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구삼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왕씨세가 초대가주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구삼일생
작품등록일 :
2022.05.25 17:28
최근연재일 :
2022.07.08 11: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32,854
추천수 :
731
글자수 :
240,503

작성
22.05.26 16:44
조회
1,003
추천
25
글자
12쪽

004 - 만남

DUMMY

척유신.

사실 그의 정체는 지금으로부터 약 삼백여 년 전, 고려의 여진 정벌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던 맹장 척준경의 마지막 후손이자 척준경이 만든 곡산검법의 계승자였다.

왕혁은 어린 시절 왕족으로 사는 것을 답답하게 여겨서 왕궁을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그렇게 전국을 떠돌며 여행을 다니다가 유신의 소문을 듣고 홀로 검을 배우겠다며 유신을 찾아가서 그의 제자가 된 것이었다.


“호, 혹시 척유신 사부님이 맞으십니까?”

“그렇다네. 정녕 혁이가 보낸 것이 맞는가?”

“아······, 어르신.”


드디어 찾았다고 생각한 하엽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왔으나 유신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하엽은 유신에게 엎드려 절하고 일어나지 못한 채 대성통곡을 했다. 눈물을 쏟으며 유신에게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왕혁의 죽음부터 그의 유언에 따라 먼 길을 떠나 유신을 만나러 온 부인과 아들의 얘기까지 전부.

오랜만에 듣는 제자의 소식이 제자의 죽음이라니.

유신은 잠시 분노와 슬픔으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스스로 진정시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신이 하엽에게 물었다.


“어디 있나?”

“······예?”

“그놈의 처와 아들 말일세.”


하엽이 대답했다.


“아랫마을 객잔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준비할 테니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게.”


집 안으로 들어선 유신이 그의 어린 손녀에게 말했다.


“영아.”

“네, 할아버지.”

“너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채비하거라. 산 밑에 마을로 내려갈 것이다.”

“넹!”


오랜만의 외출에 신난 척영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안휘성 합비. 남궁세가의 집무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박이 남궁세가의 무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에게 물었다.


“아이의 소재는 아직 찾지 못했나?”

“호북성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으나, 그의 처인 유서연과 아이의 소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을 미리 탈출시킬 시간은 없었을 텐데?”

“속하의 판단으로는······.”


중년인이 남궁박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자, 남궁박이 차분하게 말했다.


“괜찮으니 말하라.”

“그날 왕혁 그자가 소가주님과 맞붙는 척하다 그대로 지나쳐 포위망을 돌파하였습니다. 그러자 소가주께서 흥분하여 포위하던 세가의 무인들을 모두 이끌고 그를 추격하였고······.”

“그 틈을 타 그놈의 부인과 아이가 빠져나갔다는 말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남궁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가주가 앞뒤 재지도 않고 흥분하여 그놈의 뻔한 유인에 넘어가 농락당하고, 심지어 일대일 맞대결에서 또 패했단 말이군.”

“······.”


순간 뭔가 생각난 남궁박이 다시 물었다.


“처와 아들 말고 다른 가족은 없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가주님도 아시다시피 애초에 그의 가문, 사문 그 어느 것도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그자에게 의형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제갈세가의 소가주 제갈현과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갈세가는 아시다시피······.”

“아, 그랬지. 가문이 풍비박산되어 대부분 죽고 살아남은 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했지?”

“그렇습니다.”

“조만간 사마세가와 자리를 만들어야겠군.”


남궁세가가 해왕표국을 급습했던 그 시간, 제갈세가 또한 남궁세가의 지원을 받은 사마세가의 습격을 받았다.

제갈량과 사마의. 수백 년 전 오장원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그들의 선조로부터 이어진 악연으로 제갈세가와 사마세가는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마세가의 현 가주였던 사마진은 제갈세가를 꺾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남궁세가와 더불어 오대세가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수없이 많은 무림맹의 군사들을 배출해 내며 중원의 강자로 군림해온 제갈세가와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마진은 남궁세가와 모종의 거래를 통해 동맹을 맺었다.

먼저 사마진은 평범한 상단 하나를 해왕표국의 주 거래처로 만들었다. 그리고 해왕표국이 운반하던 상단의 물품 안에 당시 흑도 제일의 세력 중 하나이자 무림맹의 공적(公敵)이었던 구룡방(九龍房)과 관련된 듯한 가짜문서가 발견되도록 꾸몄다.

나중에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아차린 해왕표국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상단을 찾았지만 이미 상단의 모든 사람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애초에 상계로 유명했던 사마세가였기 때문에 상단 하나 만들고 없애는 일은 그들에게는 매우 손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해왕표국을 모함한 사마진은 남궁세가와 밀약을 맺은 후에 곧바로 제갈세가에 선전포고를 했다. 사마세가는 제갈세가를 습격하던 날 남궁세가의 백여 명의 정예들의 지원을 받았다.

선전포고를 받은 제갈세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맞섰으나, 두 세가의 연합공격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평이 사망하고, 제갈현은 그의 부인과 6세의 어린 딸 제갈부를 데리고 피신하였다. 나머지 일족의 대부분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하룻밤 사이에 무림의 두 세력이 박살이 나고 만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결국 그들의 소가주의 앞날을 위해서 왕혁을 제거하고자 했던 남궁세가. 그리고 제갈세가를 몰아내고 오대세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 사마세가. 이 두 세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벌어진 것이었다.


“사마세가와 협력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전력을 동원해서 왕혁의 처와 아들놈을 찾아라. 그와 친했던 이, 표국의 거래처 모든 것 하나 놓치지 말고 확실하게 찾아라. 삭초제근(朔草諸根)을 확실히 해야 한다.”

“충!”


***


산에서 내려갈 준비를 마친 유신이 말했다.


“안내하게.”

“예, 어르신.”


마을을 향해 한참 내려가던 중 유신이 하엽에게 물었다.


“그놈의 마지막은 어땠는가?”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신도 거두지 못했겠군.”

“······예, 어르신.”


잠시 대화를 멈추고 말없이 내려가던 유신이 다시 하엽에게 물었다.


“혁이를 습격한 그놈들 말일세······.”

“예.”

“혁이에게 아들이 있다는 소식도 아는가?”

“아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곳까지 추격자들이 올 가능성은?”

“국주님의 출신에 대해 그 어느 것도 중원에 알려진 적이 없었습니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됩니다.”

“내가 가르친 검술이 도리어 그놈이 공격받을 빌미를 제공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게 어찌 어르신의 책임이란 말입니까. 처음부터 그들은 국주님을 제거할 명분을 찾고 있었을 뿐이고, 검술이 아니더라도 다른 핑곗거리를 찾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증거까지 완벽하게 날조해 내었지요.”


다시 대화가 끊기고 또 얼마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을 내려가던 유신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놈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 있었는가?”

“도련님이 복수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


그렇게 둘만의 대화가 이어지다가 어느덧 일행은 객잔에 도착했다. 하엽이 유신과 척영을 서연이 머무르고 있던 방으로 안내했다.


“부인, 하 총관입니다.”

“어서 오세요, 총관님. 좋은 소식이 있던가요?”

“네, 부인. 척 사부님을 찾아서 모시고 왔습니다. 어르신, 안으로 드시지요.”


들어오던 유신이 걸음을 멈추고 하엽에게 말했다.


“내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만······.”

“······?”

“내 저 아이와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은데 내 손녀를 잠시 부탁해도 되겠는가? 내 손녀가 산에서 오랜만에 내려왔는데 자네가 바깥 구경을 시켜주면 좋겠네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신이 척영에게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신신당부했다.


“들었지? 오랜만에 마을에 내려왔는데 놀다 오려무나. 이 아저씨 말 잘 듣고 버릇없이 굴면 안 된다. 알겠지?”

“네, 할아버지.”


하엽과 척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서연이 유신에게 절을 올리려 했다. 그러자 유신이 황급히 그것을 저지하며 말했다.


“이러실 필요 없네. 내가 뭐라고 자네의 절을 받는단 말인가.”

“아닙니다. 오라버니의 사부님이신데 당연히 예를 갖추어야지요.”

“아닐세. 멀리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먼.”

“······처음 뵙겠습니다. 유서연이라 합니다.”

“······.”

“······.”


잠깐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서연은 갑자기 왕혁이 떠올라 울컥한 마음에 말을 하지 못했고, 유신 역시 제자의 죽음에 대한 슬픔 때문에, 그리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서연과 장차 아비 없이 자라야 할 왕운이 안타까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유신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서연······이라고 불러도 되겠느냐?”

“예, 어르신.”

“2년 전에 그놈에게 혼인한다고 연락은 받았으나, 그때는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혼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었느니라. 혁이 그놈이 어떤 처자와 부부의 연을 맺는지 궁금했지만 못 가봐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참하고 고운 신부를 맞이했었다니, 늦게나마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구나.”

“저도 오라버니가 그 뛰어난 검술을 어떤 분에게 배웠는지 늘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좋습니다, 어르신.”

“······.”

“······.”


또 어색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눈앞에 놓여있던 차를 한 모금 마신 유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서연이 너에게 중원에 다른 가족은 없다고 들었다. 남궁······세가라 했지? 어차피 그놈들 때문에 그곳에 돌아가진 못할 테고, 너와 같이 온 그 친구가 그놈들도 차마 여기까지는 쫓아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더구나. 여기에 정착해 운이를 키울 것이더냐?”

“그럴 생각입니다. 여기에 살아남은 오라버니의 일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르신도 알고 계시는지요?”

“그래. 지금 조선의 국왕, 이방원 그 작자가 사신으로 중원을 찾았을 때, 혁이가 그와 담판을 짓고 살려낸 얼마 남지 않은 고려의 왕족들이지. 이 마을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내가 가끔 들러보고 있단다.”

“다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은 오라버니가 꽤 많은 돈을 남겨 주셨지요. 원래는 그분들을 중원으로 안전히 이주시키려 했던 돈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안전한 곳에 터를 잡고 그분들과 같이 살아가려 합니다. 의지할 친척이라도 있다면 장차 아버지 없이 자랄 이 아이에게도 나은 일이 되겠지요.”

“오냐. 좋은 생각이다.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어르신.”


며칠 후, 그들은 서연이 머물던 객잔이 있는 마을에 터를 잡기로 정하고 일족이 모여 살 수 있는 커다란 장원을 지었다.

원래는 다른 곳에 터를 잡으려 했지만, 이곳에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선하고 착했기에 큰 위협이 없으리라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이들이 많이 보이자 경계하던 마을 사람들도, 하엽이 마을에 돈을 풀면서 이것저것 사업을 벌이고 마을이 활기를 띠게 되자 점차 왕씨 일족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사람을 싫어해서 산에서 손녀와 단둘이 살던 유신도 서연과 왕운을 곁에서 보살피고자 왕씨 일족의 장원에 같이 살게 되었다. 산에서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내던 척영이 특히 좋아했고, 왕운을 친동생처럼 귀여워했다.

그렇게 서연과 왕씨 일족은 백두산 아래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서연은 왕혁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가슴에 묻고 왕운을 정성을 다해 키웠고, 왕운은 별 탈 없이 자라게 되었다.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2.06.06 18:17
    No. 1

    중원에서 그 어떤 행적도 티를 내진 않았지만 결국엔 찾으러 올 테지요.
    진심 아비의 소원대로 구름처럼 유유자적 평화롭길 바라겠지만 어쩜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면 좀 덜 위험에 노출되려나 괜한 욕심을 부려봅니다.
    독자는 아무래도 진심 글에 파묻히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보니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구삼일생
    작성일
    22.06.06 21:37
    No. 2

    사과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ㅠㅠ 앞으로 무진장 싸우고 다닐 예정이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2.06.06 22:08
    No. 3

    아이고 제가 부담을 드렸네요. ^^ 엄마의 마음이다보니 왕운이 평화롭게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중원에서부터 쫓아와 괴롭힐 것 같아 멋지게
    성장할거라 기대합니다. 힘내시구요~ 끝까지 따라갈껍니다 화이팅^^/!!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구삼일생
    작성일
    22.06.07 17:29
    No. 4

    부담이라뇨^^ 당치도 않으십니다. 끝까지 가겠습니다 사과님도 화이팅하시길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별랑(別狼)
    작성일
    22.07.01 12:46
    No. 5

    4, 설명이 너무 길음. 과도히 친절한 설명을 하지 않으셔도 독자들은 다 압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2 구삼일생
    작성일
    22.07.01 13:18
    No. 6

    저도 늘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무협소설은 작품마다 설정이 달라서
    어느정도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하는데
    그게 어느정도까지 해야할지 아직 서투릅니다ㅠㅠ
    더 발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씨세가 초대가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016 - 자네의 아들은 훌륭히 자랐네 22.06.04 746 15 11쪽
15 015 - 하북팽가의 철부지 22.06.03 777 14 14쪽
14 014 - 모용세가(3) 22.06.01 779 15 11쪽
13 013 - 모용세가(2) 22.05.31 805 16 11쪽
12 012 - 모용세가(1) 22.05.31 861 15 9쪽
11 011 - 가출 22.05.30 873 17 11쪽
10 010 - 결심 22.05.29 893 17 14쪽
9 009 - 금강불괴 +1 22.05.29 904 20 10쪽
8 008 - 소중한 인연들 22.05.28 920 22 12쪽
7 007 - 화염신공 22.05.28 928 21 11쪽
6 006 - 수련 그리고 또 수련 22.05.27 955 21 11쪽
5 005 -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4 22.05.27 976 21 11쪽
» 004 - 만남 +6 22.05.26 1,004 25 12쪽
3 003 - 척 사부를 찾아서 +3 22.05.26 1,054 22 12쪽
2 002 - 탈출(2) +5 22.05.25 1,127 30 12쪽
1 001 - 탈출(1) +7 22.05.25 1,597 3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