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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삼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왕씨세가 초대가주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구삼일생
작품등록일 :
2022.05.25 17:28
최근연재일 :
2022.07.08 11:00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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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29
추천수 :
731
글자수 :
240,503

작성
22.05.2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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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6 - 수련 그리고 또 수련

DUMMY

“할아버지. 제가 어제 드렸던 부탁은 잊어주세요.”

“응?”

“할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다 이유가 있겠죠. 제가 괜한 부탁을 드렸었네요.”

“그, 그래. 이해해 주니 고맙구나.”


아침 인사를 하러 온 왕운의 뜬금없는 말에 유신은 당황했다. 사실 어제 서연과 의논을 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뭐라고 둘러대며 왕운의 부탁을 거절할지 내심 고민이었던 찰나 뜻밖에도 일이 쉽게 풀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속에는 작은 의혹도 있었다.


‘어제 분위기는 이렇게 쉽게 포기할 모양새가 아니었는데······? 서연이가 설득했나? 알 수 없는 일이구나.’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떼를 쓰면 어떡하나 내심 고민했던 게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유신이 왕운에게 말했다.


“내가 널 직접 가르칠 수는 없지만, 네가 좀 더 자라면 네가 배울만한 무학을 알아보도록 하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


오늘도 장원 내 연무장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척영과 하엽의 목검 비무가 펼쳐졌다. 비무를 마친 척영이 하엽에게 가볍게 예의를 표한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허전했다. 비무를 마치면 늘 쪼르르 달려와서 한마디씩 하던 꼬맹이가 보이질 않았다.


“저기, 운이가 안 보이네요?”


주변에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흠, 비무 때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구경하던 녀석이 오늘은 어디로 갔지?’


척영과 하엽이 비무를 하던 그 시간, 왕운은 어느 폭포 근처에 있는 공터의 바위에 홀로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곳은 백두산 천지로부터 물줄기가 흘러나와 물이 떨어지는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을 나는 듯한 훌륭한 장관을 만들어내던 곳이었다. 그래서 왕운이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나 어머니께 혼날 일이 생기면 도망을 오던 곳이기도 했다.

왕운은 이곳에 홀로 앉아서 어젯밤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사실 밖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방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두 사람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복수를 할 테니 검을 익히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왕운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한낱 8살짜리 어린 꼬맹이의 철없는 어리광으로 보일 것이 뻔했기 때문에.

왕운은 자라면서 서연이 홀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면 그때마다 서연은 급하게 눈물을 닦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아들을 맞이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자기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병으로 돌아가셨다던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러시는가 보다 했다. 하지만, 어젯밤의 그 대화를 듣고 난 이후에는 그 눈물에 단순히 그리움만 담겨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왕운은 스스로 강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에 희생당하지 않도록 만들리라.

그 누구도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건들지 못하도록.

그러면 언젠가는 어머니도 할아버지도 자신에게 진실을 말해주리라.

8살의 소년은 그렇게 자기만의 목표를 설정했다.


***


다음 날 새벽.

아직 동이 트지 않아서 아무도 눈을 뜨지 않던 시간에 왕운은 홀로 자신의 비밀 장소인 폭포로 향했다.

공터에 도착한 왕운은 일단 마보자세를 취했다. 유신이 왕운에게 권각술을 가르칠 때 하반신의 안정을 위해 같이 가르친 자세였다. 유신은 왕운이 그 자세를 반 시진 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단련시켜 왔다.

그러나 왕운은 유신이 권했던 반 시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마보자세를 유지했다. 동이 트고, 일족의 사람들이 아침을 먹는 시간이 될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한 시진을 훌쩍 넘긴 시간을 버틴 후 장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허벅지가 덜덜 떨리면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장원으로 돌아와서는 지금 막 일어난 듯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다른 사람들과 아침 식사를 같이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왕운은 다시 공터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폭포 근처에 놓인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두 팔을 이용하여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 후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다시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다시 내려놓았다. 그렇게 같은 짓을 점심 먹을 시간이 될 때까지 반복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다시 공터로 향했다. 이번엔 바위를 짊어진 채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것이 끝나면 이번엔 바위를 등에 올린 후 팔굽혀펴기를 했다. 팔굽혀펴기가 끝나면 몸에 돌덩이를 매단 채로 절벽을 기어오르고······.


그렇게 매일같이 왕운은 자신의 신체 구석구석의 부위를 다양한 방법으로 힘들게 만들었다. 마치 몸 어디 한구석 통증을 느끼지 않는 부위가 있으면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보통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괴롭히고 단련시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익숙해지면 마보자세를 한쪽 다리로 유지를 한다거나 무게가 더 나가는 큰 바위를 들어 올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단련의 강도를 높였다. 다른 사람은 엄두도 못 낼 무식한 방법으로 수련을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반복했다.


해가 지면 쓰러지듯 잠이 들고, 일어나면 같은 수련을 반복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2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10살이 된 왕운은 단단한 근육으로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단단한 근육을 더 강하게 만들고자 기존의 수련 방식에 새로운 방식의 훈련법을 추가했다.

그렇게 그가 추가한 방법은 더욱 무식해지고 과격한 방법이었다. 왕운은 맨몸으로 돌덩이를 부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먹으로 돌을 부수기 시작하다 점점 몸의 다양한 부위를 사용했다. 손날, 팔꿈치, 무릎, 발등을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몸통을 바위산에 부딪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 누가 보면 미쳤다고 생각하며 말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이 모든 수련을 왕운이 큰 부상 없이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그가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많은 내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표국을 탈출할 때 왕운을 위해 챙긴 온갖 종류의 영약을 서연은 틈나는 대로 왕운에게 먹였다.

그래서 보통사람 같으면 며칠을 앓아누워 있을 정도로 강도 높은 수련을 하고도 다음날 멀쩡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한편, 왕운은 10살이 된 이후로 척영과 대련을 시작하였다.

결과는 늘 왕운의 패배였다. 척영의 목검이 왕운의 몸을 가격하고 나면, 척영은 그동안 왕운에게 놀림 받은 것을 갚아주겠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비웃었다.


퍽!


“커헉!”

“맛이 어때? 호호호호호!”

“쳇! 6살이나 어린 동생 이겼다고 좋~단다.”

“억울하면 어서 빨리 크렴, 애송이 녀석아.”


사실 간단한 권각술 외에는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 왕운이 10년이 넘는 세월 곡산검법을 수련한 척영과 제대로 된 비무를 할 리가 만무했다.

종종 왕운과 척영의 비무를 구경하던 유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좋은 스승을 소개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왕운과 척영이 비무를 하기 시작한 날 이후, 유신이 장원을 비우는 날이 잦아졌다. 유신은 왕운에게 뛰어난 사부를 붙이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을 수소문하고 돌아다녔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사실 유신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오르긴 했다.


‘그 친구가 운이 사부를 맡아주면 딱 좋긴 한데······ 근데 당최 어디로 거처를 옮겼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에잇! 빌어먹을 노인네.’


유신이 머릿속에 떠오른 그 사람이 사는 곳을 방문했을 땐 이미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 여기저기 알아보다 보면 찾을 수 있겠지. 우리 운이에게 꼭 필요한 늙은이니, 반드시 찾고야 만다.’


하지만 유신이 그 사람을 찾지 못한 채, 어느덧 다시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


오늘도 장원의 연무장에는 두 사람의 비무를 구경하려고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구경꾼들의 수가 전에 비교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왕씨 일족의 사람들만 비무를 감상했다면, 요즘은 멀리서도 구경꾼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구경꾼들이 순수하게 비무를 감상하러 온 사람들만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것.

원래도 빼어난 미모를 지녔던 척영은 18살이 되자 완전히 물이 올랐다. 거기다 오랫동안 검을 수련한 탓에 탄력이 넘치는 건강한 몸매를 지니고 있어서 멀리서도 그녀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내들이 있을 정도였다.


“오오!”

“세상에, 한 마리의 우아한 학과 같구려!”

“척 낭자, 여기를 한 번만 봐주오!”


척영이 초식을 펼칠 때마다 지켜보던 사내들이 주접을 떨고 있었다. 그 때문에 비무를 하는 하엽과 척영 둘 다 민망한 표정을 한 채 검을 맞대고 있었다.


‘제기랄, 시끄러워서 집중할 수가 없잖아.’


척영은 이미 하엽의 경지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전에는 하엽이 척영에게 합을 맞춰주며 비무를 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척영이 하엽에게 합을 맞춰주고 있었다.

두 사람의 비무가 끝나고 하엽이 물러나고 왕운이 나와서 척영을 상대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척영이 하엽의 경지를 넘어선 것처럼, 왕운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4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식하게 외공을 단련한 탓인지, 더는 목검 따위로는 왕운에게 아무런 충격을 줄 수가 없었다.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되니 목검으로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탓에, 점점 척영의 검도 겁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척영의 검이 눈에 익게 되었다.

그렇게 척영의 검을 눈에 담으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일부러 빈틈을 보였다. 그러면 척영의 검이 어김없이 들어왔고 왕운은 짐짓 아픈 척하며 비무를 마무리했다.


“큭!”

“오늘은 그래도 평소보다는 오래 버티네?”


아프지도 않은 옆구리를 문지르며 왕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응. 이제 슬슬 누나의 검로(劍路)가 보인다.”

“어쭈구리?”

“있잖아······.”

“응?”

“만일 누나가 나한테 지는 날이 오게 되면 어떡할래?”

“그런 날은 절대 오지 않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날부터 평생 네 시중을 들어주지.”

“흠, 누나가 내 시중을 드는 것보다는······ 저기에 누나 시중들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 많은 것 같은데.”

“이게!”


척영이 왕운의 머리를 향해 목검을 내리치자, 왕운은 그것을 슬쩍 피한 후 몸을 날려 달아났다.


“흐흐, 잘 배웠습니다!”

“너 거기 안 서?!!”


왕운이 달아난 방향을 보고 씩씩거리던 척영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화풀이했다.


“뭐에요! 다들 구경났어요? 비무 끝났으니까 돌아들 가라고!”


목검을 들고 눈을 부라린 채 척영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기겁하고 줄행랑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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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02 - 탈출(2) +5 22.05.25 1,125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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