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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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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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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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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4,601

작성
24.04.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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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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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1쪽

542화 후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DUMMY

542화 후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공주님, 배가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그래.”


무미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종의 말에 대답한 장평공주 주미착은 손을 흔들어 사람을 물렸다.


“잠시 홀로 있고 싶다. 태감이 올 때까지 물러나라.”


이에 사람들이 물러나니 차분히 주변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확인하여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주미착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본래 계획대로라면 그녀는 명나라 선단에 올라 조선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때를 같이하여 청나라 공주와 일본 공주가 조선 땅을 찾으니 그녀마저 가면 모양새가 이상하여진다는 의견이 남경에 돌았다.


‘이거 자칫하면 조선에 사방 국가가 모여 거하는 꼴이지 않소이까.’

‘허허, 전에 북경에 여러 나라 사절들이 모이는 일을 연상하게 하니 분명 꺼림칙한 일입니다.’

‘장평공주께서 몸소 나서시는 것은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선에 발을 들이시는 것은 아닌듯합니다.’

‘맞습니다. 고귀한 분들을 보내어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딱히 누가 먼저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선을 통해 두 공주가 오간다는 말을 들은 순간 남경 조정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하며 한두마디 모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소리는 이내에 공론이 되어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로 하였으니 의흥제 주자랑이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목소리가 여럿이 되었다.


또한 주자랑 역시 이번 일이 영 께름칙함을 느낀 모양인지 내각 대학사 겸 병부상서 양사창과 여러 날 상의하였으니 그 결론은 일정을 살짝 바꾸는 것이었다.


장화를 위시한 선단은 예정대로 조선으로 가 조선 사람들을 데리고 오고 주미착을 위시한 별도의 선단은 마카오에 가서 대기하였다가 합류하는 게 그 골자였다.


그 결과 주미착은 뜻하지 않게 남경에서 기껏 환송 받아놓고는 마카오에서 기다린다는 다소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ㄷ.


그래도 이제 그것도 끝이니 이제 그녀는 오늘부로 진정 선단과 함께 서방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것도 적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적어도 이년, 넉넉잡으면 삼년도 각오해야 할 길이었다.


아니, 일이 풀리는 방향에 따라선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품었으니 말이다.


“잠시의 이별일까, 아니면 그것보다 조금 더 긴 이별이 될까.”


두 이별을 논한 주미착은 한 가지 경우가 더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하며 침중한 얼굴로 나지막이 덧붙였다.


“어쩌면 영영 보지 못할 길고 긴 이별이 될지도 모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복잡하여지는 말이니 주미착은 제가 말하고도 괜한 말이었다 싶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아쉽게도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소인 장화입니다. 뫼시러 왔습니다.”


바깥에서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시간이라고 아뢰는 말에 주미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간 주미착은 태감 장화를 필두로 그녀를 모시기 위해 준비한 이들이 늘어서 있는 걸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 시작이군요. 원하던 것은 얻었습니까?”

“천지신명과 열성조의 보우하심을 입어 사흘의 우선을 얻었습니다. 작으나 값진 승리이니, 이미 상세한 내용을 적어 남경에 전하였습니다.”

“도움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결과가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정말 듣지 않을 생각은 없지만 당장 여러 시선이 있는 데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결과가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는 생각은 주미착의 각오를 드러내는 말이기도 했다.


‘대명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이 두 가지 뜻은 그녀가 북경에서 도망하던 날부터 품은 뜻들이기도 했다.


또한 이 두 가지 뜻은 첨예하게 우선순위를 두고 다투나 그 우열은 지금도 가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어느 한쪽이 쇠하거나 혹은 양쪽이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으니, 주미착에게 있어서 두 명제를 제하고는 그 가치가 크게 내려간 상태였다.


그러니 그녀는 이 길을 두려워할지언정 꺼리진 않았다.


그것이 대명을 위한 길이고 그녀가 살기 위한 길이었으니 말이다.


“가죠. 갈 길이 멉니다.”



***



사 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쇼시쓰라는 소년이 제법 성숙한 티를 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기소.”

“예, 왕제 저하.”


나직한 부름에 유구국 사람 기소가 바로 대답하니 그 어조는 평이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불안함이 가득하니 이는 상황이 다시 변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 유구는 정녕 사츠마에서 벗어나지 못할 운명인 걸까?”

“그, 그렇지 않습니다.”


공허함이 담긴 어조로 쇼시쓰가 하는 말에 기소는 애써 그 말을 부정했다.


그렇지만 내심은 달랐으니, 이는 얼마 전에 심양에 온 일본 공주 도쿠가와 오키코의 혼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사츠마와는 관계없다.


그것이 에도든 교토든 사츠마를 살펴줄 이유가 그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유구국이 어떠한 처지인지 정도는 알고 있으니 이대로 슬그머니 눌러앉아 상전 행세하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느 의미 더 위험할지도 몰랐다.


저들이 사츠마라는 악역 내세우기를 그만두는 순간 유구는 그간 기대려고 하던 청나라를 돌연 잃어버리게 될 터였다.


분명 쇼시쓰를 비롯한 유구국 사람들은 청나라에서 환대를 받았고, 귀빈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일본과 유구를 저울에 올리면 혈연으로 이어진 이웃과 정통성을 위해 도움이 될 이웃으로 불리고 재어질 터였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에서 후자가 전자를 이기기란 쉽지 않으니 그 국력 차이가 명백하다면 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이치는 기소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는 관계가 변하여 양자 간에 택하면 자신들이 버려질 수도 있다는 걸 잘 알았으니, 사츠마에 휘둘리며 살아온 그는 체급 차이를 어떻게 하려면 무언가 특별한 수단이 필요함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하여 그는 이번 일도 일어날 일이, 혹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고 여길 뿐이었다.


또한 대책 역시 그간 심양에 머물며 몇몇 세우긴 했으니 그런 불안함은 없었다.


그러나 다른 불안함은 있었으니, 대책이라는 것들이 하나 같이 제 안위를 우선하지 유구를 우선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제길, 마음 같아서는 그냥 청나라에 망명하고 싶은데 말이야.’


유구국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청나라에 몸을 의탁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그의 가치는 줄어들고 평가도 내려간다.


그가 가치 있는 건 유구국 사람이었기 때문이니 말이다.


여기에 더해 청나라도 그렇지만 당장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선은 이러한 걸 대단히 싫어하는 나라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선례가 있음을 보았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기소는 그간 들인 노력, 사츠마가 아니라 조선과 청이라는 끈을 부여잡기 위해 기울인 온갖 노력 끝에 생각한 방책 다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럴듯한 것은 오로지 하나만 남았으니, 그는 이 일이 어려움을 알아도 살기 위해서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간 노력을 이제 한번 쓸 때가 되었습니다.”

“노력? 비위 맞추는 일들을 말하는 것이오?”


물음에 담긴 것은 씁쓸함 뿐이니 쇼시쓰가 한 말은 비꼼이 아니라 한탄이라 할 수 있었다.


이에 기소는 내심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말을 이었다.


“유구는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아직은 성인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쇼시쓰의 말은 생각보다 진리에 접근한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소는 그런 건 어찌되도 좋았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일단 자신이 살고 보는 것이었다.


또한 기소에게 있어서 주변이란 자신이 부귀영화를 누린 후에야 돌아보는 것이니 쇼시쓰의 말은 말 그대로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제길, 지금이 없으면 나중도 없는데 무슨 말이야?’


속으로 불평을 토하기도 잠시, 기소는 불안이며 불만을 모두 내면에 감추고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하면 유구 역시 존속할 것이며, 존속하여 힘을 기르다 보면 언제고 기회가 올 것입니다.”

“하아.”


답답함에 한숨을 지으나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 기소가 한 말에 동의한 쇼시쓰는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언제 보러 가면 될 거 같소이까?”

“이야기를 들으니 인사를 위해 심양으로 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때를 기다려 접하면 될 것입니다.”

“만나주겠습니까?”


상대는 이미 능력을 인정받아서 청나라 일원으로 자리 잡은 이였다.


더불어서 이제는 대명 전선 한 축을 맡은 장수이기도 하니 신분의 높고 낮음을 제하면 그쪽도 쇼시쓰보다 청나라에 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쇼시쓰는 불안이 있었으나 기소는 개의치 않았다.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말이지요.’


쇼시쓰에게 없는, 아니 그에게도 있으나 그보다 수십 배는 더 절박함을 품은 기소는 이를 악물었다.


“제가 먼저 접하겠습니다. 왕제 저하께서는 부디 마음을 굳게 하여 두려워하지 마십쇼. 저들은 처지가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본디 그들 풍조는 당당한 사람을 높게 사니 그것이 나을 것입니다.”

“······부탁하겠소.”



***



“이야, 심양에 오는 게 대체 얼마만 인지 모르겠습니다.”


신타로가 편함을 즐기며 촐싹거리는 말로 제 스승에게 말하나 스승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이미 몇 번이고 읽어 낡아진 편지에 다시 시선을 주었으니, 신타로는 그 모습에 무안함을 느끼며 머리를 긁적였다.


무안함은 이내에 민망함을 불러들였으니 신타로는 그 감정들을 덜어내기 위해 사방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나 주군인 시마 요스케는 저 멀리 앞에 있고 주변에 있는 것들은 죄다 아랫사람들이라 괜히 말을 걸어도 더욱 어색하여질 거 같았다.


‘아랫사람이라.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어엿한 장수구나.’


일개 낭인으로 막부에서 보증해 주겠다는 말에 끌려 바다를 건넌 것도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다.


그때는 이국땅에서 어찌 살아남아서 돌아갈지만 걱정했는데 이제는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지위가 높아지고 삶도 편해졌다.


이 시작은 막부의 등록과 보증이나 그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러니 신타로는 제 신세가 나아진 계기를 스승과의 만남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여 그가 무사시를 존경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신타로.”

“예!”


그런 생각을 품은 신타로니 자신에게 별 대답을 하지 않은 스승이라고 하여도, 그리고 그 부르는 소리가 아무리 나직하여도 바로 대답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기운차게 대답한 신타로는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무엇이건 바로 대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들려온 말에 그는 그 마음 먹은 것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후세에 어떻게 남을 거 같으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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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64 ageha19
    작성일
    24.04.03 22:26
    No. 1

    명나라 공주를 잊고 있었네요. 4개국의 여인들이 각자 자신이 할 일을 하며 미래로 나아가고, 유구는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 변화의 물결에 어떻게든 편승하려 하고... 이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려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g9******..
    작성일
    24.04.04 08:07
    No. 2

    시마씨는....쵸소카베씨로 다시 바꿀까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천년고목
    작성일
    24.04.04 21:18
    No. 3

    잘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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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2 24.05.20 91 14 12쪽
585 584화 칼을 뽑았다면 +6 24.05.19 82 14 13쪽
584 583화 말의 무게 +1 24.05.18 85 15 12쪽
583 582화 의무는 누구의 것인가 +1 24.05.17 83 12 12쪽
582 581화 본으로 삼을 나라 +4 24.05.16 82 13 12쪽
581 580화 너무나 큰 승리 +3 24.05.15 86 15 12쪽
580 579화 수적질 +2 24.05.14 79 12 13쪽
579 578화 모두가 거래한다 +2 24.05.13 92 12 12쪽
578 577화 감춰진 칼 +2 24.05.12 83 13 12쪽
577 576화 순서가 바뀌면 이야기가 바뀐다 +3 24.05.11 88 14 12쪽
576 575화 필요에 의한 존재 +2 24.05.10 83 9 14쪽
575 574화 아직 돌아갈 수 없는 사람 +2 24.05.09 81 15 13쪽
574 573화 사람은 언제고 떠나야 한다 +2 24.05.08 90 12 13쪽
573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2 24.05.07 97 13 12쪽
572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1 24.05.06 96 12 12쪽
571 570화 화를 부르는 선의 +3 24.05.05 92 13 13쪽
570 569화 사소함에 숨겨진 진실 +1 24.05.04 97 13 13쪽
569 568화 가운데 나라 +4 24.05.03 97 13 15쪽
568 567화 성공은 열기를 지핀다 +3 24.05.02 102 14 13쪽
567 566화 잡을 수 없는 기회 +3 24.04.28 112 14 13쪽
566 565화 갖다 붙이기 +2 24.04.27 108 14 11쪽
565 564화 배움의 완성 +3 24.04.26 111 14 12쪽
564 563화 누구나 가진 것은 +1 24.04.25 110 15 12쪽
563 562화 외지 +3 24.04.24 99 10 12쪽
562 561화 말이 품은 가치 +2 24.04.23 112 12 12쪽
561 560화 달콤한 독 +3 24.04.21 108 10 12쪽
560 559화 한번 엮인 인연은 끊기 어렵다 +1 24.04.20 109 12 12쪽
559 558화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말한다 +4 24.04.19 108 13 11쪽
558 557화 번왕의 조건 +3 24.04.18 127 13 12쪽
557 556화 죽은 말 +2 24.04.17 124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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