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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킬 님의 서재입니다.

전설급 마녀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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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킬
작품등록일 :
2024.02.0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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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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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결투

DUMMY

“조금만 더 매끄럽게··· 조금만 더 유연하게··· 조금만 더···”


마리엔은 두 손을 전방에 펼친 채 물의 생성과 흐름을 유지하는데 온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흘려보내는 물길은 전방에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일정하게 솟아올랐다.


이대로 유지만 하면 된다.

도자기를 빚는 도공처럼 흐트러짐 없이 신중하게···


“여!”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회오리바람이 맥없이 풀렸다.


촤르륵!


흐름을 유지하던 물길이 한순간에 쏟아졌다.


순간 벙찐 마리엔이 축축해진 땅바닥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 사이 테일러는 파이론을 반갑게 맞이했다.


“친구! 어쩐 일이야?”

”구경 왔지. 합작 마법은 잘 돼가?”

”물론이지! 거의 다 됐어.”

”니 모습 아직도 적응 안 된다야.”

“아. 정령 합체? 뭐 어쩌겠어? 사라가 여성에 가까운 모습인걸.”


테일러와 가볍게 인사한 파이론.

마리엔에게도 시선을 돌렸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하범은 곧바로 모른 척 눈을 피했다.

이윽고 터진 마리엔의 고함소리.


“야! 지금 인사나 할 때야! 테일러! 집중 안 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공터가득 메아리쳤다.


“친구가 응원하러 왔는데 인사 정돈 해야지.”


태연하게 웃는 테일러.


“어휴! 내가 속 터져 정말! 셀레나만 아니었어도 진짜 내가 아아악!”


두 주먹 꽉 쥐고 소리 지르는 마리엔.

파이론이 테일러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니가 잘못한 거 같으니까 빨리 사과해라.”


그러자 테일러는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아까부터 마법이 잘 안돼서 많이 예민해 했거든. 이때쯤 한번 터트려줘야 차분해져.”


---


---


하범은 근처에 자리를 깔고 앉아, 두 사람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비쭉 날 선 눈썹으로 집중하는 마리엔.

미소를 머금고 즐기는 테일러.


두 사람은 극과 극이지만 그래서 잘 어울렸다.

서로의 장점을 빛내주고, 단점을 커버해 주는 느낌이랄까.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마리엔이 물의 흐름을 통제해 중심을 잡고, 테일러가 바람을 회전시켜 효과를 증폭시킨다.


워터 스파우트는 조금씩 크기가 커지고 있었다.


극과 극인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 하나가 되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융합 마법진으로 마력을 밀어주는 자신과.

마력을 받아 블리자드를 발현하던 셀레나의 모습을.


‘셀레나···’


하범은 셀레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만년설처럼 차분히 내려앉는 하얀 머리칼.

백옥처럼 깊은 하얀 눈동자와, 눈꽃처럼 반짝이는 눈썹.

우윳빛 피부와 오똑한 콧날.

흰 도화지에 뿌려진 물감처럼 도드라지는 붉은 입술까지.


아름답고 우아하다.

모두가 우러러볼 만큼.

전생에서도 그녀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차갑다.

냉소적이고,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하범은 셀레나가 궁금했다.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사실 하범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제국의 황녀니까.


이곳에 온 이유도.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이유도.

학업에 집중하는 이유도.

전부 제국을 위해서였다.


그녀는 제국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제국을 위한 생각을 할 것이고.

제국을 위한 하루를 보낼 것이며.

제국을 위해 살아가겠지.


그리고 언젠가 제국을 위해 혼인을 맺을 것이다.


그녀도 그걸 바라고 있을까?


그럴 것이다.

그녀는 제국의 황녀니까.


하지만 그녀는 쓸쓸해 보인다.


그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그녀가 스스로를 죽이는 것처럼.


어쩌면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신경 쓰이는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후우웅! 콰과과과!


워터 스파우트.

물의 토네이도.

용오름.


두 사람의 합작 마법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됐다!”

”됐어!”


휘몰아치는 거대한 워터 스파우트 앞에서, 테일러와 마리엔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


---


【오라. 내게 오라. 복수를 갈망하는 소년이여.】


“닥쳐!”


아론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 정신없이 내달렸다.


한 달 동안 뒤척였다.

스스로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고.


하지만 틀렸다.

고민할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다.


이미 한 번 죽은 몸.

이제는 물러설 것이 없다.


짤랑.


주머니에 든 열쇠.

이것만 있으면.


‘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아티팩트 박물관.

그 앞에 섰다.


“이곳에 날 최강으로 만들어 줄 아티팩트가 있다.”


최강이란 단어에 전율이 일었다.


그래. 고작 여기서 무너지지 않는다.


모든 걸 포기하고 가문으로 돌아가 비루하게 살 바엔 차라리 뒤져버리는 것이 낫다.


뭐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설사 악마의 속삭임이라도 귀 기울여 들을 것이다.


철문에 열쇠를 꽂았다.


덜컹―! 드그그그그극―!


톱니바퀴가 회전하며 문이 열렸다.


【조금만 더 가까이.】


뛰었다.

수많은 아티팩트 사이를 가로질러.

안으로 안으로.


거대한 철문 다섯개가 드러났을 때.


알아챘다.


저 문이다.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검은 철문.

그 앞에 다가섰다.


【문을 열어라. 모든 것은 너와 나의 복수를 위해서.】


열쇠를 꽂았다.

톱니바퀴가 돌았다.


오랜 세월 녹슨 것처럼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검은 철문이 마침내 열렸다.


아론은 보았다.


수십 개에 달하는 봉인 마법진이 그려진 방 한가운데.

유리병에 담긴 검은 액체를.


그리고.

바닥에 흐르는 핏물과 해골과 시체들을.


“어서 오세요. 아론 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애로운 선홍빛 눈동자가 아론을 향해 싱긋 웃었다.


---


---


날이 밝았다.


하범은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개고 창가에 섰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치고받고 싸우기에 딱 좋은 날씨다.


문 앞에는 매일 옷을 다려주는 하인이 카트를 두고 간다.

오늘도 말끔하게 다려진 교복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하범은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은 조용했다.


마리엔. 테일러. 루시.


오직 그들만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조식을 먹고 있었다.


“친구! 이쪽이야!”


테일러가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손을 흔들었다.

다가가니 루시도 반갑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야. 파이론.”

”좋은 아침. 다들 부지런하네.”

”너가 비정상적으로 느긋한 거야.”


스프를 한 숟가락 떠먹던 마리엔이 툴툴거리며 덧붙였다.


“지금 어디 소풍가? 마녀랑 결투하러 가는 거잖아. 긴장도 안 되니?”

”맞아. 친구. 나도 어제 한숨도 못 잤다.”


하범은 씨익 웃었다.


“든든한 너희들이 있는걸? 난 크게 걱정 안 돼.”

”그래 너 잘났다.”


하범은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스프와 통밀빵으로 된 조식이 차려져 있었다.

가볍게 식사하던 하범이 문뜩 물었다.


“근데 아침 시간 치곤 조용하네? 아무도 없고.”


곁에 있던 루시가 설명했다.


“모두 일부러 자리를 피한 거야. 조금의 영향이라도 끼칠까 봐. 아카데미도 오늘은 쉬기로 했데.”


마리엔이 덧붙였다.


“지금 아카데미 전체가 난리 났다구. 결투 결과에 따라서 이곳의 존망이 걸렸는데. 당연한 일이지.”


그때 식당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메먼 학원장과 부학생회장 레니였다.


학원장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을 둘러보며 입을 뗐다.


“다들 일찍 나와주셨군요.”

”안녕하세요. 학원장님.”


루시의 인사에 학원장은 짧게 목례하며 말을 이었다.


“아카데미는 물론, 황실에서도 현 상황에 대해 다방면의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제국,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의 미래를 여러분들의 어깨에만 지게 할 순 없으니까요.”


학원장은 하범과 눈을 마주했다.


“황태자께선 이번 사태만 잘 해결되면, 당신에게 작위를 하사하시겠다 하셨습니다.”


작위라는 말에 모두가 놀란 얼굴을 했다.

하범은 태연히 물었다.


”작위요?”

”네. 여기 있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황태자께서도 마녀님과의 내기 결투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부디 건투를 빈다고 전해달라시더군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격식을 뺴고 조용히 고개 숙였다.


“미안하구나.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말뿐이라서.”


하범은 나지막히 답했다.


“학원장님이 사과하실 이유는 없어요. 내기 결투에 외부인이 끼어들 순 없잖아요. 그러니 학원장님은 학원장님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저희는 마녀를 꼭 데리고 돌아오겠습니다.”


그 말에 학원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도 저마다 공감하며 동조했다.


”멋진 말이야. 친구.”

”멋있어. 파이론.”

”들어줄 만 하군.”

”흥. 뭐. 틀린 말은 아니네.”


---


---


붉은 장미 숲.


“자. 들어가기 전에 다들 모여봐.”


하범의 말에 모두가 원형으로 둥글게 모여 섰다.

저마다의 눈빛으로 하범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막상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깐. 내가 숲에 온 게 몇번째더라?”

”두 번째!”

”미안. 루시. 그 전에 온 적이 있어서.”


그러자 마리엔이 치고 나왔다.


“세 번째야.”

”그것도 땡이야. 꼬마 아가씨. 친구는 그 전에 한 번 더 갔었다고. 친구가 말하던 거 기억 안 나?”

”흥! 그딴 걸 내가 기억할 것 같아?”


하범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손뼉을 쳤다.


“아무튼, 네 번째인 사람도 있고 세 번째인 사람도 있고 두 번째인 사람도 있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우리가 무슨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느냐야.”


하범은 모두를 둘러보았다.


“누구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누구는 셀레나를 구하기 위해, 누구는 마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리고 누구는 마녀에게 고백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한데 모였어.”

”고백? 누구야?”

”···”

”아무튼, 자. 이렇게 손을 모아.”


하범이 중앙에 손등을 내밀자, 루시와 테일러가 눈치 빠르게 손을 올렸다.

레니도 그 뒤에 말없이 손을 올렸다.


“이게 뭐 하는 건데?”


마리엔이 싫은 티를 팍팍 내자 옆에 있던 테일러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일종의 의식인가 봐. 빨리 친구 말대로 손 올려 꼬마 아가씨.”


결국 못 이기는 척 마리엔도 손을 올렸다.


“자. 하나둘셋 하면 아자아자 파이팅! 하면서 손 올리는 거야?”

”파이팅? 그게 뭐야?”

”힘내자는 의미. 자 간다!”


하범은 크게 소리쳤다.


“하나! 둘! 셋!”

”아자아자 파이팅!”


모두의 손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


---


“저하. 주디스 로즈와 연결되었사옵니다.”


카발라가 수정구를 들고 황태자의 곁에 다가섰다.


수정구에는 붉은 의복을 입은 채 검은 머리칼을 흐트러뜨린 마녀가 비쳐지고 있었다.


“네가 이번 세대 인간들의 왕인가.”


사근사근하면서도 간악한 목소리에, 황태자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황태자이지만. 뭐, 그렇소. 당신이 불의 마녀의 수장 주디스 로즈요?”

”그래. 그게 나다.”


그 순간 황태자는 공포를 느꼈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여인은 이 세계의 모든 불을 지배하는 마녀.

그런 그녀가 선한 인물은 절대로 아니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굴하지 않는다.

자신은 파이어 제국의 황태자니까.


“대재앙과 관련된 일이오. 아카샤마의 예언에 당신의 딸이 연관되어 있소. 그리고 지금 파이론이라는 인간이 당신의 딸과 내기 결투를 하고 있지.”

”호오. 그레이스가 말인가.”


주디스는 재밌는 사실을 알았다는 듯 웃었다.

황태자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렇소. 우리가 원하는 건 둘이요. 파이론이 만일 내기 결투에서 진다 하더라도, 당신이 딸을 설득해 주길 바라오.”

”다른 하나는?”

”당신의 딸이 붙잡고 있는 셀레나라는 여인을 확보하고 싶소.”


주디스가 짧은 시간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을 때, 황태자는 흐르는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수정구를 통해 대화할 뿐인데도,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황태자마저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뭐,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드리겠소.”

”파이론. 난 그자를 원해. 그를 내게 넘겨.”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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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재회 24.04.23 2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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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렉시벨 왕국 24.04.20 18 1 10쪽
54 렉시벨 왕국 24.04.19 17 1 8쪽
53 위치 영지 24.04.18 17 1 10쪽
52 아스펜 영지 24.04.16 17 1 10쪽
51 아스펜 영지 24.04.15 19 1 11쪽
50 아스펜 영지 24.04.13 19 1 13쪽
49 술먹은 그레이스 24.04.12 18 1 14쪽
48 아이 산맥 24.04.11 19 1 8쪽
47 아이 산맥 24.04.09 53 1 12쪽
46 여행 준비 24.04.08 18 1 10쪽
45 여행 준비 24.04.06 20 1 12쪽
44 여행 준비 24.04.05 23 1 12쪽
43 이별 24.04.04 22 1 10쪽
42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 24.04.02 21 1 10쪽
41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 24.04.01 26 1 12쪽
40 회생 24.03.30 37 1 14쪽
39 회생 24.03.29 32 1 13쪽
38 대재앙 24.03.28 30 1 11쪽
37 대재앙 24.03.26 3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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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내기 결투 24.03.23 34 1 13쪽
34 내기 결투 24.03.22 36 1 11쪽
» 내기 결투 24.03.21 36 1 12쪽
32 수련 24.03.19 4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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