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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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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6.01.21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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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
추천
29
글자
10쪽

맹수 퇴치

DUMMY

“나오지 마십시오, 여왕님. 위험합니다!”

옐러의 날카로운 외침에 나는 마차의 손잡이를 돌리다 말고 그대로 멈췄다. 그리폰이 습격한 곳은 내가 탄 마차로부터 수 십 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날 수 있는 놈이다 보니 그의 염려대로 내 쪽으로 날아올지 모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번인 수호 기사들마저 전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창문으로나마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았다. 벌써 희생자가 나왔다. 그리폰의 거대한 발톱에 베인 병사 둘이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흉포한 맹수가 거대한 부리로 한 사람의 허리를 물어 낚아채는 순간, 나는 그 끔찍한 광경을 더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리폰보다 더 무서운 건 놈이 불러온 공포였다. 그리폰은 덩치에 맞지 않게 민첩하게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그 때마다 그 주변은 우왕좌왕 거리며 도망치다가 서로 밟고 밟혔다. 누군가 병사들의 혼란을 수습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마차 안에 있었고, 베테랑인 옐러는 때마침 옆에 있었던 김에 나를 경호하기로 한 것 같았다.

“퇴각하는 자들은 당황하지 말고 전열을 유지하라! 나머지는 던질 만한 것을 찾아라! 돌멩이나 나뭇가지 같은 걸 주워도 좋다! 놈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즉시 투척하라!”

이 때 메담의 침착한 음성이 들려왔다. 꿈 안개의 마법 덕분에 그의 지시는 즉시 바르테인군 전체에 전달되었다. 그가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안도감을 느낀 걸까? 병사들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일사분란 해진다.

수많은 병사들이 돌팔매질을 해대며 견제하자 그리폰은 더 이상 종횡무진 대열을 헤집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병사들이 놈의 공격에서 물러나는 것도 한결 침착해졌고 더 이상 부상자도 생기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말 많은 자들이 이 광경을 직접 봤다면 여자가 왕이어서 어떻다는 헛소리는 할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사태가 진정되는 양상을 띠자 옐러가 긴장이 풀린 듯 말을 걸어왔다.

“내전 당시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경험하시지 않았습니까? 보통 여자들은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시계 종이 울리는 소리만 들어도 기겁할 겁니다. 그런데 여왕님은 소란이 시작되자마자 마차를 박차고 나오시려 하시니....”

“내 병사들이 위험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옐러에게 대답하는 내목소리가 곱지 않은 건, 나를 마차 안에 틀어박히게 한 원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또한 이를 눈치 챘다.

“지금 여왕님께서는 강철거인의 정원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보통 일정 규모 이상의 군대가 이동하면 오크나 고블린 같이 지성이 있는 놈들은 물론,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맹수들도 몸을 사리기 마련입니다. 저 그리폰이 멍청한 거죠. 배가 고파 판단력이 흐려진 모양입니다.”

옐러의 말이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고 보니 그리폰도 새대가리구나. 수만 명이나 되는 군대에게 싸움을 건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무모한 일이었다.

“너무 놀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야생의 그리폰이 행군 중인 부대를 공격하는 일은 왕왕 있어온 일이니까요. 이는 말고기라면 환장을 하는 놈들의 습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의 말처럼 쉬운 상대만은 아닌 것 같네요.”

옐러는 이 사태를 별 거 아닌 것처럼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아직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리폰이 아직도 바르테인 군의 머리 위를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날아드는 돌멩이 때문에 가까이 오지는 못하지만, 놈은 포기하지 않고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창과 칼이 닿지 않는 하늘높이 날아오르자 수만의 병사들도 별 의미가 없었다.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어도 대치 상황은 계속 되고 있다.

“걱정 마십시오. 사냥꾼들이 오고 있습니다.”

메담의 명령대로 돌을 들고 그리폰을 견제하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활과 투창으로 무장한 것을 보니 옐러가 말한 사냥꾼인가 보다. 그들 중 태반은 옆에 사냥개까지 대동하고 있었다. 옐러는 그 중 한 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자가 우두머리인 마브입니다. 바르테인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들을 이번 원정에 대동한 것은 바로 이럴 때를 위해서였습니다.”

옐러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했는지 칸딘이 그 남자에게 주목한다. 덕분에 나 또한 그 마브라는 사내를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나이는 대략 40세 전후 정도 되었을까. 그의 얼굴보다 더 먼저 내 눈에 띈 건 그의 은빛 활이었다. 혹시 저건 위대한 사냥꾼 제임스 코벳의 후계자에게만 전해진다는 활 아닌가? 칸딘의 시선이 백금 빛의 활줄에서 잠깐 멈추었다. 엘프의 머리카락이라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은은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다.

“야생의 맹수 앞에서는 기사도 일반 병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빠르고 얼마나 힘이 센지 겪어보지 않은 건 매한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위로 어떻게 공격해올지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냥꾼들은 맹수들의 특성을 배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제압하는 기술까지 익히고 있죠.”

기사들이 일반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능력을 발휘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도 사람을 상대할 때에 해당되는 얘기였구나. 기사들을 ‘인간 사냥꾼’이라 불렀던 솔피리스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과연 마브와 사냥꾼들은 그리폰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흩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포위망을 형성해 가는 모습은 무척 노련해 보인다. 저 하늘의 폭군도 그들에게는 단지 사냥감에 지나지 않나보다.

그러나 그리폰은 사냥꾼들이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더니 이윽고 날개를 펼치고 활강을 시작한 것이다. 노리고 있는 목표는 분명했다. 녀석의 깃털만큼이나 하얀, 어떤 기병이 타고 있는 토실토실하고 어린 암말이었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지 병사들이 던져대는 돌에 맞으면서도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오자 그리폰은 발톱을 날카롭게 곧추세웠다. 사냥을 방해하는 인간들을 없애버리겠다는 녀석의 의지가 보인다. 한시름 마음을 놓았던 나는 다시금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대로 가다간 또 다시 희생자가 생기고 말 것이다.

바로 이때 갑자기 무언가 그리폰의 앞에 나타났다. 십여 미터 높이의 상공에서 태양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분홍빛의 물체. 나는 이내 그것이 내가 직접 메담에게 하사한 갑옷임을 알아보았다. 그도 나처럼 더 이상 병사들이 다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허공에 갑자기 사람의 형체가 나타난 것에 어리둥절해하던 병사들은 그것이 정령검의 공간도약 마법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사단장님이다!”

병사들이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외칠 때 이미 메담은 그리폰의 가슴팍에 푸른빛을 발하는 정령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끼에엑!”

그리폰이 요란스럽게 비명을 지른다. 두터운 깃털 덕에 돌에 얻어맞을 때는 별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타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깃털 때문에 그리폰의 몸은 실제보다 더 부풀려져 보였고 그래서 찌르기가 충분히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아무래도 메담은 심장을 찔러 단숨에 처치하려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날개를 움직이고 있는 그리폰을 보는 표정이 밝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기습에 화가 난 그리폰은 이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상대를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땅에 착지하고 있는 메담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이제 막 땅에 착지한 메담은 공간도약을 다시 시도할 여유가 없었다. 겨우 몸의 균형만 잡은 뒤 검을 들어 방어할 준비를 했다. 메담이 반사적으로 취하고 있는 저 기사들의 기본 방어자세는 적의 무기를 막아 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사람의 완력을 한참 초월한 그리폰이었다. 곧 그 발톱에 메담이 갈가리 찢길 것을 상상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리폰의 비절(안으로 휘어진 짐승의 뒷다리 모양)을 응시하던 메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그는 순간적으로 맹수의 공격을 막고 버틸 생각을 포기하고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들어 올리고 있던 검을 양손으로 잡고 원심력을 이용해 크게 돌렸다. 도저히 검술이라 부를 수 없는 막무가내식 휘두르기였지만 저 거대한 그리폰에게는 그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그 두꺼운 오른쪽 뒷다리가 호쾌하게 잘려나간 것이다.

“끼에에에엑!!”

그리폰의 비명이 전과 같지 않다. 이번에는 공포에 젖어 있었다. 하늘의 폭군은 한쪽 다리를 잃어 휘청거리면서도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 비행을 계속하려 했다. 그러나 그 사이 여유가 생긴 메담이 그리폰의 머리 위로 공간 도약을 해버렸다.

짧은 경험을 통해 메담은 그리폰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았다. 몸 전체를 한 바퀴 회전시키며 호쾌하게 정령검을 휘두르자 그리폰의 머리가 잘려 나간다.

“....모든 기사가 맹수를 상대로 무력한 것만은 아닙니다. 가끔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도 있는 법이죠.”

이를 지켜보던 옐러가 겸허하게 자신의 발언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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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혹시 워크래프트 2 해보신 분 계신가요?

그 게임에서 용이 최상위 유닛으로 나오고,

이에 대한 대항 유닛이 그리폰이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각각 하나씩 맡아 해치우게 되었네요. ^^;


솔피리스 : 그렇다고 해서 나와 동급으로 여기면 곤란해. 나는 한 방에 해치웠는걸.

메담 : 그야 경험이 있었으니 그렇지. 나는 이번이 처음이었잖아! 그리고 나는.... 그리폰에게서 꽁지 빠지게 도망친 적은 없다구!

솔피리스 : 으윽! 흑역사를 건드리다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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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함정 +12 16.03.10 1,367 21 9쪽
198 예측 +14 16.03.06 1,393 27 7쪽
197 원초적 강함 +14 16.03.04 1,218 27 8쪽
196 악마 +16 16.03.03 1,329 24 10쪽
195 내려 놓다. +14 16.02.29 1,538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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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일희일비 +10 16.02.19 1,554 29 6쪽
190 니가 해라, 왕 +12 16.02.16 1,629 26 6쪽
189 장래의 적 +10 16.02.12 1,481 27 8쪽
188 정령왕 +12 16.02.05 1,417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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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대신 기억해줄 존재 +10 16.01.30 1,239 25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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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대표자 +12 16.01.25 1,387 27 7쪽
181 예외 +16 16.01.23 1,271 2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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