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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이 님의 서재입니다.

각성자 만복이는 오늘도 출근 중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오일이
작품등록일 :
2024.08.20 13:28
최근연재일 :
2024.09.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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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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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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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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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화

DUMMY

오늘 아침 체육관에서 춘식이가 내게 말했다.

“만보기, 이제 목검으로 말고 진검으로 훈련하자.”

“검 잡은 지 이제 2주 조금 넘었는데 진검이라고?”


이 새끼 진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첫날부터 상급 기술인 발검술을 가르치지 않나.

거기다 중급 기술 강타에.

이제는 한술 더 떠 진검을 잡으란다.


지금까지 목검이라서 마음껏 휘두를 수 있었지.

진검은 말이 달랐다.

검이라는 게 상대방을 해하지만, 반대로 나를 해할 수 있는 아주 무서운 물건이다.

평생을 펜대만 잡았든 내게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따졌다.

“야! 손이라도 베이면 네가 책임질 거냐?”

“만보기, 빨간약 바르면 된다.”

“하 참나··· 그리고 각성자용 검이 한두 푼도 아니고 말이야.”

“만보기, 걱정 마라. 대출을 풀로 땡기면 된다. 부족하면 말해라, 내가 잘 아는 사채업자 소개해 줄라니까.”


결국, 나는 발끈하고 말았다.

“뭐, 이 새끼야!”


항상 춘식이는 이런 식이었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놈이었다.

요즘 내가 성격이 더러워지는 이유도 이 새끼 때문일 거다.

냉철함으로 무장한 내 머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기분이었다.


입씨름해봤자, 나만 머리 아프다.

그래서 춘식이 말대로 검을 구하기로 했다.


문제는 각성자 검 가격이 살벌하다는 것.

내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긴데.

재료를 뭘 썼느니,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래서 가장 저렴한 것으로 알아봤는데.

2억이란다.

시팔··· 진짜.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춘식이 말대로 대출을 받아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2억짜리를 살려고 마음먹으니, 2억 2천짜리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거였다.

그래! 이왕 사는 거 2천 정도야.


2천만 원? 나한테 작은 돈이 아니다.

내 연봉의 무려 10%.


이왕 큰돈 쓰는 김에.

그래도 2천만 원 비싼 게 더 좋겠지?


그런데

바로 옆에 2억 5천짜리가 보이네?

점점 내 금전 감각이 상실해 가더라고.


나중에는 결국 내 눈이 5억짜리 검에 있었다.


그때 정신을 차렸다.

저걸 사는 순간 인생 조지는 거다.


무조건 춘식이처럼 된다.

사채업자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춘식이처럼···


결국, 나는 검을 사지 않았다.


그럼.

내 옆구리에 있는 검은 뭐냐고?


이게 뭐냐면.

말이 좀 길긴 한데.


나는 체육관에서 나오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굳이 새 검을 살 필요가 있냐는 거다.


아무리 장비 빨이 중요해도 말이야.

내가 게이트에 들어가서 괴수를 때려잡을 것도 아니고.

단지, 휘두를 수만 있어도 충분한 연습용 검이 필요한 거였다.


즉, 새것 냄새가 풀풀 풍기는 검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중고 검이어도 나는 상관없다는 거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검에 대해서 뭣도 모르는 내가 남대문 뒷골목에 가서 중고를 산다?

약아 파진 중고 팔이 놈들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처맞을 게 자명한 일이었다.


그럼, 나는 뒤통수를 처맞은 줄도 모르고.

하자 있는 검을 들고 싸게 샀다며 좋다고 하겠지.


논리와 지성으로 무장한 나이지만, 검에 대해선 백지나 마찬가지.

아무리 굳건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어도.

중고 팔이 놈의 세 치 혀에 현혹될 게 뻔했다.


그만큼 이 바닥에서 중고 팔이 새끼들은 유명한 놈들이거든.

일반인인 내가 그들의 악명을 익히 알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중고 검을 사러 남대문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그곳보다 각성자용 중고 장비가 훨씬~ 더 많은 곳이 있는데.

그것도 내 바로 코 앞에.


어디냐고?

바로 협회다.


협회 지하 1층 창고.

게이트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은 헌터들의 장비를 수거해서 모아 놓은 곳.

그곳에는 근 2백 년 동안 쌓아 놓은 각성자 장비들이 있었다.

주인도 없는 장비들이 뽀얀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것이었다.

장비 손질을 제대로 안 해서 그렇지, 장비 출납까지 허술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 간덩이가 단단히 부은 나는 가서 슬쩍 떠봤지.

“특별 관리팀 김만복 팀장인데, 검 한 자루가 필요한데 말이야.”


예상대로더라고.

프리패스.


관리자 왈.

알아서 가져가란다.

게다가 기록조차 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눈치 안 보고, 가장 비싸 보이는 걸로 가져왔지.

한편으로 욕심도 좀 나긴 했다.

챙기는 김에 다른 장비들도··· 큼.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장비를 바리바리 싸 들고 나오면, 괜히 눈에 띌 수도 있었다.

각성자임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눈에 띄는 건 사절이다.

그리고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하여튼.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특별 관리팀.

이 팀은 협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다는 걸···



~~~



알파 타입의 최하위급 게이트지만.

공략이 안 된 게이트는 처음이었다.


게이트를 들어서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기분 탓인지 공기는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쓰으읍”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켜 봤다.

그러나 제 맘대로 쿵쾅거리는 심장은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도 머리는 몸에게 명령을 내리기에 바빴다.

제일 먼저 두 눈에 명령을 내렸다.

빨리 주위를 살펴보라고.


샛노랗고 붉은 낙엽을 품고 있는 나무들.

완연한 가을의 풍경을 보여주는 게이트 안.

그러나 물감으로 물든 듯한 입의 형태는 게이트 밖의 세상과 달랐다.


일반인이라면 익숙하나 생소한 식생에 눈을 떼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내가 게이트 생태학자도 아니고.

단순 호기심 때문에 쓸데없는 곳에 시간 낭비할 이유가 없지.


나는 과감하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다음으로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네 방향으로 각기 뻗어 있는 아담한 오솔길이었다.


형형색색의 낙엽 속에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오솔길.

겉이 요란할수록 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


만약 분위기의 유혹에 속아 무지성으로 오솔길을 따라 들어간다면···

아마 지옥을 맛볼 것이다.

오솔길의 끝은 흉측한 괴수들이 우글거릴 테니까.



게이트 정보는 디테일했고,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100% 신뢰하지 않았다.

내 사전에 무조건적인 신뢰는 없거든.

의심은 있어도 말이다.


보고서에 딱 하나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그게 뭐냐면.

게이트 수치들 사이의 이격도이다.

즉, 보스 구역의 괴수를 특정할 수 있는 주요 자료 중 하나인 스토캐스틱 수치가 의심스러웠다.

수치의 흐름이 뭔가 끊겨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


로열인 박유천이 솔로로 진행하는 게이트인 만큼.

분명, 예전의 동료들이 있는 전략 기획부에서 분석했을 것이다.

이들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말이야.

과연, 게이트 수치 측정도 정확했을까?

세타, 델타도 아닌, 최하위급 게이트인 알파 타입의 측정을 말이다.


안 봐도 뻔했다.

평균 수치가 알파 타입임이 확인되는 순간.

측정관은 그다음부터 대충했겠지.


그러니, 최하위 게이트인 알파 타입에서 사상자가 제일 많겠지.

수치도 정확히 몰라.

게다가 분석, 전략 전문가도 없으니. 뭐.


하위급 각성자의 삶은···

이게 현실이었다.


게이트 주위를 연신 살피고 있는 내 옆으로 박유천이 다가왔다.

“팀장씨!”


그의 부름에 나는 눈을 흘겼다.

“씨?”

“앗, 죄송합니다. 팀장님!”


박유천은 내게 죄송하단 말을 몇 번 해봐서 그런지.

이제는 거리낌이 없었다.


“앞으로 말조심하세요. 협회장님 귀에 들어가기 싫으면 말이죠.”


나 또한 로열인 박유천에게 거리낌 없이 협박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박유천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 상황.

평소라면 쳐다볼 수 없는 로열을···


이제는 기호지세다.

즉, 나는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이었다.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면 뒈지는 거다.

그 대신 이 기회를 잘 이용한다면···

그토록 원했던 전략 기획부 부장 자리쯤은 우습지.


호랑이 등을 꽉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법은 간단하다.

절대 질질 끌려다녀선 안 된다.

박유천, 이 애송이 녀석에게 말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

애송이 새끼에게 내 목숨을 맡길 순 없잖아.


떨어져서 뒈져도 말이야.

적어도 후회는 남진 않겠지.


협회장을 언급하자, 박유천의 목소리는 김빠진 맥주처럼 매가리가 없는 맛이었다.

“눼···”


그러나 순간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박유천의 텐션은 끝없이 치솟기 시작했다.


“흐흐··· 팀장님! 왼쪽부터 갑니다!”

‘이 새끼가, 웃어?’

나는 박유천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참~ 불만스러웠다.


아무리 알파 타입의 게이트지만.

이곳은 괴수가 득실거리는 게이트다.

자그마한 실수가 목숨과 직결되는 곳이다.

문제는 그 목숨이 내 목숨이라는 거지.


세상 물정 모르는 망아지처럼 구는 내 앞의 애송이 녀석.

이대로 내버려둘 순 없다.

내 목숨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니까···


“박유천씨, 흥분 좀 가라앉히시죠. 게이트 안에서는 최대한 냉정해야 합니다.”

“팀장님! 걱정 마시죠. 알파 타입 괴수쯤이야, 가볍게 몸 푸는 정도밖에 안 돼요. 후후! 그리고 팀장님은 일반인이라서 잘 모르나 본데, 괴수 사냥에 있어서 과도한 긴장은 좋지 않아요.”


이 새끼의 말은 청산유수다.

나는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B급 각성자인 박유천에게 알파 타입의 괴수는 그의 말대로 껌이니까.


그러나 게이트라는 곳은 항상 변수가 도사리는 곳.

나는 삶을 아주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기에.

다시 여러 번 주의를 줬다.

박유천의 귀에 딱지가 생길 때까지···



박유천을 선두로 가장 왼쪽에 있는 오솔길로 향했다.


총 네 개의 구역 중 첫 번째 구역.

게이트 완료를 알리는 보스 구역을 공략하기 전.

일반 구역인 나머지 세 개의 인피리어 구역 공략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필수는 아니었다.

보스 구역만 공략하면 게이트 공략은 완료니까.


문제는 인피리어 구역, 비 공략 수만큼.

게이트 보스의 난도가 올라간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스 구역 공략전 인피리어 구역 공략은 필수에 가까웠다.


우리도 일반적인 규칙을 따르는 중이었다.

인피리어 구역 세 개를 공략 후, 게이트 보스를 공략할 셈이다.


만약에 박유천, 이 새끼가 바로 보스 구역으로 직행했다면.

쌍욕을 거나하게 박아주고, 무조건 게이트 밖으로 뛰쳐나갔을 거다.


어쨌든 우리는 인피리어 1구역에 당도했다.


사방이 뚫린 초원.

내 눈을 야무지게 사로잡는 것들.

초원의 풀과 같은 색인 녹색 형체들이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괴수다.

그것도 살아있는···

괴수 사체는 여러 번 봤어도, 이렇게 생기 가득한 괴수는 살면서 처음이었다.


괴수의 이름은 자이언트 프로그.

징그럽게 생긴 외모와 다르게 그다지 센 놈은 아니었다.

알파 타입 게이트에서 센 놈이 나올 리가 없지.


자이언트 프로그가 내 눈에 들어오자, 내 얼굴은 굳었다.


프로그의 뚝 뛰어나온 입에서 막대풍선 피리처럼 생긴 가늘고 길쭉한 혓바닥.

마치 나를 잡아먹을 듯 연신 날름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내 속마음은.

겁나, 무섭다.

생긴 게 징그러워서 더 무서웠다.


부정은 더 큰 부정을 낳듯.

마찬가지 공포는 더 큰 공포를 불러왔다.

심장이 거칠게 뛰는 걸 넘어,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덩칫값도 못 하는 쫄보라고?

아호! 끔찍하게 생긴 괴수를 보고 안 쫄 자신 있어?

이 정도면 나는 정말 잘 버티고 있는 거다.

적어도 바지에 오줌까지는 안 지렸으니까.


박유천은 내 굳어진 얼굴을 보고, 피식거렸다.

“팀장님, 무섭죠?”


순간.

나는 ‘네’라고 답할 뻔했다.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무서운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나는 초인적인 인내로 두려움을 몰아냈다.

비록 로열이지만, 애송이 새끼 박유천에게 우습게 보이는 건.

죽기보다 더 싫었다.


눈썹을 휘며, 입을 열었다.

“헛소리 하지 마시고, 괴수 사냥 시작하죠. 노파심에 묻는데, 자이언트 프로그 약점은 당연히 알고 계시죠?”

“약점? 굳이? 대충 때려도 죽는데요. 팀장님은 가만히 구경하세요. 괴수 사냥은 제 전문이니까. 흐흐···”

“그래도 에테르를 마구잡이로 낭비하지 마시고, 관리하세요. 알파 타입이라도 게이트는 항상 변수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내 목숨은 박유천에게 달려있다.

이 새끼가 사고라도 치는 순간, 뒈지는 건 나다.

그래서 경계하고 또 경계하는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건, 이 새끼 괴수 사냥 경험이 얼마 없는 거다.

갓 스물인 그가 게이트 경험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나.

에테르 수련하고 무술 수련하기도 바빴을 텐데 말이다.


“마누라도 아니고, 잔소리가 너무 많으셔. 나한테 맡기고, 아버지께 보고나 잘해 주시죠.”


박유천은 말을 끝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뭐? 결혼도 안 한 새끼가 마누라가 잔소리 많은 걸 네가 어떻게 알아! ’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제 곧 몸 써야 하는데, 괜히 분란을 만들어 변수를 만들기 싫었다.

무엇보다 나도 마누라가 없으니, 거기에 대해 딱히 반박할 수도 없고, 쩝.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박유천의 등 뒤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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