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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잉글랜드 내전. 현대 영국 기틀의 완성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3.0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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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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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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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건곤일척, 네이스비 전투

DUMMY

1. 네이즈비 전투의 개막

1.JPG

[ 잉글랜드 중부의 레스터 ]





왕당군이 레스터를 함락시키자, 의회파는 판단을 내립니다.




" 차라리 왕당군을 끌어내어, 결정적인 전투를 벌이자. "

2.jpg

[ 왕당파의 전초기지, 네이스비 ]




의회파는 역으로 왕당파의 전초기지가 있던 네이스비를 공격하여 밖으로 빼내려고 합니다.




그러자 왕당군 지휘부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집니다.




『 나가서 싸울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후퇴할 것인가? 』




근데 항상 보면 왕당군은 전투를 하기 전에 내부에서 이런 소음이 끊이질 않는데, 어떻게 보면 이게 바로 전형적인 귀족 군대의 특성이라 할 수 도 있고,




또한 지휘관들의 의견 조율을 삐걱거리게 만드는건 찰스 1세의 본인의 능력이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자기가 나서야 할 일은 남을 시키고, 자기가 나서지 말아야 할 일에는 끼어드는 것을 구분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즉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를 리더가 잘 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때 최고 결정권자가 판단을 해야 하는데, 현장 지휘관에게만 일임하니까 생긴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루퍼트가 의견을 냅니다.




" 지금은 나갈 때가 아닙니다. 질서 있게 후퇴를 해야 합니다. "




라고 진언합니다.




하지만 이때 루퍼트를 굉장히 싫어 했던 많은 제임스 킹을 비롯한 다른 지휘관들이 반대합니다.




아마 굴러 들어온 돌이던 루퍼트를 찰스 1세가 굉장히 신임하니까 생긴 문제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찰스 1세 개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우리가 전투에서 승리하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주요 거점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습니다. "




라고 진언합니다. 이번엔 찰스 1세는 수비보단 공격을 선택한 것인지, 다른 지휘관들의 의견을 선택했고,





여기서 네이스비 전투를 결정합니다.








2. 건곤일척 - 네이스비 전투

3.jpg

[ 1645년 6월 14일. 네이스비 전투 ]






:: 왕당군 병력 ::



- 보병 : 3,300 명


- 기병 : 4,100 명



= 도합 : 7,400 명 =






:: 의회군 병력 ::



- 보병 : 7,000 명


- 기병 : 6,000 명


- 용기병 : 1,000 명


- 대포 : 11 문



= 도합 : 14,000 명 =





보다시피 병력 숫자는 두배.




심지어 병력 구성도 의회군이 아주 알찰 정도로 전력이 아주 극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4.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스 1세는 승리를 의심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의회군 기병이 많긴 하지만, 구성의 질은 왕당군이 한 수 위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실제로 맞는 얘기 입니다.




잉글랜드 내전을 쭉 살펴보고, 또 기병을 이끄는 사람들도 전부 기병 전술 경험이 풍부했고,




여기서 실력파 루퍼트도 참여했기 때문에 기병에 대한 질적 우위는 압도적일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죠.




자, 드디어 왕당파의 마지막 한판. 네이스비 전투가 시작됩니다.




전투 초기의 양상은 그전에 제가 의회군을 극찬했던 것과 달리 왕당파가 아주 유리했습니다.




심지어 전투가 벌어지면서 의회군 기병 300기가 돌격했다가, 왕당군에게 몰살 당한 뼈아픈 타격을 받습니다.




또한 왕당군의 보병들이 숫적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밀어 붙치면서 아주 열심히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조금만 더 매섭게 밀어 붙친다면 왕당군에게 승리는 따놓은 당상까지 도달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승리를 한다면, 거의 와해 직전에 가까웠던 왕당파에겐 새롭게 잉글랜드 내전의 대세가 반전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철칙 중에 하나.




『 이길 이유가 없는데 이길 땐 이유를 의심해야 한다. 』




홀연히 오른쪽에서 올리버 크롬웰이 신모델 군과 함께 등장합니다.




이때 등장한 신모델 군은 완성형 군대였습니다.

4.jpg

올리버 크롬웰의 철기군들이 왕당파 측면을 공략합니다.




이때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온 올리버 크롬웰의 기병대는 왕당군의 보병을 짓밟으면서 이때부터 전세가 역전됩니다.




불과 10여분도 안되는 사이에 전쟁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왕당군은 결국 다시 역전에 도약을 밟지 못한 채 패배 하고 맙니다.

5.jpg

이때 전투의 결과는 왕당군에게 참혹합니다.



- 사상자 : 1,000 명


- 포로 : 5,000 명



으로 전체 병력이 7,400 명 중에 6,000 명이 손실을 입은 어마어마한 큰 타격이었죠.



반대로 의회군의 피해는 경미합니다.




고작 부상자 + 사망자를 다 합쳐도 400명 밖에 되질 않았죠.




거의 퍼팩트한 의회군의 승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왕당파가 이렇게 허무하게 깨졌던 이유에는, 전 편에 말했듯이 월급을 못 받다 보니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자 바로 항복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래서 6,000 명이 포로가 된 것은 저 이유 때문이겠죠.







3. 전투가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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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스비 전투가 끝나고, 의회군이 전장을 정리하면서, 우연찮게 왕당파의 비밀문서를 발견합니다.




이 문서에는 찰스 1세가 《 아일랜드, 덴마크, 프랑스 》 에게 지원을 부탁한다며 내전에 참전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외국군의 참전을 부추기는 기밀 문서가 의회파에게 폭로가 되자,




의회파 내에서 국왕에 대한 처우에 온건히 대우하고자 했던 온건파 세력들에게도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됩니다.








4. 네이스비 전투 분석





제가 네이스비 전투 패전에 이유를 월급을 못받아서 그렇다 하면서 이유를 들었지만, 수 많은 이유중에서 단편적인 이유입니다.




왜 초전에 왕당파가 분위기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패배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전투 시작 전에, 찰스 1세가 그토록 믿었던 유능한 기병대.

8.jpg

여기서 루퍼트의 기병대는 유능했지만, 문제는 약탈에 눈이 멀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마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고 약탈에만 신경 쓴 이유가 아마도 자금난에 허덕이며 돈을 제때 못받아서 생긴 불상사가 아닐 듯 싶네요.




그래서 의회파 기병대가 부딪쳤다가 깨지니까, 그때 왕당군 기병들이 값 비싼 말과 마구, 총들을 챙길려고 했습니다.




이걸 본 의회군들은 이런 평을 남겼습니다.




『 왕당군 기병들이 말에 내려서 개처럼 땅바닥을 훑었다. 』




만약 여기서 눈이 안 멀고, 그래로 의회군 진지로 돌격했다면, 전투의 결과가 무승부가 될 지, 승리가 됐었을 지는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9.jpg

[ 엣지 힐 전투 ]





이것을 보면서 엣지 힐 전투가 다시 떠오르네요.




초반에 우세했던 것. 그리고 전투를 말아먹은 것도 약탈까지.




불과 1642년의 엣지 힐 전투와 1645년 네이스비 전투.




3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결국 왕당군은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는 점에서 참 뭔가 깨름직 합니다.




왕당군은 이런 실책을 범했던 반면, 의회군은 달랐습니다.

10.jpg

시기 적절하게 임기응변으로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본인의 역할을 다한 올리버 크롬웰.




한마디로 엄정한 군기가 전투의 승패를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제대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올리버 크롬웰이 철기군을 운영하면서 독특한 발명품, 『 포켓 바이블(Pocket Bible) 』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무엇인지기 적절하게 임기응변으로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본인의 역할을 다한 올리버 크롬웰.




한마디로 엄정한 군기가 전투의 승패를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제대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올리버 크롬웰이 철기군을 운영하면서 독특한 발명품, 『 포켓 바이블(Pocket Bible) 』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니까.....

6.jpg

지금 우리가 아는 작은 책자형 성경이었습니다.




철기군이 청교도의 믿음이 모토 였고, 또한 청교도들은 모든 권위의 최고를 성경으로 삼았습니다.




옛날의 가톨릭의 성경은 고대 언어 원문으로 된 성경인지라, 사제와 지식인들만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종교 개헉 이후 인쇄술이 발달하고 지식이 널리 퍼지다보니, 성경이 보편화(외국 번역, 쉬운 이해등)가 시작됩니다.




당시 문맹이 95% 이라고 통계가 있을 만큼 까막눈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올리버 크롬웰은 청교도의 신앙심을 끓어 올리기 위해 군인용 성서, 포켓 바이블을 만들어 낸 것이죠.




지금도 유럽 군대는 포켓 바이블을 나눠주고, 또 전쟁 영화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군대도 받고, 또 교회에 가면 저런 작은 성경책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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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시작에는 " 군대 " , " 전쟁 " 이라는 상황에서 탄생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올리버 크롬웰의 포켓 바이블에는 핵심 내용이 있습니다.




《 병사는 사악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위해 용감해야 한다. 》




이 구절을 중요하게 넣은 이유는 아마도 병사들을 통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이스비 전투도 그렇고 30년 전쟁을 쭉 봤지만, 약탈 때문에 진 전투가 굉장히 많죠.




『 어떤 경우이든 간에, 전투가 끝날 때 까지는 약탈을 통제하는 군대가 승리한다. 』




바로 전쟁의 중요한 철칙중에 하나죠.




위에 중요한 구절 내용 말고도 또 있습니다.




《 적을 사랑해야 하며, 하나님의 적은 증오해야 한다. 》




이게 뭔가 오묘하게 이상한 말입니다. 적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하나님의 적은 증오하라?




살짝 이해가 안가실 겁니다. 근데 이걸 제대로 뜯어보면 정말 섬칫하는 구절입니다.




『 적을 사랑하라 → 적이 너한테 하는 만큼 사랑해라 』




즉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뜻입니다.




이걸 보면서, 진짜 올리버 크롬웰은 말을 참 아름답게(?) 잘 포장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예술이네요. 극단적으로 들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 아니라, 적을 사랑해라~




진짜 역사책에서 보면 참 존경스러운데 가까이 있는 사람에겐 그만큼 무서울 수 가 없네요.

12.jpg

지금 전쟁은 내전입니다.




그런데 적을 죽여라, 하나님의 적은 증오하라.... 이렇게 온갖 증오로 가득 담기면, 내전이 끝났을 때 뒷감당은 물론이고, 수습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런걸 보면서 자란 젊은 이들은 그 관념이 머릿속에 박혀서, 죽을 때 까지 상대방을 적으로 두고 미워하고 분열을 야기시킬 겁니다.




그래서 말을 아주 절제하게 " 적이 너한테 하는 만큼만! " 이라는 제한을 뒀습니다.




다음 중요한 구절도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람도 때때로 전장에서 하나님의 적 뿐만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




이걸 보면서, 크롬웰 군대의 장점이 최악의 상황(전투 패배등)에서도 전장에 도망가지 않고 다시 모여 싸우죠.




이런 말을 넣는 이유가 뭐냐면...




" 내가 하나님의 군대인데 왜 패배해? 왜 전멸해? "




라며 성경과 다른 현실로 인해서 부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구절을 넣으면서 얼마든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는 가정을 넣었기 때문에 패배도 충분한 이유와 개연성을 그들에게 인지시켜줄 수 있고,




그들에게 언제든지 최선을 다하라는 힘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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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맹신에 대한 가장 나쁜 사례는 일본제국의 반자이 돌격(자살 돌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 네이스비 전투에서 왕당군이 마구 밀어붙쳤죠.




그래서 한쪽 라인이 무너지면, 반대쪽 라인도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고 이건 지금 시대도 통용됩니다.




그런데 크롬웰 군대는 한쪽 라인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을 안 갔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버티고 버텼다가, 적의 실책이라는 타이밍까지 겹치며 반격해서 네이스비 전투의 전환점이 되었죠.




왕당파는 적을 밀어 붙쳐서 좌익이든 중앙이든 우익이든, 한쪽이 무너지면 연쇄효과로 전부 다 무너져야 하는데 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럼 기병대만으로 모든 열의 적들을 다 쓸어버려야 하는데, 이러면 사람도 말도 지치기도 하고 적의 의지와 숫적 열세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보통은 도망가야 하지만 버텼다가, 오히려 버텼다가 지친 왕당군을 역습으로 덮쳐서 이긴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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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올리버 크롬웰의 병법은 독창적이고 신기한 것이 아닙니다.




『 군인의 기본을 지킨다. 』 라는 아주 심플하고 당연한 소리지만, 또 어떻게 보면 가장 훌륭하고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독일의 전술 토론에서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 과연 크롬웰이 세계사에 나올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 "




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론은 이렇습니다.




" 그는 특별하진 않지만 군인으로서 할 것을 다 했다. "




철기군이 새로운 장비니, 전술이니 그런게 아니라 가장 대단하고 뛰어났다는 것은 바로 이 점이 세계사에 중요한 역사고 이걸 배워야 한다는 점.







그래서 한국 세계사 교과서에 이 점을 배울려고 문제에 나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5. 왕당파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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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스비 전투에서 패배한 왕당파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바로 왕당파의 심장 옥스퍼드로 의회군이 진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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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 1차 내전 경과 ]




제 1차 잉글랜드 내전이 끝나게 됩니다.




......예? 제 1차 잉글랜드 내전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이제 제 1차 내전이 끝났습니다.




다만 중요한 전투는 대부분 1차 내전이 몰려있습니다.




사실 다음 내전이 벌어지지만, 1차 내전에 왕당파 세력이 다 궤멸된지라 국내에 더 이상 힘을 뻗을 곳이 없기 때문이죠.






17.jpg



아무튼 네이스비 전투에 참전했던 찰스 1세는 결국 고국였던 스코틀랜드로 망명하게 됩니다.




근데 마스턴 무어에서 스코틀랜드 반란군이 의회군에 참전했던 것을 아시죠?




찰스 1세가 참 생각 없다고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그 댓가는 스코틀랜드는 찰스 1세를 잡아다가 의회군에게 넘겨줍니다.

18.jpg



이때 넘겨 줄 때, 돈을 받고 넘겨줬습니다.




하여간 이 나라는 참 이해가 안되지만, 어떻게 보면 세상은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확 느껴지네요.




무려 40만 파운드롤 받고 찰스 1세를 넘겨줍니다.




40만 파운드.... 내전 초창기에 돈이 없어서 낑낑했는데 이런 거금을 내놓을 정도 내놓았다는 것을 보면,




찰스 1세에겐 미안하지만, 의회군에게는 부르는게 값이라고 느껴지겠습니다.




40만 파운드가 얼마 정도인지 비교하자면, 당시 잉글랜드 1년 해군 예산이 50만 파운드였다고 하니, 그 무게가 확 와닿네요.




이렇게 해서 잉글랜드 1차 내전은 종료됩니다.




잉글랜드의 왕정은 폐지되고, 영국 최초의 공화정이 수립.

19.png

[ 빨간 동그라미 : 와이트 섬 ]






내전의 원흉이던 찰스 1세는 와이트 섬으로 유배 시키면서 일단락됩니다.









의회파는 결국 네이스비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왕당파는 와해.




찰스 1세는 와이트 섬으로 유배되어 집니다.




그러나 이건 기나긴 내전 중에 1차 내전에 불과했습니다.




과연 찰스 1세는 어떻게 다시 떠오르게 될지. 그리고 의회를 장악한 올리버 크롬웰의 행보는 어떻게 될지.




잉글랜드 내전 2페이즈. 제 2차 내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잉글랜드 내전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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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영국 내전(+잉글랜드 내전) 종결 21.03.28 28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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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잉글랜드 2차 내전 21.03.26 2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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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올리버 크롬웰의 개혁과 의회파의 승부수 21.03.24 26 0 14쪽
16 잉글랜드 북부의 대 결전. 마스턴 무어 전투 21.03.22 23 0 14쪽
15 올리버 크롬웰의 데뷔전. 마스턴 무어 전투 개막 21.03.21 21 0 9쪽
14 올리버 크롬웰의 등장 21.03.20 32 0 8쪽
13 첫번째 빅 매치. 엣지 힐 전투(完) 21.03.19 22 0 10쪽
12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2) +2 21.03.18 23 0 8쪽
11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1) 21.03.17 26 0 8쪽
10 제 1 라운드 : 포윅 다리 전투 21.03.16 25 0 9쪽
9 왕당파, 의회파의 지휘관들과 루퍼트. 21.03.15 22 0 9쪽
8 엉성한 내전 21.03.14 26 0 11쪽
7 영국 교과서도 모르는 첫번째 전투. 21.03.13 22 0 10쪽
6 왕당파 vs 의회. 내전의 시작 21.03.12 24 0 6쪽
5 잉글랜드. 국가 기능이 부재하다. 21.03.11 29 0 13쪽
4 찰스 1세 VS 의회. 정면 대결! 21.03.08 33 0 10쪽
3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의 등장과 떠나가는 민심 +2 21.03.07 45 1 9쪽
2 제임스 1세의 골 때리는 통치 +2 21.03.06 56 2 9쪽
1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과 내전의 불씨 +4 21.03.05 16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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