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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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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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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5
추천수 :
372
글자수 :
20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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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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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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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하늘에서 떨어진 피아니스트

DUMMY

까맣고 아름다운 밤하늘.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일까, 아니면 그를 축하하기 위한 별들의 작은 선물일까.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비행기 1등 석의 침구를 느끼며 한 남자는 구름 한 점 없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얼마 만에 고향의 땅을 밟는 걸까, 반년, 아니면 1년? 아니, 사실 단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길게 느껴졌던 걸까.


“이제 곧 한국이네요.”


갑작스레 옆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

그와 같이 비행기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박세연이었다.


“네, 드디어 끝이군요. 수고 많으셨어요.”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2주 동안 갇혀있으니까 완전 감옥 같았던 거 있죠?”


핸드폰도 못 쓰고, 밖에도 못 나가고···.

그간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세연은 한참 동안 그에게 서러웠던 일들을 토로했다.


“정말 지금까지 했던 콩쿨 중에 가장 힘들었어요.”


그 말에는 남자 또한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콩쿨은 그가 지금껏 걸어왔던 길 중에선 가장 험난했던 경험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고,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로웠지만···.


“그래도, 후회되진 않더군요.”

“맞아요. 정말 모든 힘을 쏟아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세계 3대 피아노 콩쿨,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강현묵.

그에겐 마지막, 단 하나의 목표만이 남아있었다.


“이제 다음은 쇼팽 콩쿨인가요?”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쇼팽 콩쿨은 바로 내년에 개최될 예정.

현묵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


“···현묵 씨? 현묵 씨!”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마치 깊은 심해로 떨어지듯 점점 옅어져 가는 세연의 목소리, 멀어지는 그녀의 얼굴, 한순간 온 세상이 깜깜해졌던 현묵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무수히 많은 별의 향연.

캄캄한 밤하늘 속 그를 홀로 두고 떠나가는 비행기의 뒷모습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찰나의 순간.


갑작스레 나타난 돌풍에 남자의 몸이 어디론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가 탔던 비행기의 목적지, 인천 공항으로.



♪♪♪



「오늘 자정, 대한민국을 또 한 번 밝힌 두 명의 음악가가 고향의 땅을 밟습니다. 세계적인 콩쿨, 퀸 엘리자베스 콩쿨의 영광스러운 1등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강현묵, 바이올리니스트 박세연은―」


“나도 강현묵 피아니스트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왜 하필이면 내 비행기 시간이랑 겹쳐서!”

“내가 네 몫까지 봐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실망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친구, 이리나를 놀려준 노헌은 지금도 열심히 떠들어대는 공항 중앙의 TV로 눈을 돌렸다.


「강현묵 피아니스트는 세계 3대 피아노 콩쿨 중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17살이라는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이후 18살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그는 유럽의 수많은 콩쿨에서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입상을 거머쥐었고, 마침내 3대 피아노 콩쿨 중 두 번째,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1등이라는―」


“나도 언젠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불안감? 아니 희망이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리나, 그녀에게 분명 될 수 있을 거라고 노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야~ 슬슬 시간 다 돼간다!”

“알겠어! 지금 갈게!”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 리나를 부르는 그녀 어머니의 목소리에 시계를 보니 어느덧 그녀의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프랑스 파리로 유학이라니, 방금 뉴스에 나온 그 피아니스트랑 똑같잖아?’


피아노 전공하는 사람들은 유학을 다 파리로 가는 건가? 노헌은 의문이 들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리나는 18살에 떠난 현묵보다 1살 어린 17살에 유학을 간다는 것. 사실 그녀가 17살이 되려면 2달하고 반이나 더 남았지만 말이다.


“슬슬 가야겠다. 꼭 강현묵 피아니스트 본 후기 알려줘야 해?”

“알겠다니깐, 네 앞가림이나 잘해. 파리가 은근히 치안이 안 좋다니까 꼭 주변 잘 보고 다니고, 가방도 꼭 앞으로 메고―”

“그럼 이만 가볼게! 안녕!”


한순간 노헌을 품에 끌어안은 뒤, 리나는 그대로 탑승구로 달아나버렸다.


‘얘는 항상 걱정해주면 도망간단 말이야, 설마 잔소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투덜대며 노헌은 하나뿐인 딸과 작별 중인 리나의 부모님을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



【아직, 쇼팽이 남았는데―!】



귓가에 들린 낯선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

황급히 노헌은 주변을 둘러봤지만, 공항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화롭게 시끄러웠다.


‘뭐였지···?’


의문을 가지며 그는 리나가 떠나가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



공항의 어느 출입구.


“왜 안 나오지? 무슨 일 있나?”

“슬슬 나올 때가 된 거 같은데.”

“일단 기다려보자고.”


카메라를 들고 웅성거리는 기자들 사이에서 노헌은 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입구 앞을 지키고 있는 검은 양복의 경호원들은 곧 나타날 누군가의 명성을 말해주는 듯했다.


사실 리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필요 없는 노헌이었지만, 만약 그를 보지도 않고 가버린다면 그녀에게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늦는··· 어?”


그때, 서서히 열리는 자동문.

그 안에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깐만, 한 여성?’


노헌이 의문을 품는 순간, 양옆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박세연 바이올리니스트! 우승 소감 한마디만 해주세요!”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같이 비행기에 탔던 강현묵 피아니스트는 나중에 나오는 건가요?!”


마지막 기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노헌은 똑똑히 목격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아무리 기다려도 강현묵 피아니스트가 나올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아쉽게 된 거지, 그냥 가자.’


노헌은 연신 떠들어대는 기자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강현묵 피아니스트한테 무슨 사정이 있나 봐요.”

“아쉽네, 이모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는데···.”

“그럼, 슬슬 집에 가자꾸나.”


노헌은 자신을 기다리던 리나의 부모님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횡단보도 앞, 녹색 신호를 기다리던 그때.


고막을 찢을 듯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차 한 대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급하길래 저렇게 크게 울리는 거지?”


노헌의 의아한 생각도 잠시,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점이 돼버린 구급차.

그 안에는···.


“강현묵 씨! 제 말 들리시나요?!”

“맥박은 정상입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의식불명인 피아니스트와 구급대원들이 타고 있었다.



♪♪♪



모두가 잠들었을 고요한 밤.

집에 도착한 노헌은 누군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쯤이면 자고 있으려나?’


친구 리나를 떠올리며 잠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항상 하던 대로 핸드폰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의 주인공은 지금보다 훨씬 어린 초등학생 시절의 리나, 그녀가 무대 위, 그랜드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그녀는 이내, 숨을 한 번 내쉬곤.


손가락을 움직였다.


시작과 동시에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피아노의 선율, 마치 노헌의 바로 옆에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게 벌써 몇 년 전이었더라?’


이날은 노헌이 처음으로 리나의 콩쿨을 봤던 날이었다.

그녀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반복되는 연주와 지루함의 연속.


그러나, 리나의 연주만은 무언가 달랐다.


좋은 곡이어서일까? 아니면 그녀의 실력이 출중한 탓일까? 솔직히 문외한인 노헌은 그런 것은 잘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 찍은 이 영상을 매일 밤 자기 전에 꼭 한 번씩 챙겨 듣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름이 궁금해, 무대에서 내려온 그녀에게 바로 물어봤었는데 곡 이름이 분명···.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그 순간, 어디선가 귀에 들려온 낯선 목소리.


‘뭐, 뭐야?!’


그것은 분명 남자의 목소리였다.


온몸에 소름이 끼쳐 황급히 불을 켜봤지만···.


‘기분 탓인가?’


그곳은 그저 평소대로인 노헌의 방이었다.


【여기 어디야?!】


남자의 고함이 들리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나는 분명··· 비행기에?】


중얼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노헌은 곧장 방을 뛰쳐나왔다.


【왜 내 몸이 마음대로! 누구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귀에 맴돌 뿐,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


노헌은 그저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를 다친 건가, 아니면 공포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귀신에 들린 건가, 누군가 몰래 숨어서 못된 장난을 치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최근에 머리를 부딪친 적도, 이런 장난을 당할 일을 만든 적도 없었다.


‘서, 설마 진짜 귀, 귀신···?!’


그는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혹시 몸에 귀신이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닐까, 침을 한 번 삼키고 문을 열자―


【어? 누, 누구야?!】


거실에는 노헌의 얼굴이 비쳐있을 뿐,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다만···.


【그, 그래 꿈일 거야. 가위눌리는 거겠지. 하하··· 괜히 쫄았네.】


목소리의 주인은 혼자 안심했는지 무언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노헌은 그의 의견과 반대였다.


목소리는 마치 귀 옆에서 누군가 말하는 것처럼 자세히 들렸고, 아무리 볼을 꼬집어봐도 아픔이 가시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꿈이 아니었다.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노헌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제 말 들리세요?”

【악! 깜짝이야!】


한순간 내지르는 그의 고함소리에 노헌은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소리의 볼륨이 변하는 일 따윈 없었다.


【누, 누구세요?!】


머리를 울리는 목소리.

그는 노헌이 귀를 막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목소리를 낮췄다.


【죄··· 죄송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으신가요.】

“아, 네···.”


한동안의 침묵.

이내 침착해진 남자는 천천히 노헌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고, 여긴 어디죠? 그리고 이 현상은 뭡니까?】

“제 이름은 이노헌이고, 여긴 저희 집이에요. 그리고 이 현상은 저도 잘···.”


이런 비현실적인 일을 겪는 건 두 사람 다 처음이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비행기에서 떨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유심히 고민하던 남자의 혼잣말.


‘비행기? 잠깐만, 나 오늘 공항에 갔다 왔잖아!’


갑작스레 노헌의 머리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쇼팽이 남았는데―!】


그곳에서 들었던 낯선 목소리.

지금 생각해보면 이 남자와 똑같았다.


“저기 혹시 오늘 인천 공항에 오셨었나요?”

【도착지가 인천 공항이긴 했습니다. 나와서 기자들 질문 좀 답해주고 집에 가려 했는데··· 어, 그러고 보니 내 몸은 어떻게 된 거지?!】


횡설수설 무어라 혼잣말하는 남자를 보고 떠오르는 최악의 상황.


‘설마 그때, 내 몸에 저 사람 영혼이 들어온 거야?!’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에 노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인터넷에 제 이름 좀 검색해주세요!】


정신을 차리게 만든 건 다급한 그의 목소리.

노헌은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집었다.



【저는―!】



이때의 노헌은 알지 못했다.



【강현묵, 피아니스트입니다!】



이 만남으로 바뀌게 될 그의 인생을.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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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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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88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6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99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8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3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1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7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0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2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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