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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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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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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글자수 :
20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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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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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소년의 답장

DUMMY

바이올린으로 시작된 선율.

이윽고 나지막하게 깔리는 플루트와 뒷받침해주는 피아노.

익숙한 곡,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이었다.


‘···잘 치네?’


리나가 알기론 노헌은 피아노를 친 지 이제 막 3개월 정도가 됐을 터.

그러나 그의 터치나, 소리가 굉장히 좋았다. 믿기지 않을 만큼.


합주는 하루 만에 결성된 것치고는 굉장히 안정적인 연주를 이어나갔다.

누구 하나, 뛰어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순간.


갑작스레 치고 나오는 바이올린.

한 차례 연주를 마치고 도로 제자리에 돌아가는 바이올린, 그 뒤를 이어 플루트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플루트가 잠잠해지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피아노 선율.

한순간, 주인공이 된 노헌의 모습을 리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람들 가운데에서 환하게 빛나는 친구의 모습.


지금껏 상상하지도 못했던 장면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바꿨는지, 리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웃으면서 피아노를 치는 노헌의 얼굴에 마음이 놓였다.

그녀 역시 그가 걱정됐었기에.


‘그래도··· 즐거워 보여 다행이다.’


항상 체념만 했던 노헌, 무엇이 되었든 그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생겼다는 것에 무척 기뻤다.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마무리한 셋의 합주.

광장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리나 역시 연신 박수를 보내던 그때.


‘어···?’


그녀의 시선과 맞닿은 노헌의 눈동자.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이내 같이 합주를 했던 두 명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곤 악기를 챙겨 광장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

이제 중앙에는 노헌, 혼자만이 남아있었다.


‘뭐 하려는 거지?’


의문이 드는 순간,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

이전에 연주한 것과는 다른 곡이었다.

하지만, 리나는 누구보다 이 곡을 잘 알고 있었다.


‘「아라베스크」?’


그것은 오래전, 자신이 노헌에게 보냈던 편지였으니까.



♪♪♪



시냇물이 흐르는 어느 언덕, 서늘한 나무 아래.

항상 평화롭던 그곳을 떠난 소녀는 홀로 남은 소년이 보고 싶었다.


언제나 웃으며 반겨주던.

항상 자신을 걱정해주던.

그리고 꿈을 응원하며 보내줬던.

자신의 친구가.


하지만, 돌아갈 순 없었다.

소녀에겐 꿈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폭우가 몰아쳐도, 땅이 흔들려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을 때도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묵묵히 앞을 보며, 자신을 보내줬던 친구를 떠올리며 나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는 자신의 발걸음이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끄러미 내려다본 자신의 발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너무나 아프고, 지금이라도 멈추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평화롭던 그곳, 소년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소녀가 뒤를 돌아본 순간.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한 사람.

소년이 서 있었다.



그녀가 떠나기 전 보았던 그 표정 그대로.

아니, 조금 달랐다.

항상 체념했던 그의 눈은 어느새 소녀의 눈과 비슷해져 있었다.


‘너도 꿈을 찾았구나.’


소년의 발 역시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 같았던 그 또한 자신의 꿈을 위해 달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소년은 말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들어달라고.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줘.”


비록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우리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웃으면서 무대에서 다시 만나자고.



이것은 답장.

어릴 적 소녀가 보냈던 편지에 대한 소년의 답장이었다.



♪♪♪



“그렇구나··· 노헌이 너도 피아니스트가.”

“응, 말 안 해서 미안해.”


깜깜해진 밤, 테라스, 흔들의자에서 노헌은 리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도 피아노를 치고 싶고,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다.


참고로 현묵의 이야기는 쏙 빼놓고 이야기했다.

그저 피아노를 치는 것이 즐겁고, 예술고등학교에 편입해 더 배우고 싶다고.


“그런데, 노헌이, 네 연주 들어보니까, 이미 누구한테 배웠던 거 같던데?”


그러자 돌아온 것은 의심의 눈초리.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고작 3개월 만에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가르쳐준 사람이 있어.”

“누군데?”


노헌은 하는 수 없이 털어놓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바로.


“박주선.”


전에 노헌이 나간 콩쿨 본선에서 학년 대상을 탔던 고등학생.

그렇다. 이름 빼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으응, 나랑 친한 형이라 예전에 한 번 정도 말했던 것 같기도···.”


거짓말이었다.

노헌이 그를 본 건 콩쿨에서가 처음, 그것도 일방적으로 본 것이지, 주선은 노헌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다만, 전국 콩쿨에서 학년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의 연주 실력을 증명해주었고, 나이 차이가 있어, 하린, 준서, 그리고 리나와 연관이 없다는 부분에서 가짜 선생님이 되기엔 충분했다.


‘박주선 씨··· 이름 좀 빌리겠습니다.’


어차피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볼 일도 없을 텐데, 이름 정도는 빌려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완전 초보자인 너를 3개월 동안 이 정도로 가르친 거면, 피아노를 엄청 잘 치는 사람이겠네?”

“물론이지, 전국 콩쿨 학년 대상도 받은 형이라고.”


리나의 질문에도 노헌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노헌아, 너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배우 해도 잘했을 거 같아.】


예전, 노헌이 리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현묵.

분명 맞는 말이긴 했지만, 묘하게 얄미웠다.


“그래도, 참 감사하다··· 그 사람 덕분에 노헌이 너도 하고 싶은 걸 찾았잖아?”

“어, 어. 정말 고마운 형이지, 하하.”


애써 웃어넘긴 노헌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내일 공연인데, 안 떨려?”

“원래는 조금 불안했는데, 네가 와줘서 지금은 괜찮아!”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리나.


‘미안해, 리나야··· 언젠간 솔직하게 말해줄게.’


그런 그녀를 속였다는 생각에, 양심에 찔린 노헌이었다.



♪♪♪



“현묵···?”


웬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저 단순히 리나를 따라왔다가 들은 노헌의 연주.

그것은 분명 현묵의 피아노였으니까.


‘설마, 현묵한테 피아노를 배웠나?’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녀가 지금까지 지켜본바, 현묵은 항상 바빴다.

콩쿨이 끝나면 곧바로 연습에 몰두했고, 가끔 쉬는 시간을 갖는다 해도, 한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거나, 자신에게 어울려줬던 현묵이었으니까.


웬디는 며칠 전 노헌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 “그거 거짓말이지?” -


고작 3개월 만에 이런 연주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노헌이 리나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바로 리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은···.


‘곧 있으면 공연이니까.’


혹여나 리나의 마음이 흔들리기라도 한다면, 연주에 타격이 갈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말할 시기를 조금 늦춘 것이었다.

물론, 노헌이 리나의 앞에서 저런 연주를 보여준 이상, 굳이 웬디가 말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말이다.


‘그럼 대체 어떻게 현묵의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거지?’


그렇게 그녀가 고민을 해봐도, 정답이 떠오를 리 없었다.



♪♪♪



다음날, 아침.

독일에 오게 된 이유, 리나의 공연 당일이 찾아왔다.


“아, 그거 어디 놨더라?”

“어, 저깄어.”


정신없는 리나를 챙겨주며 노헌은 나갈 준비를 했다.

공연은 저녁이었지만, 웬디도 리나만큼이나 바빠서 저녁에 그를 데리러 올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도착한 연주회장.

리나를 데리러 왔던 날을 포함해 두 번째로 온 콘체르트하우스는 여전히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내부는 어떨까?’


기대를 품고, 노헌은 연주회장 안에 발을 들였다.


그를 맞이하는 것은 무대 뒤편에 붙어있는 거대한 오르간 그리고 무대 중앙에 그랜드 피아노였다.


“와··· 저게 몇 층이야?”


관람석은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2, 3층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사면에서 1층을 내려다보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천장에는 난생처음 보는 샹들리에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고, 저마다 환한 빛을 자랑했다.


“노헌아, 나랑 리나는 대기실로 가볼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그 말을 남기고 서둘러 달려가는 웬디 누나.

항상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오늘만큼은 예외인 듯했다.


‘그럼, 이제 뭐 하지?’


갑작스레 닥친 무료함에 노헌이 연주회장을 산책하던 순간이었다.


위잉―


핸드폰에 울리는 진동, 조금 뜬금없는 이름에 노헌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잘 지내지?”


발신자는 바로 김준서였다.


“난 뭐, 잘 지내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천예중 연말 연주회였다.


“혹시 내일 시간 돼?”

“어? 내일?”


뜬금없는 준서의 말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몇 번 만나긴 했지만,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지금 독일에 와있어서, 내일은 안 될 거 같은데?”

“그래? 한국에는 언제 와?”


오늘이 4일 차니까, 이제 겨우 3일 남았다.


“다음 주 화요일 저녁쯤?”

“그럼, 다음 주말은 괜찮아?”

“어? 어.”


쏟아져나오는 질문 공세에 노헌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다고 말하고 말았다.

물론 다음 주말에 특별한 일 같은 건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준서의 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연주회 티켓 2장이 생겼는데, 보러 가자.”

“···뭐?”


언젠가 한 번쯤 데이트 신청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설마 남자에게 받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왜, 싫어?”

“어? 아니. 무료로 볼 수 있다는데 나야 좋지.”


저번에 연주회 때 봤던 준서는 생각보다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 애들과 가지 않는다는 건 설마···.


‘에이, 아니겠지.’


노헌은 애써 부정했다.


“장소랑 시간은 문자로 보내줄게, 여행 잘 즐기고.”

“그, 그래. 고맙다.”


그렇게 끊긴 통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어쩐지 기운이 쫙 빠지는 기분이었다.


노헌이 기력을 보충하는 동안, 시간은 점점 흘렀고, 어느새 바깥이 어두워졌을 때쯤 연주회장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제 슬슬 가자, 자리가 어디라고 했지?】

“맨 앞자리요.”


리나가 그에게 건넨 티켓은 다름 아닌 VIP 좌석.

심지어 그녀의 얼굴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맨 앞자리였다.


자신의 자리로 가자, 무대에는 오직 한 자리를 제외한 모든 연주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정해진 시간이 되자, 어두워진 관객석.

그에 비해 환한 무대를 바라보던 그때.


무대 뒤편에서 한 소녀가 걸어 나왔다.


마치 맑은 하늘이 호수에 비친 듯 아름다운 하늘빛 드레스.

샹들리에의 불빛에 반짝이는 갈색의 단발머리.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이는 조그마한 얼굴.



바로 리나였다.



무대 정중앙, 그랜드 피아노 앞에 선 그녀는 드레스를 슬쩍 올리며 우아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


한순간 마주친 시선.

잠깐이지만, 분명 미소를 지었던 것 같았다.


이내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그녀.

지휘자의 손짓이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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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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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6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99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8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3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0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6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0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2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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