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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이 님의 서재입니다.

각성자 만복이는 오늘도 출근 중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오일이
작품등록일 :
2024.08.20 13:28
최근연재일 :
2024.09.08 21:50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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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5
추천수 :
255
글자수 :
11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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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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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5화

DUMMY

협회의 최고 권력자는 협회장이다.

이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일반 사람들은 부협회장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협회에 녹을 먹고 사는 직원들이라면, 그 말에 부정할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할 것이다.

두 번째는 비서실장 이용원이라고.


그런 그가.

아주 대단한 그가.

내 앞에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강심장은 아니다.

새가슴은 더더욱 아니다.

요즘 간덩이가 붓긴 했지만.


이용원 앞에서는 부은 간은 한없이 작아졌다.


“앉아요.”

“괜찮습니다!”

“내가 불편해서 그래요.”

“알겠습니다!”


나는 소파에 등을 꼿꼿이 세우고, 꽉 쥔 두 손을 무릎에 올려 놓았다.

갓 입대한 신병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각을 잡았다.

왜?

내 앞에 이용원이 있으니까.


솔직히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지금 머리가 하얗다.

협회 행사 때나, 가까이도 아니고 멀리서 봤던 높고도 높으신 양반이.


그렇다고 바보처럼 멍하게 있을 순 없는 노릇.

머리를 쉴 새 없이 굴리기 시작햇다.


도대체 뭔 이유로 나를 찾아왔을까?

불특정 입실론 게이트 때문에?

그건 아닐 거다.

아직 임원들 귀에도 들어가지 않은 것을 이용원이 알 리가 없다.

알려지더라도 나중이다.

양현석 부장이 시도조차 안 해 보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을 거니까.


아니면, 박유천 그놈인가?

이용원은 박유천과 같은 태백 무가 사람이기도 하니까.


칼 각을 유지하는 와중에도 내 머리는 쉴 새 없이 돌아갔었다.

그래야 대처를 할 수 있으니까···


“편안히 앉아요.”


이용원은 내 자세가 불편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맞다, 아주 불편하다.


문제는 이 정도로 높으신 양반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고민이었다.

습성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의 말대로 소파에 등을 맡기며, 편하게 앉아야 할지.

반대로 불편하지만 계속 자세를 유지할지.


단순히 자세 하나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 걸 보면.

지금 내 심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자세를 유지하는 걸로 가닥을 잡았다.

건방지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나으니까.


이용원은 변함없는 내 자세에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그는 굳은 나를 풀어줄 필요성을 느꼈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제가 만복 씨를 만나려고 한 거는 말이죠. 협회 비서실장이 아니라, 유천이 삼촌 입장입니다.”

“······”


박유천 삼촌 입장이라?

하긴, 특별 관리팀의 하는 일 애들을 게이트에 대해서 가르치는 거니까.

아직 나머지 세 명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용원의 말을 해석해 보면···

나는 따지고 보면, 박유천의 선생이고.

이용원은 삼촌이라고 했으니까.


그럼.

학부모 상담?

허허···

겉으로 표현할 순 없고,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잘 나가든 협회 최고의 에이스가.

애들 가정교사나 하고 있고 말이야.

솔직히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회의감 때문일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확~ 막 나가 봐?

라는 생각이 마구 치밀어 올랐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 상상조차 못 했는데··· 젠장.

춘식이와 박유천 두 놈.

이놈들이 분명 내 성격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했다.


그래서 미쳐서 막 나가면?

그건··· 흠.

답은 뻔하지.


생명은 중요했다.

특히 내 생명은···

별수 있나.

나는 그냥 생명 존중 사상을 찬양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확고하게 내렸을 때.

이용원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옛말에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듯이, 스승이란 태양과 같습니다.”

“음···”


일단 느낌이 나쁘지 않다.

이용원의 목소리가 진중했기 때문이다.


일단 이용원의 의중은 대충은 알겠다.

박유천을 잘 가르쳐 달라고.


그러나.

나를 군사부일체니, 태양이니 하며 치켜세웠다고 해서.

나는 단세포처럼 헤벌쭉~ 할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아이러니가 숨어있었다.

나는 일반인이었고, 박유천은 각성자라는 것.

각성자 교육은 각성자가 담당하는 게 맞다.


단지, 게이트에 대한 지식 때문이라면.

태백 무가에도 전문가가 있지 않나?

당연히 그 전문가는 나보다 못하긴 하지만 말이야.


이용원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질문 하나 정도는 던져도 되겠지?


“그런데, 하필 저인지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물었지만.

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와 감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하!”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이용원.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왜 웃는지 물어볼 수도 없는 일.

나는 속으로 의문을 삭혔다.


이용원은 웃음을 멈추고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넸다.

그리고 읊기 시작했다.


“만복 씨, 5년 전 역전 할배 호프집에서 소맥 12잔째 먹는 중. 협회 체계에 대한 불만 총 3번 말했었죠? ········· 최근에는 측정실에 들렀네요. 그리고 장비 과에서 검 한 자루도 가져갔네요. 전략 기획부에서 천재를 넘어서 괴물이라고 불렸고······ 100년 동안의 게이트를 꿰차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일본, 중국 미국, 유럽까지······”


나는 눈알이 빠질 정도로 눈썹이 올라갔다.

이용원이 들고 있는 자그마한 종이에 내 모든 정보가 들어 있었다.

나도 기억 못 하는 정보까지.

정보가 너무 디테일해서 반박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왜?

나는 단순히 물었을 뿐이었다.

왜 나를 지목했냐고.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너무 황당했다.


긍정과 부정.

부정의 힘은 정말 무섭다.

한 톨만 한 부정은 엄청난 포식자다.

순식간에 자신의 덩치보다 수백 배, 아니 수천 배 더 큰 긍정을 잡아먹거든.


이용원의 의도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협회의 주요 인물이라는 것.


그러나.

지금까지 나를 철저하게 감시했던 것.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우리에 갇혀 묘기를 부리는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표출할 순 없었다.

차가운 머리로 꽉꽉~ 눌렀다, 그리고 다시 눌러버렸다.

나는 그에게 분노를 쏟아부을 만큼 뜨거운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 떨리는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

“협회는 직원들 모두를 이렇게 감시하는 겁니까?”


고작, 따지듯 묻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반항이었다.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오해?’

자기 입으로 몇 년 동안 일거족일투수를 감시한 증거를 말해놓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용원의 뚫린 입 사이로 계속해서 목소리가 나왔다.

“그만큼 협회에서 김만복 씨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에겐 감시는 없습니다. 그만한 인력도 없기도 하고, 필요성도 없으니까요.”


이용원의 말을 요약하자면.

내가 능력이 출중해서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감시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라.


근거와 이유는 타당성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죄수로 살았다는 걸, 알게 된 현재 내 기분은?


아무리 능력을 인정받아도 말이다.

내가 노출증 환자도 아니고, 벌거벗겨진 채 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인권이 유린당한 채.

하긴 이들에게 나 같은 놈의 인권이 있으려나.


차라리 예전처럼 이들의 습성을 막연히 알고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실제로 현실을 마주하니.

온몸에 수챗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하던데.

그 작은 몸짓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까?


쥐 죽은 듯 숨죽이고 조용히 살고 싶은데.

세상이 점점 나를 용기 있는 놈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머리만 있는 놈인 내 용기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선 만용이라고?

과연 그럴까?


레드 프로그가 E급 각성자의 검에 난도질당해서 죽었다.

발검술과 강타의 위력 때문에?

E급 각성자의 수치는 고작 100~200R이다.

아마 내 활성 에테르 수치가 100R이 아주 조금 넘었었지?


그리고 B급 각성자인 박유천이 쓴 무술은 발검술과 강타보다 아래이고?

어렸을 때부터 수련한 놈의 무술이?


후후···


분수.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게 지상최대의 목표다.


그런데.

내 분수가 커졌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뿐이지.


추정 불가?

보이스피싱범?

그리고···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일단 놀아줘야지.

입맛에 맞춰서.


“아··· 저를 이렇게까지 생각하시는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제야 오해가 풀렸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유천이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제 일인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깜빡하고 말하지 않는 게 있네요. 특별 관리팀은 협회 모든 부서 일에 관여해도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이번에 등장한 불특정 입실론 게이트라든지요.”

“아···”

“유천이, 이 녀석도 경험도 쌓아야 하니.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그냥 참고만 해주시면 좋겠네요.”


이용원의 말은 돌려서 하지만, 사실상 명령이었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목적이겠지?


하여튼 내 처지에 따질 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만복 씨 귀찮게 하는 것 같네요.”


귀찮게?

말은 하여튼···

그러니, 99% 인간들이 속아 넘어가는 거겠지.

그렇게 권력을 유지하고.


“절대, 아닙니다.”


내 대답을 끝으로 이용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리기 전, 내게 한 마디를 더 남겼다.


“그리고, 협회 모든 부서에 특별 관리팀 일에 무조건 지원하라고 했으니, 참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무조건 지원이라.

‘이건 나쁘진 않네.’


그리고.

안 그래도 입실론 게이트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용원의 말로 확실한 명분이 생겼다.


당장 전략 기획부로 달려가 입실론 게이트를 분석하고 싶었다.

비록 전략 기획부에서 떠났지만, 새로운 게이트 출현은 아직 나를 설레게 했다.

직업병이 아직 남아있는 게지.


그러나 나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부탁을 거절한 지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무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이용원이 박유천과 함께하라 하지 않았나.


무엇보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정확히는 계획의 수립과 정리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원래 계획대로 퇴근했다.



~~~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가면의 두께는 두껍다.

운전기사가 모는 경차 뒷좌석에 느긋하게 앉은 모기업의 회장님처럼···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털보 무술 관으로 향했다.


운동을 하기 전.

나는 항상 들러는 곳이 있다.

털보 무술 관 옆에 있는 편의점.

나는 삼각김밥 하나와 빨대 커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한 후.

매대 옆 길쭉한 탁자 위로 다가갔다.

탁자 끝 쪽에 이미 선객이 한 명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눈은 선객을 힐끔거렸다.


낙후된 쌍문동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고급 정장을 걸치고 사내.

차림새만큼 느껴지는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일반인이 아니다.

분명 각성자다.

그것도 최소 중위급, 그 이상 일 수도.


내 감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협회에서 수도 없이 각성자를 봤기에 본능적으로 감이 온 것이었다.


형색과 맞지 않게, 빨대를 꽂은 바나나 우유를 천천히 음미하는 사내.

그 특이함이 내 신경을 자극했다.


‘뭐지?’


의문을 가진다고 해서 풀리진 않는다.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남자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선 알 수가 없으니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런 걸 묻는 것도 웃긴 일이고.

그럴 오지랖도 없었다.


나는 곁눈질을 멈췄다.

남자에 관한 관심을 멈추고, 편의점에 온 목적을 이행했다.

커피에 빨대를 꽂고, 삼각김밥 비닐을 벗겼다.


나체가 된 삼각김밥에 입을 가져갔다.

그 순간, 탁자 끝에 서 있던 남자가 몸을 돌렸다.

이윽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사내.


삼각김밥을 문 채로 내 눈이 움직였다.

남자의 날카로운 눈매가 내 시커먼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소의 방향은 나를 향한 게 분명했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이후를 준비했다.


최소 중위급 이상의 각성자.

어쩌면 상위급일지도 모르는.

그런 사내가 나를 마주하고 있다.

오만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체 모를 미소는 순식간에 방향을 바꿨다.

덩달아 그의 시선까지도.


사내는 아무런 제스처도 없이 그대로 나를 지나쳤다.


그리고.


휙~


내 등 뒤에서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서.


“커어억. 구···야···”


그리고.


쿵!


무거운 물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나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 생명이 사라지는 소리라는 걸.


황급히 뒤를 돌았을 때.

바나나 우유를 빨던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파란색 조끼를 입은 이가 한 손으로 목을 부여잡고 쓰러져있었다.

쓰러진 그의 나머지 한 손 옆에는 시퍼런 단검 한 자루가 뒹굴었다.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그를 모를 수가 없다.

근 반 달 동안 매일 마주했던 편의점 알바였으니까.


편의점 안에 퍼져가는 혈 향.

내 후각을 자극하는 비릿함.

비릿함에 모든 피가 머리를 향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공포, 두려움?

아니었다.

이건···


나는 편의점을 뛰쳐나왔다.

내가 이기지 못한 건.

비릿함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였다.



마음도 추스르기 전인데.

사방이 시끄러웠다.

최초 목격자인 내가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요란한 싸이렌 소리는 벌써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상황이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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