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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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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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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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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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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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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All in

DUMMY

콩쿨 대기실.

적막한 긴장감이 맴도는 이곳에서, 분위기를 깨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하린아, 오해야. 나는 너란 사귄다는 말 한 적 없고, 너희 중학교 애들이 헛소리 한 거야.”

“알았으니까··· 그만.”


필사적으로 해명하는 노헌과 고개를 떨구는 하린.

비록 소곤소곤 말하고 있었지만, 워낙 조용한 분위기인 탓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에게 들렸다.


‘왜 여기서 연애질이야?’

‘아직 사귀는 건 아니고, 썸타는 건가?’

‘와, 저 남자애 개 부럽네.’


그들이 보기엔 그저 두 사람의 풋풋한 애정표현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믿어주는 거지?”

“그, 그래.”


재차 확인하곤, 그제야 안심하는 노헌을 보며 하린은 생각했다.


‘정말 들키고 싶지 않았나 봐···.’


오해라고 호소하는 노헌의 해명.

하린에겐 그것이 그저 좋아하는 마음을 들켜 애써 변명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왜 보고 있는 내가 다 부끄럽지?’


화끈거리는 얼굴을 품에 묻은 채,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한편, 해명을 마친 노헌.


‘일단 믿어준 거 같긴 한데, 왜 아직 화가 안 풀렸지?’


얼굴도 마주치기 싫은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린에, 노헌의 마음은 여전히 싱숭생숭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오해는 점점 더 쌓여만 갔고, 마침내 하린이 얼굴을 든 건, 그녀의 차례가 다가왔을 때였다.


“연주, 힘내.”

“으···응, 고마워.”


물론, 끝까지 노헌의 시선을 피하며 무대로 올라갔지만 말이다.



♪♪♪



지금 막 무대 위로 올라오는 하린.

준서는 그녀와 자신과 한 칸 떨어져 앉아있는 재은을 번갈아 보았다.


‘실수했어···.’


떠오르는 것은 연주 중 했던 자신의 실수.

정확히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설마, 경쟁자가 있었을 줄이야.’


준서는 노헌의 곁엔 오직 하린만이 있을 미래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오늘 노헌이 연주회장으로 들어올 때, 믿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고 말았다.


노헌이 하린과 사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재은의 표정.

그것은 분명 질투였다.


‘이러면 내 계획과는 조금 달라지는데···.’


준서가 당황하던 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장면을 목격한 하린까지.

화가 났는지, 차가워 보였던 그녀의 표정은 준서의 희망을 산산조각냈다.


‘이렇게 실패할 순 없어.’


그래서 노헌의 옆에 붙어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와 재은이 어떤 관계인지.


다행히 노헌은 아직 그녀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만약 눈치를 챈다면 더 골치 아파질 것이 분명했기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탓에, 연주에 영향이 간 것이었다.


그렇게 준서가 실수를 후회하는 사이, 어느새 평소처럼 완벽한 연주를 끝내고 무대 뒤편으로 들어가는 하린, 그런데 어째선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왜 저러지?’


준서의 의문은 영원히 풀리지 않았다.



♪♪♪



“진짜 잘 친다···.”


지금 막 연주를 마치고 돌아오는 하린을 보며 노헌은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그녀와 마주친 시선, 하린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니, 왜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건데?’


분명, 대기실에서 오해를 풀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녀는 끝까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곧바로 노헌의 곁을 지나쳤다.


【노헌아, 집중해.】


갑작스러운 현묵의 말.

그러나, 그의 말처럼 지금은 사소한 감정에 휩쓸릴 때가 아니었다.


‘그래, 지금은 모든 걸 쏟아낼 때야.’


노헌은 각오를 다지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아마 하린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긴장은 별로 되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 그랜드 피아노.

그 앞에 앉은 노헌은 이번 콩쿨의 핵심 전략을 되새기곤, 연주를 시작했다.


마치 상큼한 레몬이 톡톡 터지듯 발랄한 분위기가 회장에 퍼지기 시작했다.

잔잔했던 저번 콩쿨 곡과는 달리 스타카토로 가볍게 시작하는 이번 콩쿨 곡.


그것은 노헌이 배운 최초의 쇼팽 에튀드.

노헌은 이 곡을 정했을 때를 떠올렸다.


【쇼팽의 「나비」.】


마치 건반 위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듯 보인다 하여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옥타브, 예를 들어 도에서 그다음 음계의 도까지,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치는 주법이 특징인 이 곡은 오른손의 상당한 체력을 요구했다.


【그래도 스케일이나, 아르페지오 같은 테크닉은 요구하지 않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돼.】


그저 오른손가락이 버텨주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시작한 연습.

빠른 속도와 연속으로 나오는 오른손의 옥타브는 고되기 그지없었다.


손바닥을 있는 힘껏 쫙 피면 손이 아프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

그 상태를 연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이 곡의 악랄함이었다.


【노헌, 모든 건반에 터치를 무겁게 주면 안 돼.】

“하지만, 손가락을 쫙 피면 어쩔 수 없이 힘이 들어가잖아요?”

【내가 말하는 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도, 건반을 누를 때의 힘은 분배해야 한다는 거야.】


예를 들어 운동을 생각해 보자.

운동에도 숨의 패턴이 있지 않은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시고, 일정한 패턴.

피아노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건반에서 숨을 들이마셨다고 한다면, 그다음 건반에선 어떻게 해야겠어?】

“내쉬어야겠죠?”

【그래, 바로 그거야.】


한 건반을 무겁게 쳤다면, 다음 건반에선 가볍게 치는 것.

이것이 현묵의 설명이었다.


【항상 무겁게 치면, 당연히 손이 아프지. 하지만, 가볍게만 친다면 감정을 실을 수 없어.】


모든 것이 균형을 맞추는 그 순간이 중요했다.


【너무 걱정하진 마, 우리는 남들처럼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니거든.】

“네?”


콩쿨에서의 곡은 대부분 2분에서 4분 사이에 끝이 나기 마련, 만약 연주 실력이 부족하다, 판단되면 1분이 되기 전에 종이 울릴 수도 있었고, 훌륭하다 싶으면 곡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린 장거리가 아닌 단거리 달리기를 할 거야.】


「나비」를 끝까지 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분.


짧은 시간 안에 모두를 제쳐 버린다.

한순간에 모든 걸 걸겠다.

그것이 이번 콩쿨의 전략.



‘All in!’



노헌의 손이 건반 위에서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



“말도 안 돼···.”


겨우 2달이었다.

하린이 노헌의 연주를 다시 보기까지 걸린 기간이.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는 거야?”


저번 콩쿨, 예선에서 봤던 그의 연주는 실망스러웠었다.

영상 속에서 쳤던 「겨울바람」과 엄청난 차이가 났기에.

비록 하린도 그에게 직접 말했던 “실망이야.”라는 발언에는 사과했지만, 그래도 한 번 박힌 생각은 도저히 바뀌질 않았다.


그다음 전국 대회, 본선에서는 전보다 발전했기에 조금 대견하긴 했다.

예선과 본선은 겨우 일주일 차이, 그러나 그사이에 열심히 했다는 것이 보였으니까.


하지만, 오늘 그의 연주는 결코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섬세한 터치는 물론이고, 빠르게 건반을 치는 사이사이에 자연스레 스며든 감성은 마치 이곳이 향기로운 꽃밭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그저 단 1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헌의 전력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어떻게 한 거지?’


하린은 궁금했다.

만약 다음에는 또 어떤 연주를 보여줄지.

얼마나 더 성장했을지.

언젠가 자신을 넘어설 수 있을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 어땠어?”


때마침 연주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노헌.

자신만만하게 웃는 그의 모습, 하린은 그동안 얼굴을 피했었던 것도 잊어버린 채,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후 조용히 그에게 내민 자신의 손바닥.

노헌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손으로 덥석 붙잡았다.


“악수가 아니라 하이파이브였는데···?”

“아··· 아! 미안.”


짝―


그제야 경쾌한 소리가 나는 둘의 손바닥.

노헌과 하린은 대기실을 나섰다.


‘다행이다, 화가 풀렸구나.’


노헌은 이제야 자신을 제대로 바라봐 주는 하린의 모습에 안심이 놓였다.

1분 동안의 연주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정말 최고였어.】


그리고 기분이 좋은 건 현묵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가 직접 친 건 아니었지만, 가르치는 제자의 성장은 가슴 한편을 찡하게 만들었다.


‘이 속도라면 올해는 무리겠지만, 다음 쇼팽 콩쿨에는 참가할 수 있을 거야.’


어느 순간부터 현묵의 목표는 쇼팽 콩쿨에서 본인이 우승하는 것이 아닌, 노헌의 우승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래··· 노헌이라면 내 꿈을 대신 이뤄줄 수 있을 거야.’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기에.



♪♪♪



콩쿨은 무사히 고등부까지 끝을 맺었고,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결과 발표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표 순서는 각 학년 당 본선에 진출한 5명을 호명하고, 맨 마지막에 그중 가장 훌륭한 연주를 한 학년 대상과 전체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저번 콩쿨과는 다른 발표 방식.

하지만, 이번 것이 조금 더 긴장감이 넘쳤다.


“본선에 진출할 초등부! 한주희―.”


호명되는 다섯 명의 이름.

이름이 불린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고, 불리지 않은 아이들에게선 탄식이 흘러나왔다.


‘너흰 그래도 아직 시간이 많잖니.’


피아노를 시작한 지, 대략 4개월 정도 된 노헌은 다음 달이면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했다. 이 콩쿨이 중학생으로선 노헌의 마지막 예선전이었다.


“중등부! 김준서, 이재은, 정하린, 이노헌, 박형준.”


그때 호명된 중등부.

그중 이름이 불린 네 명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하아··· 다행이다···.”


튀어나오는 탄식.

노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것의 주인은 바로.


“떨어지나 싶었네.”


의자에 축 늘어져 있는 김준서였다.

항상 자존감이 높았던 그에겐 오늘 실수가 워낙 정신적으로 힘들던 것 같았다.


“다음부턴 너희들 신경 안 쓸 거야.”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꺼내며, 노헌과 재은 그리고 하린을 흘깃 쳐다보는 준서.


“뭔 소리야?”

“김준서, 네가 우리 신경을 왜 써?”

“남 탓하지 마, 김준서.”


그러나, 그는 세 명이라는 쪽수에 밀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고등부 본선 진출자가 모두 호명되었고, 이제 학년 대상과 전체 대상이 남아있었다.


“초등부, 학년 대상! 한주희!”


익숙한 이름.

저번 노헌이 참가했던 콩쿨 때도 뛰어난 연주를 선보였던 아이였다.


‘그나저나, 중등부는 누구려나?’


하린은 보나 마나 전체 대상이 분명했고, 준서는 오늘 아쉽게 실수를 하여 받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럼 남은 것은 재은과 처음 듣는 이름의 주인, 박형준.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받는 것보단 아는 사람이 받는 게 낫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중등부, 학년 대상! 이노헌!”

“뭐?”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나···라고?”

“그래, 너니까, 어서 무대 올라가.”

“아, 좀만 더 잘 쳤으면 내가 학년 대상이었는데!”

“이따가 무대에서 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하는 준서, 뭐가 그리 아쉬운지 머리를 감싸는 재은, 그리고 손을 흔들어주는 하린까지.


세 명의 배웅을 받으며 노헌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지, 진짜 내가 학년 대상이라고?!’


분명 직접 들었는데도 꿈만 같았다.

이번에도 역시 준서가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엄청난 속도로 뛰기 시작하는 심장 박동.

온몸에 흘러넘치는 흥분을 안고 올라간 무대에서 노헌이 마주친 사람은.


“고등부, 학년 대상! 박주선!”


바로, 그의 가짜 선생님.

몰래 이름을 빌렸던 박주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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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99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8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 All in +2 23.06.05 104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1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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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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