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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공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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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작품등록일 :
2018.04.10 12:45
최근연재일 :
2018.05.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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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36

작성
18.04.1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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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각성(4)

DUMMY

“뿌-하!”

깊게 심호흡하며 심기일전이라는 사자성어를 되새겼다.

“그래, 해보자. 해보는 거야.”

누군가와 대화하듯, 스스로를 타이르며, 나는 가지고 온 짐을 풀었다.

3L짜리 기름통과 횃대, 천조각 등이었다.

이것들을 가지고 와서 어디에 써야 할까. 지금부터 잘 봐두라고. 내가 이 슬라임 던전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슬라임.

이 몬스터는 물컹물컹한 젤리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괴물인데 종류가 다양한 만큼 난이도 역시 던전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물론 내가 고른 던전의 슬라임들은 상당히 수준이 낮아서 D급 헌터라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효과가 강력한 공격능력이 아닌 나처럼 직접 간섭이 불가능한 능력을 가진 헌터는 이 물컹물컹, 물렁물렁 요리조리 미끄덩거리는 슬라임을 잡기 위해 상당한 고생을 해야 했다.

슬라임을 처치하려면 몸 내부에 위치한 핵을 파괴해야 하는데 그게 질긴 젤리에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칼로 생각 없이 찔렀다간 바로 튕겨 나올 정도의 탄력을 가진, 가공할 위력의 젤리는 과연 슬라임이라는 몬스터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보통 D급 헌터들이 슬라임을 잡을 때는 불을 썼다.

다만 이 불도 완전하지는 않아서 평범한 불로 지지려면 시간이 제법 걸렸으므로 한 술 더 떠서 던전 내부를 불바다로 만들어서 통째로 구워버리는 전술을 사용하였다.

슬라임 던전은 녹음이 우거진 숲이라 불을 지르면 또 아주 잘 탔다.

뭐, 나는 그런 무식한 방법은 안 쓸 거다.

신의 공략집 덕분에 아주 손쉽게 슬라임을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이곳 슬라임 던전은 D급 헌터의 통과의례 같은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할 곳이었고 수많은 사례들이 남겨졌다.

산불로 통째로 구운다는 방법도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 중에서 나온 경험담 중 하나에 따르면 던전 내부에 있는 슬라임 숫자는 얼마 안 되며 산불로 헤집어놓을 경우 보상수준이 내려간다는 신박한 정보가 있었다.

꽤나 오래 전 대한민국 S급 헌터 신해준이 자신의 고유능력 ‘지옥불’로 슬라임들만 깔끔하게 태워갔을 때 받은 보상으로 인해 드러난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제대로 슬라임만 골라 처치해야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다는 소리였다.

“횃불을 만들고.”

기름을 적신 천을 횃대에 둘러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일단은 평범한 횃불이 만들어졌다.

“시작해볼까.”

나는 공략집에서 제공한 지도 덕분에 슬라임의 위치를 전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던 슬라임에게 찾아가 횃불을 들이밀었다.

불에 약한 슬라임은 도망치려 했지만 느릿한 움직임 때문에 나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 뒤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횃불로 뜨거운 열기를 지속적으로 가하자 조금씩 그 질긴 젤리가 녹아내렸다.

거의 1시간을 그러고 있었다.

“후우, 지치긴 하네.”

1시간이 좀 넘도록 개고생한 끝에 겨우 슬라임 하나를 녹여서 핵을 취했다.

“이제 이 핵을 으깬다.”

작은 그릇에 핵을 담아 막대로 콱콱 부숴서 가루로 만들었다. 질긴 피부와는 달리 핵은 유리로 만들어진 탁구공 같은 느낌이었다.

“이것을 기름통에 넣는다.

이제 내가 가지고 온 휘발유는 슬라임의 핵이 녹아있는 독특한 물질이 되었다.

“이 기름으로 횃불을 다시 만든다.”

기존의 것을 끈 뒤 새로 탄생한 기름을 적신 천을 둘러 횃불을 만들었다.

“하하하, 이름하여 슬라임 전용 횃불!”

공략집에서 이르길, 이렇게 만든 횃불은 빠르게 슬라임의 피부를 녹여 5분이면 핵을 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그 말대로 됐다.

“끝났다.”

다른 D급 헌터의 클리어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하루는 걸렸다. 숲을 모조리 태워먹은 산불이 꺼지길 기다리다보면 이틀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반나절도 안 걸렸다.

슬라임 전용 횃불과 슬라임의 위치를 알려주는 맵 기능 덕분이었다.

-띠링!

때마침 듣기 좋은 종소리가 울렸다. 던전을 클리어했을 때 나는 알림이었다.


[축하합니다! 그 누구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슬라임 던전을 클리어 했습니다! 100% 클리어보상 기준이 적용됩니다. 보상은 인벤토리로 지급됩니다.]

[귀환석 10개, D급 생명석 100개, 슬라임의 점액질 포션 100개를 획득합니다.]

[특별 클리어 보상은 1회 한정으로 획득하실 수 없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음성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나는 낯선 단어의 등장에 갸웃했다.

특별 클리어 보상?

100% 클리어는 신해준처럼 완벽하게 던전을 공략했을 때 받는 보상이고 헌터들에게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100%를 달성하기가 어려워서 개나 소나 해내지 못할 뿐이지.

하지만 특별 클리어 보상이라니. 금시초문이었다.

뭐지?

생각을 계속하려 했으나 던전 클리어에 따라 지구로 전송이 되었다.

“어서 오세요. 여, 어?”

던전에서 나와 안내 프론트로 이동한 나를 본 안내원이 인사를 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길래 얼떨결에 인사를 했는데 자세히 보니 반나절 전에 안내한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라도 저 상황이면 놀랐을 것이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들었다.

“끝났습니다.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아, 네에.”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할 게 많아졌다.

100% 달성은 공략법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내게 아주 유리한 조건이었다. 슬라임 던전도 깔끔하게 100% 클리어를 이루어냈으니까.

여기에 특별 클리어라.

잠시 생각하던 나는 알고 있던 것 중에서 그럴듯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예전 신해준이 내가 들른 슬라임 던전을 100% 클리어를 하고 갔었다. 그리고 그게 그 던전에서의 최초였다. 그때 뭔가 더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아무도 클리어하지 않은 던전이나, 100% 클리어가 된 적이 없는 던전이라면 그 특별 클리어란 게 뭔지 알 수 있으렷다.”

뭐, 아무도 클리어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니 내가 건드릴 영역이 아니므로 자연스레 아직 개척이 덜 된 던전으로 관심이 갔다.

“헤헤, 이번엔 소득이 제법 쏠쏠하네.”

귀환석과 생명석은 논외로 치고 추가로 얻은 슬라임 점액질 포션이 무려 100개다.

이 슬라임 점액질은 피부미용에 좋다고 증명이 되어서 화장품에 쓰였다.

개당 가격은 10만. 100개를 다 팔면 자그마치 1천만 원이 손에 떨어지게 된다.

사실상 헌터의 주수입원은 이런 루트다.

던전에서 얻어낸 부산물을 업자들에게 팔아서 이득을 챙기는 것.

슬라임 점액질 포션은 좀처럼 안 나오는 아이템이라 많이 얻으려면 레벨이 높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슬라임을 사냥해야 한다.

나로 말하자면 100% 클리어로 한 몫 거하게 챙긴 셈이 됐지만 말이다.

평범하게 클리어 했다면 10개에서 30개로 끝났겠지.

이제 팔자 폈다!

이번 결과는 모두 ‘신의 공략집’이라는 능력 덕분이다. 정말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내 앞에는 휘황찬란한 꽃길만 펼쳐진 셈이야!

-띠리리.

“응?”

한창 행복감에 휩싸여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이재호 씨 맞으십니까?]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 터프함이 전화기 너머로도 잔뜩 묻어나왔다.

“아, 네.”

나도 모르게 쫄아서 찔끔 대답했다.

[오늘 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중요한 약속이 없으시다면 집에서 기다려주십시오.]

“네? 으꺽.”

나는 딸꾹질을 해버렸다.

상황이 너무나 기묘하지 않는가. 다 죽어가던 참에 각성을 해서 살아난 이 시점에서 갑자기 이런 전화가 걸려오면 먹던 밥도 체할 수준이다.

[그럼 있다가 뵙지요.]

용건만 전하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전화에 혈관이 수축하는 느낌이 온몸에서 발생했다.

“나 뭘 잘못한 거지?”

짐작 가는 것은 카르사스의 미궁에서의 일이다.

미궁이 클리어 되고 다들 영문도 모른 채 강제송환 되었을 그때 C급 헌터들은 나를 굉장히 죽일 듯이 노려보았었다.

죽었을 줄 알았던 얼간이가 살아있었으니 여러모로 거슬렸겠지. 혹여나 자신들이 한 짓을 내가 폭로하진 않을지 전전긍긍 했을 터.

하지만 그들은 내가 각성한 사실을 몰랐고 찌끄레기 E급 헌터가 뭘 어쩌겠냐는 식으로 넘어갔다.

나도 C급 헌터들이 견제를 하면 잘 해쳐나갈 자신이 없었으므로 이렇게 넘어간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봤자 나 혼자만의 망상이었고 결국 이런 식으로 통수를 치는 건가?

“가만있어 봐. 후환이 두려워 날 조질 생각이었으면 굳이 이런 은근히 격식을 차린 전화를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날 협박할 생각이었다면 성공이었고 취향이 참 독특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도망칠까?”

아니, 그래봤자 금방 붙잡히겠지. 상대는 무려 C급 헌터다. 돈 좀 풀어 암살자를 고용해도 되고 뭐하면 자신들이 직접 와서 목을 따버려도 된다.

헌터의 세계는 냉혹한 법.

잘 나가다가도 한순간에 차갑게 식은 시체가 될 수 있다. 최소한 자신의 몸 하나 지킬 힘은 길러야 하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사이 시간이 흘렀다.

-똑, 똑.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헬쓱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올 게 온 건가.

나를 잡으러 온 녀석들이면 바닥에 엎드려 빌 생각이었다.

굴욕적이지만 어쩌겠는가. 아직 힘이 없는데. 납작 엎드려서 태풍을 피하고 와신상담 하여 훗날을 도모하는 게 진정한 승리이다.

그래도 죽이려 든다면··· 이판사판이다.

이불 속에 감춰둔 식칼을 꼭 쥐었다.

아무리 헌터라도 방심한 틈을 노려 목덜미에 이걸 꽂아넣으면 그대로 절명한다.

살인··· 그런 것에 대한 저항감은 이미 예전에 없어졌다. 처음 짐꾼으로 나갔을 땐 몬스터의 살점과 핏물에 토악질을 여러 번 했었지만 말이지.

“네. 열려 있어요.”

음침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

“잘못했어요!”

열린 문으로 들어선 검은 양복에 새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한 덩치 큰 사내의 등장에 나는 일단 고개부터 바닥에 쳐박았다.

“잘못했어요! 저, 아무 말도 안 할 게요! 그냥 조용히 닥치고 살게요!”

“······.”

상대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흐익!”

정말 찐따 같은 소릴 내고 말았다. 부끄럽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사내의 포스가 상당했던 것이다.

기선제압.

말 그대로의 상황을 체험해버렸다.

“죄송합니다. 부탁드릴게요. 저는···”

“이재호 씨. 누군가랑 착각한 것 같은데 저는 다른 사람입니다.”

“엥?”

내 광대짓(?)에도 사내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즈니스 목적으로 당신에게 제안할 게 있어서 찾아온 겁니다.”

“네?”

창가에서 넘어온 햇빛을 선글라스로 묵직하게 받아내는 사내의 얼굴을 그제야 제대로 올려다보게 되었다.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시죠.”

그러면서 씨익 미소를 짓는데 정말 영화 속 악당이 스크린을 뚫고 뛰쳐나온 것 같았다.


작가의말

고구마 뒤엔 언제나 사이다를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85 난말이지
    작성일
    18.05.05 13:12
    No. 1

    전화 받으며 상대방의 신원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일방적인 지시를 따르다니...
    전형적인 얼간이호구 캐릭터군요.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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