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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레아

[유럽史] 잉글랜드 내전. 현대 영국 기틀의 완성

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완결

쥬레아
작품등록일 :
2021.03.05 16:34
최근연재일 :
2021.03.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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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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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당파, 의회파의 지휘관들과 루퍼트.

DUMMY



1. 왕당파와 의회파의 지휘관





잉글랜드 내전에 참전했던 지휘관들중에, 우선 의회파부터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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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데버루. 에섹스 백작 ]





의회파의 유력 지휘관중에 한명은 에섹스 백작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살짝 이야기 하지면, 아버지가 엘리자베스 1세에게 신임을 잃고 처형당했던 아들이었죠.




당시 나이가 51세로 노익장이었지만, 군사적 재능은 뛰어났던 인물이지만, 사생활은 문란했습니다.




이 사람이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그의 휘하 지휘관들이 30년 전쟁을 겪은 실전 경험을 다수 받았기 때문입니다.






9.png





더군다나 그의 기병 사령관은 스코틀랜드 출신, 포병은 프랑스 출신, 기병 전술 교관은 네덜란드 출신.




출신 포지션만 보더라도 30년 전쟁을 겪은 역전의 베테랑들인 것을 딱 느낄 수 있죠.




전 편에 민병대 실태를 이야기 하느라 뺀 것이 있습니다.




민병대가 안좋게 얘긴 했지만, 아예 못써먹을 인재가 없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사실 30년 전쟁을 나가서 유능한 인재가 많이 비었지만, 또 돌아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전쟁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주 좋은 인적 자원이었기에 의회파는 민병대에서도 좋은 병사들을 최대한 골라 써먹을려고 노력합니다.





다음은 왕당파 지휘관들을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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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당파는 귀족 군대였기 때문에, 지휘관들 대다수는 Sir 가 붙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단점이 있다면, 다수가 고령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들 휘하로 군인들이 별로 모이질 않았습니다.




강압적으로 군인들을 대우하고, 강제 징집으로 탈영도 많이 하는등.




아무래도 고령이고, 귀족이다보니 구시대적 방식으로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찰스 1세가 진짜 믿고 있던 지휘관은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7화에서 마지막에 살짝 등장했던 인물. 루퍼트였습니다.







2. 찰스 1세의 히든 카드. 루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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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른 왕당파의 지휘관들 중에 가장 어렸던, 23세 였습니다.




출신은 독일의 라인란트의 왕자였습니다.




살짝 그의 출신을 알아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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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5세(좌),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우) ]




루퍼트는 라인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에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스튜어트 가문이었기 때문에, 항렬상 제임스 1세가 할아버지, 찰스 1세의 조카였습니다.




그가 루퍼트가 되기 전의 독일식 이름은 상당히 깁니다.




『 프린츠 루프레히트 팔츠 그라프 바이 라인 헤르죠그 폰 바이에른 』




살짝 봐도 독일의 유명한 지명 몇 개가 껴있는 것으로 봐선 보통 혈통은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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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0년 전쟁하면서 봤지만 프리드리히 5세가 정말 많이 쌩고생했던 인물이죠.




초반부 부터 아버지가 전쟁에 참전하는 바람에, 아들 루퍼트도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병사로 참전, 유럽 본토 곳곳에 전쟁터를 누빕니다.




그가 참전했던 전쟁터만 꼽아도, 《 네덜란드 독립 전쟁(네덜란드 소속 참전) 》 《 30년 전쟁(신교 소속) 》 으로 아주 굵직한 전쟁을 치뤘습니다.




그는 10설 때 군대 제식 훈련을 받았고, 14살에는 직접 전투에 참여.




18살에는 개신교(신교)의 기병연대의 연대장이라고 완장도 찼죠.








3. 루퍼트의 엇갈리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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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렸을 때 부터 기병을 끌고 지휘하다보니 탁월한 기병 지휘 능력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고, 이래서 찰스 1세가 루퍼트를 새파란 어린 지휘관임에도 믿을 수 밖에 없었죠.




다만 이건 어디까지 좋게 말한 것입니다.




30년 전쟁을 봤다면 아시겠지만 전쟁에 패배한 프리드리히 5세와 팔츠 군대는 독일 곳곳에 도망치며 다닌 비루한 삶을 살죠.




아마 아들도 같은 행로였을 겁니다.




그래도 전쟁에 중심이 서 있었던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냐하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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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 전란속에 고생했다 》 는 것과 《 이병부터 전투를 겪어서 장교가 됐다는 것 》 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30년 전쟁때의 큰 깨달음은 구시대에서 기병들이 말을 이끌고 차가운 칼과 뜨거운 심장으로 적진으로 돌격하는 방식은 이미 다 한물한 전술이었고, 그 결과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근데 루퍼트가 바로 이 부분에서 아주 열성자였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20대의 젊은 혈기가 있다보니, 열정 가득, 열혈 청춘의 피가 끓었던 듯 보입니다.




루퍼트가 전쟁터에 따라다니면서 본 것은 " 나를 따르라~ " 돌격하는 그 장면이 멋있으니까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30년 전쟁은 워낙 판도 크고, 우수한 지휘관들도 많다보니 그 동네에선 못하니 인력난에 허덕이는 잉글랜드 내전판에 왔는 듯 싶습니다.




제가 너무 루퍼트를 나쁘게 평가는 하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평은 꽤 상반된 의견이 있습니다.




앞서 제가 그를 나쁘게 평했던 것 처럼, 『 루퍼트는 오만방자하고 무모하다 』 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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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을 받는 이유중에 하나가, 그가 전쟁터에 나갈때 항상 휘황찬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다녔고, 말도 상당히 거칠었죠.




복장과 거친 어투에 대해선 이야기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거친 어투부터 살펴보면, 그가 비록 높은 신분이지만, 도망치는 생활 때문에 궁중 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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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주로 부둣가 선원들과 많이 어울렸는데 이 과정에서 선원들 생활이 힘들고 거친 삶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습득했지만, 그래도 언사와 대비되는 상당한 미남이었죠.




이번엔 복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모두의 시선을 강탈하는 화려한 빨간 망토가 이목에 끕니다.




그리고 망토 외에 군복도 잘 보면.... 묘하게 로마 군과 비슷하죠?




빨간 망토 + 로마 군복을 입었다는 것은 뭘 상징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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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카이사르. 이를 볼 때, 루퍼트의 롤모델은 카이사르가 아니였을까 짐작할 뿐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평가는 『 부하들에게 인기 있는 지휘관 』 이라는 평도 있었습니다.




치기 어린 혈기로 돌격하는 장면이 구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옛날 중세 기사처럼 행동은 비록 시대 메타가 틀리다곤 하지만 곁에 있는 부하들 입장에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더욱 멋지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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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의 기병 전술에 많은 모티브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에게 많이 받았습니다.




30년 전쟁때 팔츠가 함락 된 후에도 루퍼트는 다시 수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참전하며 같이 다니며 이때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그래서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뤼첸에서 왜 죽은 이유는 항상 남보다 앞에 나가 싸웠던 것 처럼, 그도 기병대 맨 앞에서 지휘했죠.




다만 루퍼트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가장 큰 교훈을 습득하진 않았습니다.




비록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 총에만 의지하지 말고, 차가운 칼과 뜨거운 심장으로 돌격하라 』 라고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의미는 《 총과 대포를 버리라는 뜻 》 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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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강 전투, 뤼첸 전투만 보더라도 철저하게 총병과 보병을 잘 이용해서 기병을 돌격시킨 것인데...




루퍼트는 그냥 구스타프가 돌격해서 적들을 다 처치하는 그 장면에 심취해서, 기병에만 너무 치우친 전략을 한 것이 큰 단점이었습니다.




다만 기병에 너무 치우쳐서 그렇지, 전쟁을 바라보는 눈이나 전술을 짤 때, 전혀 식견이 없는 지휘관은 아니었다는 평가도 있고,




어느 때는 성급했지만, 때론 신중하고 조심했다라고 상반된 평가가 많습니다.




어떤 면에선 나쁜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좋은 평가도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아직 젊다보니 생각은 짧지만 감각적으로 예리하고 성장통을 겪은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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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잉글랜드 내전 이후에, 그는 카리브해 / 지중해에서 해상 전투에도 참전하여, 영국 해군 제독까지 승진.




최종적으로 총독까지 올라, 현대 캐나다 정치적 지리 형성에 큰 기여한, 세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남겨집니다.




아무튼 아직 20대에 루퍼트 평가가 엇갈리긴 해도, 찰스 1세의 왕당파에게 있어서 유력한 지휘관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사람에 의해서 대망에 잉글랜드 내전의 첫번째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다음 편에선 대망에 잉글랜드 내전의 첫번째 전투. 포윅 다리 전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작가의말

본 글은 잉글랜드 내전 역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저의 견해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100% 진실이 아니며, 이러한 관점이 있다는 것만 유념해주시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료 조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오타 및 문장 흐름이 잘 맞지 않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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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올리버 크롬웰의 개혁과 의회파의 승부수 21.03.24 26 0 14쪽
16 잉글랜드 북부의 대 결전. 마스턴 무어 전투 21.03.22 23 0 14쪽
15 올리버 크롬웰의 데뷔전. 마스턴 무어 전투 개막 21.03.21 21 0 9쪽
14 올리버 크롬웰의 등장 21.03.20 31 0 8쪽
13 첫번째 빅 매치. 엣지 힐 전투(完) 21.03.19 22 0 10쪽
12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2) +2 21.03.18 23 0 8쪽
11 첫번째 빅매치. 엣지 힐 전투(1) 21.03.17 26 0 8쪽
10 제 1 라운드 : 포윅 다리 전투 21.03.16 25 0 9쪽
» 왕당파, 의회파의 지휘관들과 루퍼트. 21.03.15 22 0 9쪽
8 엉성한 내전 21.03.14 26 0 11쪽
7 영국 교과서도 모르는 첫번째 전투. 21.03.13 22 0 10쪽
6 왕당파 vs 의회. 내전의 시작 21.03.12 24 0 6쪽
5 잉글랜드. 국가 기능이 부재하다. 21.03.11 29 0 13쪽
4 찰스 1세 VS 의회. 정면 대결! 21.03.08 33 0 10쪽
3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의 등장과 떠나가는 민심 +2 21.03.07 45 1 9쪽
2 제임스 1세의 골 때리는 통치 +2 21.03.06 56 2 9쪽
1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과 내전의 불씨 +4 21.03.05 16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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