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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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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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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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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DUMMY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남양 북동쪽 평정산.


이곳에는 수만에 이르는 순나라 군세가 진을 치고 있었다.


수만이라는 숫자가 우습지는 않으니 멀리서 보면 순나라 군의 위용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말이다.


실상은 겉모습에 미치지 못했으니 당장 여기에 있는 이들 가운데 정말로 싸울 수 있는 이는 반절에도 미치지 못했다.


과반이 넘는 이들은 그저 막대기 하나 휘두르면 충분하다는 말을 듣고 급히 동원된 일반 장정에 불과했다.


물론 기세가 있다면 충분히 전력이 될 이들이기는 하나 이런 전제가 붙는 순간부터 병사로서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를 증명하듯 진지 내에서 벌써 몇 번이나 울렸는지 모를 외침이 있었다.


“야, 이놈들아! 창은 잘 간수하라고 몇 번을 말하냐!”


순나라 정천호 이양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손가락질하니 창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뒹굴게 하고 시시덕거리던 사내들이 화급히 창을 주웠다.


“할 일이 없으면 적어도 막사에 가서 창은 잘 모셔놓고 쉬라고 말했는데, 내 말이 아주 말 같지가 않지? 엉?”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양이 눈을 부라리자 사내들은 벌벌 떨면서 대답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는지 엄한 얼굴로 외쳤다.


“알았으면 당장 들어가!”


으르렁 거리는 고함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막사로 달리니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이양은 이내에 고개를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에 멀리서 행렬이 다가오는 게 보이니 이양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다가 돌연 두 눈을 크게 떴다.


‘양곡? 아!’


적지 않은 수레에 양곡이 가득 실려 있다면 보통 병량을 옮겨오는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진내에 병량이 부족하다는 말을 이양은 듣지 못했다.


또한 정천호라는 직함은 장식이 아니니 군문의 일이 아니라고 한들 이것저것 건너건너 소식이 들어오곤 했으니, 그 소식통에 따르면 지금 순나라에 저렇게 굳이 양곡을 더 보낼 이유며 여유는 없었다.


‘오랑캐놈들이 돌려준 것이렷다.’


동시에 자신이 전에 빼앗겼던 것이기도 하니 진내로 들어오는 수레들을 보며 이양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렇게 책임감과 분노를 번갈아 느끼던 중 이양은 한 가지 이상함을 느끼고 중얼거렸다.


“······어? 저것밖에 안 되었었나?”



***



“반절이라고?”


평정산 부근에 이르러 진을 친 순나라 정왕 이자성은 이부상서 이암이 알린 말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급하게 군세를 끌어모으고 나왔으나 이는 사실상 얕보이지 않기 위한 것이니 사실 위협하는 정도로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은 된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어려워질 거 같은 직감이 드니 그 직감은 이어진 이암의 말에 현실이 되어 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반절은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에 보낸 양에서 타버린 걸 제하고 셈하면 얼추 비슷한 거 같습니다.”


이암이 덤덤히 이르는 말에 이자성은 얼굴을 대번 일그러트렸다.


“아주 얕보고 있군그래. 도적들이 딱 절반만 가지고 도망했다? 아니면 절반만 어디에 버렸나? 아아, 그놈들이 아주 대식가라서 그 많은 양곡을 벌써 반절이나 먹어 치운 게로군. 이거 내가 미처 몰랐군, 미처 몰랐어!”


신경질적으로 이르나 이암은 그 모습을 탓하거나 제지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명백한 도발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적에게서 얻은 양곡을 돌려주겠다는 시점부터 그렇긴 했다.


하지만 본래 양곡을 보낸 쪽인 순나라에게 잃은 양곡의 절반을 딱 맞추어 보내는 것은 이 이상의 도발이었다.


“알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것이겠지요. 아니, 격동하여 뛰쳐나오길 기다리는 걸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겁 많은 등신, 나가면 용감한 등신이다?”

“이기면 용감한 사내라고 듣겠지요.”


이자성이 묻는 말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 이암은 곧 진지하게 얼굴을 바꾸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아갈지, 머무를지라면 이미 선택지는 없소. 이곳에 있는 것은 더 멀어지면 소식을 받기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불과함을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소이까.”


확실히 이자성이 말한 것처럼 이암은 잘 알고 있었다.


이곳 평정산에 의지하여 진을 꾸린 것은 이곳을 전장으로 삼기 위함이 아니었다.


만약 청나라에서 달려든다면 기쁘게 맞아서 응전할 것이다.


이미 진을 친 것은 물론이고 이곳은 순나라 땅이니 승산은 그들에게 크게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치들이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절대 먼저 달려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자신들이 나와서 깊숙히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걸 거절할 생각은 없고, 이자성 역시 바라는 바기는 했다.


물러설 수는 없다.


순나라는 명나라가 자신들을 지키지 못하고 도움이 되지 못함을 주장하여 일어난 민란이 근간인 나라다.


그런 나라가 어렵다고 하여 나아가지 않으면 그 순간 신뢰를 잃어버리고 만다.


특히나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이자성이라면 더욱 피할 수 없었다.


그리되면 그들은 돌이킬 수 없으니 순나라와 이자성의 선택지는 오로지 하나, 초지일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과는 별개로 이곳에 오기 전에 남양에서부터 누누히 들은 말이 이자성을 주저하게 하였으니 바로 그렇게 하여 개전하는 순간 승패와 별개로 순나라에 책임을 물을 아군 아닌 아군이 주변에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승리하여 공을 세움으로 지위를 단단히 한다는 선택지도 있기는 하지만 순나라로서는 이도 썩 달가운 방식은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제일가는 번국 같은 게 아니라 천명을 쥐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나아가야 하지만 지금 나아가면 그 후가 뻔하다.


하여 이자성이며 이암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예부상서 우금성이 무엇이든 답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말이다.


“우 선생, 아니 예부상서에게 연락은 없소이까?”

“아직 없습니다.”

“며칠이나 더 버틸 수 있겠소?”

“이곳에 진을 치고 제법 시일이 흘렀습니다. 양곡의 상태를 획인하고 뒤로 보내는 일을 한다고 치면 아마도 사나흘은 벌 것입니다.”


사흘이나 나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니 이자성은 크게 고민하는 얼굴로 안색을 흐렸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이자성은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흘. 딱 사흘만 기다리고 소식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가겠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서야지. 이미 칼을 뽑았거늘, 한번 휘둘러보지 않고 넣으면 세인들이 얼마나 비웃고 우습게 보겠소이까?”

“칼을 뽑게 한 자가 크게 숙이며 사죄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으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몽중몽으로도 부족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안타까움을 입에 담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아쉽지 않은 듯한 이암은 고개를 조아리며 주저 없이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 이리 의기를 따르고자 말씀하시는데 어찌 신이 반대하겠습니까. 이르신 대로 빈틈 없이 준비하겠나이다.”


왕과 신하는 이렇듯 각오를 다졌으나 정말 그렇게 된다면 한줄기 미련이 남을 터였다.


그들에게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미련을 남기는 일은 없었다.


바로 다음 날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우금성이 돌아온 덕이었다.



***



“쿨럭, 쿨럭.”


제 몸에서 이는 먼지에 손을 휘저으며 기침하던 우금성은 이자성이 이 자리에 있음을 기억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신이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전하께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괜찮소. 당장 급한 일이 있는데 고작 작은 기침 하나로 신하를, 그것도 그대와 같이 사람을 탓하고 벌해서야 쓰나.”


이는 단순한 격려나 용서가 아니니 이자성은 이런 시시콜콜한 예의보다는 우금성이 들고 온 소식이 어떠한지가 더 중요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암 역시 눈으로 궁금함을 드러내니 우금성은 두 사람의 심정을 어렵지 않게 깨닫고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습니다.”

“좋은 소식부터 듣도록 하지.”


이자성이 주저 없이 결정하니 우금성은 곧장 좋은 소식을 입에 담았다.


“명나라에서 수군을 움직이기로 하였습니다. 적어도 독단으로 전쟁을 시작했다는 말은 피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그건 좋은 소식이군. 헌데 수군이라니, 대항해에 그렇게 보내고도 아직 배와 병사가 남았다고? 아니, 남을 수는 있지만 이리 빨리 조직한다고?”


놀랍다는 얼굴로 묻는 이자성에게 우금성은 제가 보고 들은 것을 알렸다.


“하남 수군이라 칭하여진 이들은 전부터 명나라에서 첩보를 입수하고 준비하였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하남 수군? 첩보를 입수했다?”


하남 수군이라는 이름에 더해 명나라가 이 일이 있기 전부터 대비하였다는 사실을 안 이자성은 미간에 주름을 가득 잡았다.


동시에 의심이 드니 그 의심이 옳다고 하듯 우금성이 말을 이었다.


“나쁜 소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명나라는 이번에 하남 수군을 내세우면서 제대로 한번 해볼 생각인 모양입니다.”

“수군으로 보하고 우리 순나라를 앞세워서 전에 양도한 땅들을 수복하겠다, 그 말이로군.”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다만 아셔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알아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고 이른 우금성은 진중한 얼굴로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명나라는 수군만 움직일 생각이 아닙니다. 북방군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북방군!?”


북방군이라고 함은 명나라 내에서 가장 강력하던 이들이며 이자성이 두 번째 일어나기 전에 호되게 당했던 상승장군 홍승주 휘하에 있던 병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움직인다는 말에 크게 놀란 것도 잠시, 이자성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들은 전에 북경이 함락되는 일을 전후하여 소멸한 군이 아닌가?”

“산해관 병사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자성의 말에 짐작하고 입을 연 것은 이암이었다.


허나 말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으니, 그는 그 의아함을 곧 입에 담았다.


“헌데 조련에 제법 애먹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군요.”

“일부만 움직일 생각인 듯하외다.”


자리가 자리니 이암에게 평소와 달리 말한 우금성은 다시 이자성을 보았다.


“전하, 그들이 말하기를 하남 수군에 보급하며 만에 하나 싶은 일이 있다면 그 도움을 위해 대기할 것이라고 하였나이다. 하지만 이는 소신이 보기에 믿기 어려운 일이니, 이미 명나라는 이것만으로 수만에 이르는 병력을 동원할 생각으로 보입니다.”

“흐음.”

“그 칼끝이 청나라를 향하여 친다면 다행이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다른 곳으로 휘둘러질 우려도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청나라로, 북경이나 낙양을 향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남양을 향해 들이닥치면 순나라로서는 막을 도리가 없었다.


물론 저들이 자신들을 번국으로 삼았고 이제는 함께 싸워 청나라를 몰아내고자 하고 있으니 당장 그런 일을 생각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오묘해서 한번 머리에 떠올린 가능성은, 특히나 그 가능성이 자신에게 좋지 않다면 간과하기 어려웠다.


“하여 명나라에서 주도적으로 나서고자 하는 것은 좋은 소식이나 그들이 이렇듯 본격적으로 나섬은 나쁜 소식이니 대비가 필요합니다.”

“다른 번국들을 끌어들이자는 말인가?”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양나라와 대리국을 끌어들여서 최대한 변수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 역시 나쁜 판단은 아니지만 우금성은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명나라에서 나서고자 하고 있습니다. 허니 우리 순나라는 번국으로서 상국이 그 칼을 마음껏 휘두를 자리를 마련하고 상대 역시 준비하여 줌이 정녕 참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판을 벌인 사람이 되기 마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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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594화 자리와 사람 +1 24.05.29 78 12 12쪽
594 593화 고도(古都) +1 24.05.28 73 12 12쪽
593 592화 세상은 준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 24.05.27 90 12 14쪽
592 591화 두 번째 호고 +1 24.05.26 82 13 13쪽
591 590화 살아있으면 계속할 수 있다 +1 24.05.25 86 13 13쪽
590 589화 예상은 언제나 어긋난다 +2 24.05.24 79 12 11쪽
589 588화 갚아줄 빚 +1 24.05.23 83 13 12쪽
588 587화 백안백이(百眼百耳) +2 24.05.22 90 13 15쪽
587 586화 구관이 명관 +3 24.05.21 91 11 14쪽
»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2 24.05.20 97 14 12쪽
585 584화 칼을 뽑았다면 +6 24.05.19 88 14 13쪽
584 583화 말의 무게 +1 24.05.18 91 15 12쪽
583 582화 의무는 누구의 것인가 +1 24.05.17 87 12 12쪽
582 581화 본으로 삼을 나라 +4 24.05.16 88 13 12쪽
581 580화 너무나 큰 승리 +3 24.05.15 91 15 12쪽
580 579화 수적질 +2 24.05.14 85 12 13쪽
579 578화 모두가 거래한다 +2 24.05.13 97 12 12쪽
578 577화 감춰진 칼 +2 24.05.12 90 13 12쪽
577 576화 순서가 바뀌면 이야기가 바뀐다 +3 24.05.11 97 14 12쪽
576 575화 필요에 의한 존재 +2 24.05.10 90 10 14쪽
575 574화 아직 돌아갈 수 없는 사람 +2 24.05.09 87 15 13쪽
574 573화 사람은 언제고 떠나야 한다 +2 24.05.08 96 12 13쪽
573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2 24.05.07 102 13 12쪽
572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1 24.05.06 101 12 12쪽
571 570화 화를 부르는 선의 +3 24.05.05 97 13 13쪽
570 569화 사소함에 숨겨진 진실 +1 24.05.04 102 13 13쪽
569 568화 가운데 나라 +4 24.05.03 102 13 15쪽
568 567화 성공은 열기를 지핀다 +3 24.05.02 107 14 13쪽
567 566화 잡을 수 없는 기회 +3 24.04.28 118 15 13쪽
566 565화 갖다 붙이기 +2 24.04.27 114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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