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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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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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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5.0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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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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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2쪽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DUMMY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좌량옥, 좌량옥이라.”


황주에게 한동안 이야기를 들은 병부시랑 진신갑은 그에게 방을 내어주고 잠시 쉬도록 했다.


그가 심양까지 어렵게 찾아와서 건넨 제안은 분명 진신갑에게 있어서도 득이라고 할만한 이야기였다.


이대로 가면 그에게 남은 길은 배반자라고 누명을 쓰거나, 아니면 정말로 배반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허나 양쪽 모두 진신갑에게 달가운 일은 아니었으니 누명 쓰는 일이 싫음은 당연하거니와 정말로 몸을 돌리는 것은 당장은 좋고 편한 일일지언정 그 이후에 정말 고난할 게 눈에 뻔했기 때문이었다.


살아서는 공적을 세우지 못하면 팽 당할 걱정을 낮에도 하고 밤에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죽어서 편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니 진신갑은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망탁조의같은 인간이라고 손가락질할 게 눈에 선했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잠시라도 그 광경을 상상한 순간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소름이 돋았다.


그런 진신갑에게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제 선택지는 두 가지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다른 선택지를 만들고자 하면 반드시 좌량옥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명나라 내부에 협력자가 있기에 생기는 것이며, 지금 내부의 협력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좌량옥 뿐이었으니 말이다.


더불어서 좌량옥이 왕작을 받을 예정이라는 건 크나큰 가점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좌량옥의 지위는 그 봉토가 개봉이며 실세인 내각 대학사 겸 병부상서 양사창의 눈에 낫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반쯤은 유명무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왕작은 왕작, 그만한 지위에 있는 이가 말한다면 팥으로 메주를 쑤고 해가 남쪽에서 뜬다고 말해도 적어도 한번은 듣는 척을 해야 한다.


‘그놈과 손을 잡아? 이 진신갑이가?’


좋게도 나쁘게도 진신갑은 좌량옥이라는 인사를 알았다.


전에 들은 평가며 소문도 그렇지만 개봉 전투로 인해 소문이 돌기 시작하니 심양에서도 그 이름이 듣기 어렵지 않았다.


하여 예전에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와 지금 들린 소문 그리고 한 때 마주했던 인상을 기억하면 좌량옥은 썩 믿음직한 인사라고 하기 어려웠다.


‘제게 불리하면, 혹은 면피하거나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버리는 걸 꺼릴 놈이 아니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진신갑 역시 엄청나게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욕심을 부릴 때와 아니 부릴 때 정도는 구분할 줄 아니 진신갑이 보기에 좌량옥은 그만도 못한 소인에 불과했다.


이번에 들은 사정만 하여도 그렇다.


정히 싫다면 머리를 땅에 박아서라도 사양하면 그만이다.


아니면 산둥 감찰을 끝낸 뒤에 자신이 부족함을 들어서 자리를 내려놓거나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양사창을 성토하는 말을 보냄은 독이 든 떡이라고 한들 입에 들어간 이상 절대 뱉지 않겠다는 욕심에 불과했다.


‘······하.’


그러던 중 진신갑은 문득 깨달았다.


제가 좌량옥과 손잡기를 왜 이렇게 꺼리고 있는지 말이다.


“비슷하군, 참으로 비슷해.”


차마 하기 싫은 말이나 구태여 입에서 내어 말한 진신갑은 제 말과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품었다.


우습게도 진신갑이나 좌량옥은 닮은 점이 얼마간 있었다.


나라가 망하건 말건 제 안위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진신갑 본인은 좌량옥보다 아주 조금 낫기는 하다.


적어도 황상이 명하면 그것이 어떠한 위험이건 거절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선황이 강하게 압박하고 내몬 끝에야 그러하였음을 생각하면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진신갑은 그러한 압박이 없었다면 지난날 북경 바깥에 있던 청나라 군세를 치는 일이며 심양에 오는 일과 같은 것들을 하나도 자진하여 맡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전에는 공명심을 비롯한 여러 욕심이 있었음을 기억하면 더욱 그러했다.


그렇기에 진신갑은 좌량옥과 손을 잡기가 싫었다.


자신과 비슷한 면이 있음은 물론이고 더 못한 듯한 기분도 얼마간 드니 도무지 믿음직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에 따라서 거절하면 당장은 시원하겠지만 다시 이런 제안이 오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기약이 없다.


아니, 사실상 시일을 고려하면 이번을 놓치면 남은 길은 정말 싫어하던 두 가지 가운데 하나뿐이니 진신갑이 내놓을 대답을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대체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됐지?”


한탄을 입에 담은 진신갑은 이내에 각오를 다지며 바깥을 향해 외쳤다.


“객을 모셔라!”


짧은 호령에 바깥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황주가 그 얼굴을 보였다.


생각보다 빠른 부름에 기대감 절반, 걱정이 절반인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니 진신갑은 문득 전자보다는 후자에 응해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허나 그런 짓은 생각이 있다면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니 진신갑은 애써 충동을 참으며 근엄하게 말했다.


“대명을 위하여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수고가 많았소이다.”


시작은 가벼운 치하니 길조라 여겼음인가, 황주의 얼굴에 깃든 기대감이 한층 더 강하게 변했다.


그런 황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어지는 말은 그가 바라 마지않던 말들이었다.


“비록 심양에서 청나라 살피는 일이나 하는 부족한 사람이나 이렇듯 위하는 사람이 있는데 모르는 척할 수야 없을 노릇. 부디 좌 대인께 전해주시오. 이 진신갑, 멀리에 있으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돕겠다고 말이오.”

“가, 감사합니다!”


멀고도 먼 길을 온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에 황주는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이어진 말에 황주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다만 그러자면 응당 서로 소식을 전하는 일을 계속 해야 하오. 그대는 그럴 각오가 되어 있소이까?”

“예?”


소식을 전하는 일에 무슨 각오가 필요한가 싶겠지만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소식 전하는 자는 당연하게도 남경과 심양을 오가야 한다.


그리고 그 오감에 있어서 온갖 어려움이며 장해가 있을 터, 당연히 익숙한 이가 일을 맡음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적당한 인사는 황주 본인이니 그에게 의사를 물음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황주도 그러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으나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다른 법.


그것이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고되어 자신은 아니 하고 싶은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소, 소인이 하는 것은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리 왔으니 다음에는 또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뜻만 세운다면 내 반드시 이 일을 이루게 할 방책이 있네.”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걱정만 잔뜩 드는 말에 황주는 저도 모르게 자꾸 울상이 되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런 황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신갑은 결연한 얼굴로 다가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이 정도는 힘이 있네.”



***



황주에게 별로 달갑지 않은 자신이지만 사실 그건 진신갑으로서도 상당히 무리한 말이었다.


남경에서 심양까지 일개 상인들이나 백성들 조금이라면 모를까, 명백히 장수로서 전장에 나간 적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공적이 청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갈게 만드는 게 좌량옥이고 그 부관인 황주다.


그런 이들로 심양을 드나드는 일을 쉽게 하겠다고 하다니, 여러모로 생각해도 이건 진신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신갑이라고 믿는 구석도 없이 말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곳 심양에는 누구보다도 이러한 일에 힘이 있는 이가 있으니 말이다.


“대인, 채비가 끝났습니다.”

“허면 바로 가자.”


황주와 그 일행을 머물게 한 진신갑은 오히려 급히 준비하여 바깥으로 향하니 객을 두고 주인이 집을 떠나는 모습은 실로 기아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주는 객이라 이런 걸 알아도 당황할 뿐 말하기 어려웠고, 진신갑은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객이라고 하여 저만 보내면 당장에 이 일이 드러날 터, 여기서는 진신갑이 직접 움직이는 게 옳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찾아가고자 하는 곳에서 만나고자 하는 이는 진신갑이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저기 보입니다요.”


하인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곳에는 전에 진신갑의 집에 드나드는 것처럼 사람이 여럿 드나드는 모습은 없었다.


다만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은 부담 없이 오가며 가끔 예의를 취할 따름이니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자리한 이들이 어떠한 위엄을 품고 있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았다.


‘허허, 이게 번국이라는 말인가?’


과거를 생각하면 상전벽해라는 말이 우스울 지경이라고 여긴 진신갑은 새삼스러운 놀람을 곱씹으며 걸었다.


“나는 명나라 병부시랑 진신갑으로, 심양에는 전에 북경에서 화평을 위한 사자로 왔소이다. 그간 격조하였으나 다시금 옛일을 진행코자 대군자가를 뵙고자 합니다.”


문앞에 도착한 진신갑은 하인에게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나서서 공손히 문을 지키는 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문을 지키던 이들 가운데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마주 인사를 올렸다.


“대인, 어서 오시지요. 안 그래도 기다리던 참입니다.”


기다리던 참이라는 말에 진신갑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기다렸다?”

“남쪽에서 소식이 오지 않았습니까?”

“!?”


남쪽에서 소식이 오지 않았느냐고 대놓고 묻는 말에 진신갑은 모골이 절로 송연해졌다.


“어, 어떻게?”


황주가 그에게 온 것은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다.


또한 하인에게 물어서 살핀 정황으로 보건대 아직은 이 사실을 눈치챈 이도 없었다.


허니 적어도 오늘 하루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으니 무언가 내밀고 거래하고자 하면 오늘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여 바로 채비하고 준비하여 이곳을 찾았건만, 이들은 오히려 늦었다는 듯이 대하니 진신갑은 실로 두렵고 두려워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그런 진신갑을 향해 말을 걸었던 사내, 초관 이계영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선은 살피는 일을 언제나 게을리하지 않으며, 사귀는 일도 그러합니다. 다만 계속하여 신중하게 여기는 일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적대하는 일이 그러하다고 하겠습니다.”

“적대라니, 이 사람은 그런 의도가 추호도 없습니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날아드는 불똥은 일단 피함이 좋지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한 이계영은 손을 안쪽으로 내밀었다.


“드시지요. 대군자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선 외조 수장, 봉림대군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진신갑은 크게 위축되는 걸 느끼며 저도 모르게 침을 꿀걱 삼켰다.


허나 이곳에 온 이유도 그렇고 이렇게 권함을 받고 피하면 그거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며 화를 자초하는 일이니 진신갑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이계영 옆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진신갑은 작은 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내가 과연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대인께서 하시기 나름이라고 밖에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원론적인 말을 입에 담은 이계영은 선심 쓰듯 말을 덧붙였다.


“다만 대인께 얼마나 정의롭고 도리가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씀드릴 수는 있겠습니다. 우리 조선은 언제나 그렇듯 도의를 따르니, 이득이 있다고 하여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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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4 ageha19
    작성일
    24.05.07 22:33
    No. 1

    조선 : "너희 쪽에서 지금 불장난 치려는 정황 보이는 거 다 알고 있으니, 어설픈 흥정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서로 좋게 수습 좀 합시다."

    진신갑 : ("아, 까딱하면 나가린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g9******..
    작성일
    24.05.08 07:24
    No. 2

    수습하겠나..하..참..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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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593화 고도(古都) +1 24.05.28 72 12 12쪽
593 592화 세상은 준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 24.05.27 90 12 14쪽
592 591화 두 번째 호고 +1 24.05.26 82 13 13쪽
591 590화 살아있으면 계속할 수 있다 +1 24.05.25 86 13 13쪽
590 589화 예상은 언제나 어긋난다 +2 24.05.24 79 12 11쪽
589 588화 갚아줄 빚 +1 24.05.23 83 13 12쪽
588 587화 백안백이(百眼百耳) +2 24.05.22 89 13 15쪽
587 586화 구관이 명관 +3 24.05.21 91 11 14쪽
586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2 24.05.20 96 14 12쪽
585 584화 칼을 뽑았다면 +6 24.05.19 88 14 13쪽
584 583화 말의 무게 +1 24.05.18 90 15 12쪽
583 582화 의무는 누구의 것인가 +1 24.05.17 87 12 12쪽
582 581화 본으로 삼을 나라 +4 24.05.16 88 13 12쪽
581 580화 너무나 큰 승리 +3 24.05.15 91 15 12쪽
580 579화 수적질 +2 24.05.14 84 12 13쪽
579 578화 모두가 거래한다 +2 24.05.13 96 12 12쪽
578 577화 감춰진 칼 +2 24.05.12 89 13 12쪽
577 576화 순서가 바뀌면 이야기가 바뀐다 +3 24.05.11 95 14 12쪽
576 575화 필요에 의한 존재 +2 24.05.10 88 10 14쪽
575 574화 아직 돌아갈 수 없는 사람 +2 24.05.09 86 15 13쪽
574 573화 사람은 언제고 떠나야 한다 +2 24.05.08 96 12 13쪽
»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2 24.05.07 102 13 12쪽
572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1 24.05.06 101 12 12쪽
571 570화 화를 부르는 선의 +3 24.05.05 97 13 13쪽
570 569화 사소함에 숨겨진 진실 +1 24.05.04 102 13 13쪽
569 568화 가운데 나라 +4 24.05.03 101 13 15쪽
568 567화 성공은 열기를 지핀다 +3 24.05.02 107 14 13쪽
567 566화 잡을 수 없는 기회 +3 24.04.28 118 15 13쪽
566 565화 갖다 붙이기 +2 24.04.27 114 14 11쪽
565 564화 배움의 완성 +3 24.04.26 117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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