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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잉글랜드 내전. 현대 영국 기틀의 완성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3.05 16:34
최근연재일 :
2021.03.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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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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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내전(+잉글랜드 내전) 종결

DUMMY



1. 독재의 끝. 명예 혁명







1.jpg

[ 좌 : 영국 - 네덜란드 전쟁 / 우 : 런던 대화재 ]






찰스 2세의 통치 기간, 30년 전쟁에 독립하고 신흥 무역 강국으로 떠오른 네덜란드 전쟁(1차, 2차)을 치뤄야 했으며,




긴 내전으로 인해 전염병이 크게 돌았고, 런던에서는 큰 화재(런던 대화재)가 일어나는등 여전히 혼란이 극심합니다.




그러자 내부에서 왕에 대한 반발이 극심해졌고, 찰스 2세가 55세로 사망하고,







2.jpg

동생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 명예 혁명 』 이 일어납니다.




* 명예 혁명


- 제임스 2세가 왕위 오른 후,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가톨릭 강요 정책을 펼침.

- 그러자 의회는 제임스 2세를 폐위, 명예 혁명을 일으킴




그래서 영국은 의회와 왕정이 공존하는 체제를 확립하지만, 실제는 의회가 지지해야 왕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제가 배웠던 교과서에서 명예 혁명은 왕이 본인의 권력을 놓고 평화롭게 끝냈다 정도로 배웠지만,




실상은....




영국 내전(+잉글랜드 내전) → 올리버 크롬웰의 독재 → 찰스 2세의 왕정 복고 및 독재 → 명예 혁명




전체적 배경은 이렇게 된 것. 그리고 이것이 현대 영국의 기틀이 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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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혁명 이후의 하노버 왕가의 영국 왕실이 자리잡게 됩니다.








2. 영국 내전의 정의





그리고 명예 혁명까지 많은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다보니, 프랑스부터 시작된 혁명의 바람이, 영국에선 혁명 민중 봉기가 안 일어난 이유가 바로 이 일들을 겪어서 그렇다고 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 사람들이 영국 내전으로 인해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의회와 왕정으로 나뉘어 내전이 일어나면 서로가 절대 악으로 서로 공존 할 수 없는 존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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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비슷한 모습으로 베네수엘라가 마두로 대통령과 과이로 국회 의장으로 분열을 꼽을 수 있는데, 아무튼 양쪽이 죽든지, 완전히 굴복해서 사라져야 하는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영국은 아주 특이하게도 의회와 왕정이 서로 타협하며 공존했다는 점으로 단순 영국 사람들이 국뽕으로 좋아하는게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가능으로 실현시켰다는 점입니다.










3. 영국의 흥미로운 사고 방식





또한 영국 내전을 보면서 재미있던 것이 있는데, 올리버 크롬웰이 독재해서 신망을 잃고, 나중에 부관참시 당해 유해가 방치되는등 얘기 했죠.






5.jpg

[ 영국의 빅 벤. ]






지금 영국 런던의 빅 벤(Big Ben) 주변에 동상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동상마다 그 시대의 복장등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좀 멀리서 보면 알 수 있는데,




17세기 복장으로 의회 입구에 세워진 동상이 있는데,




17세기라는 시대 + 의회 앞에 세워졌다는 것은 의회 세력 + 설치된 위치가 바로 앞이니 어중이 떠중이 수준은 아닐 인물.




모든 요소를 합집합으로 생각해보면 누굴 세울 만한 인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동상의 주인공은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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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올리버 크롬웰 동상입니다.




올리버 크롬웰이 의회를 뒤집어 엎어서 독재를 했고, 왕정 복고가 된 후에는 부관참시와 그의 가문이 완전히 몰락해서 해외로 망명하는등 수난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지금도 영국은 왕정으로, 왕의 목을 쳤던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런던 빅덴의 의회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국회 앞마당에 왕의 목을 친 크롬웰을 갇다 뒀는데, 왕실 사람들이 매번 의회에 갈 때마다, 그의 동상을 볼텐데, 이러면 왕실과 한판 붙자는 소리죠.




지금 한국 근대사..... 아직도 한국 근대사가 많이 민감한지라 특정 누구를 지목하진 않고 그냥 두리뭉실하게 말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한 독재자가 어떤 도시에 정권 반대 시위를 해서 유혈 진압시켰다고 훗날 정권이 몰락 후,




유혈 진압된 도시 의회 입구에 그 독재자 동상을 세운 것고 같은 의미거든요.




이렇게 한국 근대사쪽으로 비유해서 생각해보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짓인데 영국은 이걸 한다는 소리라서 정말 깜짝 깜짝 놀랍니다.




근데 어찌보면 이게 영국의 무서운 점일 수도 있습니다.







7.jpg

올리버 크롬웰이 왕을 죽이고 독재를 한 것이 잘해서 동상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가 모든 것을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어째든 독재를 했지만 왕정을 무너트리는데, 의회가 전국을 통치할 수 있게 관념을 만들고 공헌을 했다는 점.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만 그를 본 것이죠.




동상을 세운다는 것이 그를 신봉하고 위대해서 배우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 역사에 남긴 것들 보고 판단하자 " 라는 것입니다.




어째든 공은 공, 과는 과. " 공을 배우자 " 라는 마인드라는 것이죠.




이런 생각으로 빅덴 광장에는 수 많은 인물 동상들이 있습니다.




왕 외에도 정말 다양한 인물 동상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 동상들을 봤다면, " 영국에 위인들이 이렇게나 많아?? " 라고 할 정도입니다.






8.jpg



웃긴건 미국 초대 대통령 링컨도 있다는 것입니다.(+ 간디 동상도...;;;)




왜냐하면 한때 영연방 공화국 시절 사람이라서 그렇죠 ㅎㅎ;;




어떻게 보면 " 한 땐 그래도 우리꺼~ " 라는 마인드가 쬐끔(?)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만약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동상을 본다면




" 쟤는 **** 했는데 왜 있어?! "



" 쟤도 왜 있어?! "




서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근데 영국은 그들을 왜 세웠는가? → 그들이 남긴 특정 업적만 보고 배우기 위해서 세운 것이죠.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 영국이 옳다, 잘한다 " 라고 감히 논하기에는....




저는 보잘 것 없는 일반인 나부랭탱이라서 단언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9.jpg



하지만 그들의 사상에서 " 우리와는 다르다 " , " 우리도 이해하고, 알아두고, 배워두면 좋겠다. " 로 생각합니다.




우린 공과 과를 두고 어떤게 더 큰 것인지, 경중을 따지며 왈가왈부하니까요.




하지만 영국은 공은 공. 과는 과로 구분해서 바라본 점. 잘한 것 중에 배워야 할 것은 배운다는 점.




아마 제 생각엔 20세기까지 영국이 최강국 지위를 얻은 배경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제 스스로 생각해봅니다.







10.jpg



위에 링컨 동상 얘기해서 하나 더 덧붙치자면, 카이사르 동상도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서양 문명의 절대적 존재이지만, 영국 입장에선 침략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브리튼 섬을 침공해서 로마 식민지로 삼았던 사람의 동상을 버젓이 세운 것.




이 이유도 결국 배운다는 점에서 괘를 같이 합니다.




『 로마 문명이 들어오기 전에는 야만적이었다. 』



『 그들이 들어오자, 우리는 유럽 역사의 문명권으로 들어왔다, 』




라고 하는데, 이 말을 바꾸면 진짜 큰일나는 위험한 발언입니다.




이걸 일제강점기 시절로 따져서 얘기하면 진짜 민감하기 그지 없죠.




그런데도 영국은 세웠다는 겁니다.




제가 세운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본인들이 정의했죠.




이런 것을 보면서, 이런 판단과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라고 정말 많이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어째든 빅덴의 동상의 결론은 "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구나... " 정도로 끝내겠습니다.




제가 빅덴 동상 얘기하면서, 잉글랜드 내전이 다소 멀어져서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제가 잠깐 명예 혁명을 훑어 지나갔는데, 이것도 정말 중요한 사건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걸 그냥 지나쳐? 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




이걸 얘기하면 진도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제 스스로도 감당이 안되서, 이 부분도 과감히 생략하겠습니다.








4. 내전으로 피폐해진

위에 링컨 동상 얘기해서 하나 더 덧붙치자면, 카이사르 동상도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서양 문명의 절대적 존재이지만, 영국 입장에선 침략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브리튼 섬을 침공해서 로마 식민지로 삼았던 사람의 동상을 버젓이 세운 것.




이 이유도 결국 배운다는 점에서 괘를 같이 합니다.




『 로마 문명이 들어오기 전에는 야만적이었다. 』



『 그들이 들어오자, 우리는 유럽 역사의 문명권으로 들어왔다, 』




라고 하는데, 이 말을 바꾸면 진짜 큰일나는 위험한 발언입니다.




이걸 일제강점기 시절로 따져서 얘기하면 진짜 민감하기 그지 없죠.




그런데도 영국은 세웠다는 겁니다.




제가 세운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본인들이 정의했죠.




이런 것을 보면서, 이런 판단과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라고 정말 많이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어째든 빅덴의 동상의 결론은 "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구나... " 정도로 끝내겠습니다.




제가 빅덴 동상 얘기하면서, 잉글랜드 내전이 다소 멀어져서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제가 잠깐 명예 혁명을 훑어 지나갔는데, 이것도 정말 중요한 사건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걸 그냥 지나쳐? 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




이걸 얘기하면 진도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제 스스로도 감당이 안되서, 이 부분도 과감히 생략하겠습니다.








4. 내전으로 피폐해진 영국인들의 삶







11.jpg



어째든 영국이란 나라가 피의 역사를 거쳐 의회와 왕정의 균형을 찾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이죠.




역사에서 사람이 안 싸우고 살 순은 없죠.




친구, 부부 관계등에서도 다 갈등과 싸움이 일어나죠.(정말 안 싸우고 화목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ㅎㅎ)




아무튼 역사는 싸우지 않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 사람은 필연적인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그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여 문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인가? 』




『 후대의 사람들은 이 역사를 보고 자신들에게 다가올 갈등을 어떻게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게 할 것인가? 』




지금 얘기하는 내전이라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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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내전이 끝나도, 그 후에 남은 앙금이 남아서 망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분열과 다시 전쟁이 일어난 악순환을 겪죠.




영국 내전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영국이란 나라가 무슨 짓을 해서, 내전의 피의 고통에 대한 문제를 긍정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의의.




그리고 명예 혁명까지 폭 넓게 바라보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내전 얘기 내내, 왕당파, 의회파로 마치 전혀 다른 지역에 다른 이야기로 얘기 했지만,




안에 실상은 어제까지만 해도 부모 세대가 친구고 자연스럽게 자식들도 서로 친구로 지내던 사이.




평상시 옆집에 힘들면 도와주고 하던 끈끈한 정이 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순식간에 칼과 총을 들고 이웃과 친구의 생명을 앗아가고 짓밟게 하는 것이 내전이란 가슴 아픈 일이죠.




그리고 영국도 위에 얘길 좋게 했지만, 엄청난 상처를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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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사회가 파탄과 외침이 일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에 중요한 것이 돈이죠.




이 돈이 사람을 정말 비참하고 힘들게 만듭니다.




그 때 당시 물가를 알아보니,




당시 1파운드 = 현재 약 77파운드였습니다.


(한화 1파운드 : 1,559 원 / 77 파운드 : 12,049 원)




그때 돈으로 1년간 보병연대 유지 비용 : 1만 5천 파운드(한화 약 17억 3천만 원)




기병 연대 유지 비용 : 3만 파운드(약 34억 5천만 원)




심지어 규모가 작은 수비 연대 비용 : 5만 파운드(약 57억 5천만 원) 이라는 큰 돈이 들어갔습니다.




전 편에 얘기 했던 해군은 50만 파운드(약 575억 원) 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예전에도 말했지만 9년이라는 장기전이 될 것이라곤 예상치 못해서 기부금이나 강제 징수로 땜빵을 했는데...




전쟁이 장기전으로 길어지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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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년에 의회파에서 《 전쟁 세금(주어진 소득세를 비례) 》 으로 세금을 징수합니다.




이게 얼마나 세금을 징수 했냐면, 지금 한국의 부가가치세가 10%를 받죠.




이때에 전쟁 세금으로 『 연간 소득 비례 1/5 징수 』 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뜯어갑니다.




또한 토지를 많이 갇고 있는 사람은 등급을 정했습니다.




특히 대 토지 소유자에겐, 『 본인이 소유한 토지 시가를 환산, 환산 가격의 1/20 을 매년 세금 징수 』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근데 이렇게 해도 돈이 모자랐습니다.




왕당파와 의회파 모두가 『 모든 상품 소비세 』 를 부과합니다.




보통 한국은 1년에 1번 세금을 걷는데, 잉글랜드는 1644년 부터는 『 2주에 한 번 세금 징수 』 를 합니다.




이것도 이유는 있는데, 1년에 1번 세금 징수를 해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의회파의 세금 징수 전날에 사람들이 다른 편으로 도망가는 자들이 있어서, 2주 간격으로 총 1년 세금을 나눠서 징수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이때 소득세, 보유세 등등, 이때 나온 세금 방식이 다 나와서 우리가 겪은게 아닐까 생각도 드는 씁쓸한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이렇게 마구 돈을 뜯어가니, 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악조건 상황 때문에, 당시 전산 능력이 낮았는데 하다보니 숙달되면서 양측 모두 세금 징수률 90% 를 찍습니다.







15.jpg



돈 문제에 대해 추가로 더 얘기하자면, 마을에 약탈을 하기 위해 군대가 오는것이 아니라, 주둔하기 위해 마을에 와도 문제였습니다.




군대가 마을에 주둔하면, 마을에 식량을 요구합니다.




이때 상황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 (해당 군대가 1주일 동안 주둔) 그들은 우리의 1년 식량을 일주일만에 전부 소비하고 갔다. 』




군대가 한번 와서 가면, 밀 한톨 남기지 않고 싸그리 다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마을 사람들은 굶주리게 되죠.




이런 악조건 상황이지만 그래도 다행....? 다행이라고 말하는게 좀 뭐하긴 하지만...;;;




이게 내전이다 보니 민심이 중요했기 때문에 학살극은 적은 편이었습니다.







16.jpg



30년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진짜 어마어마하게 처절하게 민생이 극한으로 내몰리죠.




이게 지금 미래의 우리가 볼 때 이런 생각을 하는 무책임하고 안일하겠지만, 그래도 30년 전쟁과 비교하면 그래도 신사적(?)이었던 편입니다.




역사를 배울 때, 상대적으로 나은 것, 편안함을 느끼면 안되는데,




30년 전쟁은 진짜 지나가는 모든 땅 위와 땅 아래까지 다 긁고, 싸그리 태워 없애고, 지하에 숨은 사람들과 물자까지 다 털어가며 잔혹했던 역사라서 감히 이런 말을 하네요.




격전지에는 인구 감소률(사망 및 도망 등)이 컸는데,




- 요크셔 : 65% 감소


- 첼시 : 48%


- 랭커셔 38%




그리고 군마의 식량 소비 지출로 인해 시민들의 피해도 컸습니다.




『 그들은 200 파운드 상당의 건초와 옥수수를 소비했는데, 좋은 밀 한 덩이를 말에게 뿌리고, 온갖 종류의 옥수수까지 말한테 먹였다. 』






17.jpg

[ 말은 건초보다 곡물을 먹어야 잘 뛴다. ]





사람에게 품질 좋은 식량을 말에게 먹였는데, 품질 좋은 곡식을 먹어야 말이 힘을 쓸 수 있었죠.




군대는 싸울려면 어쩔 수 없다라고 하겠지만, 시민들 입장에선 옥수수 죽이라도 먹어야 살 판국으로 당장 먹을 것이 부족했기에 아주 큰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근데 이게 참 진짜 딜레마입니다. 말은 풀때기가 아니라 곡물을 먹어야 힘을 쓰니 안맥일 수 도 없고,




심지어 식사량이 사람에 3~4배 가량으로 많이 먹기도 하니, 시민들에겐 환장할 노릇이죠.







18.jpg



식량 뿐만 아니라, 『 마을 집들의 서재를 뒤져서 책들을 모두 징발했다. 』 라고 합니다.




책? 갑자기 책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 안되실 텐데,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책을 연료(땔감) 혹은 담배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연료 사용에 책이 얼마나 오래갈까?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책 한 권을 불로 태우면 생각보다 오래가고, 또 몸을 따뜻히 데우는데 많이 필요하지도 않아서 효율성이 좋다고 합니다.




또한 나무 장작은 숲이나 구해야 하고 직접 손질도 해야하지만, 책은 나무가지 보단 덜 무겁고 공간 효율도 많이 남고 가져가기도 편하는등




편리한 부분도 나무 땔감에 비해 아주 유용하죠.




아무튼 이 책을 털기 위해서 마을 회관을 약탈하기도 합니다. 이때는 마을 회관에 책이 많았으니까요.




위에 전쟁의 문제들로 인해 1643년부터 전국적으로 많은 마을이 반전 시위로 전쟁 반대를 외칩니다.




근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왕당파와 의회파 모두 가혹한 진압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그나마 영국 내전이 나은 점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중앙집권화 시대. 예를들에 19세기, 20세기에 반전 시위를 하면 아주 역적이나 다름 없었을 겁니다.




영국은 좀 분화되고 내전이 그나마 엄청 냉혈하진 않아서 반전 시위에 대한 가혹한 탄압은 자행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은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죠.




그리고 영국 내전으로 인해 클럽이 활성화됩니다.




19.png



내전이 격화되면서 각 마을과 도시에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클럽(자경단)을 조직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클럽맨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이 클럽맨들은 내전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적 마인드를 이어받아, 영국의 독특한 클럽 문화를 탄생하게 됩니다.




지금도 어느 분야의 장인들등 각 계층 사람들이 각 클럽을 조직해서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죠.




쉽게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영화의 젠틀맨 클럽, 킹스맨이 바로 영국의 독특한 클럽 문화 배경의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영국 사회가 발전하다보니, 직군 혹은 각 조직별로 스스로 클럽에 매너를 만듭니다.







20.jpg



킹스맨의 대표적인 명대사 "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 의 대사가 그들이 만들어낸 클럽 문화의 매너를 대표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이런 매너적인 부분이 이미 존속하고 있었죠.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유교적 문화로 하다보니 유화적인 배경이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지만,




유럽은 귀족들의 문화는 럭셔리했지만, 평민들의 문화는 거칠었는데, 하층 부르주아들이 클럽 문화로 매너를 만들어가면서




조선의 유학적 매너와는 다르게, 유럽은 계층 상관 없이 자유로운 토론 방식이라는 현대적 문화 확립이 자리잡게 되죠.




이런 요소가 문화 발전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작가의말

뒷 이야기가 꽤 길었습니다.



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잉글랜드 내전이 끝났습니다.



예상외로 중간에 이야기들이 길었던 지라,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아서 에필로그 편을 바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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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史] 잉글랜드 내전. 현대 영국 기틀의 완성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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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잉글랜드 내전 완결 : 에필로그 21.03.28 36 0 8쪽
» 영국 내전(+잉글랜드 내전) 종결 21.03.28 28 0 18쪽
20 프레스턴 전투와 올리버 크롬웰의 독선 21.03.27 22 0 11쪽
19 잉글랜드 2차 내전 21.03.26 21 0 10쪽
18 건곤일척, 네이스비 전투 21.03.25 24 0 15쪽
17 올리버 크롬웰의 개혁과 의회파의 승부수 21.03.24 26 0 14쪽
16 잉글랜드 북부의 대 결전. 마스턴 무어 전투 21.03.22 23 0 14쪽
15 올리버 크롬웰의 데뷔전. 마스턴 무어 전투 개막 21.03.21 21 0 9쪽
14 올리버 크롬웰의 등장 21.03.20 30 0 8쪽
13 첫번째 빅 매치. 엣지 힐 전투(完) 21.03.19 22 0 10쪽
12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2) +2 21.03.18 23 0 8쪽
11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1) 21.03.17 26 0 8쪽
10 제 1 라운드 : 포윅 다리 전투 21.03.16 24 0 9쪽
9 왕당파, 의회파의 지휘관들과 루퍼트. 21.03.15 21 0 9쪽
8 엉성한 내전 21.03.14 26 0 11쪽
7 영국 교과서도 모르는 첫번째 전투. 21.03.13 22 0 10쪽
6 왕당파 vs 의회. 내전의 시작 21.03.12 24 0 6쪽
5 잉글랜드. 국가 기능이 부재하다. 21.03.11 29 0 13쪽
4 찰스 1세 VS 의회. 정면 대결! 21.03.08 33 0 10쪽
3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의 등장과 떠나가는 민심 +2 21.03.07 45 1 9쪽
2 제임스 1세의 골 때리는 통치 +2 21.03.06 56 2 9쪽
1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과 내전의 불씨 +4 21.03.05 1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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