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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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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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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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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DUMMY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저기 조선이 보입니다그려.”

“오오, 오오오!”


주청사 김류가 반가움을 담아 읊조린 말에 옆에 있던 좌의정, 아니 이제는 곧 영의정에 오를 이성구가 크게 반색하며 소리를 냈다.


그 말처럼 멀리 제물포가 보이니 제물포에 지금까지 별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던 이성구이나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기껍고 반가웠다.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살아서 돌아왔어요.”

“이제 막 환갑 넘기신 분이 과장이 심하십니다.”


태어남이 훨씬 빨라서 이미 칠순을 넘긴 김류가 농을 거니 이성구는 어색하게 웃었다.


“남경 가는 일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아무도 몰랐지 않습니까. 아마 영상 대감이 물러나시지 않았다면 이 사람이 몇 년이나 더 거기에 있어야 했을지 누가 압니까.”


그간 남몰래, 아니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남경에 남은 금양군 박미와 함께 품었던 걱정을 입에 담은 이성구는 문득 고개를 돌려서 떠나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금양군 대감도 이 자리에 계셨다면 좋았을 것을.”

“누군가는 남아야 하니 어쩔 수 없지요.”


남경에 있는 조선 고관들이 일제히 돌아간다고 하면 명나라에서 무엇을 말할지 모르니 누군가는 남아야했다.


달리 사람이 남경에 갈 예정이라고 하나 그것은 일단 이성구가 돌아간 다음에 이루어질 일이었다.


그러니 이성구는 남을 수 없고, 김류는 주청사로서 할 일을 다하였으니 이제 돌아가서 있었던 일들을 고해야 했다.


하여 남는 것은 소거법으로 박미가 되었으니 이성구며 김류는 남경을 떠나는 날 박미가 부러움이 섞인 얼굴로 그들을 보았던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을 떠올린 이성구는 차마 박미에게도 나누지 못했던 불안을 입에 담았다.


“사실 남경에서 거하는 동한 이 사람, 몇 년 전에 졸하신 사일 대감처럼 되진 않을까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릅니다.”


전에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대사간 김반을 언급한 이성구는 세월을 배로 먹은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그만하면 오히려 낫지요. 여차하면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뼈만 고향 산천에 묻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악몽을 꾼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진심을 담아 이른 이성구는 이제 죽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품었다.


곁에서 가만히 그를 살피던 김류는 그러한 속내를 짐작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다했으니 죽어야지, 같은 소릴랑 할 생각은 접어두시오.”

“흠흠, 누가 죽고 싶다고 그러십니까. 응당 할 만큼 했다면 내려놓는 것도 답이 아니겠습니까.”

“내려놓기는 무슨. 이 나라가 얼마나 바뀌고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알면서 그런 거라면 그대는 참 욕심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좋은 거 아닙니까.”


소싯적 물욕을 한껏 부린 김류의 말이라 그런가 이성구는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김류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당장 재물 모으는 일이야 재밌고 좋지요. 그래요, 이 사람은 그런 거 좋아했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나이 먹을수록 선후가 바뀌더이다.”

“선후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재물 모으는 것이 좋았으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내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류는 이렇게 말하고는 제가 언제쯤 그렇게 생각하였는지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묘년 즈음이 아닐까 싶소이다.”

“허어.”


지천명을 한참 넘긴 다음에나 생각하여 보았다는 말에 이성구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김류는 그가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기왕에 꺼낸 말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하여 후대를 생각하여 슬슬 아들이며 손자를 돌보기 시작했지요. 누가 뭐라고 하든 내 이름은 그 아이들이 남겨주리라, 그렇게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더 긁어모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김류의 축재에 열중한다는 소문은 그도 알음알음 들었던 터라, 사실상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한 말이 도는 걸 김류도 알고 있으니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오. 뭐, 들어오는 재물을 막지는 않았지만 말이외다.”


들어오는 재물을 막지 않았다는 말이 얄밉게 들린다고 여긴 이성구는 다소 뚱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뭘 하셨다는 겁니까?”

“아들이며 손주 앞길을 열어주려고 했지.”


짧게 말하였으나 그 안에 담긴 만감은 이성구도 느낄 정도로 강하고 다채로웠다.


그리고 말한 장본인도 그저 그 말로 마치는 건 어려웠던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아들놈은 머저리였더군.”

“······관옥 대감.”

“그래도 아들이라고 구명할 생각을 품기도 했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임을 알고 그저 울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소이다.”


김류는 벌써 세월이 제법 흘러서 어느새 십 년이 멀지 않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침중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김류는 애써 얼굴을 밝게 하며 말을 이었다.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졌군. 아무튼 각설하고 본제로 돌리자면, 내가 보기에 그대는 후대며 이름에 대한 욕심이 없어 보인다는 말이외다.”

“이 사람이 말입니까?”


좌의정까지 올라오고 이제는 영의정에 오를 예정인 사람에게 공명심이 없다는 말에 이성구는 어처구니없음을 넘어서 자꾸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올 거 같았다.


그것을 억지로 참고 있자니 김류가 이르는 말이 다시금 들려왔다.


“지금까지야 그것으로 충분히 이름이 남았고, 중히 보였겠지. 그런데 이후도 그럴 거 같소이까?”


김류는 그렇게 말하고는 보란 듯이 양팔을 벌려서 사방을 가리켰다.


무심코 그 움직이는 모양을 따라 사방을 본 이성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이 탄 배 주변을 유유히 항해하고 있는 명나라 선단이었다.


“재주 좋게 양선을 다섯이나 구하고 명나라 배도 이십은 됩니다. 남경에서 귀동냥하니 청나라도 이만큼은 준비한다고 하더이다.”


이만큼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혹여 명나라 사람들이 멀리서 입 모양 보고 그들이 나누는 말을 캐어갈까 조심함이라, 실은 그들 듣기로 청나라는 적어도 열 척은 더 준비하여 서방에 보내고자 한다는 말이 파다했다.


이에 명나라도 배를 더 준비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이상 전력을 나누는 것은 위험하다고 여겨서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조선에서도 양선 두 척을 준비하고 조선 배도 열을 준비하여 보내고자 하고 있소이다. 이러한 와중에 정승이 되었다고 한들 무슨 대단한 기록이 될까.”

“크흠.”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라 이성구는 겸연쩍은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김류는 가만히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시기가 좋으니 이름을 올릴 기회가, 아주 대대로 이름을 남길 기회가 아주 많지 않소이까.”

“흐음.”


다른 방향의 명성이긴 하나 확실히 욕심을 내어볼 만한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이성구는 점차 다가오는 제물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말씀은 아나 저는 일단 조선에 돌아온 걸 기뻐하겠습니다.”

“그러시오. 그것을 막을 생각은 없으나 부디 내 말을 잘 기억해 두시오.”


김류는 그렇게 말한 후에 이성구처럼 제물포에 시선을 두며 말을 덧붙였다.


“사람이 참 신기한 게 다했다고 생각하면 멈추고, 아니면 계속 가더이다. 살 이유가 있어야 더 사는 법이다, 그 말입니다.”



***



‘드디어, 드디어 가는구나!’


제물포를 보며 가장 기뻐하는 것은 보통 조선인들일 것이라 사람들은 생각했다.


명나라 사람이건, 조선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적어도 태감 장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양국 사람을, 아니 저기 심양에서 오고 있을 사람을 포함하여도 가장 흥분하고 기뻐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장화는 자신할 수 있었다.


“대인, 이제 곧 조선입니다.”

“알고 있다! 출발하기 전에 한양에 들려 조선왕께 인사를 올릴 것이니 준비하라!”

“예, 대인.”


무관 하나가 와서 알리는 말에 장화는 애써 흥분을 감추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 흥분을 완전히 감추기는 어려웠으니 그는 이후에 있을 여정을 머릿속에 그렸다.


조선을 출발하고, 다시 명나라 해역을 지난다.


그리고 멀리 서쪽과 남쪽을 번갈아 항해하니 벌써 장화의 눈에는 천축이 보이는 거 같았다.


‘아니, 아니지.’


천축을 그리긴 하나 장화는 이내에 거기보다 더 멀리 있는 땅을 생각하며 기대를 품었다.


제가 명나라, 아니 동방에서 가장 많이 보고 멀리 간 최초의 사람이 되겠노라고 말이다.


그러자면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니, 장화는 그것을 이룰 자신이 있었다.


‘흐흐, 연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지.’



***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인.”


외조 정랑 윤휴가 살갑게 맞이하니 마주 앉은 장화는 즐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입니다. 아니, 전에 산둥에서 한 번 더 보았으니 아주 오랜만은 아니겠습니다그려.”

“하하, 그렇지요.”


산둥을 오가며 그곳에 새로 조선인들이 드나들 거점, 위해위에 윤휴가 머물며 감독할 때 보기는 하였으니 아주 오랜만은 아니긴 했다.


그러나 반가움이 줄어드는 건 아니니 장화는 그 반가움에 필적할 기대를 담아서 넌지시 물었다.


“이제 곧 대항해가 시작되는데, 내 정랑께 긴히 드릴 부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도울 수 있는 내에서라면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무엇이든 해줄 것처럼 말하나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들어줄 수 없는 일은 어떻게 되어도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치는 장화 역시 잘 알고 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번 대항해는 일종의, 아니 터놓고 말해서 경쟁입니다. 그리고 조선은 그 심판이지요.”

“심판이라.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과분한 말씀입니다.”


과분하다고 이른 윤휴이나 내심은 그것이 아주 틀린 말이라고 여기진 않았다.


‘심판이라기보다는 중재자나 협력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거 같긴 하지만 아주 틀린 건 아니지.’

“그리고 나는 전부터 바다에 뜻을 둔 사람으로, 이 경쟁에 이겨 내 이름이 명나라에 울리기를 바랍니다. 아니, 천하에 울리고 세세토록 남기를 바랍니다.”


들어주고 아니 들어주고와 별개로 장화의 마음은 이해하니 윤휴는 빈말이나마 좋게 해줄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충분히 가능하실 겁니다. 조금만 빠르면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예?”

“조금만, 조금만 빨리 가면 그럴 수 있습니다.”


장화가 이렇게 말하며 눈에 불빛을 강렬하게 보이니 윤휴는 그가 무엇을 부탁하고자 하는지 알았다.


“먼저 가고자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장화는 곧 제가 생각한 방도를 입에 담았다.


“사흘을 먼저 출발할 수 있다면 최선이며, 아니라면 반나절로 충분합니다. 그대들이 우리가 싸울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다고 하면 저들이 뭘 어쩌겠습니까?”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언뜻 들으면 그렇긴 하지만 윤휴는 지금 오간 말에 맹점이 하나 있음을 꿰뚫어 보았다.


바로 그 먼저 가는 것이 굳이 명나라일 이유가 없다는 점이었다.


장화 역시 이것을 알았으나 그는 모르는 척 말을 계속 이었다.


“부탁합니다. 꿈을 이루고 더 멀리 가려면 여기가 중요합니다.”

“······후우. 가능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양에 대인께서 가시기 전에 먼저 의향을 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장화의 눈에는 강렬함이 깃들어 있으니 윤휴는 그가 돌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며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지요.”



***



그렇게 윤휴가 복잡함에 고개를 끄덕이는 시각.


한양에서는 육로를 통해 한발 앞서 조선으로 돌아온 보국친왕 아이신기오로 예부슈가 소현세자와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장화와 비슷하면서 다른 조건을 꺼내니, 소현세자는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사흘 정도 늦게 가고 싶으시단 말씀입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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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2 24.05.20 91 14 12쪽
585 584화 칼을 뽑았다면 +6 24.05.19 82 14 13쪽
584 583화 말의 무게 +1 24.05.18 85 15 12쪽
583 582화 의무는 누구의 것인가 +1 24.05.17 83 12 12쪽
582 581화 본으로 삼을 나라 +4 24.05.16 82 13 12쪽
581 580화 너무나 큰 승리 +3 24.05.15 86 15 12쪽
580 579화 수적질 +2 24.05.14 79 12 13쪽
579 578화 모두가 거래한다 +2 24.05.13 92 12 12쪽
578 577화 감춰진 칼 +2 24.05.12 83 13 12쪽
577 576화 순서가 바뀌면 이야기가 바뀐다 +3 24.05.11 88 14 12쪽
576 575화 필요에 의한 존재 +2 24.05.10 83 9 14쪽
575 574화 아직 돌아갈 수 없는 사람 +2 24.05.09 81 15 13쪽
574 573화 사람은 언제고 떠나야 한다 +2 24.05.08 90 12 13쪽
573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2 24.05.07 97 13 12쪽
572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1 24.05.06 96 12 12쪽
571 570화 화를 부르는 선의 +3 24.05.05 92 13 13쪽
570 569화 사소함에 숨겨진 진실 +1 24.05.04 97 13 13쪽
569 568화 가운데 나라 +4 24.05.03 97 13 15쪽
568 567화 성공은 열기를 지핀다 +3 24.05.02 102 14 13쪽
567 566화 잡을 수 없는 기회 +3 24.04.28 112 14 13쪽
566 565화 갖다 붙이기 +2 24.04.27 108 14 11쪽
565 564화 배움의 완성 +3 24.04.26 111 14 12쪽
564 563화 누구나 가진 것은 +1 24.04.25 110 15 12쪽
563 562화 외지 +3 24.04.24 99 10 12쪽
562 561화 말이 품은 가치 +2 24.04.23 112 12 12쪽
561 560화 달콤한 독 +3 24.04.21 108 10 12쪽
560 559화 한번 엮인 인연은 끊기 어렵다 +1 24.04.20 109 12 12쪽
559 558화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말한다 +4 24.04.19 108 13 11쪽
558 557화 번왕의 조건 +3 24.04.18 127 13 12쪽
557 556화 죽은 말 +2 24.04.17 124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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