, 벚꽃 보러 가자는 건가?”

【아, 그런 거였네. 너랑 보고 싶었나 보다.】

“확실하겠죠?”

【장담컨대 하린이는 너를 좋아하는 게 맞아.】


관심을 넘어선 애정.

옆에서 부채질하는 현묵의 말에 노헌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 옷 뭐 입어야 하지?”


그날 저녁, 노헌은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어쩐지 초조해진 마음 탓이었다.


【전에 데이트했을 때 입었던 거 입으면 되지 않아?】

“저 이번이 처음인데요?”


노헌은 여태껏 데이트를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여자애랑 같이 놀았던 건 친구, 리나뿐이었으니까.


“선생님은 웬디 누나랑 데이트 많이 해봤을 테니까, 옷 잘 입으실 거 아니에요?”

【···나?】


사실 현묵은 웬디와 함께 놀았던 날들을 데이트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도 최근에 눈치챘으니까.

게다가···.


【내 옷은 맨날 웬디가 골라줘서, 나도 잘 몰라.】


현묵의 예술 감각은 모두 음악 쪽으로 가버린 모양인지, 패션 감각은 눈 뜨고 봐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유학 가기 전에는 혼자 골랐을 거 아니에요?”

【아니··· 그때도 친구들이 골라줬어.】


그 말을 끝으로 노헌은 홀로 옷을 이것저것 입어 보았다.

하지만, 어쩐지 불협화음처럼 어울리지 않는 옷들.

끝내 그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방을 빠져나왔다.


똑똑―


“응?”

“어, 난데···.”


노헌이 찾은 사람은 바로.


“오빠?”


동생, 나은이었다.


“웬일이야? 내 방에 다 찾아오고?”

“그게, 혹시 옷 코디 좀 해줄래?”

“코디? 데이트라도 하는 거야?”


노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앞장서서 노헌의 옷장을 뒤지기 시작하는 나은.

그렇게 밤은 저물어갔다.



♪♪♪



어느덧 4월, 약속 당일.

하린은 지하철을 타고, 노헌의 동네로 가는 중이었다.


‘옷은 괜찮고, 화장은 잘 먹었지?’


가는 내내, 옷차림과 화장을 연신 들여다보았지만, 틀림없이 괜찮았다.

그걸 알면서도 어째서 다시 눈길이 가는 걸까?


‘데이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유난 떠는 거야···.’


그렇다.

이것은 데이트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노헌의 착각, 하린은 그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벌써 몇 번짼지 모르는 몸단장을 검토하는 사이, 지하철은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며 역을 나섰다.


“어.”


곧바로 보이는 것은 약속 상대의 옆모습.

노헌이 핸드폰을 보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

“어, 어? 안녕.”


말을 걸자, 이쪽을 돌아보는 그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콩쿨 때와는 또 다른, 캐주얼한 복장, 그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럼, 가자.”


하린은 노헌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카페 가는 건가?’


오늘 약속의 목적은 대화였기에 하린은 그가 카페로 데려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방금 지나쳤는데?’


몇 개의 카페를 지나쳤음에도 노헌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아, 근처에 벚꽃 축제가 열렸거든.”

“···벚꽃?”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단순히 이야기만 하고 돌아가려 했었는데, 벚꽃이라니.


‘나랑··· 같이 보고 싶은 건가?’


생각해 보면 노헌은 자신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단둘이 만난 이런 기회를 이야기만으로 날리고 싶지 않았던 거다. 라고 하린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거 데이트··· 아니야?’

결국, 그녀는 노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좀 덥네··· 봄이라서 그런가?”


옆에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운을 띄우는 노헌.

그의 모습에 하린 역시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그러게? 커피라도 마시면서 걸을래?”


어떻게든 시원한 거라도 마셔야, 이 열이 식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들어간 가까운 곳의 카페.

두 사람은 키오스크에 표시된 메뉴를 보았다.


“뭐 마실래?”

“나는 밀크티.”


하린은 밀크티를 굉장히 좋아했다.

애초에 카페인이 잘 안 드는 체질이었기도 했고, 밀크티 특유의 달달 하면서 씁쓸한 맛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한 번도 안 마셔봤는데, 그거 맛있어?”

“호불호가 좀 갈리긴 하는데, 나는 좋아해.”

“으음··· 그냥 나는 아메리카노 마셔야겠다.”

“뭐야,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왠지 모르게 나오는 웃음을 애써 누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계산하는 노헌.


“아, 계좌 알려주면 보내줄게.”

“됐어, 다음에 만날 때 사줘.”


다음?

벌써 다음 만남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생각보다 적극적인 그의 말에 하린이 입을 열려던 순간.


“포장하신 아메리카노, 밀크티 나왔습니다.”


점원의 목소리에 그녀는 입을 도로 닫았다.


“아,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 어? 노헌이?”

“엥? 서아 누나?”


그 순간, 마주 보는 점원과 노헌.

둘은 서로 아는 사인 듯했다.


“누나도 알바해요?”

“용돈이 모자라서, 그런데 나 말고 알바하는 사람 또 있어?”

“아아···! 그냥 친구 얘기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갑자기 당황하며 말을 돌리는 노헌.

다행히 두 사람은 친한 편은 아닌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노헌의 귀에 무어라 귓속말하는 점원.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린은 어이가 없었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는 노헌의 모습 또한.


‘나랑 데이트하려고 했던 거 아니야?’


그러나, 하린의 예상과 달리 노헌은 뚱딴지같은 소리를 듣고 있었다.


“딱 보니까,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

“···예?”

“내가 봤을 땐 저 애는 천천히 다가가야 하는 스타일이야.”


바로 연애 조언이었다.


“어··· 일단 알겠어요.”

“그래, 잘 해봐.”


등을 두드려주는 서아의 배웅을 받으며 노헌은 하린과 함께 카페를 나섰다.


“아는 사람이야?”

“아, 그냥 동아리 선배야.”

“무슨 동아린데?”

“밴드부.”


어째선지, 갑작스레 많아진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며 둘은 벚꽃 축제로 향했다.


“예쁘다···.”


하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감탄사처럼 연분홍빛 벚꽃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각자의 손에 든 음료를 마시며, 둘은 조용히 거리를 걸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노헌.


“그러고 보니, 콩쿨 준비는 잘 돼가?”


5월의 콩쿨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 어? 내가 노헌이 너한테 콩쿨 이야기했었나?”


갑자기 눈에 띄게 당황하는 하린.


“그건 아닌데, 당연히 나갈 거 아니었어?”


5월에 대학교에서 개최하는 콩쿨은 규모가 큰 편이었기에 그녀 또한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나가야지···.”


고개를 끄덕이는 하린.

그러나 뒤이어 나온 말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누가 알려줬어? 나 쇼팽 콩쿨 나가는 거?”

“뭐?”



리나에 더불어, 하린까지 쇼팽 콩쿨이라니.

갑작스러운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 그거 말하는 거 아니었어?”

“나는 5월에 대학교에서 하는 콩쿨 말한 건데···.”


하린과 노헌은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그··· 추, 축하해.”

“고마워···.”


어떻게 보면, 이게 맞았다.

하린 역시 리나와 우승을 다투었던 천재 중의 천재였으니까.

세계적인 콩쿨에 나가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한동안, 두 사람은 말없이 벚꽃길을 걸었다.

이번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하린이었다.


“사실··· 오늘 이걸 이야기하려 했었어.”

“쇼팽 콩쿨을?”

“노헌이, 너한테는 말해주고 싶었거든.”


어딘가 불안한지, 그녀는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 말해줘서 고마워.”


노헌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카페에서 만났던 서아 누나의 조언 덕분일까?

왠지 지금 바로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 벚꽃 계속 볼래?”

“···어?”

“아, 맞아.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 찍자!”


분위기를 환기하며 하린을 데리고 사람들이 많은 포토존으로 향했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사진 한 장만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대신 저희도 한 장만···.”


한 커플에게 부탁하자, 흔쾌히 들어주었다.


“자자, 여친분 조금만 붙어주세요.”

“너무 잘 어울려요~”

“하나, 둘, 셋, 김치!”


찰칵―


핸드폰을 받은 노헌은 이내, 사진을 찍어준 커플 역시 찍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네~ 즐거운 데이트 되세요!”


인사를 마치고 사라지는 커플.

어느새 하린의 눈에 깃들어있던 불안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기 호수도 예쁜데?”

“한 번 가보자.”


벚꽃에 감싸 있는 풍경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도 먹고, 피아노가 아닌 일상 이야기도 나누었다.


마침내 다가온 헤어질 시간.

둘은 연분홍빛 사이에 켜진 가로등 밑을 걷기 시작했다.


“저녁에 보는 벚꽃도 예쁜데?”

“그러게, 엄청 예쁘다···.”


여자애와 처음 하는 데이트라서일까?

아니면, 그 여자애가 하린이기 때문일까?

어쩐지 끝나가는 시간이 아쉽게 느껴졌다.


‘다음에는 꼭 내가 말해봐야지.’


노헌이 그리 다짐하던 순간.


“노헌아.”


함께 걷고 있던 하린의 발이 멈췄다.

뒤늦게 멈춘 노헌이 뒤를 돌아보자―


“할 말이 있어.”


그녀가 환한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다.


“뭐, 뭔데?”


지금, 노헌의 심장은 여느 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첫 데이트부터 고백은 좀 빠른 거 아니야?’


혹시 고백을 받는 건 아닐까, 김칫국을 마시고 있던 것이었다.


“나 사실 네 마음을 알고 있었어.”

“내 마음···?”


노헌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니, 이건 마치.


‘고백도 하기 전에 차인 거 같잖아?’


애초에 고백할 생각도 없었다.

비록 하린에게 관심은 있었지만, 이것이 단순한 설레임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지, 아직 노헌은 판단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저 말은 마치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확신하는 거 같은데?’


진지하게 말하는 하린의 모습에 노헌은 조금 황당하기도 했지만, 벌써부터 거절당한 것에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아, 그래도―.”


그 순간, 휘몰아치는 바람.


“준비되는 그날, 내가 꼭 너에게 내 마음을 말할게.”


수많은 벚꽃잎이 가로등 아래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줄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

노헌은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기다릴게···.”


벚꽃이 흩날리던 밤.

두 사람만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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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탑의 정상 +2 23.06.24 65 6 11쪽
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8 6 11쪽
36 축제 +3 23.06.21 77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89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6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8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4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1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7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0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2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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