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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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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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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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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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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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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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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두 번의 사과

DUMMY

연주는 무사히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솔직히 연주 중간에 울컥해,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갔을까 걱정했지만, 심사위원들은 나름 좋게 봐주신 듯했다.


【대답 잘 들었어.】


텅 빈 대기실로 돌아오자, 입을 여는 현묵.

대답이란 그가 제안했던 편입을 의미했다.

노헌이 굳이 입으로 전하진 않았지만, 그의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 이해하기엔 충분했다.


【앞으로 잘해보자.】

“네!”


그렇게 노헌은 텅 빈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이노헌.”


익숙한 풍경.

뒤로 묶은 검은 머리칼, 평소처럼 무표정한 정하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번의 기억이 떠올라, 노헌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벌어지지 않는 거리.

그가 멀어지려 해도, 그녀가 자꾸 다가온 탓이었다.


결국, 막다른 곳에 몰려, 코앞까지 온 하린.


“미안해.”

“어?”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저번에 너무 내 생각만 했던 거 같아.”


저번.


- “정말 실망이야.” -


이 말만을 남기고 돌아간 그때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정말 미안해.”


일방적인 사과.

자질구레한 변명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그저 평소처럼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네?’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

지금까지 늘 당당했던 하린의 이런 감정변화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괜찮아, 그것보다 사과하려고 기다린 거야?”


만약 그랬다면 꽤 감동이었다.


“응, 그리고 슬슬 내 차례라 대기실에 가려고.”

“아하··· 그럼 연주 힘내.”

“고마워, 너도 수고했어.”


짧은 대화를 끝내고 대기실로 향하는 하린.

그녀는 역시나 이번에도, 저번과 같은 독보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



중등부가 끝난 이후로도 고등부의 연주가 순조롭게 이어졌고, 마침내 전국 드림 피아노 콩쿨은 단 하나, 결과 발표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전국 드림 피아노 콩쿨! 수상자에겐 즉시 트로피와 장학금이 수여될 예정이고 10위 안에 든 참가자들에겐 학교로 상장이 전달되겠습니다!”


무대 위, 책상에 전시된 황금 트로피가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추억이네, 저 트로피도 아직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감회가 새로운지, 혼잣말하는 현묵.

새삼스럽지만, 이런 사람이 자신의 선생님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진 노헌이었다.


“자, 그럼! 학년 차상부터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학년 차상이란.

전체 대상, 학년 대상, 그다음으로 훌륭한 연주를 한 참가자에게 주는 상이었다.


“초등부 학년 차상! 한주희!”


한쪽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예선, 서울 드림 피아노 콩쿨에서도 학년 대상을 받은 아이였다.

그리고 발표된 다음 순서.


“중등부 학년 차상! 김준서!”


아는 얼굴이 나오자,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저번과 다름없이 당당하게 무대 위로 올라가는 준서.

그 뒤로, 고등부 학년 차상이 발표되었고, 학년 대상과 전체 대상만이 남아있었다.


“초등부 학년 대상! 이승환!”


발표와 동시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올라오는 통통한 소년.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인상에 깊었다.


“중등부 학년 대상! 최원석!”

“찌이야아아아아아아스!”


발표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포효.

흡사 이곳이 체육대회가 아닐까 싶은 근육의 남자가 성큼성큼 무대 위로 올라갔다.


“고등부 학년 대상! 박주선!”


그 역시 초등부 한주희와 마찬가지로, 예선에서 봤던 참가자였다.

머뭇거리며 올라가는 고등학생.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마지막! 전국 드림 피아노 콩쿨 대망의 전체 대상!”


전체 대상뿐이었다.

모두가 귀 기울이고 있는 연주회장.


“중등부! 정하린 학생입니다!”


역시 1등으로서의 여유일까.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올라가는 그녀였다.


무대에 모인 수상자들은 각자 자신의 상을 들고, 기념촬영을 했고, 각자 자신의 부모님, 선생님이 들고 온 꽃다발을 품에 안았다.


정작, 전체 대상인 정하린만 빼고.


마치 모두가 기뻐하는 그 순간, 불순물이 섞인 것처럼 오직 그녀는 혼자 무대에 내려오고 있었다.


노헌이 무어라, 축하의 말이라도 할까? 하고 발을 내디뎌보려 했지만.


“지금부터 학년 별 10위까지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흘려넘길 수가 없었다.

지금도 노헌의 옆에는 이재은이 아무 말 없이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런데, 만약 둘 다 10위 안에 못 들면 어떡해?”


노헌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물었다.


“···10위 밑으론 결과가 적힌 종이에 표시되어 있어.”


곧바로 그녀에게서 돌아온 무미건조한 답변.

둘 사이에 침묵이 가라앉은 사이, 초등부가 발표되었고 이윽고 중등부의 순위가 발표되었다.


1위는 역시 전체 대상 정하린.

2, 3위는 각각 학년 대상, 최원석과 학년 차상 김준서였다.


4위부터 8위까지는 모르는 이름들이 나열되었고, 마침내.



“9위, 이노헌.”



그의 이름이 나와 승리를 직감한 순간.



“10위, 이재은.”



단 한 끗 차이.

온몸에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다.


“나이스으으으으으―!”


한 달 넘게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야, 나 좀 보자?”

“너 개 못 치니까 착각하지 마.”

“너는 못 간다고. 주제 파악 좀 해, 노헌아.”


지난날 쌓여왔던 울분.

그녀에게 당해왔던 지난 한 달간이, 마치 바닥에 소복이 쌓인 먼지가 한 번에 닦이듯 시원하게 날아가 버렸다.


【정말 수고 많았어.】


그것은 항상 노헌의 곁에 있었던 현묵에게도 느껴졌다.

노헌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리고 훌륭하게 성장한 그의 모습에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차올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힘껏 기쁨을 누리고, 기운이 빠져 의자에 털썩 앉은 노헌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재은의 성격상, 원래였다면.


“이건 말도 안 돼!”

“결과가 잘못됐어!”

“너 심사위원 매수했지!”


같은 추한 말들이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노헌이 기뻐하는 동안, 그의 옆자리는 잠잠했다.


‘뭐, 뭐지?’


하고 슬쩍 곁눈질하자.


“·····.”


화난 표정도, 슬픈 표정도 아닌 이재은.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무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체념한 것처럼.



♪♪♪



‘이제 다 끝났구나.’


소란스러운 연주회장.

옆자리에서 기뻐하는 남학생,

모든 발표를 마친 사회자.


재은은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여기까지구나.’


그녀도 피아노를 치는 전공자.

처음, 노헌의 연주를 들은 영상의 그 날부터 알고 있었다.

이노헌은 이리나와 정하린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천재라고.


그렇지만, 오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콩쿨도 한 번도 안 나왔으면서, 항상 이리나의 그림자에 숨어있었으면서.

그런 녀석이 자신보다 뛰어난 연주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노헌의 내기를 받아들였다.


실전 경험은 자신이 더 많다고.

그때 「겨울바람」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그렇게 믿으며 콩쿨에 임했다.

재은은 몰랐지만, 실제로 노헌의 「겨울바람」은 그의 실력이 아니었고.


- “그게 왜 리나랑 정하린 탓이냐? 상을 타고 싶으면 노력을 더 하던지.” -


노헌의 그 말은 그녀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재은과 노헌, 둘 다 본선 진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너는 상도 받을 수 없고, 이노헌과 비슷한 실력이라고.


중등부에 올라와 김준서에게 완전히 3위를 뺏긴 그때와 똑같은 기분이었다.

처량하고도, 참혹한 기분.

마치 주변 사람들은 전부 나아가는데, 그녀 혼자 이 자리에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본선에서도 마찬가지.


재은은 저번 예선과 비슷한 수준으로 연주를 마쳤다.

그래서 이노헌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아니었다.


조금이지만, 한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재은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이노헌, 그도 김준서처럼 그녀를 앞서나간 것이었다.


결국, 승부가 난 내기.



9위인 이노헌과 10위인 자신.



‘나는 안 되는구나.’



이제 그녀에겐 현실을 회피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



“미안해, 노헌아.”


모두가 떠나간 연주회장.

한없이 조용한 그곳에서 노헌은 오늘만 해도 두 번째 사과를 듣고 있었다.

이번 상대는 이재은.


“네 말대로, 그동안 나는 나보다 잘 치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탓하기만 했어.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네가 싫어서 욕하고 괴롭혔어.”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바닥만 바라보는 그녀.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떨렸고, 두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솔직히 노헌은 자존심 강하던 그녀의 이런 모습은 속 시원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안 좋았다.


‘미운 정도, 정이라는 걸까.’


비록 사이는 나빴지만, 언제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고, 불만 가득한 목소리는 기운 넘쳤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사과할 줄은 몰랐으니까.


“다 내 잘못이야, 앞으론 절대 네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게, 정말··· 미안해.”


곧 있으면 졸업.

확실히 그녀는 예술고, 노헌은 일반고로 진학하기에 마주칠 일은 없었다.

아니, 딱 하나 있었다.


“콩쿨에도 안 나오겠다고?”


노헌이 깜짝 놀라 소리치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노헌!】


그 순간, 다급하게 소리치는 현묵.

노헌 역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고 있었다.


“야, 그래도 그건 아니지!”


피아노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콩쿨을 나가지 않는 건,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과를 바라긴 했지만, 이것까진 아니었다고···!’


만약 자신 때문에 나중에 그녀가 꿈을 포기했다면, 그때 느껴질 죄책감이 장난 아니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너 때문이 아니라, 그냥 예전부터 느꼈던 거야.”


그 말을 시작으로 재은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장 자랑스러웠던 어린 시절부터 리나와 하린을 마주하고, 결국 준서에게 3위를 빼앗겼던 지금까지 일들을.


그리고 노헌을 만나 본선까지 온 오늘까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노헌은 그저 재은이 단순히 노력도 안 하고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깎아내리는 부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재은이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이라는 편견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한 사람이었다.


‘그런 노력을 무시해버리다니···.’


아무리 재은의 성격이 파탄 났을지라도, 노헌은 해선 안 될 말은 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한 달간, 그도 노력의 어려움을 겪었으니까.

힘겨운 성장통을 느꼈으니까.


“이재은··· 너만 욕했어야 했는데, 너의 노력까지 욕해서 미안해.”


그래서 노헌은 그만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뭐?”

“아, 아무것도 아니야.”


황급히 수습해보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귀에 들어간 지 오래.

분명 화를 내겠다 싶었지만.


“하긴, 나도 지금까지 네 욕 했으니까, 이젠 내가 먹을 차례지.”


그녀는 조용히 수긍할 뿐이었다.


“아니,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고, 내 눈에 띄어도 되니까, 콩쿨은 나오라고.”


다시 돌아온 본론.


“그러니까, 노헌이 너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가 예전부터 생각―.”

“그딴 건 모르겠고! 그, 그래! 리벤지 안 할 거야? 너 나한테 졌잖아!”


조금 유치하긴 했지만, 노헌이 지금 생각나는 건 이것뿐이었다.


- 【나한테 한 번 받는 레슨비가 얼만 줄 알아? 무려 몇백만 원이야. 너는 지금 나한테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거라고.】 -


그 스승에 그 제자일까.

저절로 떠오르는 상황, 현묵은 급히 화끈거리는 그때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아, 아무튼, 연습 다시 해서, 다음 콩쿨에서 덤비라고!”


말까지 더듬어가며 소리치는 노헌.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의 말에 재은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고마웠다.


지금껏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했어도, 이야기를 들어준 그가.

그걸 넘어 걱정해주는 그가.


‘심지어 나조차 나를 포기했는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는 그가.


“알겠어, 다음에 꼭 리벤지 하러 올게.”

“진짜지?”

“그래, 연습 엄청 해 올 테니까, 방심하지나 마라, 노헌아~”

“자기가 방심해놓고 졌으면서··· 악! 때리지 말라고!”


너무나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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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탑의 정상 +2 23.06.24 64 6 11쪽
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8 6 11쪽
36 축제 +3 23.06.21 77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88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6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99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8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3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7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0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4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6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0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2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2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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