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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타스틱 님의 서재입니다.

Another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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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wan타스틱
작품등록일 :
2020.05.12 15:14
최근연재일 :
2021.11.0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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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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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7쪽

제2화 : 수련의 시작

DUMMY

제 2화, 수련의 시작


와삭, 와삭, 와그작, 와그작


루안이 숲에 정착 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이것만큼은 정말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고려인들이 한식이라 이름 짓고 먹는 이 음식들이 말이다.

권씨 남매는 부모 없이 단 둘만 살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래서 그런지 어린 희아보다는 후가 앞치마를 매는 일이 많았다.

크고 우악스러운 손으로 이 고운 음식들을 차려내는 게 여간 안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지만, 후가 만들어내는 음식은 꽤 훌륭한 맛을 냈다.

오늘 아침은 하얗고 네모난 케이크 같은 것에 새콤한 향이 나는 빨간색 수프였는데, 수프에는 양배추처럼 생긴 채소가 가득 들어 있고 사이사이 들어 있는 고기 조각들이 제법 푸짐해 보였다.

후가 두부와 김치찌개라고 소개한 이 음식들은 젓가락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되는 음식들이었는데, 루안은 두 음식의 담백함과 자극적임의 조화가 상당히 우수하다는 생각을 하며 미친 듯이 음식을 음미했다.


똑똑


그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후가 크게 한 수저 뜨려다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멋들어지게 덧대진 가죽을 걸치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태백장사님! 이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여성은 추모 태백장사였다.


“이거 미안하구나. 식사 중인 줄 알았으면 조금 있다 올 것을······.”

“아유, 아닙니다, 장사님. 식사 하셨어요? 두부가 아직 많이 있는데 같이 드시겠습니까?”

“오호, 두부라. 그럼 한 그릇 내주겠니?”


루안과 희아는 입을 우물대며 일어나 태백장사에게 인사하려 했다.


“괜찮으니 일어나지 말고 먹거라. 원래 밥 먹을 땐 개조차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루안이 보기에 고려인들은 음식과 관련해서는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큰 친밀감을 표하는 도구로 많이 사용되는 듯 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밥이라는 것은 고려인들의 식사 중 주식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이들은 만나거나 헤어질 때 인사로 밥과 관련된 말을 많이 주고받았으며, 남에게 쉽게 식사 요청을 하기도 했으며 식사를 내주는 것에도 절대 인색하지 않았다.

물론 루안이 살아온 세계와 문화 자체가 다르기에 무엇이 맞다, 그르다 판단할 순 없겠지만 이들의 문화에 포근함이 더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태백장사는 후가 내어 준 뜨끈한 두부를 크게 한 술 뜨더니 그대로 찌개에 담가 두부에 찌개국물이 충분히 배게 한 후 그대로 한 입에 털어넣었다.

담백한 두부 사이사이로 가득 찬 김치찌개의 국물은 극강의 감칠맛을 내었다.


“햐~ 권후 욘석. 손맛이 가면 갈수록 일취월장 하는구나.”


차가운 인상을 가득 풍기는 태백장사의 칭찬이 나오자 후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었다.


“하하하하,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많이 드세요, 장사님.”


후가 칭찬 받자 자기가 칭찬 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 희아는 배시시 웃다가 아차 싶어 태백장사에게 말을 걸었다.


“아차! 장사님. 근데 이 아침부터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러자 후가 희아를 흘겨봤다.


“누이야. 장사님 진지 잡숫는데, 뭐가 그리 급하니? 식사 다 하신 다음에 물어도 되는 것을 말이다.”

“음, 아니다. 후야, 너무 나무라지 말거라. 식사 하면서 말 못할 내용도 아니니 말이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부터 희아에게 국궁을 가르치려 한단다.”


희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와! 참말인가요, 장사님? 진짜지요? 저한테 국궁 가르쳐 주시는 거지요?”


태백장사가 슬쩍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드디어 나도 무사가 될 수 있다!”


희아는 박수를 치며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그러자, 후가 걱정스레 물었다.


“장사님, 이르지 않겠습니까?”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한다만 너무 과보호도 좋지 않다. 너 역시도 지금 희아 또래부터 태껸을 해오지 않았느냐?”


후는 불안했지만 장사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 더. 루안도 오늘부터 천하장사님과, 금강장사에게 무술을 사사받을 것이며, 그 외 이론적인 교육들은 희아와 함께 내게 배우게 될 것이다.”


남일 인양 코 박고 두부만 퍼 먹던 루안은 깜짝 놀라 움직이던 숟가락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태백장사를 쳐다봤다.

신경 쓰지 않고 태백장사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얼핏 듣기에 신시에서 식사를 할 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고 들었다. 오늘 그런 것들의 대한 답변부터 꼭 알아야 할 내용들까지 알려줄 터이니 식사가 끝나면 나설 채비를 하자꾸나.”


물어 보고 싶은 것들을 물어 보지 못한 것은 맞지만, 갑작스레 이렇게 되니 루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 루안을 대신해 후가 대답했다.


“네, 장사님. 잘 알겠습니다.”


##


“쳇”


태백장사를 뒤따라 움직이면서 희아는 계속 투덜댔다.

지금까지 고대하던 수련을 드디어 시작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루안과 같이 시작한다고 하니 여간 배알이 꼴리는 것이 아니었다.


“치······. 나도 하고 싶지 않다, 뭐······.”


괜히 눈치가 보이는 루안은 희아의 뱁새눈을 애써 피하며 걸었다.

두 아이가 투닥거리며 걷고 있는 이 곳은 신시였다.

신시는 가운데 터널길을 두고 양쪽으로 동이 나뉘어져 있는데, 우측 동이 왕검과 장사들이 거주하며 생활하는 생활동이었고, 좌측이 업무나 행정 등을 행하는 실무동이었다.

태백장사는 실무동 한 곳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아이들은 계속 투닥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방은 그리 넓지 않았는데 양 옆으로 무수히 많은 책들이 꽂혀진 책장들이 있었고 방문 반대편의 가운데는 글을 쓰고 지울 수 있는 칠판이 놓여 있었다.

칠판 앞으로 자그마한 책상과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루안이 왕궁에서 책사들에게 수업을 받던 학원과 같은 구조였기에 루안은 자연스레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칠판 앞에 자리 한 태백장사는 희아도 루안을 따라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는 입을 뗐다.


“갑작스레 일이 진행된 데에 있어서는 너희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단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겐 아이들이 귀하다 보니 마냥 다른 아이들의 잉태를 기다리는 것도 쉽진 않다. 희아 혼자 교육을 받기엔 무리가 있었는데, 이렇게 루안이 우리에게 와주었으니 지금이야말로 수련을 시작할 적기라고 보여 지는구나. 그러니 너희 둘은 서로를 도와 수련을 잘 받아주길 바란다.”


그랬다.

아무래도 고려인들은 바깥의 인간들에 비해 수가 월등히 적다 보니, 아이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야 어느 정도 있었지만 루안 같은 어린이들은 오직 희아 뿐이었다.


“자, 그럼 오늘은 첫 날이니, 기본 적인 수련의 틀에 대해 알려주마. 우선 우리의 무술은 잘 알겠지만 씨름, 태껸, 국궁 3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이 중 씨름은 남성만, 국궁은 여성만 학습이 가능하고 태껸은 성 구분 없이 배울 수 있다.”


희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장사님, 왜 그런 거에요?”

“씨름은 남성의 강인함이 굉장히 부각되는 무술이고, 국궁은 여성의 섬세함이 주를 이루는 무술이기 때문이란다. 태껸 같은 경우 사람의 신체 움직임을 집대성한 무술이기에 상관없이 배우는 것이 가능하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 두 친구는 태껸을 배우면서 루안은 씨름을, 희아는 국궁을 함께 배우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 안 가는 부분 있니?”


아이들은 별 다른 생각 없이 장사를 쳐다봤다.


“이해했다고 생각 하마. 여기까지는 너희들의 몸을 움직이는 무술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무술을 보다 강력하고 유려하게 사용하기 위해 내가술이라는 걸 같이 사용한다.”

“내가······술이요?”


루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루안은 밖에서 왔으니 마법이니, 정령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것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8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이지만, 그래도 루안은 일국의 왕자였다.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 신비한 능력들을 쓰기 위해서는 마나라고 하는 자연의 기운을 몸 안에 갈무리 한 후, 그것을 소모하여야 한다. 우리의 무술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무술만을 가지고 수련을 한다면 물론 무사가 될 수 있겠지만, 결계 밖의 괴물들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강력한 힘을 내지는 못한다. 허나, 내가술을 수련하여 우리 몸 안에 정순한 기운이 담기게 된다면 우리의 무술은 바위도 부수는 위력을 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 내가술을 ‘치우’라고 부른다.”


희아와 루안은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이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을 한 번씩 바라본 태백장사는 말을 이었다.


“기본적인 태껸과 치우는 금강장사가 너희를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루안은 천하장사님께 씨름을, 희아는 나에게 국궁을 같이 배워 가면 된다. 자, 이제 오늘 내가 할 말은 다 하였다. 각자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지금 질문 하면 된다.”


루안이 자기 머리칼을 쓸며 물었다.


“장사님, 저는 원래 은색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 오고부터는 머리색이 까맣게 변해버렸어요. 눈동자두요. 왜 이런 거죠?”


태백 장사는 바로 대답 하지 않고 루안을 지그시 쳐다봤다.

영문을 모르는 루안은 올라오는 부담감을 느끼며 애써 장사의 눈을 피했다.

저도 모르게 루안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날 때 쯤 태백 장사는 입을 뗐다.


“그것은 네가 우리 민족의 보물을 훔쳤기 때문이다.”


순간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한 루안이 되물었다.

“네?”

“네가 우리 민족의 보물을 훔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루안은 벌떡 일어났다.

“아니에요! 전 그런 적 없어요. 보물은, 황금 뭐, 그런 거잖아요. 난, 아니 전, 그러니까, 안 훔쳤어요!”


당황한 루안이 필사적으로 팔을 가로 지으며 횡설수설하였다.


“그래, 우리도 네가 일부러 훔쳤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단다.”

“안 훔쳤다니까요!”

“우리 민족이 이 세계로 넘어 온 후 지금까지 이 곳 바이두 숲에는 약 10대의 걸친 장사들이 있었다. 물론 모든 장사들이 무술과 내가술의 고수들이었지만 그 중 몇몇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무력을 행사했단다. 그런 장사들은 지금까지 총 다섯이 있었고 그 장사들의 치우는 그 장사들의 기운을 정형화해 죽기 전에 실체화가 되었단다. 그리고 그런 장사들을 우리는 태극장사라고 일컬으며 이 곳 신시에 따로 제사단을 만들어 그들을 기리고 있었단다.”


루안은 갑자기 무슨 소린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도둑으로 몰더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상하게 일그러진 루안의 얼굴을 무시한 채 장사는 말을 이어갔다.


“그러길 최근, 한 제사단을 새롭게 꾸밀 일이 있어 그곳에 모셔진 태극장사의 치우와 그가 생전에 읽었던 많은 서적들을 잠시 결계 밖 저장 창고에 옮겨놓았었다. 그의 치우는 평소 흐르는 냇물과 같이 맑고 깨끗한 그의 성정을 닮아 액체로 발현되었기에 고운 호리병에다 담아 두었었는데 그것을 네가 마셔버렸다고 하더구나.”


루안은 그제야 태백 장사가 자신을 빤히 쳐다본 이유를 알았다.

분명 자신이 아파하자 안나가 약(?)을 구해와 자신에게 먹였지 않았던가?

지금 장사는 그것이 태극장사의 치우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럼 그 말은 그것이 고려인들이 바이두 숲에 거주한 900년 동안 단 5개 밖에 발현 되지 않은 귀한 보물이고 그 중 하나를 자신이 홀라당 먹어버렸다는 것 아닌가?

루안은 땀이 비 오듯 쏟아짐을 느꼈다.


“뭐야, 루안. 진짜야? 니가 태극장사님의 치우를 먹은 거야? 응? 응? 정말이야?”

안 그래도 당황스러운데 희아는 눈치도 없이 루안을 쑤셔댄다.

“아······그, 제가······ 마신 그게······.”

“고려인의 내기가 모두 담긴 치우를 섭취 하였으니 너에게 우리 민족의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도 시간이 많이 지나면 다시 서서히 너의 본 모습으로 돌아갈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허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라.”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 있다니······.

더 큰 죄가 있는 것인지 루안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태극장사의 집대성한 내가술의 정수를 마셨으니 현재 너의 몸은 이미 내기가 가득 차 있는 상태이다. 물론 아직은 몸 안에 잠들어 있는 기운에 불과하긴 하다만, 네가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게다. 루안아. 치우를 득하여 죄스러우냐?”


루안은 잔뜩 움츠려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더욱 수련에 정진하여 꼭 이전 태극장사들과 같은 수준의 무사가 아니, 그들을 넘어서는 무사가 되려무나.”

“네, 알겠어요.”


대답은 빨랐지만 여전히 기운은 빠져 보였다.


##


오후가 되었다.

오전엔 태백장사로부터 기본 적인 설명을 들은 루안과 희아는 오후가 되자 세 수련동 중 후를 만났던 수련동으로 나오게 되었다.

수련동 가운데에는 금강장사가 다리를 어깨만큼 벌린 채 태산처럼 서 있었고 그 뒤로 태껸을 공부하는 여러 무사들이 각자의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엔 후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서 오거라. 이 곳은 태껸을 수련 하는 태껸 수련동이다.”


덩치만큼 큰 목소리를 가진 금강장사가 두 아이를 향해 말했다.


“오늘부터 나와 함께 이 곳에서 태껸과 치우를 수련하게 될 거란다. 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시작하마. 우선 태껸부터 설명하겠다. 태껸은 세 가지의 큰 줄기를 가진다. 손기술인 ‘이크’, 발기술인 ‘에크’,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방법인 ‘품’. 우선 너희들은 품을 배울 것이다. 자, 따라하거라. 두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린 뒤 양 팔은 자연스레 늘어뜨리고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로 턱을 당긴다. 이것이 모든 품의 어머니인 ‘원품’이다.”


아이들은 급하게 금강장사를 따라 했다.

하지만, 여간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장사는 다소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 곧잘 따라하는 구나. 조금 더 해보자꾸나. 원품인 상태에서 왼 다리를 앞으로 뻗으면서 팔도 함께 따라가 준다. 이것이 ‘좌품’. 반대로 오른 다리를 앞으로 뻗으며 팔도 함께 따라가 준다. 이것이 ’우품‘. 이 좌품과 우품을 원품과 자연스럽게 반복 해 주면 태껸의 동작이 이어질 준비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팔은 마치 산들바람과 같이 부드럽게 흘러주어야 하며, 다리는 고목처럼 올곧게 뻗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가 이루어진다.”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루안과 희아는 하라는 대로 따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다 동작 자체가 얼마나 이상하고 볼품없는지 잔웃음만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그것을 놓칠 금강장사가 아니었다.


“이 놈! 신성한 수련동에서 그 따위 자세로 무술을 익히다니, 제정신인게냐!”


불호령이 떨어졌다.

깜짝 놀란 루안과 희아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힘껏 품을 밟았다.


“당장은 이상할지 몰라도, 지금 너희가 밟고 있는 이 품들이 훗날 너희를 위험에서 구해줄 것이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배움을 하였다가는 경을 칠 줄 알거라.”

“네!”

“네!”


한 번 혼쭐이 나니 두 아이의 목소리는 절로 커졌다.

금강장사의 얼굴엔 얄궂은 미소가 지어졌다.


##


“으······.”


누워있는 희아의 무릎을 주물 거리는 루안에게 희아는 재차 물었다.


“루안. 정말 넌 다리 안 아파?”


금강 장사의 미소 이후로 두 아이들은 양품을 미친 듯이 밟았고 6시간이나 지나고 나서야 수련동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공교롭게 그들의 집도 고을에서는 거리가 상당하였기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먼 길을 걸어오는 희아의 다리는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루안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을뿐더러 지금도 자기는 괜찮다며 희아의 다리까지 주물러 주고 있으니 희아로써는 여간 배알이 꼴리는 것이 아니었다.


“응, 나는 괜찮아. 누이. 지루하긴 했는데 힘들진 않았는걸.”


어느 샌가 루안은 희아를 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끙······. 오라비가 매일같이 수련하러 가기에 이렇게 힘들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아얏! 살살 주물러!”


괜히 루안에게 신경질 내는 희아였다.


“내일은 치우를 연습한 후에 씨름이랑 국궁을 배운다고 했었지?”

“응.”

“그럼 오늘 같이 품을 계속 밟을 일은 없겠다. 휴, 이걸 어떻게 매일 하나 했는데 천만 다행이다.”


희아는 다행이라는 듯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켰다.


##


“으아아아앗!”

희아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장사님! 오늘은 치우 배우고 국궁 배우러 가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왜 이걸 또 해요?”


희아와 루안은 또 다시 좌품과 우품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금강장사는 전혀 안 들리는 듯 스트레칭에 열중이었다.


“루안, 너는 왜 한 마디도 안하냐? 너도 재미없을 거 아니야! 사내라는 놈이 불의에 반기를 들지 않다니, 너는 계집애나 다름없어!”


화살이 루안에게로 날아갔다.


“난 재밌는걸.”

“너, 이잇!”


희아가 열이 받아 쏘아붙이려는 찰나 금강장사가 마침 스트레칭을 마무리 지었다.


“좋다. 거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다들 자세를 편히 하거라.”


욕지기를 한 바가지 쏟아내려던 희아는 금강장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품을 풀었다.

루안은 이 누이 언니 같지 않은 누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 지금부터 치우에 대해 설명하겠다. 치우는 우리의 무술에 좀 더 강대한 기운을 싣게 해주는 내가술이다. 치우를 연마하게 되면 주위 자연이 주는 기운을 우리 몸속에 쌓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기’라고 부른다. 기는 몸 속 단전이란 곳에 쌓이게 되는데 평소에는 단전에 기를 갈무리 하고 있다가 우리가 무술을 사용 할 때 필요한 만큼만 단전에서 기를 꺼내 쓰는 것. 그것이 바로 치우의 원리이다. 치우를 오랜 기간 단련하게 되면 전신 곳곳에 기를 운용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가 유형화되어 실체를 가지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 상태를 우리는 ‘천왕’이라고 부른다. 천왕을 일으킬 수 있는 경지에 무사들을 따로 ‘치우천왕’이라고 부르는데, 장사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 중 하나이다. 자 그럼 천왕을 보여주마.”


긴 설명을 쉬지 않고 내뱉은 장사는 원품을 잡더니 기운을 끌어올렸다.

루안과 희아에게는 알 수 없는 압력이 전해 졌고 금강장사의 다리에는 회색빛 빛이 일렁였다.


“이것은 치우를 천왕까지 일으킨 다음 몸을 돌고 있는 기를 다리에 집중시킨 것이다. 이 상태에서 에크를 하면 바위도 부술 수 있는 발길질을 할 수 있다. 자 시연은 여기까지다.”


장사는 기운을 다시 거두었고 그러자 루안과 희아가 받던 압력도 없어졌다.


“우와······.”


두 아이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럼 이제 치우를 한 번 해보자꾸나. 먼저 자리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거라. 그래, 그 후엔 두 손을 포개어 편하게 다리 위에 얹으면 된다. 이젠, 눈을 감고 주위에 바람을 느끼며 배꼽 아래에 있는 단전을 자각하거라.”


루안은 바람을 맞으며 배꼽 아래에 계속 신경을 썼다.

하지만, 별다른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쉽진 않을 게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이 최대한 자연에 녹아들었을 때, 치우는 반응해 줄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느껴보자꾸나.”


아이들의 표정이 뚱해지자 장사는 따뜻하게 얘기했다.

루안은 그 말뜻을 이해하며 다시 한 번 바람에 몸을 맡겼다.

자연에 녹아들다.

짧은 문장이지만 실행하기는 참 어려운 문장이었다.

루안은 그렇기에 더더욱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한층 가벼워지자 그제야 주위 다른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련동 바닥의 암반 사이로 찬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햇볕을 빈 곳 없이 고루고루 뿌려주고 있었다.

그 가운데 앉아 있는 루안은 위에서 쏟아지는 온기와 아래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굉장히 조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운들에게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자 한기는 불어오는 바람에 얹혀 루안의 하체를 쓸며 올라왔고 온기 역시 바람에 섞여 루안의 상체를 훑으며 내려왔다.

천천히 움직이던 두 기운은 루안의 몸 가운데서 만나 섞였고 그 기운은 훨씬 포근해졌다.

그 느낌이 루안은 너무도 좋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 때, 루안의 배꼽 언저리에서 강대한 무언가가 나와 그 기운과 얽혔으며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은 루안의 혈관을 타고 전신을 돌기 시작했다.


“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뱉은 루안은 무의식 속에서 그 기운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기운은 부드럽게 루안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동안 루안이 이끄는대로 계속 배꼽 근처만 돌던 기운은 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은지 루안을 채근하기 시작했다.

루안은 자연스레 그 기운을 상체로 끌어올리기 시작 했다.

그 기운이 명치 정도쯤 도착 하자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무언가에 막혀 맴돌게 되었다.

기운은 그 벽을 넘어 더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듯 했지만 루안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고 어느 덧 기운도 루안의 뜻에 순응 하듯 더 이상 위를 넘보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진 루안은 만족하며 눈을 떴다.

그러자 바로 앞에 희아의 얼굴이 있었다.


“으악! 뭐하는 거야, 누이!”

“너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놀랬잖아.”


짝짝짝


금강장사는 박수를 쳤다.


“대단하구나. 물론 네 안에 있는 전대 태극장사의 내단의 힘이 크겠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치우를 배우자마자 능숙하게 기를 운용하다니······. 루안은 앞으로 훌륭한 장사가 될 수 있겠구나. 더욱 노력하거라.”

“와, 진짜요? 감사합니다. 장사님!”


루안이 인사를 꾸벅 하며 일어났다.


“나는 겨우 기를 찾는 것에 그쳤는데, 너 반칙이잖아! 그나저나,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렸던 거야?”

“응? 오래 걸리다니?”

“설마 모르는거야? 너 3시간을 그러고 있었어, 3시간을.”

“에? 정말? 난 10분 정도 한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아침 일찍 수련을 시작했는데 어느 샌가 태양이 하늘 한 가운데에 가 있었다.


“하하하, 그런 것을 무아지경이라고 한다. 그런 일이 많을수록 너희의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니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거라. 그리고 희아도 기죽을 것 없다. 너 역시 시작하자마자 기를 찾는 다는 것은 굉장히 천재적인 것이니 열심히 수련하면 너 또한 훌륭한 장사의 재목이 될 수 있다.”

“네? 진짜지요, 장사님?”

“옳다마다. 자, 시간이 어느덧 이리 되었으니 점심을 먹으러 가자꾸나. 점심을 먹은 후에는 루안은 천하장사님께 씨름을 배우고 희아는 태백장사님께 국궁을 배우면 된다.”

“네!”

“네!”


두 아이는 벌써부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


역시 이 곳의 음식은 최고였다.

루안은 다시 한 번 갈비라고 불리던 짭쪼름하고 달콤한 고기구이에 맛을 상기시키며 씨름 수련동으로 들어섰다.

수련동의 길목은 총 3갈래인데, 왼쪽으로 돌면 오전에 있었던 태껸 수련동이고 돌지 않고 직진 하면 씨름 수련동이 나왔다.

씨름 수련동은 큰 공들이 굴러다니던 태껸 수련동과는 다르게 넓은 모래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래판 한 가운데에는 엄청난 크기의 바윗돌들이 쌓여 있었고 그 옆에 천하 장사가 자애로운 웃음을 띄며 루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장사님.”


루안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 했다.


“그래, 어서 오거라. 점심은 맛있게 먹었니?”

“네! 전 갈비처럼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봤어요!”

“허허허허 그랬구나. 루안이의 입맛에 우리 음식이 이리 잘 맞으니 내가 다 뿌듯하구나.”

“헤헤헤헤”


루안은 멋쩍게 웃으며 몸을 꼬았다.


“김일 금강장사에게 들으니 오전에 치우를 제법 익혔다고 하더구나. 잘 되었다. 치우를 계속 신경 쓰며 오늘부터는 씨름을 배워보도록 하자꾸나.”

“네!”


루안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씨름은 우리 몸의 근간을 이루는 근육의 힘을 극대화하여 폭발적인 힘과 속도를 내게 해주는 무술이다. 씨름이 제대로 발휘되면 적은 눈 깜짝 할 사이에 바닥에 내쳐져 지게 된단다.”


루안은 처음 노영학 장사를 만났을 때 3미터나 되던 오우거가 손 한 번 못써보고 장사에 의해 바닥에 매다 꽂아지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천하 장사는 설명을 이어 갔다.


“씨름도 태껸과 마찬가지로 3가지로 나뉘어져 있단다. 우선 타격기인 ‘한라’. 상대에게 공격을 하는 기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반격기인 ‘백두’.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받아치는 기술들로 이루어져 있지. 마지막으로 살인기인 '천하‘. 아직 너에겐 잔혹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상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일격필살의 기술들로 이루어져 있다. 씨름은 이 자체만으로도 일당백의 훌륭한 무술이나 태껸과 함께 운용되었을 때 곱절의 위력을 내는 상승의 무술을 펼칠 수가 있게 된다. 여기까지 이해하겠니?”


루안은 총기가 흐르는 눈빛을 띄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라, 백두, 천하. 네, 장사님. 알겠어요.”

“훌륭하구나. 하지만, 오늘 할 것은 한라도, 백두도, 천하도 아니다. 씨름은 우리의 근육이 필수적으로 단련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고위의 무술이기 때문에 우선은 근육 단련부터 하게 될 거란다. ‘역칠기삼’. 힘이 7이요, 기술이 3이다. 라는 이야기로 씨름을 구사하는데 필요한 기본 요소를 뜻한단다. 즉, 근육이 뿜어내는 근력이 씨름을 구사하는데 7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니 그만큼 근육의 단련은 매우 중요하다. 가까이 오너라. 루안.”


루안이 가까이 오자 장사는 옆에 있는 바윗돌 하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루안은 기겁했다.

바위의 크기는 폭은 세 뼘 정도였으나 높이가 루안의 허리께까지 올라올 정도로 컸다.


“이 돌을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 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 치우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사람의 힘만을 이용하여 단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루안은 침을 꿀꺽 삼킨 후 바위를 받아들었다.

놀랍게도 루안은 가뿐히 받아들었고 자기 자신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수월히 단련을 이어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8 살배기 꼬마가 들 수 있는 크기의 바위는 아니었다.

루안은 모르고 있었지만 태극 장사의 내단을 마심으로써 그의 근력은 일반적인 축을 넘어서는, 일종의 탈태를 겪은 후이기에 생각보다는 쉽게 바위를 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천하 장사는 부지런히 루안의 단련을 지도했다.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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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13화 : 타오를 향해 +7 20.05.29 538 15 16쪽
17 제12화 : 신검 +11 20.05.28 613 15 22쪽
16 제11화 외전2 : 사일라의 탄생 +5 20.05.27 578 1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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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11화 : 노야의 정체 +10 20.05.25 614 15 18쪽
13 제10화 : 모골린의 별 +11 20.05.22 644 1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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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5화 : 모드시에서 +1 20.05.15 865 19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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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4화 : 보라매 +5 20.05.14 1,143 21 26쪽
4 제3화 : 준비 +9 20.05.13 1,353 25 31쪽
» 제2화 : 수련의 시작 +3 20.05.13 1,671 26 27쪽
2 제1화 : 새로운 삶 +11 20.05.12 2,150 37 26쪽
1 프롤로그 : 동화 속 만남 +37 20.05.12 4,018 67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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