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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타스틱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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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wan타스틱
작품등록일 :
2020.05.12 15:14
최근연재일 :
2021.11.0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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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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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제4화 : 보라매

DUMMY

제 4화, 보라매


고려인들의 성년식은 잔치와 무사 승급 대련으로 이루어지고, 무사 승급 대련을 통과한 성년들에 한해 성년식 제사를 진행한다.

이 세 단계의 성년식이 모두 거행되면 한 사람의 성년으로써, 그리고 한 사람의 무사로써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무사가 되면 바로 첫 번째 임무가 부여되는데, 그것이 바로 보라매다.

무사가 되자마자 수행하는 임무이기 때문에, 사실 이것이 무사가 되는 진정한 마지막 관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 두 신예 무사는 간밤에 잠은 잘 주무셨나요?”


신시의 가운데 양탄잣길에서 보라매를 행할 두 무사 앞에 한웅 왕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피곤했는지 아주 곯아떨어졌습니다, 왕검님. 덕분에 몸이 아주 가뿐합니다.”


루안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 역시 마찬가지에요. 보란 듯이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신예 무사들이 이렇게 듬직하니, 고려의 미래가 아주 밝습니다. 좋습니다. 보라매를 하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태백장사.”


왕검이 태백장사를 부르자 태백장사가 품 안에서 얇은 팔찌를 하나 꺼냈다.


“자, 이것이 바로 신령의 신통력이 담겨있는 보라매다.”


팔찌는 철사에 천이 덧대어져 꽤 튼튼해 보였는데 그 가운데에는 진귀해 보이는 묵빛의 돌이 박혀있었다.


“둘 중 한명이 이것을 차면되는데······. 그래도 누이인 희아가 받도록 해라.”


희아는 팔찌를 받아 자신의 손목에 감았다.


“이제 임무에 대해 설명하겠다. 보라매의 수행 기간은 약 6개월이다. 우리 고려는 숲 안의 결계에 있는 것 치고는 바깥 사정에 밝은 편이다. 그 이유가 바로 이 보라매인데, 신예 무사들은 6개월간 바깥세상을 돌며 하달 받은 필요한 정보를 득해 보라매로 발송하면 된다. 보라매는 해가 진 밤에만 발동이 가능하며 돌을 어루만지며 보라매를 천천히 부르면 된다. 그럼 보라매가 너희 앞에 모습을 드러낼 텐데 그 때 수집한 정보를 보라매에게 알려주면 된다. 이해들 하겠나?”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동안 새로운 무사들이 탄생하지 못했기에 그간의 정보 수집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기에 이번 임무는 특히 너희들이 바쁘게 움직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구나. 그럼 수집해야할 정보를 하달하겠다. 현재 제이프 제국의 동태와 키이만 산맥에 있는 드워프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면 된다. 6개월 이내 이 정보들을 모두 구하고 고려로 돌아오면 보라매는 완료된다,”


제이프 제국의 명칭이 나오자 루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 순간에 루안의 삶을 망가뜨린 그야말로 원수와도 같은 명칭이었다.

그 점을 잘 아는 희아는 루안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이젠 제가 이어 말을 하겠습니다. 여기 루안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과거부터 제이프 제국의 동태를 늘 살펴왔습니다. 권후 무사의 보라매 역시 제이프 제국에 관한 것이었지요.”


루안의 반응을 살피며 왕검이 말을 받아 이었다.


“사실 과거 사일라 왕국의 몰락은 예견된 수순이었어요. 제이프 제국은 먼 옛날부터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들에 대한 반감을 굉장히 오랜 기간 드러내 왔습니다. 물론 우리도 인간이긴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범주에는 들지 못 하는 것인지 우리 고려인들도 그 적대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우리를 토벌할 교두보가 필요했고 그 길목인 사일라 왕국을 습격한 것입니다.”


루안을 이를 바득 갈았다.

자신의 고향과 가족을 파멸시킨 이유가 지금의 가족들인 고려인들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니······.

분노에 치가 떨렸다.


“물론 우리의 무사들과 무사들을 이끄는 여기 장사님들은 매우 강합니다. 허나, 수에 있어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에 제이프가 총공세를 펼친다면 아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이겨내지 못할 겁니다. 그렇기에 그들에 관한 것들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되는 것입니다.”


왕검의 자세한 설명을 듣자 루안의 분노도 차츰 수그러들고 냉정하게 상황을 생각하게 했다.


‘이미 난 한 번 가족을 잃었어. 새로운 가족들을 잃지 않기 위해선 이번 임무를 꼭 성공적으로 완수해야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곳 바이두 숲이 루시아 신성 제국의 영토 안에 존재하기에 제이프가 사일라의 영토를 흡수하고도 아직 넘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루시아는 제이프도 함부로 볼 수 없는 강대국이지요. 그렇다면 제이프는 우리가 아닌 다른 종족을 먼저 토벌하려 할텐데, 거리상으로 보면 키이만 산맥에 있는 드워프 족들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 말은 즉슨, 그들이 무너지면 우리 역시 위험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강조하겠습니다. 두 무사는 보라매 기간 동안 제이프 제국과 드워프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무사 권희. 왕검님의 명을 받듭니다.”

“무사 루안. 왕검님의 명을 받듭니다.”

“이제 가는 게냐?”


몸을 숙인 두 사람 뒤로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권후의 부축을 받은 노영학 장사가 힘겹게 걸음을 떼고 있었다.

루안이 벌떡 일어나 천하장사 앞에 섰다.


“장사님, 몸도 안 좋으신데 왜 나오셨어요? 인사드리고 가려고 했는데.”

“맞아요, 장사님. 바람이 차요.”


희아가 뒤따르며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걱정들 하지 않아도 된다. 내 이래봬도 그저 그런 늙은이는 아니야. 허허, 너희들이 보라매를 떠난다는데 직접 배웅해주고 싶었단다. 이리 훌륭히 커서 한 사람의 무사로써 임무를 떠나는 모습을 보니 참 흐뭇하구나. 너무도 잘들 커주었구나, 고생들 많았다.”


루안은 천하장사의 따뜻한 진심이 담긴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런 루안을 뒤로 희아가 천하장사를 꼭 껴안았다.


“감사해요, 장사님. 저희 건강히 잘 다녀올게요.”

“오냐, 오냐. 그리 해야지. 아무렴.”


##


고을을 떠날 요량으로 결계 밖을 나온 것은 꼬박 8년만이었다.

본격적인 임무 여행을 나서기 전 비상품목을 챙기기 위해 결계 밖 창고를 들렸다.

8년 전 그때와 바뀐 것이라고는 없는 이 곳을 오니, 고통에 일그러졌던 안나의 얼굴이 또다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창고 안에서 일정량의 육포와 가죽을 배낭에 넣고 현금화 할 수 있는 보석 몇 가지를 챙긴 희아는 창고 밖으로 나오다가 생기가 없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루안을 보며 한 숨을 푹 내쉬었다.


“루안. 이 곳에서의 기억이 너무 안 좋았지? 그래도 이젠 이겨내야 해. 우린 임무중인 무사야.”


누이가 아우에게 건네기엔 너무도 냉정한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안에 내포된 진심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기에 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히 웃었다.


“응, 알아 누이.”


옅은 미소를 띄운 희아가 문득 생각났는지 손뼉을 쳤다.


“그래도 이제 먼 길 떠나는데 인사는 하고 가야겠지?”

“응, 그래야지.”


루안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옮겼다.

발길이 향하는 곳엔 수풀이 우거져 안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조금만 헤치고 들어가보니 그야말로 양지 바른 자그마한 공터가 나왔고 그 가운데는 봉긋한 봉분이 말끔히 놓여있었다.

산소 아래 루안과 희아는 정중히 큰절을 두 번 올리고 잡초가 무성히 자란 산소를 쓰다듬었다.


“안나. 이번엔 오랜만에 왔다, 그치? 미안해. 근래에 고려에 많은 일들이 있어서 찾아오질 못했어. 안나를 못 찾아온 시간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수련했더니 며칠 전에 무사 명찰을 달게 되었어. 나 잘했지?”


그래도 이제는 웃으면서 안나에게 대화를 걸 수 있게 된 루안이었다.


“무사가 되면서 이번에 큰 임무를 받아서 다시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어. 어떤 임무인지 얘기하기엔 시간이 모자라. 다만, 이번 임무를 통해 우리의 한을 달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길지도 몰라.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안나.”


둘은 다시 두 번의 큰절을 올리고 묘를 나왔다.

루안은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지는 듯 했으나 애써 이겨내려는 듯 팔을 휭휭 돌리며 유난스레 몸을 풀었다.


“읏차! 헤헤, 몸이 찌뿌둥하구만? 좋아. 누이 이젠 일 얘기를 한 번 해보자고.”


숲을 걸어가며 루안은 품에서 지도를 꺼냈다.

숲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출발 전 장사들과 권후의 교육으로 어느 정도 국가 환경은 파악한 후였다.


“이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숲의 서쪽으로 나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모골린 왕국이 나와. 모골린 왕국을 좌우로 횡단하게 되면 키이만 산맥이 있는 프리카 왕국이 나오게 돼. 역시 이 방향으로 쭉 가는 게 낫겠지?”

“현재로써는 그 방법이 가장 좋을 듯 해. 거기다 모골린 왕국은 친나 연맹의 맹주국이라고 했으니까 제이프 제국의 정보를 얻기 쉬울 수 있어. 그리고 제이프가 해상으로 프리카 왕국을 향한다고 하더라도 친나의 남방 3개국인 타빗 성국, 인디스 왕국, 페르안 성국의 해역을 지나쳐야만 해. 그러니까, 모골린을 가로지른다면 어떻게든 제이프에 대한 정보는 얻기 쉬울 것 같아.”

“그렇다면 역시 문제는······.”


루안이 지도에 그려진 대륙의 한 가운데 있는 황갈색 대지를 손으로 짚었다.


“맞아. 샤라 데저트야.”


샤라 데저트는 대륙 가운데를 덮고 있는 거대한 사막이었는데 모골린 왕국 북서쪽을 모두 뒤덮고 있었고 그 거대한 사막을 횡단해야만 프리카 왕국 안에 있는 키이만 산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사막의 크기도 크기지만 거기에 있는 마물들도 매우 강하다고 하니까 우리 둘만으로는 벅찰 수도 있어.”

“흠······. 아직은 자세히 모르겠다. 누이 일단 모골린으로 가보자. 가서 상황을 살펴보면 무슨 수가 생길거야. 일단 부딪쳐 보자고.”

“그래. 이제 움직이자.”


희아의 말이 떨어지자 루안은 지도를 품에 넣고 성큼성큼 숲을 헤쳐나갔다.

생의 절반 이상을 숲에서 보낸 두 청년이 드디어 세상을 향해 걸음을 떼던 날이었다.


##


“젠장, 바이두 숲의 명성이 역시 그냥 나온 게 아니었구만.”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 한 청년이 주위로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는 상단의 호위를 맡아 루시아 남부에서 모골린까지 움직이는 상단 행렬을 따르는 용병들의 리더는데, 루시아의 중부를 통과하여 모골린으로 가는 길이 안전하였으나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달라는 상단의 요청에 무리를 해서 숲을 통과하는 지름길을 택한게 화근이었다.

아무리 숲을 통과하는 길이더라도 외곽을 따라 움직이는 길인데도 불구하고 마물들의 공격이 끊이질 않았다.

거기다, 그가 이끄는 팀은 용병단 내에서도 그렇게 높은 등급의 팀은 아니었기에 마물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가진 실력자가 자신뿐이었다.


꾸어어어어어어어 쿵 쿵 쿵 쿵


한참 코볼트를 베어 넘기고 있던 그때 괴성과 함께 지축을 흔드는 소리가 울렸다.


“으앗, 대, 대장!”


여기저기서 청년을 부르는 비명이 들렸지만 이미 청년도 소음의 근원지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고 그 누구보다도 당황한 상태였다.


“이런 외곽에서 오우거라니······!”


청년의 말대로 괴성의 주인공은 오우거였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오우거가 등장하면서 주위에 널려있던 코볼트들은 어느 샌가 도망가고 없어졌으나 오우거 한 마리라면 10여명 정도 되는 자신의 팀원들과 상단을 초토화시키기엔 충분했다.


“다들 물러서! 내가 우선 저놈의 다리를 공격하겠다. 저놈이 넘어지면 그 때 모두 달려들어서 칼을 꽂아 넣어라!”


그래도 평소 단결력이 좋은 팀이었는지 청년의 외침에 용병들은 바로 전열을 가다듬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청년은 팀원들이 빠지는 것을 본 후 있는 힘껏 오우거를 향해 뛰었다.

오우거는 달려오는 청년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3미터가 넘는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력은 어마어마했으나 청년도 손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주먹을 피해낸 청년은 오우거의 발목을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서걱


가죽이 베이는 감촉이 손 끝에 전해지자 청년은 미소를 띄우며 자세를 재정비했다.

하지만 두꺼운 오우거의 가죽은 약간의 생채기만을 남기고 큰 타격을 주지 못하였고 오우거의 성질만 더욱 돋우었다.

금세 미소를 거둔 청년은 다시 한 번 몸을 날렸고, 오우거는 더욱 광포한 몸짓으로 청년을 공격했다.

오우거의 공격은 하나, 하나가 매서웠으나 단순했기에 청년은 쉽사리 공격을 피하고 다시 발목에 공격을 적중시켰다.

이번에도 베이는 감촉이 전해졌으나 아까와 같은 느낌이었다.


“젠장, 더럽게 질기네.”


같은 사람에게 똑같이 당하자 오우거는 길길이 날뛰면서도 타겟을 새로 조정하였고 뒤로 물러나있던 청년의 팀원들에게로 달려갔다.


“아, 안 돼!”


청년은 황급히 오우거의 뒤를 쫓았지만 가속도가 붙은 거대한 오우거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도망쳐!”


청년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으나 당황한 팀원들은 허둥지둥할 뿐이었다.

오우거는 결국 용병들이 모여 있는 상단 행렬 앞에 도착했고 벌벌 떨고 있는 한 팀원에게 손을 뻗어내자 그 팀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피융 퍽


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오우거의 고통에 찬 비명이 들리자 팀원은 슬며시 눈을 떴다.

자신을 덮쳐오던 오우거의 두터운 손에는 화살 하나가 박혀 있었고 오우거는 어지간히 아픈지 손을 윙윙 흔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


“어째, 저거 위험해 보이는데?”


오우거가 상단을 덮친 곳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서 루안과 희아는 용병대장과 오우거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이,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야?”

“글쎄······. 저 혼자 싸우고 있는 사람이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마차가 저렇게 많은걸 보면 아마 상단일거야. 거기다 이 방향이면 모골린으로 가는 방향이니까 도와주고 함께 움직이면 어느 정도 정보도 얻을 수 있지 않겠어? 어이구, 저런.”


마침 오우거가 싸우던 사람을 등지고 마차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래, 그 말이 맞는 것 같네. 루안, 뛰어!”


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살을 쏘았고 동시에 루안이 발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희아의 화살을 곧장 날아가 정확히 오우거의 손 가운데를 꿰뚫었고 오우거는 휘두르던 손을 거두며 비명을 질렀다.

다리에 치우를 가득 싫고 깃살품을 밟아 나간 루안은 오우거가 정신 못 차리는 틈을 타 힘껏 점프해 돌개질을 오우거의 안면에 꽂아 넣었다.


“에크!”


치우의 경력이 가득 실린 루안의 다리는 무쇠와도 같았고 오우거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오우거는 쓰러졌지만 녀석의 엄청난 방어력은 루안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루안은 멈추지 않고 다시 한 번 발을 굴러 힘껏 뛰어올라 오우거의 풍만한 복부에 꼬두질을 시전 했다.


꾸웨에에에엑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른 오우거는 쓰러진 상태에서 몸을 비틀었다.


“누이!”


몸부림치는 오우거를 걷어차며 뒤로 물러난 루안이 희아를 큰 소리로 부르자 언제 왔는지 희아가 루안 앞에서 공중에 뜬 채 시위를 힘껏 당겼다.


쌔애애액


바람을 가르며 희아의 셋꼬리살이 터져 나왔고 곧장 날아간 세 발의 화살은 정확히 오우거의 미간을 꿰뚫어버렸다.

두 사람의 협공이 숲의 최강자 오우거를 삽시간에 무너뜨렸다.

루안이 처음 후를 만날 때 후가 오우거를 상대로 고전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이었다.


##


청년은 믿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 남녀는 약관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앳된 얼굴들을 하고 있었는데 웬만한 실력자들도 덤빌 엄두를 못내는 오우거를 단숨에 제압했다.

거기다 자신은 검격을 두 번이나 가하고도 생채기를 내는 것에 그쳤으니 더더욱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청년은 정신을 차리고 주위에 소리쳤다.


“파손된 기물은 없는지 부상병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신속히 확인하고 보고해!”


그러고는 멀뚱히 서 있는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그린빈 용병단의 소대장 루카라고 합니다. 두 분은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전 루안이라구 하구요, 이 쪽은 제 누이인 희 라고 합니다. 큰 화를 당할 뻔 하셨네요.”


희아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정말 두 분 아니셨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정말 놀라운 실력들을 가지고 계시네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로 향하고 계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번엔 희아가 대답했다.


“저흰 모골린 왕국으로 향하고 있어요.”


루카가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오, 그렇습니까? 마침 저희도 모골린을 향해 가는 중입니다. 상단 호위는 모골린의 입구 도시 모드시에 입성하면 마무리가 되고, 그 이후로 수도인 바토르로 향하는데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움직이지 않으시겠습니까? 두 분이서 다니시는 것 보다야 훨씬 안전하고 재미있게 여행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물론 사례 또한 하겠습니다. 두 분 같은 실력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루안과 희아는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는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그럼 모골린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루카는 둘의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 큰 힘이 되겠어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죠. 정비가 되는대로 출발하겠습니다. 말이 없으신 것 같으니 말도 같이 준비하겠습니다.”


멀어져가는 루카를 보며 희아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잘 된 것 같지?”

“아주.”


##


숲의 외곽을 따라 길을 거니는 일정은 마물들의 공격 외에는 한적했다.

가끔 트롤 같은 중형급 마물이 나오긴 했지만 대체로 외곽이다 보니 소형 마물들의 공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루카와 아이들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제법 친해지게 되었다.


“히? 그럼 저 괴물 같은 숲속에서 쭉 살아왔던 거야?”

“맞아요. 우리 일가의 터전이에요. 루안은 숲에 들어온 지 8년 정도 되었구요.”

“저런 곳에서 일평생을 살았다니······. 그 말도 안 돼는 강함이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만. 그나저나, 그 고려인을 내가 마주하다니. 참 세상에는 별 일들이 다 있어.”


이렇다 할 비밀은 아니라고 판단한 루안과 희아는 많은 것들을 진실 그대로 이야기 하였다.


“그럼 그 궁술과 격투술은 고려인들이 사용하는 기술들인거야?”


이번엔 루안이 대답했다.


“제 격투술은 태껸이라고 하고, 누이의 궁술은 국궁이라고 해요. 고려인들의 강력한 무예지요.”

“언제 기회가 된다면 나도 배워보고 싶구만. 정말 대단한 기술들이야. 아! 그건 그렇고 루안, 희. 나에게는 이렇게 사실대로 이야기해줘서 고맙지만, 웬만하면 다른 곳에선 정체에 대해서 모두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세상에는 별에 별 몹쓸 놈들이 아주 바글바글하거든.”

“그럼 루카는요? 루카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깐말야.”


희아가 장난스레 넌지시 물어보자 루안도 거들었다.


“하,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그린빈 용병단의 친구들은 세계 최고의 용병단 소속답게 의와 협을 굉장히 중요시 생각한다고. 용병단장님의 강력한 통제로 우린 나쁜 짓이라고 판단되는 의뢰는 절대 하지 않고 약자들을 위해서는 보수 없이도 임무를 완수 한다 이 말이야.”


루카의 목소리에서는 자부심이 뿜어져 나왔다.

루카 덕에 그린빈 용병단에 대해서 많이 알게되었는데, 그린빈 용병단은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데 비해 생긴지 4년 밖에 안 된 신생 용병단이었다.

창립 이후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시간이 고작 4년 이란 것이다.


“용병 단장님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신들린 창술로 마스터즈 자리에 오르셔서 폴틴 마스터즈를 피프틴 마스터즈로 바꾸셨지.”

“그린빈 용병단장이 마스터즈의 일원이란 말이에요?”

“그래. 아무것도 없는 용병단이 4년 만에 최고 용병단이 되려면 그 정도 임팩트는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오죽하면 이젠 사람들이 용병왕이라고까지 부른다고.”


루안은 희아에게 눈짓을 하며 속삭였다.


‘벌써 정보 하나를 득한 것 같은데 누이?’

‘아무래도 이전 보라매가 임무를 수행한지 꽤 되다 보니, 4년 밖에 안 된 그린빈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 같네. 거기다 마스터즈의 일원이 늘었다는 건 중요한 정보 중 하나야.’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식사 시간이야. 모두 멈추고 식사 준비에 들어간다! 너희도 좀 도와다오.”


둘은 말을 세우고 정비를 하려는 용병단원을 도왔다.


##


아무래도 계속 움직이는 야행길이다 보니 식단은 조촐했다.

각자 빵 두 조각과 한 그릇의 따끈한 고기 스튜.


“어때 루안? 오랜만에 먹는 고향 식단 아니야?”

“에? 말도 마 누이.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거기다 김치도 없으니 아주 느글거려 죽겠어.”

“푸하하, 말도 안 돼. 난 제법 먹을 만한데? 이제 보니 네가 뼛속까지 고려인인가부다.”

“실없는 소리 하는 거 보니 정말 맛있나보네?”


루안은 희아를 흘겨봤다.

멀리서 배식을 감독하던 루카도 얼추 끝이 났는지 그릇을 들고 아이들에게로 다가왔다.


“음식들이 그렇게 거창하질 못하다. 이해 좀 해줘.”

“에이, 괜찮아요. 여기 아니었으면 육포나 뜯고 있을 텐데요.”

“그렇게 말해준다면 고맙고. 하하하.”


루안 옆에 푹 주저앉은 루카는 빵을 쭉 찢어 입에 집어넣으며 질겅질겅 씹어댔다.


“빵만 좀 더 부드러웠으면 좋았을 텐데, 늘 이런 거나 먹고 일하려니 쉽지가 않어. 그나저나 이 속도로 움직이다보면 저녁이 되기 전에는 모드시에 당도 할 것 같은데 너희는 바로 다른 곳으로 움직일 거니? 아니면 모드시에서 조금 묵을 생각이니?”

“루카는 모드시에서 바토르로 움직인다고 했죠? 우리는 여러 가지 정보가 필요한데, 역시 좋은 정보를 얻으려면 수도를 향해 가는 게 괜찮을 것 같아요. 괜찮으면 바토르까지 동행해도 될까요?”


희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차피 상단의 호위는 모드시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 끝나게 되니까 이후는 큰 어려움이 없어. 하지만 너희가 함께 움직여준다면 더욱 재미난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군.”


루카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사실 만난 지 한나절 밖에 되진 않았지만 호쾌한 그의 성정이 루안은 썩 마음에 들었다.


“아, 혹시 바토르로 향한다면 용병단장님도 만나 뵐 수 있나요?”

“응? 우리 단장님? 단장님은 본부에 계실거야. 본부는 캐내딘에 있기 때문에 바토르에 간다고 만날 수는 없지. 뭐 모골린에서 그렇게 멀진 않다만······. 왜? 역시 마스터에게 관심이 가는 건가?”

“아······. 캐내딘이면 만나 뵙긴 어렵겠네요. 그럼 단장님에 대해 얘기 좀 해주세요. 어떻게 그 짧은 시기에 그렇게 많은 것을 이루어내신 거죠?”


루안의 질문에 루카는 스튜를 한 가득 떠먹고는 대답했다.


“단장의 이름은 다델이야. 나도 단장이 용병단을 만들기 이전까지 뭘 했는지는 몰라. 4년 전 갑자기 나타난 단장은 우리 용병단을 창설하고는 앞장서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하더군. 그러던 어느 날, 캐내딘 공화민국과 캐스탄 왕국간의 군사 충돌이 일어났어. 멍청한 캐스탄의 귀족놈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하더라고. 어찌되었든 캐스탄에서 군사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니까 캐내딘에서는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나봐. 그래서 여러 용병들을 고용했고 그 중 그린빈도 있었던 거지. 처음 전장에 나타난 단장을 보고 다들 비웃고 난리도 아니었다나봐. 뭐 지금이야 다들 알고 있지만 단장은 좀 독특한 무기를 사용하거든.”

“독특한 무기요?”

“응. 단장은 대나무를 깎아다가 창처럼 사용해.”


루안과 희아는 눈이 동그래졌다.


“에? 대나무요?”

“응. 큭큭큭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너희같은 반응이었겠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천추의 한이야. 큭큭큭.”

“그, 그래서요? 어떻게 됐어요?”


루안이 루카를 재촉했다.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됐겠어. 전투가 벌어졌지. 근데 꼴이 우스우니까 그린빈은 최전방에서 전투를 하지 못하고 뒤쪽으로 밀려나 있었나봐. 거기다 캐스탄이 제법 강공을 해서 캐내딘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고 말이야. 그러던 중 뒤에 있던 단장이 앞으로 쏘아져 나간거지. 그리고 거기 있는 모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어. 단장에 손에 들린 대나무가 오러 블레이드를 실은 채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럼 뭐, 게임은 끝난 거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마스터가 있는데, 그 전투를 승리로 가져간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어? 캐스탄은 바로 후퇴하고 전투가 마무리 되었다더군. 그 이후로 단장은 마스터즈의 일원이 되었고 마스터가 소속되어 있는 그린빈 용병단은 급격하게 세를 키워 결국 세계 제일의 용병단이 된 거다 이 말씀이지.”

“와······. 그럼 그때 단장님이 안 계셨다면 캐내딘은 멸망 했을 지도 모르는 거에요?”

“그렇진 않을 거야. 캐내딘은 국가 전투력만 따진다면 제국들에게도 쉽게 지진 않을 나라야. 다만 북쪽에 마의 숲이 있고, 서쪽엔 캐스탄, 동쪽엔 브리딜, 남쪽엔 나이가 레이크와 샤라 데저트가 있으니 온 사방이 적인 거야. 그렇기 때문에 사방의 국경을 지킬 자원들이 필요하니까 캐스탄에 총공세를 펼치기 힘들었던 것 뿐이지. 제대로 한바탕 붙는다면 캐스탄은 상대가 되질 않아.”

“호~ 오늘 좋은 걸 많이 알아가는데요?”


루카는 남은 스튜를 몽땅 입에 털어넣고 일어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자,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해야 저녁에는 모드시에 도착할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은 루안과 희아는 다급하게 음식들을 밀어 넣었다.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추천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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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16화 : 전조 - 1 +11 20.06.04 500 15 9쪽
21 제15화 외전 : 성을 나온 다델 +10 20.06.03 514 13 14쪽
20 제15화 : 다델과의 만남 +7 20.06.02 507 15 18쪽
19 제14화 : 위기를 기회로 +9 20.06.01 537 14 23쪽
18 제13화 : 타오를 향해 +7 20.05.29 538 15 16쪽
17 제12화 : 신검 +11 20.05.28 613 15 22쪽
16 제11화 외전2 : 사일라의 탄생 +5 20.05.27 578 16 19쪽
15 제11화 외전 : 혁거 +3 20.05.26 590 15 14쪽
14 제11화 : 노야의 정체 +10 20.05.25 614 15 18쪽
13 제10화 : 모골린의 별 +11 20.05.22 644 14 26쪽
12 제9화 : 소집령 +9 20.05.21 666 13 23쪽
11 제8화 : 바토르로 향하는 길 +7 20.05.19 694 16 22쪽
10 제7화 : 새로운 깨달음 +7 20.05.18 759 16 24쪽
9 제6화 외전 : 쿠빌린 +3 20.05.16 754 15 22쪽
8 제6화 : 돌리스 +1 20.05.15 782 17 20쪽
7 제5화 : 모드시에서 +1 20.05.15 865 19 23쪽
6 제4화 외전 : 용병왕의 탄생 +1 20.05.14 944 19 19쪽
» 제4화 : 보라매 +5 20.05.14 1,144 21 26쪽
4 제3화 : 준비 +9 20.05.13 1,353 25 31쪽
3 제2화 : 수련의 시작 +3 20.05.13 1,671 26 27쪽
2 제1화 : 새로운 삶 +11 20.05.12 2,150 37 26쪽
1 프롤로그 : 동화 속 만남 +37 20.05.12 4,018 67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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