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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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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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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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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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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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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김준서의 목적

DUMMY

사건의 발단은 약속 당일 하루 전 도착한 준서의 문자였다.

장소와 시간이 적힌 문자 내용.

노헌은 그 문자에 따라 다음날,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노헌? 네가 왜 여깄어?”

“어? 준서가 불러서 왔는데?”


준서 대신 하린이 와있는 걸까.

심지어 그녀 역시 노헌이 나타나자 꽤 당황한 눈치였다.


“그래서, 준서는 어딨어?”


노헌은 단순히 원래 약속에서 한 명 더 추가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둘이나, 셋이나, 티켓값은 준서가 내준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예상치 못한 하린의 존재에 놀라긴 했지만, 굳이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리나의 친구이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만났었던 천예중 연말 연주회에서도 나름 잘 지냈으니까.


“아직 안 왔는데···?”

“조금 늦는 거겠지?”


그렇다고 단둘이 주말에 연주회를 볼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하린과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노헌은 초조한 마음으로 준서를 기다렸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고, 곧 연주회가 시작될 시간에도 그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위잉―


핸드폰에서 울리는 진동.

확인해보니 준서의 문자였다.


「차가 막혀서 제시간에 못 갈 거 같아. 미안하지만, 연주회는 너랑 정하린, 둘이 봐야 할 것 같다.」


그 말과 함께 첨부된 두 장의 모바일 티켓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익숙한 상황.

분명 저번, 천예중 연말 연주회 때도 이런 상황이 있었던 것 같았다.


노헌이 그 문자를 하린에게 보여주자, 그녀 역시 노헌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전화해 볼게.”


하린은 곧바로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몇 분이 지나도 그의 핸드폰과 연결이 되는 일은 없었다.


어느덧 연주회 시작까지는 단 5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

이대로 가면, 이 두 장의 티켓은 휴짓조각이 되고 만다.

하는 수 없이 노헌은 선택했다.


“일단, 우리끼리라도 들어가자.”

“·····알겠어.”


하린과 단둘이 연주회를 보기로.



♪♪♪



그리고 그 시각.


“계획대로.”


연주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노헌과 하린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노헌아, 네가 나타나 줘서 정말 다행이야.”


금빛 안경테를 고쳐 쓰는 남자.

그렇다, 그는 바로 이 상황의 원흉.


김준서였다.


그가 이런 계략을 꾸미게 된 이유에는 준서와 하린의 약속, 아니 부모님에 의해 강제로 맺게 된 약속에 있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중학교에 막 올라갔을 때의 일이었다.


“준서야, 하린이 어떠니? 피아노도 잘 치고, 예쁘잖니.”

“네? 걔가 뭐가 예쁘죠?”

“에이~ 하린이 같은 여자친구 찾기 얼마나 어려운데?”


준서와 하린은 공통점이 꽤 많았다.

어렸을 적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으며, 심지어 두 사람 모두 피아노의 꿈을 가지고 있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번엔 중학교에도 같이 다니게 되었으니, 남들이 보기엔 천생연분이나 다름없는 사이.


그것은 그들의 부모님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준서랑 하린이랑 사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 보기 좋을 텐데!”


준서와 하린의 엄마는 어떻게든 자기 자식들이 엮이길 바랐다.

하지만.


“절대 싫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완고히 거부하는 준서와 하린.

둘은 누구보다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사이가 좋아질 수 있게, 한 달에 한 번씩 단둘이 데이트라도 하는 게 어떨까요?”

“좋은 생각인데요?”


엄마들은 어느샌가, 자신들만의 약속을 잡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들의 의견은 생각해주지도 않고.


물론, 처음에는 맹렬히 반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엄마.”

“제가 왜 김준서랑 데이트해야 하는데요?!”


그러나, 그 반항도 곧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다.


“준서야, 엄마 말 잘 들어야지? 그래야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했어, 안 했어?”

“하지만,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

“김준서. 엄마 말 들어.”


강압적인 엄마의 태도에 준서는 반사적으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준서에게 엄마란 부모인 동시에 존경하는 선생님이었으니까.


‘그래도 정하린은 계속 반대해주겠지?’


그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린 역시, 이 상황 자체를 싫어했었기 때문에.


하지만, 어느 날.


“저희 하린이도 알겠다네요~ 그러게, 처음부터 좋게좋게 갈 것이지···. 아무튼 이번 달 약속부터 잡아 볼까요?”


그녀의 엄마에게서 나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

누구보다 싫어했으면서 받아들이다니.

준서는 하린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며칠 뒤, 하린을 다시 보게 된 순간이었다.


“야, 너···.”


아무도 몰래, 동네 구석에 숨어, 훌쩍이고 있던 그녀.

하린의 종아리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야, 이건 학대잖아!”


준서는 곧바로 경찰서에 전화하려 했다.


그 순간.


“하지 마, 김준서.”


그를 말린 건, 다른 사람도 아닌 하린이었다.


“엄마도 없으면 이제 나 혼자야.”


그녀의 아버지는 몇 달 전 돌아가셨고, 친척들과는 사이가 안 좋은 상태였다.

만약 그녀의 엄마마저 없다면, 하린은 혼자 남겨지고 말았다.


“그냥··· 한 달에 한 번만 만나면 되는 거잖아. 그것만 지키면 엄마도 때리진 않을 거야.”

“너, 정말 그걸로 되겠어?”


하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하린과 준서는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었다.


단순히 만나서, 감정 없는 데이트를 하다가, 미련 없이 떠나는 약속의 반복.


이것에 대해 반발하지도, 남에게 알리지도 않는 것이 둘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실제로 그 이후로, 하린의 몸에 멍이 생기는 일은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준서는 항상 하린이 안타까웠다.

아버지의 타계 그리고 하나뿐인 가족의 학대, 그에 이어서 그나마 그녀가 의지했던 리나의 유학까지.


누구나 천재라고 칭송했던 하린은 사실 누구보다 힘든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오직 준서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리나뿐.


그런데 어느 날, 준서는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어릴 적 그 사건 이후로 한 번도 남에게 관심을 두지 않던 하린이 처음 보는 남학생에게 말을 걸고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하린이 자릴 비운 사이, 그와 이야기를 해보니, 하린이 일방적으로 보내는 관심이었다.


‘심지어, 강현묵 피아니스트의 제자였다니.’


이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준서와 하린을 3년간 조여왔던 굴레를 끝맺을 기회.


준서가 알기론, 하린의 엄마가 이 약속을 맺은 이유는 하나였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그의 엄마와 한창 떠오르는 유망주인 준서와의 끈끈한 관계.

그것이 하린을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노헌 역시 하린의 엄마 마음에 들기엔 충분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제자였으며, 콩쿨 본선에서 들었던 그의 연주에는 피아노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분명 앞으로도 성장할 테지.’


거기에 하린까지 관심을 두고 있다면, 그녀의 데이트 약속 상대는 준서가 아니라, 노헌이 되는 것이 알맞았다.


그래서 준서는 노헌에게 다가갔다.


- “정말 실망이야.” -


하린이 그에게 저지른 실수도, 어떻게든 대신 변명했으며, 이후 그녀가 노헌에게 사과하도록 설득했다.


준서의 노력 덕분에 노헌과 하린의 사이는 더 나빠지지 않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순 없었다.


‘둘이 친해지게 만들어야 해.’


그러려면 학교도, 지역도 다른 노헌과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래서 그의 번호를 물었고, 중학교 연말 연주회에도 초대했다.


리허설이라는 명목으로 하린에게 노헌의 마중을 보냈으며, 그녀에게 조건으로 제시했던 약속의 파투를 위해, 준서는 혼신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꾀병을 부리기까지 했다.


‘덕분에 그때 분위기 참 좋았지.’


연말 연주회가 끝나고, 엄마와 이야기 나눌 때, 준서는 정문으로 향하는 노헌의 모습을 목격했다.


즉시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그를 따라간 준서.


지금껏 쌓아온 준서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정문 앞, 노헌이 하린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모습은 무엇보다 훌륭했다.

거기에 그가 떠난 후 홀로 남은 하린의 미소까지.


‘조금만 더 하면 되겠는데?’


단 한 걸음.

그것만 있다면 자신이 더 노력하지 않아도, 그 둘이 알아서 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준서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잡은 것이 오늘의 이중 약속.


한 달에 한 번 데이트해야 하는 하린과의 약속을 잡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노헌과도 약속을 잡았다.


의심을 살 수 있는 무리한 방법이었지만, 준서는 지금도 연주회를 보고 있을 두 사람을 믿었다.


‘제발 이대로 너희끼리 알아서 해줘, 나도 연애 좀 해보게.’


사실, 이것이 준서의 본 목적이었다.



♪♪♪



연주회가 끝났을 때, 노헌은 의문이 들었다.


‘준서한테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린과 단둘이 연주회를 보게 된 난처한 상황, 그것은 분명 준서가 의도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노헌이 고민하게 된 건···.


‘연주가 너무 감동적이었어.’


알고 보니, 이 연주회 티켓은 상당한 고가의 물건이었다.

그것을 공짜로 준 준서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지경, 결국 노헌은 이번 한 번만 눈 감아 주기로 결심했다.


연주회장을 나서자, 석양이 지고 있는 하늘.

나름 연주회에 만족했던 노헌은 슬슬 하린과 작별하려 했다.


“이제 나는 집에 가도 되지?”

“···아니.”

“어?”


거부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하린.


“그··· 저, 저녁 먹고 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녀의 시선, 그 바람에 낯부끄러워진 노헌 역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그래.”


그렇게 둘은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메뉴를 정하고, 음식이 나와 먹는 동안, 둘 사이의 어색한 기류는 사라지질 않았다.

하린 역시 이럴 걸, 예상하긴 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의심받으니까···.’


하린과 준서의 약속은 항상 저녁을 먹고 나서야 끝이 났다.

오늘 약속도 마찬가지로, 엄마에겐 준서와 약속을 가기로 말을 해놓은 상태, 만약 저녁도 안 먹고 집에 들어간다면 의심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어색하잖아···.’


가끔, 식사 도중 눈만 마주쳐도 곧바로 시선을 회피하는 두 사람이었다.

하린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다음 콩쿨은 어디 나갈 거야?”

“그··· 다음 달에 열리는 전국 신학기 피아노 콩쿨 나갈 거 같은데?”

“어? 나도 거기 참가해.”


공통된 화제.

노헌과 하린은 그제야 대화다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무슨 곡 치게?”

“나? 비밀인데?”

“·····그게 뭐야.”


실망한 하린을 보자, 노헌은 왠지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괜히 말했다가 또 저번처럼 실망할 수도 있잖아?”

“그때는···! 그, 미안.”

“농담이야.”


억울한지, 찌릿 쳐다보는 하린.

어느샌가, 어색했던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


“그나저나, 준서는 지금 뭐하려나?”

“김준서? 아마 혼자 밖에 떠돌아다니고 있을걸?”


하린의 말대로 준서는 홀로, 밖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 역시 일찍 들어가면 의심을 받았기에.


“내 생각엔 준서가 앞으로도 우리 이렇게 엮으려고 할 거 같은데, 대비해서 번호라도 교환하지 않을래?”

“어? 그, 그래.”


준서의 희망대로, 노헌과 하린은 서서히 친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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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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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89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7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8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9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4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1 8 11쪽
»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20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8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1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4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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