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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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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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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글자수 :
20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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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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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엇갈림

DUMMY

‘큰일 났다···.’


그것이 하린의 얼굴을 봤을 때, 노헌의 감상이었다.

무표정일 때보다 차가운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듯했다. 노헌은 서둘러 해명하려 했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린 하린은 로비를 빠져나가 버렸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노헌은 억울한 마음을 담아 외쳤다.


그나마, 조금 친해졌는데, 이런 하찮은 오해 때문에 틀어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게다가 하린은 리나의 친구, 만약 이 일이 먼 훗날 리나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곧장 하린을 쫓아 로비를 나섰다.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그녀, 뛰어간다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다려, 정하린!”


그렇게 노헌이 뛰어가자.


“따라오지 마!”


동시에 뛰기 시작한 하린.


“왜 도망가는 거야?!”


이 상황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몇 분을 더 뛰었지만···.


“하아··· 하아··· 진짜 되게 빠르네!”


도망가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하린은 이미 시야에서 벗어난 지 오래, 결국 포기한 노헌은 로비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까, 재은이 오해도 풀어야 하잖아?’


대체 왜 화가 난 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노헌이 하린과 사귄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로비, 그곳에선―


“야, 너네. 아무것도 모르면서 헛소문 퍼뜨리지 마.”

“싫은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재은이 참교육 패거리와 대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도 전에 정하린 싫어하지 않았냐? 왜 지금 와서 그러는 건데?”

“정하린은 내 알 바 아니고, 왜 내 친구 건드냐고.”


재은이 말한 내 친구.

그것은 노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 정하린이랑 사귄다고 말해서 화난 거구나? 너 그 남자애 좋아하냐?”

“뭐? 헛소리도 자주 들어주면 진짠 줄 안다더니.”


재은은 혼자, 반면에 참교육 패거리는 여러 명이었기에 노헌은 서둘러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어, 왔어? 정하린은?”

“음, 일단 그건 제쳐놓고, 야 너네.”


노헌의 말에 참교육 패거리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뭐 어쩌라는 거지?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이런 성격 더러운 녀석들이 천예중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나랑 친해?”


처음, 콩쿨 견학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참교육이니, 뭐니,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을 자신에게 부탁하던 패거리, 그것 때문에 하린과의 첫 만남은 최악이었다.

물론, 견학이라는 걸 알고, 하린의 오해도 곧 풀렸지만, 그 상황을 만든 것 자체가 짜증 났다.


“저번에 우리 학교 연말 연주회에서도 봤잖아? 그 정도면 친한 거 아니야?”


천예중 연말 연주회.

그때도 거슬렸다.

사람이 지나가는데, 대놓고 뒤에서 흉을 보던 패거리.

이쯤 되면 학교에서 애들 교육을 잘못시킨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너희 이름도 몰라. 그런데 왜 이렇게 아는 척이야?”


게다가, 오늘.

자기들 재밌자고 던진 말에 벌써 3명의 감정이 상했다.

노헌이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자···.


“아, 그래. 아는 척해서 미안하다. 됐냐?”

“정하린 친구라고 싸가지 없는 거 봐.”

“하여간 끼리끼리 논다니까?”


자기들끼리 불평을 늘어놓으며 떠나는 패거리.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은 훨씬 많았지만, 곧 있으면 중등부 콩쿨이 시작되기에 말을 아낀 것이었다.


“노헌아, 너 화낼 때 엄청 무서운 거 알아? 나 순간 옛날 생각날 뻔했어.”

“아, 그때?”


한참 재은이 악동 시절이었을 때, 노헌은 그녀의 말에 결국 참지 못하고 속에 담아두던 말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내가 마지막에 콩쿨 내기하자고 했었지?”

“맞아. 그리고 그때는 졌지만, 이번 콩쿨은 내가 이길걸?”

“둘이 내기까지 하는 사이였구나?”


그렇게 셋은 대화를 나누며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셋? 둘이 아니라?”

“너랑 이재은 그리고 나까지 하면 셋이지.”


어느샌가 노헌의 옆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바로, 여태껏 구석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김준서였다.


“김준서? 노헌아, 너 얘랑 아는 사이였어?”

“그냥··· 그럭저럭.”

“그럭저럭이라니, 조금 서운하네.”


셋은 관객석에 자리를 잡았다.

가운데에 노헌이, 그리고 그의 양옆에 재은과 준서가 앉았다.


‘그래서, 하린이는 어디 간 걸까?’


노헌은 어디론가 도망갔던 하린을 떠올렸다.



♪♪♪



저번, 준서의 계략으로 노헌과 단둘이 연주회를 본 날, 하린은 생각했다.

비록 얄밉긴 하지만, 준서 덕분에 좋은 친구가 생겼다고.


그동안 시기와 질투가 담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봤던 사람들과 달리 노헌은 그녀를 평범하게 바라봐 주었다.


오랜만에 생긴 친구라, 하린은 그를 만날 날을 고대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연주회장에서 보게 된 노헌.

그녀가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던 그때였다.


“뭐야! 이노헌, 너 정하린이랑 사겨?!”

“아, 아니. 여기에는 오해가―.”


당황한 듯한 노헌의 모습.


“이노헌?”


그것보단 옆에 있는 재은의 말에 시선이 갔다.

자신이 노헌과 사귄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번호도 겨우 한 달 전에 교환했고, 단둘이 데이트를 한 적도 없었다.


‘그··· 데이트도 사실 김준서 때문에 한 거니까, 무효잖아.’


애초에 노헌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상상을 못 했었기에 하린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사귄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를 좋아했다니···.’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지금도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차마 마주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너랑 사귄다는 거야?”


그래서 최대한 감정을 죽이고 말한 것이었다.

남들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


금방이라도 얼굴에 나타날 것 같은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하린은 로비를 떠난 것이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뒤에서 들리는 당황한 노헌의 목소리.

아마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러운 모양인 듯했다.


그러나 하린은 지금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로비를 빠져나오는 사이, 이미 그녀의 얼굴엔 남들에게 보여준 적 없는 표정이 가득했기에.


“기다려, 정하린!”


그런데 갑자기, 노헌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따라오지 마!”


만약 지금 이 얼굴을 보이게 된다면, 하린은 부끄러워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전력 질주를 강행했다.


어느덧 멀어져,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노헌.

그제야 안심한 그녀는 근처 벤치에 앉아 숨을 골랐다.


‘설마, 처음부터 좋아했던 거야···?’


돌이켜보면, 노헌은 남들과는 다른 태도로 다가와 줬다.

질투도, 시기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이 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을 때도, 그는 아무 말 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그런 말을 해버렸다니···.’


뒤늦게 깨달은 자신의 잘못에 하린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럼, 설마. 연말 연주회 때, 그 꽃다발도?’


이상한 변명을 하며 노헌이 건넨 꽃다발.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변명은 애써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깨달았다.


애초에 꽃다발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주려고 산 것이다.


라는 크디큰 착각에 빠진 그녀는 한 달 전 준서에 의해 하게 된 노헌과의 데이트를 떠올렸다.


‘그래도, 그건 노헌이가 김준서한테 부탁한 건 아닌 거 같았는데···?’


그가 천재 배우가 아닌 이상, 그렇게 실감 나는 표정을 연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진심으로 당황했던 노헌의 모습, 그렇다는 것은 그때의 일은 준서의 독단이 분명했다.


‘김준서는 노헌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던 거구나? 그래서 어떻게든 이어주려고 데이트를···.’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그녀의 착각.

그러나, 하린은 그것이 착각이란 걸 깨닫지 못했다.


‘앞으로 노헌이를 어떻게 봐야 하지?’


붉어진 볼을 애써 감추며 그녀는 연주회장으로 향했다.



♪♪♪



“이제 슬슬 가볼게.”


10분간의 휴식시간.

다음 차례인 재은이 몸을 일으켰다.


“나도.”


그러자, 똑같이 따라서 일어나는 준서.


“왜 따라 해?”

“내 순서가 네 다다음인데 어떡하라고.”

“둘 다 힘내.”


티격태격 연주회장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을 응원해준 뒤, 노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린이는 대체 어디 간 거지?’


그녀는 도망간 뒤로,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번호를 알고 있기에 사과 문자를 보냈지만, 준서의 말에 의하면 하린은 콩쿨 중에는 전원을 꺼둔다고 했다.


‘화 많이 났겠지?’


그렇게 그가 걱정하는 사이, 10분은 훌쩍 지나가, 어느새 재은의 차례가 다가왔다.


무대 뒤편에서 걸어 나오는 그녀.

어쩐지 결의에 가득 차 보이는 재은은 피아노 앞에 앉아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시작된 연주.


【쇼팽의 「승리」.】


처음부터 현란한 오른손의 스케일.

참고로 스케일이란 도레미파솔처럼 일정한 간격을 배열하여 연주하는 주법이었다.


【재은이는 스케일에 강한가 보구나?】


현묵의 말대로 재은의 저번 콩쿨 곡, 쇼팽의 「대양」도 스케일이 강하게 나타나는 곡이었다.


이번 콩쿨 곡 역시 그녀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곡을 택한 것이다.


【아무래도 재은이가 끈기가 있다 보니까, 이렇게 좀만 쳐도 손 아픈 곡을 잘 치는 거 같아.】


저번보다 실력이 늘었어. 라고 덧붙인 현묵.

그 말에 노헌은 안심이 되었다.

재은의 콤플렉스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더디게 성장하는 자신의 연주 실력과 너무나도 높은 천재라는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런데 현묵의 이 말은 그녀가 전자에 속한 콤플렉스를 깼다는 뜻이었다.


‘다행이다.’


비록 이번 콩쿨에서도 그녀와 내기 중이었지만, 노헌은 친구로서 축하해주었다.

끝내 종소리가 울리지 않고 마무리한 재은의 연주.

그녀도 만족스러운지 웃으며 무대 뒤편으로 퇴장했다.


뒤이어 다다음 순서에 등장한 준서.

그는 오늘도 역시나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들고 왔다.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 Op.39, No.6」.】


어떻게 보면, 이것 역시 준서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한 작곡가의 음악을 누구보다 잘 친다는 것.


【그런데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집중을 잘 못 하네?】


현묵의 말대로, 준서의 연주는 어딘가 아슬아슬해 보였다.

물론, 본인도 그걸 알고 있는지, 후반부로 갈수록 안정을 되찾았지만 말이다.


다행히 끝마칠 수 있었던 연주.

그는 굳은 표정으로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몇 번의 차례가 지나가고, 다시 돌아온 쉬는 시간.


“노헌아, 어때? 이번엔 못 이기겠지?”

“내 연주도 듣고 말해, 재은아.”

“자신감이 넘치네? 기운이 쏙 빠진 누구랑은 다르게.”


연주가 만족스러운지 신난 재은과 그 옆에서···.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핼쑥해진 표정으로 비척대는 준서의 모습.

그의 이런 면은 처음 보기에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웃기기도 했다.


“이제, 네 차례지?”


재은의 질문에 노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 번, 날 이길 수 있게 잘 해봐!”

“내 몫까지 하고 와라··· 노헌.”


둘의 응원을 받으며 도착한 대기실.

그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뒤로 묶은 긴 검은 머리카락, 뽀얀 피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무표정.


바로 정하린이 앉아있었다.


“어···?”

“아, 안녕. 하린아.”


조심히 다가가자, 휘둥그레진 그녀의 눈동자.

노헌은 하린의 옆자리에 앉았다.


당황으로 물들어가는 그녀의 표정.


‘하린아, 당황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그렇다.


노헌은 하린의 바로 다음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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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6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99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8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3 8 12쪽
»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0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6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0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2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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