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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리리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영주가 몽땅 다 막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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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리리
작품등록일 :
2024.02.2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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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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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DUMMY

#4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정적이다.


“처, 첨탑 요새를 지킨다는 말입니까?”

“애초에 우리가 받은 명령이 이곳 요새를 지키는 게 아니었나?”

“그, 그렇긴 하지만... 우리만으로는 절대로 무리입니다. 마물들의 뒤에 백장급 보스 마물인 ‘이블 우드’가 있습니다.”


기사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태만 하려는 게 아닌, 진짜 어렵다는 반응이다.


‘확실히 지금 이런 병력으로 백장급 보스 마물을 잡는 건 불가능하지. 특히 상대가 이블 우드면.’


백장급 보스 마물.

쉽게 말해 마물 100개체를 부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마물 100개체를 상대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보스의 통제를 받는 마물은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하니, 일반 마물 수백 개체를 상대하기보다 어렵습니다.”


오합지졸과 힘을 모은 군대의 차이다.

거기에 보스인 이블 우드의 힘도 문제다.

이블 우드의 마물 랭크는 Lv. 4 상급.

어지간한 익스퍼트급 기사를 훌쩍 능가하는 수준이다.

반면, 이쪽의 전력은 일반 기사급 몇 명과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마을 사람들 수십밖에 안 되는 초라한 병사들.


“확실히 쉽지는 않겠지.”

“맞습니다. 그러니...”

“하지만, 우리가 물러나면, 이곳 사람들은 누가 지키지?”


기사들은 입을 우뚝 다물었다.

병사들이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도와달라는 듯 간절한 눈빛으로.


“저들은 모두 아델란의 백성이다. 우리가 지킬 의무가 있는.”


장내가 고요해졌다.

기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병사들은 유릭의 말에 감동한 얼굴을 했다.


‘사실, 뭐, 그런 순수한 의도만 있는 건 아니지만.’


유릭이 이러는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의 목적, 가문을 되찾기 위해서는 공을 세우는 게 필요했다.


‘최대한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해. 머저리 이미지를 탈피해야 하니.’


그뿐이 아니다.


‘이곳 마을들을 지키는 건,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도 중요해.’


사실 그의 형, 악셀은 자질만 따지면, 나쁜 군주는 아니다.

괜히 ‘판모’의 주인공 중 하나가 아니니까.

단, 악셀은 모든 걸 철저히 계산적으로 판단했는데, 그래서 종종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다.

그중 하나가 이곳 마을들을 포기한 거다.

이곳 마을들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델란을 몇 배로 도약시킬 가치가 있는 곳인데. 괜히 이블 우드가 출몰한 게 아니야.’


그리고 마지막.


-너에겐 아델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


아직도 유릭의 귓가에 맴도는 아버지의 음성. 유릭은 이곳 마을들을 지킴으로 아버지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해내고 싶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어떻게든 이블 우드를 제거하면 된다.”

“하지만, 숲에 숨은 이블 우드를 제거하는 건...”

“내게 생각하는 방법이 있다.”


유릭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고, 듣던 기사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확실히 유릭의 작전대로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단, 유릭의 작전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하, 하지만 그 방법은...”

“위험하지. 나와 너희 모두.”

“!!”


‘모두’, 라고 표현했지만, 가장 위험한 건 유릭이었다.

작전에 따르면 유릭이 미끼가 되어야 하니까.


‘사실 위험하지 않을 방법이 있지만. 그건 굳이 지금 말해줄 필요 없겠지.’


유릭은 패기만 넘치는 혈기왕성한 소년이 아니었다.

고아로 시작해 성공한 CEO가 될 때까지 겪은 산전수전 덕분에 지극히 냉철하고 계산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이곳 마을을 지키는 일이 지나치게 위험하고, 불가능하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충분히 가능해.’


단, 조건이 있다.

혼자만으로는 안 되었다.


‘저 기사들을 이용해야 해.’


물론, 감정은 좋지 않았다.

케자르와 함께 그를 버리고 간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작정 다 죽이는 것도 능사는 아니었다.

이용할 건 이용해야 했다.


‘작전 중에 죽으면, 그걸로 죗값이 될 것이고, 살아남아 공을 세우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결국, 내 공이 될 테니까.’


그런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채찍질이 필요했다.


“전장에서 위험하지 않은 작전이 어디 있나?”

“!!”

“다소의 위험을 감수해서 아델란의 백성을 지킬 수 있다면 난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하는데? 너희는 어떻지? 아델란의 기사가 되었을 때 했던 맹세처럼 아델란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나?”


기사들은 입을 꽉 다물었다.

아델란의 기사들은 특별한 충성 맹세를 한다.

가문에 충성하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는.

무엇보다.

기사들은 유릭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검 하나 제대로 들기 어려울 것 같은 유약한 모습이건만, 앞장서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말하고 있다.

작전대로라면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위험할 거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 저게 진짜 유릭 공자님이라고?’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지만, 이 순간 확실해졌다.

유릭은 달라졌다.

과거의 머저리가 아니다.

그야말로 수호 가문 아델란의 핏줄다운 모습이었다.


“... 유릭 공자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 저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기사들은 유릭의 명령에 따르기로 하였다.

유릭의 모습에 홀린 듯 압도되었다고 해도 좋았다.


한편, 다른 기사들보다 더욱 경악의 시선을 보내는 기사가 있었다.

케자르에게 반목의 목소리를 내었던 라피엘이었다.


***


“이걸 요새 밖에 설치하도록. 작전에 필요한 마법 화탄(火彈)이다.”

“이런 걸 언제 준비해오신? 혹시 첨탑 요새를 지키기 위해 미리 준비해오신 겁니까?”


기사들이 다시 유릭에게 경악한 시선을 보냈다.

아무도, 심지어 새로 가주가 된 악셀 공작마저 첨탑 요새를 지키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유릭은 착실히 모든 준비를 해온 거다.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마음으로.



‘음, 그건 아닌데.’


유릭이 작전에 필요한 화탄을 딱 맞춰 꺼낼 수 있던 건 비밀이 있었다.


<디펜스 상점>

-보상으로 모은 코인을 사용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세요!


‘판모’ 게임의 상점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디펜스 상점은 그야말로 못 사는 게 없었으니까.

오죽하면, ‘요새’나 ‘성채’ 같은 것도 구매할 수 있었다.


‘게임에서는 요새 같은 걸 구입하면 땅의 정령들이 소환되어 뚝딱 며칠 만에 요새를 지어줬는데, 이곳에서도 같은 식이려나?’


단, 제약이 있었다.

오로지 코인으로만 구입이 가능했다.

코인은 업적을 달성해야만 얻을 수 있는 한정된 재화라 신중하게 사용해야 했다.

필요한 화탄을 구매했더니, 지금껏 모은 코인이 거의 남지 않고 바닥났다.

이제 작전을 성공하는 건, 모두 유릭의 몫이다.


‘이블 우드 근처로 접근할 수만 있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 문제는 작전을 도울 기사들의 실력인데.’


불행히도 지금 요새에 남아 있는 기사들의 실력은 빈말로도 괜찮다고 할 수 없었다.

케자르가 그나마 Lv. 4 익스퍼트 급이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Lv. 3 일반 기사급이었다.


‘Lv. 4 익스퍼트급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 확률을 훨씬 높일 수 있을 텐데.’


갑자기 어디서 익스퍼트급 기사를 소환할 수도 없으니, 이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릭 공자님을 뵙습니다.”


유릭은 고개를 갸웃했다.

단정한 외모의 여기사였다.

이곳 세계에서는 여성 기사가 드문 것도 아니니, 성별 때문에 의아해하는 건 아니었고, 무언가 기사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무슨 일이지?”


기사, 라피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유릭이 깜짝 놀랄 행동을 하였다.

돌연 유릭 앞에 무릎을 꿇은 거다.


“이 라피엘. 아델란의 기사로서 공자님께 사죄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케자르 경의 지시가 옳지 못하다고 알고 있음에도 바로 잡지 못했습니다. 이는 죽음으로 씻어야 할 중죄. 저를 벌해주십시오!”


유릭은 놀란 얼굴을 했다.

난데없는 사죄 때문이 아니라, 라피엘이란 이름 때문이었다.

왜 얼굴이 낯이 익었는지 깨달았다.


“라피엘? 라피르 경과는 무슨 관계이지?”


순간, 라피엘이 흠칫하더니 답하였다.


“... 라피르 경은 제 친언니입니다.”


라피르.

유명한 인물이다.

고작 이십 대의 몸으로 아델란의 최연소 수호 기사가 된 인물.

젊은 기사들이 가장 선망하는 존재였다.

‘판모’ 게임 악셀 루트에서 가장 중요한 히어로이기도 했다.


‘동생이 있는데, 사망했다고 했지. 이름이 라피엘이었다고. 그러고 보니 라피르의 동생인 라피엘이 사망했다는 시기가 딱 내가 사망했던 시기와 겹쳐.’


유릭은 전말을 눈치챘다.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고, 눈앞의 라피엘도 언니 라피르처럼 고지식한 성격 같았다.

이번 작전에서 결국 케자르의 지시를 어기고 혼자 무리하다가 사망했던 게 분명하다.


‘지금 사과하는 것 보니,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날 구하려고 검은 숲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고, 첨탑 요새를 지키려고 싸우다가 전사했을 수도 있어.’


유릭은 라피엘이 어떤 자질을 가졌는지 궁금해졌다.

무려 아델란 가 최강의 기사로 성장하는 라피르의 동생이니까.


‘히어로 육성 시스템 열람. 상태 확인.’


게임에서 보던 것처럼 메시지가 떠올랐다.


<라피엘>

종족 : 인간

클래스 : 소드 나이츠

등급 : Lv 3.

자질 : C (상태 악화로 자질 저하)

잠재력 : A+

상태 : 자기 비하, 열등감.

당신에 대한 호감도 : 죄책감과 약간의 감탄.


유릭은 눈을 의심했다.


‘잠재력이 A+?’


자질 자체는 평범했다.

평균적인 사람들의 자질을 D로 표현하니 C면 약간 뛰어난 수준?

그런데, 숨은 잠재력이 어마어마했다.

A+면 <판모>의 주력 영웅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상태 악화로 인한 자질 저하’라는 문구다.


‘자기 비하와 열등감 때문에 자질이 저하된 건가?’


유릭은 흠, 했다.

비록 지금 C의 자질이라도 숨은 잠재력이 A+이면 유용한 패가 될 것 같았다. 그것도 사용하기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제대로 된 구실 하게 해야겠군.’


유릭은 자기 비하와 열등감이란 단언에 주목했다.

속으로 무슨 사정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눈앞의 기사에게 필요한 건, 상처 회복이 아니라, 자극이니까. 한계 이상의 힘을 내게 할.

간단했다.


“사죄하고 싶다고? 우습군. 인제 와서 마음이라도 편해지고 싶은 건가? 만약, 내가 죽었으면, 애도하며 마음의 짐을 털었겠군. 참으로 편리한 기사도야.”

“!!”


유릭의 신랄한 말에 기사, 라피엘이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뭐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인제 와서 사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애초에 그때 케자르를 막아야 했다.

고개를 떨구는데, 유릭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나도 할 말은 없겠지. 애초에 너희가 날 버렸던 것도 내가 아델란의 핏줄로서 자격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니까.”

“그, 그건...”

“괜찮다. 빈말할 필요 없다. 내가 머저리 같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유릭이 똑바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하게 빛나는 안광으로.


“앞으로는 다를 거다.”

“!!”

“너는 어떻지? 이전처럼 계속 비겁한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아델란의 기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것이냐?”

“저는...”


라피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연히 답은 변하겠다, 였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때.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걱정할 필요 없다. 만약, 네가 각오만 한다면, 내가 널 이끌 테니.”

“공자님께서... 말입니까?”

“그래, 넌 아델란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 그런 널 이끄는 건, 아델란의 핏줄을 이은 내 책무이기도 하니까.”


이전에 들었다면 웃음을 터트렸을 터무니없는 이야기.

하지만, 왜일까?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저 음성이. 고작 작은 소년의 눈빛이. 오랫동안 열등감에 좀 먹혔던 라피엘의 가슴을 흔들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황당하게도 밑도 끝도 없이 저 소년을 믿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해보겠습니다.”

“좋다. 그 각오, 이번 전투 때 백성들을 지키며 증명해 보이도록. 내가 함께할 테니.”


유릭은 시선을 돌렸다.

저 안쪽 숲.

이번 공략의 목표, 이블 우드가 있는 곳을 향해.


“나 또한 너희에게 증명해 보이겠다. 내가 아델란임을.”


그렇게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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