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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타스틱 님의 서재입니다.

Another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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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wan타스틱
작품등록일 :
2020.05.12 15:14
최근연재일 :
2021.11.0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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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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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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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제8화 : 바토르로 향하는 길

DUMMY

제 8화. 바토르로 향하는 길


루안 일행이 바토르로 향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분명 유목 민족이 많다는 이야기를 루카에게 듣고 출발하였지만, 우연찮게 동선이 겹치지 않은 것인지, 3일간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다.


“흐아아암~ 어휴, 지루해 죽겠네. 가도 가도 계속 땅만 보여. 정말, 어휴. 루카, 누이. 몸도 찌뿌둥한데 여기서 밥이나 먹고 쉽시다.”

“어휴, 그래, 그러자, 나도 몸 좀 풀어야 될 것 같애. 희아는 괜찮니?”


루카가 기지개를 키며 말을 받았다.


“누가 먼저 말 꺼내나 했어요. 얼른 밥이나 차리자구요.”


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에서 뛰어내렸고, 대충 자리를 다진 다음 불을 피웠다.

제법 업무분담이 잘 되어 있는지 불길이 이자마자 루안은 꼬챙이를 세워 작은 냄비를 걸었다.


“난 뭘 할까, 루안?”


음식 재료 손질을 도맡았던 루카는 루안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물었다.


“육포를 한 입 사이즈로 좀 잘라주세요. 마늘도 좀 다져주시구요.”

“오케이.”


루카는 바로 가방에서 쪽진 마늘을 한 줌 꺼내고 칼질을 시작했다.


“몇 번 먹으면서 맛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긴 했지만······. 그래도 이 마늘의 양은 매번 놀랍다.”


루카는 처음 루안의 음식을 먹을 때 마늘을 쏟아 넣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평소 자신이 먹던 음식에는 마늘이 두 쪽 들어가면 과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과연 루안의 음식이 먹는 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으나, 지금은 루안의 음식, 정확히는 고려의 음식에 푹 빠진 상태였다.


“바이두 숲에 가면 더더욱 놀라운 음식들이 넘쳐난다구요.”


루안이 용기에서 김치를 반쪽 꺼내더니 냄비에 넣으며 말했다.


“이번엔 김치를 끓이는거야?”


루카가 마늘을 모두 다지고 육포를 뜯으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바라봤다.

이제는 김치에 대한 의문도 싸그리 지운 루카였다.


“펄펄 끓는 물에 푹 익으면, 이게 또, 어마어마하죠. 아 다 됐어요? 그냥 냄비에 다 부어주세요.”


루카는 육포와 마늘을 전부 쏟아넣었다.


“30분만 끓으면 돼요. 삼삼하게 했으니까 빵 없이 이것만 딱 먹자구요. 그 동안 좀 쉬어요.”

“푹 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누군가 오고 있어.”


희아가 먼 곳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희아의 시선이 닫는 곳에는 웬 인영이 말을 타고 터덜터덜 루안 일행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서 오고 있으니 마적은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조심하지 않기에는 세상은 매우도 험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세 사람은 바로 출수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덧 인영이 가까워져 왔는데, 예상한 바와는 다르게 인영은 자그마한 노인이었다.

흙빛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노인은 다듬지 않은 수염에 옷에 때가 많이 타 상당히 추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이구, 안녕들 하신가? 식사를 하려는 중이었나 보고만.”


노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심을 끊지 않고 있는 루안 일행을 보며 능청스레 인사를 건넸다.


“노려보지 말게들. 아무 힘없는 노인네가 마적 질이라도 하겠는가?”


루카가 나서며 물었다.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아무래도 이 곳엔 위험한 자들이 많으니 꼭 신원확인을 해야 함을 양해해 주십시오.”

“집도 절도 없이 길에서 먹고 자는 노인네라 밝힐 만한 이름도 없네. 그냥 노야라고 불러주시게. 난 캐내딘으로 가고 있는 중일세. 그곳에 만날 사람이 있거든. 이만하면 충분한가?”


루카는 여전히 의심을 놓지 않았다.


“노인 혼자 가기엔 너무 먼 길 아닙니까?”

“맞네. 고되지. 그래서 바토르에 들러 쉬면서 또 구걸이라도 해서 먹을 생각이었다네. 이렇게까지 내가 얘기를 해주어야할 거라곤 생각 못했구먼.”


그럼에도 루카는 미심쩍게 보았으나 머쓱해진 희아가 대신 말을 건넸다.


“죄송해요, 어르신. 가시던 길, 마저 가세요. 마적들이 많다니까 조심하시구요.”


하지만 그 말에도 노야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네들도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바토르까지 가는 거 아닌가? 여기서 4일은 더 가야할 터인데······. 난 배도 고프고 힘도 없으니 마적들이 나타나면 딱 목이 날아가기 십상일세 그려.”


노야는 노골적으로 동행의사를 밝혔다.


“안됩니다. 가십시오.”


노야의 의사를 알아챈 루카가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희아와 루안은 조금은 난감해 하는 표정이었다.

노야는 밖에서 굴러먹던 눈칫밥으로 그것을 바로 알아차렸고 희아와 루안만을 쳐다보고 얘기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다 늙은 몸으로 말 위에만 있자니 아주 온 탈이 다 나는구먼. 거기다 언제 제대로 된 식사를 했는지도 모르겠고······. 늙으면 죽어야 돼, 무슨 놈에 캐내딘은 캐내딘이람, 아이고, 임자. 기다리시오, 내 곧 뒤따라가겠소.”


루카가 얼굴을 찌푸리며 화를 내려 하다 루안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노야! 곧 밥이 다 됩니다. 같이 식사라도 하시죠.”

“뭐? 얌마, 무슨 소리야!”


루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루안을 바라보자 희아가 대신 변호하듯 말했다.


“미안해요, 루카.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어른을 공경하라고 배웠어요. 그리고 우리를 아버지같이 길러주신 분도 노야 같은 어르신이시구요.”


희아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루카는 조금은 누그러졌다.


“아니, 그렇지만······. 정확한 정체를 알기가 힘들잖아.”

“한 번만 넘어가줘요, 루카. 그린빈의 일원이라면 협과 의가 중요하잖아요. 약자를 도와야죠.”

“끙······.”


희아가 그린빈의 정신까지 들먹이자 루카는 더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늘 자신이 입에 달던 소리이니 오죽하겠는가?


“에잉, 이 영감님과 관련해서 탈이 나면 다 너희가 책임져!”

“하하, 고맙네, 루카군. 여기 어여쁜 소녀와 잘생긴 소년은 이름이 어찌되누?”


루카는 소개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이름으로 부르는 노야였다.


“저는 희구요. 여긴 제 동생 루안이에요.”


희아가 소개하자 루안이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남매라······. 흑발의 누이와 흑발과 은발이 섞인 남동생. 아주 신비롭구만. 어른을 잘 모시는 거 보니 교육 또한 아주 잘되었어. 분명 훌륭한 분들에게 배운 게야.”

“하하, 감사해요, 노야. 이제 음식이 다 된 것 같아요. 자리에 앉으세요.”


루안은 인사치레를 건네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 냄비 안에서는 묘한 새콤함과 고소함을 내포한 향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저절로 침이 줄줄 흐르는 향이었다.


“호~, 보통 음식이 아니구만.”


노야가 흥미롭게 쳐다봤다.


“아마 처음 드셔보실 거예요. 김치찜이라고 하는데. 우리 가문에 전통으로 내려오는 비전의 음식이랄까요?”


루안은 그릇 가득 김치와 고기를 덜어 스푼과 함께 노야에게 건네었다.


“자, 이건 루카꺼······.”


루안은 루카에게 미안했는지 고기를 한가득 담아주었다.


“흠흠, 고맙다.”


루카는 성을 내다 바로 밥을 받아먹기엔 민망했는지 괜히 헛기침을 해대고는 받았다.


“그리고, 누이꺼. 이건 내꺼······! 자, 다들 드셔보세요.”


다들 스푼에 고기와 김치를 얹고 국물에 살짝 적셔 입에 털어 넣었다.

처음에는 김치만의 새콤한 맛이 팍 치고 나오더니 이후 고기의 쫄깃함과 익은 김치만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촌스러울 수 있을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입안에 맛의 회오리가 쳤다.


“햐, 기가 막히구나. 이 음식을 희가 한 것이니?”


노야가 감탄한 표정으로 희아를 바라봤다.


“맛있죠, 노야? 제가 한 건 아니에요. 저희 루안이 한 거예요.”

“호~, 그렇구나. 참으로 훌륭한 솜씨구나.”


노야는 입으로는 칭찬을 하며 눈은 게슴츠레 루안을 바라보았다.

밥을 허겁지겁 퍼 먹느라 눈치 못 챈 루안이 시선은 숟가락에 고정한 채 대답했다.


“더 드세요, 노야. 아직 많이 있어요.”

“나, 우물우물, 나, 더 줘. 우물”


루카가 입에 가득 음식을 털어놓고 그릇을 내밀었다.

그렇게 경계를 하더니 김치찜 맛에 노야에 대한 것은 저 멀리 날려버린 루카였다.


##


식사를 마친 루안 일행은 어느 덧 4명이 되었고, 또다시 지긋지긋한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앗! 지겨워! 루카! 뭔 놈에 유목민족이 있단 거예요?”


루안은 도끼눈을 뜨고 루카를 바라봤다.


“왜 나한테 그래? 누가 보면 내가 유목민들 다 도망치라고 한 줄 알겠다. 유목민족은 말 그대로 유목민족이니까 계에에에에속 떠돌아다니잖아. 안 겹치는 우리가 더럽게 재수가 없는 거지 뭐."

“끌끌끌끌 젊음이란 좋구나. 나이를 먹다 보면 그저 이렇게 조용히 아무 일도 없는 게 감사한데 말이다.”


노야의 말에 루안이 대답했다.


“말도 마세요, 노야. 마음 같아서는 마적이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다니까요?”


두구두구두구두구


갑자기 멀리서 많은 말발굽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루카가 검을 뽑아들었다.


“어째, 말이 씨가 된 것 같다.”


바로, 마적들이었다.

마적들은 10명 정도의 규모였는데 가까워질수록 보이는 인상들은 그야말로 험상궂고 더러웠다.


“크하하하하. 우리를 만나다니 아주 운이 없구나. 응? 오~ 젊고 탱글한 계집도 있네?”


마적 무리 중 가장 앞에 자리한, 우두머리로 보이는 덩치 큰 자가 소리쳤다.


“가진 거 전부 바닥에 내려놓으면 지나가도록 해주지. 물론 거기 까만 머리 계집도 말에서 내려야 한다. 그럼 내가 아주 구석구석 예뻐해 주마”


우두머리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들고 있던 칼끝으로 희아를 가리켰다.


“너 지금 뭐라 씨부렸냐?”


루안이 희아를 노리개 취급하듯이 말을 하자 화가 잔뜩 난 모양이었다.


“뭐라?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우두머리가 꽥 소리를 지르자 루안이 희아에게 말했다.


“누이는 노야를 지켜줘.”


희아도 많이 불쾌했는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넌 해선 안 될 소리를 했다. 아주 뒤졌다고 복창해라, 썩을 놈아.”


루안이 말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 나가며 얘기했다.


“푸하하하, 솜털만한 것이 용기는 가상하다. 좋아, 니놈도 살려는 주마. 얼굴이 뽀송뽀송하니 곱상한 것이 노예로 팔아먹기 아주 좋겠어. 얘들아 저기 노인네랑 떨거지만 처리해라.”


그러자 졸개들이 말을 몰고 우루루 뛰쳐나갔다.


“뭐? 떨거지? 나는 곱상하지 못해서 죽인단거냐? 참내. 위대한 그린빈의 소대장을 그따위 취급해? 나도 노예로 쉽게 팔릴 수 있다고(?)!”


조금은 다르게 분노한 루카도 말을 몰고 뛰쳐나갔다.

공교롭게 말에서 내린 건 루안 뿐이었으나 루안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마적 하나가 앞으로 다가오자, 루안은 위로 점프하더니, 청와품의 묘리로 허공에서 한 번 더 발돋움 하여 마적의 등 뒤를 도릿발질로 걷어찼다.


“에크!”

“억!”


등을 맞은 마적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말에서 떨어졌고, 루안은 그 반동으로 또 다른 마적을 돌개질로 날려버리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루카도 역시 준수한 검술로 마적 하나의 목을 베어낸 참이었다.

순식간에 세 명이 당하자, 나머지는 깜짝 놀라 말을 늦추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루안과 루카가 다가갔다.

루안이 발을 구를 때 마다 마적들은 걷어 차여, 말에서 떨어져 기절 했고, 루카의 칼이 춤을 출 때 마다 마적의 신체 한 부분이 잘려나갔다.

아무리 잔뼈가 굵은(?) 마적들이더라도 쫓겨난 유목민들이 만든 오합지졸이 정규화 된 훈련을 받은 둘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우두머리를 제외한 9명의 마적들이 전멸당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으아앗!”


우두머리는 9명 모두가 채 쓰러지기도 전에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루카가 소리쳤으나 놈은 이미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퍽

한 발의 파공성과 함께 놈은 기절하듯 말에서 떨어졌다.

그 파공성의 시작에는 희아가 활을 들고 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적들의 등장은 이렇게 간단한 헤프닝으로 끝이 나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무언가 생각이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노야가 있었다.


##


해가 지고 어두워진 사위를 모닥불이 장작을 태워내며 밝히고 있었고 그 주위를 4명의 노소가 둘러앉아 있었다.


“드디어 내일이면 이 징글징글한 초원을 벗어나고 바토르에 도착하는 거죠?”


루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국 야행 내내 유목민은 털끝만큼도 보지 못했네.”


이번엔 희아가 물었다.


“노야는 바토르에 가시면 그 곳에서 좀 머무를 거라고 하셨죠?”

“그렇단다. 너희들과의 여정도 내일이면 끝이 나는구나.”


희아와 루안은 말없이 모닥불을 바라봤다.

그래도 3일간 정이 많이 들어 헤어진다 생각하니 쓸쓸했던 것이다.


“그럼 오늘은 마지막 밤이니 못 다한 얘기들을 한 번 해보자꾸나. 어떠하냐?”

“좋아요.”

“저도요.”

“뭐, 자기엔 이르니 한 번 해보시죠.”


루안을 시작으로 희아와 루카까지 동의했다.


“나부터 시작하마. 전부터 꼭 물어보고 싶었던 거란다.”


노야는 입을 떼고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루안의 이름에 형태나, 생김새를 보면 대륙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분명한데······. 어떻게 바이두 숲의 아이가 된 것이지?”


세 사람은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이내 루카가 검을 뽑아 들고 노야를 겨누며 말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대체 당신의 정체가 뭐요? 어떻게 그걸 아는 거지?”


노야는 루카의 위협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려인들의 음식을 그렇게 자연스레 만들어 내고, 게다가 그들의 마나운용을 익히지 못하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격투술인 태껸까지 수준 높게 구사하더구나. 그리고 그 정도의 실력이면 분명 무사의 실력이다. 희는 이름의 형태나 생김새를 보더라도 고려인이란 걸 알 수 있으나······. 너는 그렇지 않구나. 너야말로, 대체 누구냐?

“아니······. 대체 어떻게······?”


희아는 너무 몰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부탁이다. 말해다오.”


루안을 바라보는 노야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꿀꺽


루안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숨기거나 거짓을 말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들통이 날 것만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맞아요. 전 8년 전에 숲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루안, 이 노인네한테 놀아나지 마! 말 안 해도 돼. 으헉!”

루안을 다급히 말리려던 루카가 갑자기 숨을 급하게 내뱉더니, 그대로 멈춰버렸다.

“자네가 그러는 것은 다 이해한다네, 루카. 루안을 위하는 마음이 잘 느껴지는군. 하지만, 조금은 기다려주게. 내 약속컨대 절대 이 아이들에게 해가 가는 일은 없을걸세.”


루카는 몸이 굳은 채로 경악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노야가 무슨 수를 쓴 것 같았다.

눈치 챈 희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루안이 말씀드리려는 것 같아요. 그러니 루카를 풀어주세요, 노야!”

“알겠네. 그러니, 부디 잠시만 기다려주게.”


노야가 루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푸하, 헉헉, 이런 빌어먹을!”


루카는 몸이 다시 움직여지자 잠시 숨을 고르더니, 검을 거칠게 집어넣으며 욕지기를 뱉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상황이 진정된 듯하자, 루안이 말을 이어나갔다.


“8년 전, 제이프 제국은 루시아를 토벌한다는 이유를 들어 사일라 왕국을 침략하게 돼요.”


끔찍했던 과거를 복기하는 루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가엽고 안쓰러워 희아는 루안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당시 사일라에 있었던 저는 제이프를 피해 달아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고려인들은 어느 하나 이방인인 저를 멀리하지 않았고 따뜻하게 맞아주었죠. 그래서 전 지금도 ‘나는 고려인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고려의 무술을 사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루안의 이야기를 들은 노야는 깊은 한 숨을 쉬었다.


“흠······.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인지고. 그랬구나.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그간 고생이 많았구나.”


순간 루안은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루안아.”


노야는 차분하게 루안을 불렀다.

그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따뜻하여 루안은 마음이 편해지는 듯 했다.


“너는 왕가의 아이구나.”


루안은 노야가 어떻게 그런 것을 아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이번에도 쉽게 수긍하였다.


“네, 제 풀네임은 루안 폰 사일라. 사일라 왕가의 현 2왕자예요.”


정작 놀란 건 루카였다.


“뭐?”


희아가 루안을 대신해 말했다.


“미안해요, 루카. 굳이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루카는 여간 놀란 게 아닌지, 입만 벌린 채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래. 역시, 그랬구나.”


노야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노야는 어떻게 그걸 아신거예요?”


같은 질문을 다시 하는 희아였다.


“이유가 있단다, 희야. 고려인들의 무술은 배우고자 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고려인의 피가 흘러야만, 고려인들만의 독특한 마나운용술인 치우를 운기 할 수 있게 된다.”

“네? 그렇지만, 루안은······.”


희아는 반박하려 하였지만 노야가 다 안다는 듯이 말을 끊어 더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안다. 루안은 고려인의 태생이 아니지. 하지만, 고려인의 피가 흐른다면 어떻겠니?”


이번엔 루안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노야?”

“먼 옛날 용마대전이 종료 된 그 시점.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이두 숲에 자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고려인들이 숲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야. 다른 종족으로 우리 세계에 초청이 되었지만, 어찌됐든 그들 역시 인간이었지. 이 세계의 토착 인류들과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세 사람은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잠자코 듣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고려인들 중에는 리더 격의 사람도 있었지. 그의 이름은 혁거라고 한다. 그는 대륙의 왼쪽 반도에 살았던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결실을 이루게 되지. 고려인과, 이 세계 인류의 혼혈아가 태어나게 된 것이야. 혁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가지고 있던 고려 신물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그 곳에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그 나라가 바로 사일라 왕국이다. 즉, 루안이 고려의 무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고려인과 현 인류, 혼혈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노야의 말대로라면 사일라 왕국은 고려인이 세운 것이 된다.

자신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루안과 희아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대체, 당신은 누구죠 노야?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이란 말인가요?”


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너희들을 만난 것 역시 운명인 것 같구나. 하지만, 아직은 시기가 옳지 않다. 내가 누군지는 훗날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말에는 물론 거짓이 섞이지 않았단다. 자······. 이제 여기까지구나. 헤어질 시간이란다. 여기까지 즐거웠다. 우리는 또 만나게 될 것이야.”


노야는 말을 마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그런 노야의 손에는 작은 손거울 하나가 들려있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안돼요. 말해 주고 가세요!”


루안이 떠나려는 것 같은 노야를 붙잡으려 급하게 일어났으나 순간 거울에서 빛이 나더니 노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


똑똑


“들어오십시오!”


방문의 허락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두 사람이 들어왔다.


“어서들 오십시오.”

“태백장사, 추모, 왕검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금강장사, 김일. 왕검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들어 온 두 사람은 장사들이었다.


“헌데, 이 야심한 시각에 어쩐 일이십니까, 왕검님?”


현재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장사님들을 오라 가라 하는 건 실례인 줄 압니다만, 너무도 중요한 일이 있어 그랬으니 용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용서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하여, 무슨 일입니까?”


태백장사가 인사치레를 하고 되물었다.


“방금 전, 두 신예무사로부터 보라매가 왔습니다. 들어보니 보통 내용이 아니더군요. 아무래도······. 그가 활동을 개시한 것 같습니다.”

“그라면······? 설마!”


금강장사가 곰곰이 생각하다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그렇습니다. 그가 움직였다면 분명 제이프가 활동하는 것을 감지한 것일 겁니다. 이제 우리도 발맞추어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어차피 드워프들에게는 보라매가 움직이고 있으니······. 엘프들에게 따로 정보를 알려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후가 좋을 듯합니다.”


금강장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저 역시 금강장사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금강장사는 지금 바로 나가 권후 무사에게 채비를 지시하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

“알겠습니다, 왕검님.”


금강장사는 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태백장사님은 동이 트는 대로. 당장 전투가 벌어져도 견딜 수 있도록 물자 확인을 해주시고 무사들의 방어 동선에 심혈을 기울여주십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이제······. 역사가 다시 반복되려 하고 있군요.”


왕검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


“하암~ 응?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장사님?”


후는 실컷 꿀잠을 자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억지로 일어났다.

문을 열어보니 금강장사가 온 것이었다.


“늦은 시간에 정말 미안하구나.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리 급하게 오게 되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무사 권후는, 왕검님이 하명하신 임무를 수행하라.”


갑자기 말투를 바꾼 금강장사가 짐짓 엄하게 소리쳤다.

바짝 정신이 든 후는 다급하게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무사 권후! 하명하십시오.”

“지금 당장 채비를 마쳐 쇼블랑 숲을 향해 떠나라. 그 곳에 있는 엘프들을 만나 제이프가 다시 마수를 드러내고 있다고 전해야 한다.”

“무사 권후!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금강장사는 바로 뒤돌아 자리를 벗어났고 후도 별다른 말없이 바로 짐을 꾸렸다.

쇼블랑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사랑하는 아우들이 돌아오기 전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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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Korean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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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16화 : 전조 - 1 +11 20.06.04 501 15 9쪽
21 제15화 외전 : 성을 나온 다델 +10 20.06.03 515 13 14쪽
20 제15화 : 다델과의 만남 +7 20.06.02 508 15 18쪽
19 제14화 : 위기를 기회로 +9 20.06.01 537 14 23쪽
18 제13화 : 타오를 향해 +7 20.05.29 538 15 16쪽
17 제12화 : 신검 +11 20.05.28 614 15 22쪽
16 제11화 외전2 : 사일라의 탄생 +5 20.05.27 579 16 19쪽
15 제11화 외전 : 혁거 +3 20.05.26 590 15 14쪽
14 제11화 : 노야의 정체 +10 20.05.25 615 15 18쪽
13 제10화 : 모골린의 별 +11 20.05.22 644 14 26쪽
12 제9화 : 소집령 +9 20.05.21 666 13 23쪽
» 제8화 : 바토르로 향하는 길 +7 20.05.19 695 16 22쪽
10 제7화 : 새로운 깨달음 +7 20.05.18 760 16 24쪽
9 제6화 외전 : 쿠빌린 +3 20.05.16 754 15 22쪽
8 제6화 : 돌리스 +1 20.05.15 784 17 20쪽
7 제5화 : 모드시에서 +1 20.05.15 867 19 23쪽
6 제4화 외전 : 용병왕의 탄생 +1 20.05.14 944 19 19쪽
5 제4화 : 보라매 +5 20.05.14 1,144 21 26쪽
4 제3화 : 준비 +9 20.05.13 1,354 25 31쪽
3 제2화 : 수련의 시작 +3 20.05.13 1,672 26 27쪽
2 제1화 : 새로운 삶 +11 20.05.12 2,150 37 26쪽
1 프롤로그 : 동화 속 만남 +37 20.05.12 4,019 67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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