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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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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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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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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DUMMY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도승지가 그런 말을 하였다?”

“그러합니다. 가릴 일이 아니라고 들었으나 정녕 괜찮은지는 소신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외조 정랑 윤휴가 그답지 않게 자신 없이 이르는 말에 임금은 살짝 웃었다.


“사대부로서 이렇게 내게 고자질하듯이 말하는 것은 괜찮은 일인가?”

“드러나게 한 말이며 도승지 영감이 말하길, 나중에 직접 아뢸 것이나 먼저 고함을 부탁한다는 말이 있으니 가림이 없이 고하였나이다.”

“과연.”


윤휴가 하는 말을 들은 임금은 웃음을 살짝 짙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승지도 천상 사대부로다. 아니, 도승지기에 더욱 그러한가.”


저 혼자 중얼거린 임금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윤휴며 그 옆에 있는 통교견문사행감찰원 부제조 박연을 향하여 일렀다.


“도승지 김육은 아래에서 차근차근히 공적을 쌓아 올라온 이로, 그 경험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가 오르며 상리에서 벗어났다고 한 말은 들은 바가 없으니, 이렇듯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뜻을 보이는 게 그라는 말이다.”


김육이 많은 자리를 거쳐왔다는 건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었던 윤휴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살짝 감탄했다.


‘대단하구나. 나야 외조에는 빠삭하지만 도승지 영감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 여러 일을 아실 것이니, 참으로 귀한 인재시다.’


남들이 자신을 향하여 인재라고 하나 진정한 인재는 김육과 같은 이가 아닌가 싶었다.


더불어서 김육이 그에게 부탁한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윤휴에게 말한 것, 기근이며 그 외에 온갖 제도에 대해 알아보라는 것이 김육이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망라하여 보고자 함이라고 여긴 것이다.


“상께서 허하시면 그러한 일이 좋다고 여기니 조금 더 상세히 살피고 캐어 기록으로 많이 남기고자 합니다. 또한 그 일을 여럿에게 전하고자 하니, 부디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대항해로 우리 조선을 알리고자 하는 것은 사방에 교류하는 일을 늘리기 위함이다. 무릇 교류라고 함은 양자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니 굳이 처음에 말한 소개에 집착하여 언행을 좁힐 필요는 없다. 그러니 개의치 말고 최선을 다하라.”

“성상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며 고개를 숙이는 윤휴의 말에 임금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또한 그대들이 가져온 기록은 모두 공개될 것이다. 가림이 없이 말이다.”


이 말이 나온 후에 임금의 시선은 들어오며 인사 한번 올리고는 변변한 말 한마디 없는 박연에게 향했다.


“박연. 아니 벨테브레이여.”

“예, 전하.”


자신의 본래 이름을 불러주는 말에 벨테브레이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을 음미하며 숙고할 시간은 없었으니, 임금의 말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조선 사람이다. 허나 화란 사람이기도 하다.”

“······.”


무어라 대답하기 어려운 말에 벨테브레이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에 임금은 그를 향해서 다시 말했다.


“수구초심이라. 사람은 때가 이르면 그 나온 땅을 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그가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어도 그렇다.”

“······소신에게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두근거리는 가슴을 참으며 물으니 임금은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그대가 결정할 일이다. 이번 대항해를 통해 살던 곳에 닿았을 때, 그때에 정하라. 원한다면 그대로 그곳에서 머물고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나 벨테브레이는 그걸 그대로 좋다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벨테브레이가 아닌 박연이 그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성상께서 이렇게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분명 소신은 고국이 그립고 그곳에 두고 온 가족도 종종 생각합니다. 또한 지난 전쟁에서 쓰러진 두 사람을, 옛 친구들을 본래 살던 곳으로 보내어 안식을 취하게 하고 싶습니다.”

“내키지 않는가? 의외구나.”


의외라는 듯이 묻는 말에 곁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듣던 윤휴 역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 부제조께서는 어찌 고향 가는 일을 하기 어렵다는 듯이 말씀하시는지 도통 모르겠구나.’


윤휴가 그렇게 의아함을 품고 있자니 곧 벨테브레이가 박연으로서 입을 열었다.


“바라고 있으니 바라지 않으니, 소신은 이곳에서 부귀를 크게 얻었음은 물론이고 이미 연을 새로이 쌓았습니다. 지금 저는 모실 왕이 있는 신하요, 지킬 가정이 있는 아비며, 함께할 친우들이 있는 사람입니다.”

“과연. 가족이 문제라면 함께 가도 좋다고 하려고 하였거늘, 그대를 묶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구나.”


원한다면 가족도 함께 가도 좋다고 하는 말에 벨테브레이는 씁쓸함을 느끼며 다시 말을 고했다.


“성상의 헤아리심과 선하심은 진정으로 넓고 깊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서 조선 사람이되 조선 사람이 아니듯, 그들도 저 너머에서 같은 취급을 받을 것이니 차마 데리고 가기 어렵습니다.”

“그런가. 허나 사람의 돌아가고자 함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하여 지는 법. 이 말은 언제고 유효할 것이니 바란다면 말하라. 조선이 그대에게 좋은 나라로 기억되기를 원하지 속박하는 나라로 기억되기를 원치 않는다.”


임금은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후련하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물렸다.


“대항해에 대한 준비에 차질이 없다면 두 사람은 이만 물러가라. 잠시 쉬고 싶다.”

“예, 전하.”

“하명대로 따르겠습니다.”


이미 필요한 보고는 들어오며 인사와 함께 마쳤으니 더는 딱히 이야기할 것이 없던 지라 윤휴며 벨테브레이는 곧장 인사를 올리고 바깥을 향했다.


이들이 온전히 물러난 후에 임금은 가만히 그들이 있던 자리를 보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오지랖이라고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찌 모른 척을 하겠는가.”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을 입에서 난 임금은 씁쓸함을 가득 담아서 중얼거렸다.


“나는 알고도 외면할 사람이 되진 못한다.”



***



“부제조 영감께서는 돌아가실 생각이 전혀 없으십니까?”


궐을 나서며 조심스럽게 윤휴가 물으니 벨테브레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 생각이 없다고 하면 그것 또한 거짓이겠지요. 예, 가보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한 벨테브레이는 옛일을 추억했다.


떠나온 땅, 홀란드에 있는 부모와 아내 그리고 자식들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얼굴들이 잘 기억나지 않을 법도 하건만 여전히 기억이 생생하니 이는 벨테브레이가 은연중에 품은 소망이 작지 않음을 뜻하기도 했다.


자신의 소망이 작지 않음을 자각한 벨테브레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전히 그 땅이, 먹던 음식이, 뛰놀고 지내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기억나고 아내가 기억나며 자식이 기억납니다. 그러니 저는 분명 그리워하고 있고 보고 싶어 합니다.”

“헌데 어찌 그러셨습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얼굴로 윤휴가 물으니 벨테브레이는 복잡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방금 성상 앞에서 논하였듯, 저는 이제 이곳에도 그러한 추억이 있습니다. 받은 대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은 제게 또 다른 고향입니다. 하여 그립고 가고 싶으나 꼭 돌아가야 하는가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대답은 조금 전과 같습니다.”

“조금 전과 같다라.”


벨테브레이가 하는 말에 윤휴가 방금 성상 앞에서 들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런 윤휴의 귀에 벨테브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 돌아가야만 하는가 물으면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니라고 한 벨테브레이는 이제는 익숙하여진 제물포 풍경을 머리에 떠올리며 웃었다.


“전에 전쟁에서 두 동료가 죽었을 때, 저는 정말 세상에 홀로 남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정랑께서 다른 분들과 저를 찾아오시고 편히 이야기 하니 그러한 것이 끝이 아니라고 하듯 새로운 자리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자리에는 제가 오래전에 당연하게 여겼던 풍경과 사람 그리고 물건들이 보입니다.”


벨테브레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럼으로서 제물포 풍경이 진하여 짐과 동시에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홀란드 풍경을 떠올린 그는 이윽고 푸근하게 웃었다.


“고향이 이곳에 있으니, 아쉬움은 분명 있으나 그게 다입니다. 나중에 남은 가족들 얼굴을 조금 볼 수 있다면 만족할 겁니다. 저는 좋게도 나쁘게도 그 시절에 이러한 생활을 상상도 하지 못한 처지였으니 말입니다.”


전에도 훈련도감 소속으로 움직일 때도 품계는 낮았지만 녹봉이며 대우는 더 높게 쳐주기도 했다.


그것만 하여도 분명 전에 배 타던 시절보다 한참은 나았는데 이제는 부제조로 당상관이다.


여기에 더해 조선 조정이 풍족하여져서 들어오는 것도 이제는 더욱 많으니 굳이 이 생활을 버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두고 온 사람들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으니 이번 대항해에 따라가게 된 김에 그 소식을 알아볼 생각은 있었다.


혹여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면 조선으로 데리고 올 생각과 함께 말이다.


‘하하, 살아있다면 다행이겠지.’


속으로 작게 웃으며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치 못했는지 기억한 벨테브레이는 눈을 뜨고 윤휴에게 물었다.


“제가 이상합니까?”

“이상하다? 글쎄요, 저는 조선팔도에서 아직은 저보다 이상한 사람을 직접 보진 못해서 말입니다.”


농을 반 정도 섞어서 대답한 윤휴는 장난스레 웃으며 말을 덧부였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기대를 좀 하고 있습니다. 전에 허목이라는 유생도 그렇고 이 대항해로 제가 좀 평범한 축에 들기를 말입니다.”


그와는 또 다른 의미로 이질감을 품고 있는 윤휴의 말에 벨테브레이는 작게 웃었다.


“하하, 세상은 넓습니다. 꼭 이루실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이거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서방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은 셈이지 않습니까?”

“잘 아시는군요. 과연 전국에서 이름이 높은 분 답습니다.”


순순히 인정하는 말에 윤휴는 저도 모르게 묘한 얼굴이 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참. 괜한 말로 밀려버린 기분입니다.”

“특별함이 뭐가 나쁘겠습니까. 나라를 움직이는 분들은 그러한 분들이 많은 법이지요.”


말을 하며 벨테브레이는 방금 보았던 사람, 임금을 머리에 그리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왕이 어디에 또 계실까.’


있을 리가 없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생각은 그대로 굳어지니 벨테브레이는 그 생각을 가만히 품고는 걸음을 마저 옮겼다.


대항해를 시작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서 준비해야 했고, 그 준비하는 일들은 몇 번을 살펴도 모자라지 않았다.


이미 많이 하였고 다시 하기에 다소 귀찮다고 할 일이나 벨테브레이 본인을 위해서, 그리고 그를 귀히 쓰고 이렇게 크게 올려준 조선을 위해서라면 이러한 수고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음인가, 대항해 준비는 차근차근 준비되어 그날이 다가왔다.


일차적으로 보낼 이들이 떠나는 날, 삼국 대항해의 준비가 아닌 본격적인 항해 일정의 처음이라 할 날이 말이다.


그 시작점은 명나라 남경도 아니고 청나라 심양도 아니니 그 시작은 조선의 제물포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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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2 24.05.20 91 14 12쪽
585 584화 칼을 뽑았다면 +6 24.05.19 82 14 13쪽
584 583화 말의 무게 +1 24.05.18 85 15 12쪽
583 582화 의무는 누구의 것인가 +1 24.05.17 83 12 12쪽
582 581화 본으로 삼을 나라 +4 24.05.16 82 13 12쪽
581 580화 너무나 큰 승리 +3 24.05.15 86 15 12쪽
580 579화 수적질 +2 24.05.14 79 12 13쪽
579 578화 모두가 거래한다 +2 24.05.13 92 12 12쪽
578 577화 감춰진 칼 +2 24.05.12 83 13 12쪽
577 576화 순서가 바뀌면 이야기가 바뀐다 +3 24.05.11 88 14 12쪽
576 575화 필요에 의한 존재 +2 24.05.10 83 9 14쪽
575 574화 아직 돌아갈 수 없는 사람 +2 24.05.09 81 15 13쪽
574 573화 사람은 언제고 떠나야 한다 +2 24.05.08 90 12 13쪽
573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2 24.05.07 97 13 12쪽
572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1 24.05.06 96 12 12쪽
571 570화 화를 부르는 선의 +3 24.05.05 92 13 13쪽
570 569화 사소함에 숨겨진 진실 +1 24.05.04 97 13 13쪽
569 568화 가운데 나라 +4 24.05.03 97 13 15쪽
568 567화 성공은 열기를 지핀다 +3 24.05.02 102 14 13쪽
567 566화 잡을 수 없는 기회 +3 24.04.28 112 14 13쪽
566 565화 갖다 붙이기 +2 24.04.27 108 14 11쪽
565 564화 배움의 완성 +3 24.04.26 111 14 12쪽
564 563화 누구나 가진 것은 +1 24.04.25 110 15 12쪽
563 562화 외지 +3 24.04.24 99 10 12쪽
562 561화 말이 품은 가치 +2 24.04.23 112 12 12쪽
561 560화 달콤한 독 +3 24.04.21 108 10 12쪽
560 559화 한번 엮인 인연은 끊기 어렵다 +1 24.04.20 109 12 12쪽
559 558화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말한다 +4 24.04.19 108 13 11쪽
558 557화 번왕의 조건 +3 24.04.18 127 13 12쪽
557 556화 죽은 말 +2 24.04.17 124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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