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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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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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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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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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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6. 포도원

DUMMY


일요일이 돌아왔다.

이 날은 황태자에게도 엄준히 적용되는 안식의 날이다.

아버지와 약속한대로 알렉시스는 일과 공부에 대한 강박을 의지적으로 억제했다.

아울러 요새 들어 동생이 준 선물을 이용할 목적으로 시작한 고강도의 육체 트레이닝도 일단은 꾹 참았다.


그는 평소처럼 토요일 밤에 자동 운행 전용기를 타고 아이언로드 알파에서 출항한 뒤 근처의 거처로 이동하기까지 잠시 단잠을 청했다.

가끔 이전 일의 악몽이 플래시백으로 재현되는 탓에 불면에 시달리기도 하는 그였지만 일주일간 업무와 연구가 많아서인지 오늘은 깊이 잠들었다.


일요일 아침에 숙소에서 깨어난 그는 가벼운 목욕 후 사복을 입고 변장하였다.

황태자로서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한 그.

그곳에서 그는 열두 명의 아이들이 함께 지내는 숙소를 찾았다.

그가 후원하는 아동들로 모두 고아 출신이었다.


아이들과 인사한 뒤 알렉시스는 특별 선물을 직접 베풀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의 교회로 가서 주일성수를 하였다.

다행히도 목사님께서 비명횡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분은 비록 큰 교회를 운영하는 유명한 분은 아니었지만, 진짜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맞았고 그 덕분에 황족에게 대언을 하고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평소에 다니는 교회가 건전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들과 헤어진 알렉시스는 일주일만의 여유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곤 했다.


“아들아, 근심 가운데 마음을 두는 건 진정한 안식이 아니란다.”


즉, 몸을 쉬게 한다고 해서 안식의 규율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

몸뿐만 아니라 영혼과 마음까지도 안녕 가운데 두어야 한다.

이것은 사실 알렉시스에게 있어서는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매일 치열하게 살거나 훈련하는 일에는 능숙했다.

허나 휴식 가운데 들어가기란 보통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 아니었다.


“저는 공부하거나 연구하거나 출간하거나 토론하는 것도 마음이 편합니다만.”


“그것은 네 마음의 착각이란다. 그런 것들 가운데서 참된 평안을 찾으려 하지 말려무나.”


아버지의 당부는 참 아리송했다.

그저 주일 성수만 제대로 하면 그만 아닌가?


“꼭 네 소명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지. 그 일은 일주일 중 6일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니? 하지만 한 번쯤은 잠시 멈춰서 주변을 돌아보렴.”


“가정적인 삶의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하지만 저는 부모님이나 동생들과 이미 잘 지내고 있는 걸요.”


“물론 중요한 부분이지. 하지만 네게도 너만의 가정이 필요하지 않겠니?”


이런 류의 말을 자주 듣곤 했는데 알렉시스에게는 솔직히 잔소리처럼 들렸다.


아마도 나이가 찼으니 혼기를 고려하라,

뭐 그런 부류의 말씀인 것 같은데.

그것이야말로 정말 고민이 많이 드는 ‘일’의 영역이 아닌가?


조금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나는 남자로서 결함이 있단 말이지.’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마음이 침울해졌다.



그는 산책 삼아 어느 한적한 도외 지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적당한 크기의 아름다운 가택들이 드문드문 세워진, 시골과 도심의 중간쯤 되는 모습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치르는 고된 업무와 저 스스로 품은 온갖 야심과 고민들로 인해 어지러웠던 마음이 새 소리와 나무의 냄새와 물 향기로 인해 잠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의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한 것은 우연에 의한 이끌림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정해진 행선지.

사막을 거니는 탐험가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보물을 찾아 헤매듯,

알렉시스도 이곳에 자신의 흥미를 끄는 무언가가 있음을 알았기에 혹시나 그것을 발견하게 될까 하는 기대감으로 자신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당장 발견하지지 못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기회는 몇 번이고 돌아올 테지.

그래도 이왕이면 오늘이 그날이었으면 했다.

되도록이면 우연을 가장하여 자연스럽게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어느 포도원 앞에 그의 발걸음이 멈춰 세워졌다.

귀에 익을 듯한 어떤 음색이 그의 고막을 간질였다.

아울러 직감적으로 환심을 이끄는 향기도 후각을 자극하였다.

그의 영민한 직감은 그의 발을 잠잠히 이곳에 묶어 뒀다.


포도원 안으로 들어선 그는 멍한 눈으로 농익은 녹음과 푸른 하늘을 응시했다.

한참 느릿느릿 거닐던 도중 반쯤 익은 포도송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열매를 맺는 것 이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연약한 덩굴들이 막대기 사이사이를 기어 힘겹게 자신의 존재 의의를 알리는 중이었다.

무심코 손이 뻗어나간 그는 한 알의 열매를 떼어 맛을 보았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은 모양이군.”


혼잣말로 나온 말이 귓가를 때리자 번뜩 몽롱함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내뱉은 말들이 자신의 속에 웅크린 깊은 내면의 고민을 함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에 기분이 떨떠름했다.

아울러 멋 모르고 주인이 있을지도 모르는 포도원에 멋대로 들어왔다는 불편감에 겸연쩍은 기분이 들었다.

수박서리를 하다가 도망치는 농촌 꼬마가 된 듯한 작은 수치심이 들었다.


“아직은 충분히 익지 않았으니 기다리시는 편이 좋아요.”


아니나다를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렉시스는 차분히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저도 모르게 포커페이스가 되어 굳어 버린 안면근육.

그는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온 음성에 다음 행동을 어찌해야 할 줄을 잊고 잠시 멈춰 정지된 상태로 머물렀다.


하지만 덕분에 맞게 찾아왔다는 사실은 확인하게 되었다.


“이 근방으로 이사오셨다고 들었는데, 이곳이었군요.”


“맞아요. 지난 주에 왔어요.”


햇빛으로부터 자신을 가리는 밀집 모자를 쓴 여인이 다가왔다.

농촌을 가꾸기에 적합한 편안한 복장이었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마냥 아주 자연스러웠다.


“원래 귀농하실 생각이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뭐,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보다는 이쪽이 더 편하거든요.”


알렉시스는 연갈색 머리에 청록빛 눈을 지닌 여인의 얼굴에 시선을 두었다.

몇 달 전에야 12년 만에 재회하였던 그 여인, 라하토브.

못 본 새 나무가 자라나 꽃을 피우듯 더욱 싱그럽게 무르익은 모습이었다.

얼마 전에 보았을 때는 밝고 명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어두움이 그늘진 듯한 색채도 보였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도심보다는 이곳에 있을 때 훨씬 더 자유로워 보였다.


‘사람과 함께 머무는 걸 그리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건가?’


사람 보는 눈은 제법 영민하다고 자신했었다.

알렉시스의 경험적 데이터에 따르면 저런 첫인상을 지닌 사람은 대체로 활달하고 외향적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라하토브에게는 그가 잘 모르는 다른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오빠하고 통화하시는 걸 들었어요.”


“아아.”


멍 때리고 있던 알렉시스는 라하토브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자 번뜩 깨어나 머리를 긁적였다.


“좋은 말동무입니다, 산달폰씨는.”


요새 알렉시스는 여유가 남는 휴식 시간마다 산달폰, 그 청년과 통화하곤 했다.

맨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그저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개화되는 듯한 묘한 체험을 주는 사내인지라 시간 투자할만한 유익은 충분했다.

비단 그런 이익의 목적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재미가 붙기도 했다.


“저희 오빠가 사람을 잘 홀리는 타입이랍니다.”


“홀리다니요?”


“자신도 모르게 대화에 취하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요? 말수는 적은 편인데 이상하게도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나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기묘한 방향으로 사로잡는 일이 많아요. 내면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한다고 해야 하려나요.”


“왠지 이해할 듯하군요.”


확실히 라하토브의 오라비는 설명하기 어려운 유형의 인간이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와 같이, 세이렌과 같이 상대의 혼을 자연스럽게 빼앗아 가는 수수께끼의 사나이.

자신도 그런 식으로 기묘한 체험에 휘말렸던 바이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설마 자신 말고도 그런 식으로 이용당했던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단 말인가.

궁금증이 들었다.


“듣자하니 저와 나누는 통화는 몰래 숨어서 하는 건 아닌 듯하군요.”


“네,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과의 연락은 골방에서 하던 데 유독 당신과의 대화만은 제가 같이 있는 공간에서 다 들리도록 공개 음성 상태로 열어두더라고요. 덕분에 목소리가 귀에 익었어요.”


“목소리라면.”


알렉시스는 그제야 뭔가 감이 잡혔는지 잠시 말문을 멈췄다.


“아, 맞아요, 알렉. 아, 실례가 아니라면 알렉이라고 불러도 될지.”


“편하신대로 해주세요.”


“고마워요. 저 어렴풋한 기억에 불과하지만, 저 오래 전에 당신을 만나뵌 기억이 있어요.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누가 들으면 순간 수작 부리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말.

그러나 알렉시스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흠칫 놀랐다.

몇 달 전에 보았을 때 라하토브는 자신을 초면인양 대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사실은 12년 전 자신을 잠시 만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건가?


“아주 흐릿한 기억인지라 저도 확실하지는 않아요. 다만, 당신 같은 음색이 흔하지는 않은지라, 당시로는 인상에는 꽤 남았었어요.”


“목소리로 사람을 기억하시는군요.”


보통 다른 사람들도 알렉시스를 한 번 보면 웬만해서는 잊지 않는다.

아, 물론 그가 황태자이며 유명인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황태자라는 사실을 모르더라도, 그의 얼굴과 체격은 모든 사람의 이목을 본능적으로 강력하게 이끌었다.

그에게 주어진 세계 제일의 미남이라는 호평은 과장이나 아첨이 아닌, 객관적으로 인정된 과학적 사실이었다.


그런 알렉시스를 얼굴 대신 음성으로 기억한다는 점은 주목해볼만 했다.


“네, 맞아요. 불편함을 좀 지니고 있어서요.”


알렉시스는 멈칫하자 라하토브가 웃으며 설명을 부연했다.


“시각 쪽은 큰 문제 없어요. 다만, 사람의 얼굴과 체형을 인식하는 기능에 장애가 있답니다. 전체적인 형태나 색채나 기하학적 모양은 감지할 수 있지만, 그것이 기억에 남지도, 어떤 개별 인격과 연결되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야겠죠.”


그랬었던 것이군.


알렉시스는 왜 라하토브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황태자임을 알아보지 못했는지를 이해하였다.

미디어와 뉴스에 소개된 그 사람과 자신 눈앞의 이 사람이 동일인물임을 알아보지 못했겠지.

게다가 일반적으로 뉴스를 통해서 전달되는 자신의 목소리는 약간의 음색 변조가 이뤄진다.

AI 등을 이용한 도용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그랬으니 라하토브의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인 황태자와 이 청년을 겹쳐서 이해할 단서가 없었으리라.


“아쉽네요. 그 말씀은 제 얼굴도 명확하게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인데.”


알렉시스는 장난 섞인 어조로 서운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래봬도 나, 근사하다는 이야기를 꽤 듣거든요.”


그답지 않게 그는 너스레를 떨며 자신을 피알했다.


“어머, 재밌는 분이네요.”


라하토브는 까르르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걱정은 마세요. 형태학적인 조화나 기하학의 인식 정도는 할 수 있거든요. 다른 자리에서 얼굴만 보고 알아맞힐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당신이 꽤나 근사하게 생긴 피사체라는 사실 정도는 지금도 충분히 느낄 수 있거든요.”


상대를 놀리려던 알렉시스는 되려 난처해져 쑥스러움에 잠겼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 채 말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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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2부] 27. 사랑 24.08.18 9 0 14쪽
» [2부] 26. 포도원 24.08.12 10 0 12쪽
104 [2부] 25. 키메라 살육자 24.08.09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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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2부] 22. 마스터 (3) 24.07.30 10 0 13쪽
100 [2부] 21. 마스터 (2) 24.07.27 9 0 19쪽
99 [2부] 20. 마스터 (1) 24.07.23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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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2부] 15. 생일 (3) 24.06.27 13 0 12쪽
93 [2부] 14. 생일 (2) 24.06.25 13 0 13쪽
92 [2부] 13. 생일 (1) 24.06.23 18 0 15쪽
91 [2부] 12. 새해 첫날 (2) 24.06.19 17 0 17쪽
90 [2부] 11. 새해 첫날 (1) 24.06.18 14 0 19쪽
89 [2부] 10. 아델바이스 24.06.07 17 0 18쪽
88 [2부] 9. 테서렉틴 (2) 24.06.07 14 0 14쪽
87 [2부] 8. 테서렉틴 (1) 24.06.03 13 0 14쪽
86 [2부] 7. 에쉬튼 24.06.01 1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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