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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잉글랜드 내전. 현대 영국 기틀의 완성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3.0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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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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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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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라운드 : 포윅 다리 전투

DUMMY




1. 포윅 다리 전투 1막






1.jpg

[ 11세기(1096) 부터 지금까지 존속한 유서깊은 옥스퍼드 대학 ]




왕당파의 수도 역할을 하던 옥스퍼드 대학으로 군자금을 수송하는 작전이 시작됩니다.




각지에 왕당파을 도와주기 위해 귀족들이 귀금속등을 옥스퍼드로 보내고,




이렇게 모인 금과 귀금속들은 워스터에 있는 조폐소로 이송시켜, 녹여서 화폐로 만들어 조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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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옥스퍼드까지 수송 호위를 루퍼트가 맡았습니다.




한 밤 중에 루퍼트와 1천 명의 기병들과 함께 수송 호위를 하고 있었는데, 의회파 기병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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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친 의회 기병군을 지휘하고 있던 사람은 에섹스 백작의 로버트 데버루였습니다.




근데 이때 로버트 백작이 이끈 기병 숫자는 분대 정도 밖에 되질 않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적었던 것으로 보아, 밤에 만날 거라 생각 못하고 우연찮게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지거나,




아니면 여태 만났던 왕당군이 항상 싸움을 회피하느라 큰 위험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제가 포윅 다리 전투 2막에서 제대로 설명하겠습니다.




로버트 백작 입장에선 그냥 조용히 서로 갈 길 갔으면 좋겠지만, 왕당파에서 가장 열성적인 지휘관이었던 지라, 그냥 지나칠 사람이 아니었죠.






4.jpg



루퍼트가 병사들에게 명령하길....




" 물자를 지킬 일부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나를 따르라! "




하면서 전격적으로 야간 돌격을 개시하는데, 역시나 가장 앞에 나섭니다.




반면에 의회파는 설마 이 밤 중에 싸울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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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강가를 지나는 다리, 포윅 교를 건너서 평지에서 야영을 준비하고 있었고, 최적에 방심하고 있었을 때 기습한 것이죠.




결과는 당연하게 의회파 기병대는 아주 개박살이 났고, 루퍼트 기병은 거의 상처 없이 승리했습니다.




여기서 싸운 포윅 다리 전투의 상황을 분석해보겠습니다.







2. 포윅 다리 전투 2막(1) : 영국의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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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 영국 위성 사진 , 우 : 영국 구릉 지대 ]





1막에서 의회파가 기습 당한 경과를 2막에서 설명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제대로 풀어보겠습니다.




영국은 드넓은 평원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중부 위쪽 더더욱 그렇습니다.




남쪽 지역은 평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덕도 아닌 얕은 구릉 지대(~~)가 많습니다.




아마 영국 사람들은 이걸 보고 평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중앙 아시아의 푸른 초원같은 드넓은 평야가 아니라 " ~ " 같이 굴곡진 구릉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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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만약 저쪽 등선에 산(구릉)이 있다고 치고 쭉 살펴보면, 평지처럼 지역이 훤히 다 보입니다.




근데 실제 가까이 가보면 작게나마 응집된 숲과 나무들이 있고 살짝 굴곡이 있기 때문에,




엎드려 보면 숨을 곳이 천지였습니다.




만약 아예 숲이 빽빽하거나 지형이 한치앞도 안보이면.... " 저 뒤에 뭐가 있지? " , " 혹시 적이 기습하진 않았을까? " 하면서 의심을 하겠죠.




근데 전장이 훤히 보이는데, 정작 내가 인식하지 못한, 안 보이는 틈새가 너무 많다는 거죠.




이게 영국 지형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매복하기 좋은 지역이기도 한데, 웃긴건 내가 원해서 매복을 한게 아니라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르게 매복으




그래서 만약 저쪽 등선에 산(구릉)이 있다고 치고 쭉 살펴보면, 평지처럼 지역이 훤히 다 보입니다.




근데 실제 가까이 가보면 작게나마 응집된 숲과 나무들이 있고 살짝 굴곡이 있기 때문에,




엎드려 보면 숨을 곳이 천지였습니다.




만약 아예 숲이 빽빽하거나 지형이 한치앞도 안보이면.... " 저 뒤에 뭐가 있지? " , " 혹시 적이 기습하진 않았을까? " 하면서 의심을 하겠죠.




근데 전장이 훤히 보이는데, 정작 내가 인식하지 못한, 안 보이는 틈새가 너무 많다는 거죠.




이게 영국 지형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매복하기 좋은 지역이기도 한데, 웃긴건 내가 원해서 매복을 한게 아니라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르게 매복으로 만나거나, 혹은 전투 중에 갑자기 옆에 적 부대가 등장하거나.




아니면 정말 바로 건너에 있는데도 못 보고 지나가는 일이 생기기도 하죠.




제가 전 편에 왕당파와 의회파 군대 얘기 하면서, " 저 못 봤는데요? " 라고 얘기 한 것도 핑계일 수 도 있지만,




그런 말이 나올 정도의 환경인 것도 한 몫합니다.







3. 포윅 다리 전투 2막(2) : 영국의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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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윅 다리 전투에서 루퍼트가 기병 돌격했던 시각이 밤에서 이루어진 야간 돌격이었습니다.




여기서 뭔가 기시감이 있으신 분은 정말 전쟁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지니신 분 일 겁니다.




기병으로 야간 돌격은 일반 통상적인 밤을 예시로 두면,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 가 없습니다.




이게 얼마나 힘든 것이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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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사를 통틀어서 한 밤에도 움직였던 기병 군대는 13세기 몽골 제국 밖엔 못했던 일입니다.




말은 감수성이 높은 동물인지라 밤을 무서워 해서 야간 돌격해도 위력이 크게 감소,




그나마 훈련을 시켜도 혹은 몇 백명 수준의 게릴라 타격 수준으로 활용하는 정도라면,




몽골 제국은 무려 수 만 명의 기병이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자유자재로 썼던 아주 어려운 전술입니다.




근데 루퍼트가 야간 돌격이 가능했던 비결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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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영국의 백야 현상 때문이었습니다.




30년 전쟁 혹은 용병사 이야기 했지만 대부분 전투는 저녁 쯤이면 끝납니다.




근데 영국은 전투가 초 저녁에도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백야 현상으로 인해 저녁에도 훤히 보이기 때문인데, 위에 사진을 보면 저녁 9시임에도 보이는데, 여름 때는 10시부터 슬슬 어두워 진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적 요인은 단순히 책만 봐서는 눈치채기 힘듭니다.




책이 친절하게 야간 전투을 하면, 그 전투에 대한 이야기만 담지, 왜 야간에 했는지에 대해 시시콜콜. 백야 현상이다 뭐다하며 다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저도 다양한 정보와 토론을 통해서 깨달았죠.




그래서 포윅 다리 전투때도 우리가 생각하는 어두 컴컴한 루퍼트의 야간 돌격이 아니라, 다 보이는 야간 돌격인 셈이죠.




또한 재미있는 것은 30년 전쟁이 벌이지면서 이미 아퀘버스, 머스킷 총이 발전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기병 vs 기병 전투라는 것이 흥미롭네요.




근데 포윅 다리를 첫번째 전투로 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제 시각에선 이걸 첫번째 전투로 했습니다.







4. 루버트의 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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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윅 다리 전투때 보면 왕당파 기병이 우세한 머리수로 승리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의회파의 병력 구성 때문입니다.




기병대는 이때도 그렇지만 농민들 가지곤 기병을 꾸릴 수 없습니다.




근데 의회파는 대부분 민병대등 민간에서 차출된 병력이었지만, 왕당파는 귀족으로 기병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루퍼트는 이 점을 항상 왕당파 수뇌부들에게 설파합니다.




" 우리의 최고 장점은 기병대다! "




" 적은 기병대가 적다. 그렇다고 기병을 금방 양성할 순 없다. "




" 그러니 우린 최대한 기병대를 활용해야 한다! "




면서 기병대에 많은 지원을 하도록 설득합니다.






4.jpg



아마 포윅 다리 전투때, 먼저 돌격시킨 것도 이 우세한 전력을 빨리 전투 경험을 쌓게 해서 적들을 밀어내자 라고 했을 겁니다.




단순히 기병 돌격이 힘든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왕당파의 기병은 귀족들인지라,




높으신 분들이 루퍼트가 " 먼저 돌격! " 하는 짓은 잘 안하는 전투 유형이라 무모하다면 무모하지만, 반대로 지혜도 있는 셈입니다.






5. 포윅 다리 전투 이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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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전투를 승리를 가져간 왕당파.




루퍼트가 로버트 백작을 격파하여 돌아오자, 왕당파는 이 전투의 승리를 부풀어서 선전 통해, 더 많은 세력들을 끌어 모으는데 열을 올리며 사기는 높아 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첫번째 전투가 어느쪽이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수준은 아녔습니다.




그리고 내전 초기에는 의회파 병사들 중에는 " 그래도 그렇지... 국왕을 공격해? " 라며 멈칫하는 경우가 있어서 의회파 병사들이 제대로 온 힘을 짜내서 공격하지도 않았죠.




아무튼 양측에서 포윅 다리 전투같이 아무런 결정타 없이 쨉만 날리며 대세에 영향을 주는 전투가 없었으니, 이제 슬슬 강력한 임펙트를 줄 만한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11.jpg

[ 1642년 10월 23일, 엣지힐 전투 ]




그레서 다음 대규모 전투 『 엣지힐 전투 』 가 벌어지게 됩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잉글랜드 내전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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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잉글랜드 북부의 대 결전. 마스턴 무어 전투 21.03.22 23 0 14쪽
15 올리버 크롬웰의 데뷔전. 마스턴 무어 전투 개막 21.03.21 21 0 9쪽
14 올리버 크롬웰의 등장 21.03.20 30 0 8쪽
13 첫번째 빅 매치. 엣지 힐 전투(完) 21.03.19 22 0 10쪽
12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2) +2 21.03.18 23 0 8쪽
11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1) 21.03.17 26 0 8쪽
» 제 1 라운드 : 포윅 다리 전투 21.03.16 25 0 9쪽
9 왕당파, 의회파의 지휘관들과 루퍼트. 21.03.15 21 0 9쪽
8 엉성한 내전 21.03.14 26 0 11쪽
7 영국 교과서도 모르는 첫번째 전투. 21.03.13 22 0 10쪽
6 왕당파 vs 의회. 내전의 시작 21.03.12 24 0 6쪽
5 잉글랜드. 국가 기능이 부재하다. 21.03.11 29 0 13쪽
4 찰스 1세 VS 의회. 정면 대결! 21.03.08 33 0 10쪽
3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의 등장과 떠나가는 민심 +2 21.03.07 45 1 9쪽
2 제임스 1세의 골 때리는 통치 +2 21.03.06 56 2 9쪽
1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과 내전의 불씨 +4 21.03.05 16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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