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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잉글랜드 내전. 현대 영국 기틀의 완성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3.05 16:34
최근연재일 :
2021.03.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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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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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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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의 등장

DUMMY




1. 올리버 크롬웰의 등장





엣지 힐에서 다 이긴 전투를 순간의 방심으로 승리도, 패배도 아닌 무승부로 끝난 전투.




하지만 왕당파에게 그리 손해본 전투는 아니였습니다.




왕당파의 저력을 확실히 보여줬으며, 의회파의 수도 런던을 위협하며 충분히 세력 기 싸움에서 많은 이득을 본 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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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당파는 입장에선 " 괜히 더 싸웠다가 질 수 있으니, 이 승전의 기운을 앉고 가자 " 였기 때문에 순순히 런던 침공을 물렀던 이유가 컸습니다.





저렇게 자신감이 넘쳤던 것은 엣지 힐에서 싸워보니, 조금만 더 규율만 다 잡으면 의회군은 별 것 아니다라는 자신감이 정말 넘쳤던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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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비유를 들자면 축구에서 0 : 0 으로 결과는 봤지만, 경기 점유율이 70%로 한 쪽이 엄청나게 밀어 붙쳐서, 상대편이 필사적으로 아등바등 막아서 무승부로 본 것이랑 같은 거죠.




이러면 축구 팬들 입장에선 " 다음 경기에서 쟤들이랑 붙으면 이기겠구나? " 라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위의 비유가 지금 왕당파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이런 상황 속에서 혁신적으로 의회군을 개혁하고, 잉글랜드 내전과 영국 내전 전체의 판도를 뒤집었던,




세계사에 유명한 인물, 『 올리버 크롬웰 』 이 등장합니다.







2. 올리버 크롬웰의 철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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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 올리버 크롬웰, 우 : 크롬웰의 철기군 ]






요즘은 모르겠지만, 한 때는 세계사 교과서에 시험 문제로 크롬웰의 철기군이 나와서 외웠는데, 그만큼 그의 철기군이 유명하죠.




근데 유럽의 군사 전문가들은 《 특별한 것 없고, 일반적인 기병대인데 영국에선 왜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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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건 철기군이라고 해서, 프랑스의 기병처럼 풀로 다 착용한게 아니라, 퀴러시어 기병으로 가볍게 착용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 기병대를 왜 철기군으로 표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국의 지형이 프랑스 같이 사람과 말 모두 갑옷을 둘러 쌓기에는 좋은 지형은 아닙니다.




프랑스는 평원 지대에 반해, 영국은 구릉 지대라서 그렇죠.




한국에 구릉이 영국 사람이 보기엔 『 산 』 이라고 부를 정도로, 영국의 구릉은 살짝 뽈롱하게 튀어나온 수준이라서,




말을 타고 갈 수는 있는데, 풀 무장을 하기에는 적합한 땅이 아닙니다.




그래서 크롬웰 철기군은 퀴러시어 갑옷을 착용.... 했을 수 도 있고, 아니면 풀무장 기병을 굴릴만큼 돈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잉글랜드 내전하면서 재정 상태를 꾸준히 보면서 할 수 있는데 안한 건지, 그럴 능력이 안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네요.




근데 제 시선에는 무거워서 속도도 느린데, 양성과 유지 비용이 너무 드니까,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편입니다.




어떤 시선에 따라 다르니 이 부분에선 각자의 판단으로 보셔야 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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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다름(gendarme) : 판금 갑옷을 전신과 말에 입히고, 랜스를 든 창기병 ]





때 마침 프랑스와 영국 기병 이야기가 나와서 좀 더 사설을 붙어 보겠습니다.




프랑스의 장다름은 다 같이 대열을 짜서, 요즘 같이 탱크처럼 밀어 붙치는 것인데,




이 기병대는 굴곡이 있는 지형에서는 위 아래로 들썩 거리느라 중력의 힘을 받아 사람과 말 모두 지쳐버리고, 또 대열이 쉽게 흩어지기 때문에 위력이 매우 떨어집니다.




그래서 퀴러시어 기병처럼 경기병 종류의 가벼운 기병이 등장한 이유가 바로 이 점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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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 철기군이 잉글랜드 내전의 기병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청교도에 입각한 기율을 따르며, 맹렬한 훈련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청교도에 성경을 보면 주로 많이 나오는 단어중에 하나가, 《 하나님 말씀의 전신 갑주를 입고.... 》 구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크롬웰이 철기군들을 훈련시킬 때 늘 했던 말이.....




『 입고 있는 물질적인 갑옷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과 신념을 믿어라 』




이렇게 항상 교육을 시키니까, 철기병들은 비록 프랑스처럼 풀 갑옷은 아닐지언정, 정신을 단련한 강인한 기병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유럽 군대는 전투에 지면 전부 흩어져서 끝이 납니다.




30년 전쟁 때,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키웠던 스웨덴 군대의 가장 중요한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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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열이 무너지면, 뿔뿔히 흩어지는게 아니라, 병력을 다시 흡수하는 전술 』




예를 들면 물이 뒤로 빠질 때, 스폰지를 미리 나둬서 빠진 물을 흡수시키는 방식을 이해하면 쉽겠습니다.




그리고 크롬웰의 철기군의 큰 특징이 《 깨져도 모여서 싸우고, 또 깨져도 다시 싸운다. 》 라는 것이 바로 크롬웰 철기군이 다른 기병과 다른 점입니다.




위의 말을 종합하면, 그들은 정신 무장 + 전술 무장 모두 두루 갖춘 것이 크롬웰 철기군이라고 요약이 가능하겠네요.







3. 인물 분석 : 올리버 크롬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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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다보니 올리버 크롬웰의 소개보다 그의 철기군을 먼저 조명했습니다.




이번엔 올리버 크롬웰이 과연 누구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가문의 7대손의 아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찰스 1세가 스튜어트 왕가이기 때문에 머나먼 친척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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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크롬웰 가문은 이젠 귀족 가문이 아니라, 젠트리의 상층 부르주아(귀족적 부르주아) 출신이 됩니다.




당시 부르주아 중에서도 최상층이었으니까, 기병을 조직할 만한 힘이 있던 것이겠죠.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 1628년에 하원 의원으로, 지금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이는 43세입니다.




크롬웰은 여태까지 단 한번도 군 경력이 전혀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철기군을 양성하고, 그의 군대가 신념 깊은 강인한 군대를 만들었다는 것이 정말로 놀랍습니다.




제가 솔찍히 이런 말 하기 참 싫어하는데.....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사람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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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잉글랜드에서 내전이 터지니까, 크롬웰은 고향에 돌아가서 기병을 조직합니다.




이때만 해도 전 편에 말했지면 젠트리들이 지방을 장악하고 있어서 판사, 경찰 서장등 다하고 있었고, 민병대 대장도 하고 있었죠.




또한 민병대의 대장 직위 조건도 아무나 가능해서, 쉽게 모집하고 쉽게 소십해서 쉽게 의견 조율해서 쉽게 대장이 되는 자유로움....? 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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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잉글랜드 민병대는 쉽게 모집도 했지만 쉽게 해산도 가능했습니다.




근데 말이 민병대라고 해서 어느정도 군대 집단 형태로 보이도록 생각할 수 있는데, 실상은 그냥 동네 치안대랑 같은 수준이라서 저런 말도 안되는 규율이 가능했던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형편 없어도 있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동네에서 시비 붙으면 『 우리 군대 불러온다? 』 라며 경고할 수단은 있어야 하니까 유지했던 것이죠,




아무튼 크롬웰이 이제 고향에 가서 기병대를 조직해서 찰스 1세와 붙기 위해 준비합니다






4. 찰스 1세에 대한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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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크롬웰은 자신의 군대에게 신앙을 교육했을 만큼, 무척이나 독실한 청주교 신자입니다.





그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 어떤 고난이든 간에 신앙심으로 극복 할 수 있다 》 라고 신앙심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찰스 1세가 종교를 심하게 탄압하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지 못했기에, 『 왕당군을 사탄의 군대 』 라고 폄하할 정도로 극도로 찰스 1세를 혐오했습니다.








드디어 의회파에 훌륭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과연 올리버 크롬웰은 오합지졸 의회군을 어떻게 개혁시킬지,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잉글랜드 내전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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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영국 내전(+잉글랜드 내전) 종결 21.03.28 28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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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잉글랜드 2차 내전 21.03.26 21 0 10쪽
18 건곤일척, 네이스비 전투 21.03.25 24 0 15쪽
17 올리버 크롬웰의 개혁과 의회파의 승부수 21.03.24 26 0 14쪽
16 잉글랜드 북부의 대 결전. 마스턴 무어 전투 21.03.22 23 0 14쪽
15 올리버 크롬웰의 데뷔전. 마스턴 무어 전투 개막 21.03.21 21 0 9쪽
» 올리버 크롬웰의 등장 21.03.20 32 0 8쪽
13 첫번째 빅 매치. 엣지 힐 전투(完) 21.03.19 22 0 10쪽
12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2) +2 21.03.18 23 0 8쪽
11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1) 21.03.17 26 0 8쪽
10 제 1 라운드 : 포윅 다리 전투 21.03.16 25 0 9쪽
9 왕당파, 의회파의 지휘관들과 루퍼트. 21.03.15 22 0 9쪽
8 엉성한 내전 21.03.14 26 0 11쪽
7 영국 교과서도 모르는 첫번째 전투. 21.03.13 22 0 10쪽
6 왕당파 vs 의회. 내전의 시작 21.03.12 24 0 6쪽
5 잉글랜드. 국가 기능이 부재하다. 21.03.11 29 0 13쪽
4 찰스 1세 VS 의회. 정면 대결! 21.03.08 33 0 10쪽
3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의 등장과 떠나가는 민심 +2 21.03.07 45 1 9쪽
2 제임스 1세의 골 때리는 통치 +2 21.03.06 56 2 9쪽
1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과 내전의 불씨 +4 21.03.05 16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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