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Hwan타스틱 님의 서재입니다.

Another Kore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Hwan타스틱
작품등록일 :
2020.05.12 15:14
최근연재일 :
2021.11.04 10:38
연재수 :
316 회
조회수 :
89,308
추천수 :
2,654
글자수 :
1,801,981

작성
20.05.16 14:32
조회
754
추천
15
글자
22쪽

제6화 외전 : 쿠빌린

DUMMY

외전, 쿠빌린


덤폴 기사 학교.

프란칠라 제국에 위치한 이 기관은 전 세계의 귀족 자재나 검술 유망주들이 모이는 엘리트 양성학교로 술사의 탑과 함께 양대 최고 교육 기관 중 하나이다.

그러다보니, 재학 중인 학생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 많은 고위급 기사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오늘은, 덤폴 기사 학교의 후반기 대련 평가의 마지막 날이었다.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는 대련 평가는 학생들 성적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행사였고 그와 동시에 각국에서는 은근히 자국의 기사들의 강함을 뽐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치르기도 하는 행사였다.


“청소년부 결승전에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이 진출했다면서요?”


행사 준비로 바쁜 교직원이 서류를 넘기며 옆 선배 직원에게 물었다.


“맞아, 이제 15살인데 벌써 익스퍼트를 넘어섰다지?”

“네? 세상에. 천재잖아요?”

“뭐야, 자기, 몰랐어? 그도 그럴만한 게······. 글쎄 모골린의 챠키즈 백작 아들이라 그러더라고.”

“맙소사! 챠키즈 백작이요? 그럼 이해가 가네요. 세상에나······. 음? 근데 그런 것 치곤 좀 늦네요? 제가 듣기로 챠키즈 백작은 이미 15살에 하이어의 경지에 올랐다고 들었는데요.”

“그게 난 참 안타깝더라. 자신도 이미 천재로 태어났는데, 자기 아버지가 그걸 넘어서는 천재라니······.”


뎅 뎅 뎅


한참 두 사람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갈 때 쯤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대전 평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평가가 열리는 연무장에는 교수진들을 비롯하여, 학생 전원과 그저 콧대 한 번 세워보겠다고 방문한 외부 손님들까지 있어 굉장히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오늘의 승패를 점치며 의견을 주고받느라 연무장은 상당히 떠들썩했다.

그러던 중, 연무장 가운데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저는 오늘 청소년부 대전 평가 결승의 심판을 담당하게 된 라이컨 교수입니다. 이제 대전 평가를 진행하려고 하니 조금만 정숙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입을 닫고 자신에게 주목 하자 라이컨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오늘 청소년부 결승에 진출한 두 학생을 소개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면 연무장으로 올라오길 바랍니다. 우선 좌군의 로혼.”


소개와 동시에 연무장 좌측 입구에서 한 소년이 올라왔다.

소년은 이미 다 성장한 것인지 180이 넘는 키에 다부진 골격을 가진 강한 외형의 소유자였다.


와아아아


소년이 등장하니 루시아 신성 제국에서 온 방문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루시아의 거대한 명문가의 아들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다음은 우군의 쿠빌린.”


그러자 티 없이 맑은 피부에 유려한 몸선을 가진, 얼핏 봤으면 소년이 아닌 소녀로 보일법한 예쁘장한 소년이 걸어올라왔다.

그러자 주위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챠키즈의 아들을 직접 보려고 자리한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인데, 소년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빛들에는 제각기 다른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는 시기심을, 누군가는 부러움을, 누군가는 기대를, 누군가는 탐욕을······.

알고 보면 그저 그런 아이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자신의 잇속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간의 경례 후 준비.”


라이컨 교수가 두 학생들에게 지시하자,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목례를 취한 뒤 검을 뽑아들고 서로를 겨누었다.

둘은 외관만큼 사용하는 검도 굉장히 달랐는데, 로혼은 한 손으로는 들기조차 힘든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사용했고, 쿠빌린은 굉장히 얇고 곧은 에페 형태의 검을 사용했다.


“대련은 승패가 나기 전까지 지속된다. 살수를 사용하거나, 심판이 판단하기에 비겁하다 여겨지는 행동을 취한다면, 바로 패배로 간주한다. 연무장을 벗어나는 것 또한 장외패로 간주하겠다. 질문 있나?”


로혼이 능글맞은 얼굴로 물었다.


“실수로 죽이면 어떡합니까?”


라이컨 교수는 짐짓 엄한 얼굴로 대답했다.


“농담은 받지 않겠다. 쿠빌린은 질문 있나?”


쿠빌린은 말 없이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좋다. 그럼 대련을 시작하라!”


라이컨 교수는 소리를 크게 지르고 뒤로 훌쩍 물러났지만, 둘은 바로 격돌하지 않았다.


“큭큭, 네가 그 잘나신 글로리아 소드 마스터의 아들이냐?”

“······.”

“네 아비의 검이 얼마나 매섭길래 그런 하층민들의 나라가 떵떵거리면서 지내는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챠키즈의 명성은 나 로혼이 떨어뜨려주겠다.”

“······.”


로혼이 계속 도발하였으나 쿠빌린은 한 마디 반구 없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흥, 잔뜩 겁먹었군. 너를 보니 챠키즈도 용맹한 구석은 찾기 어렵겠어.”

“그럴지도.”

“뭐? 억!”


이번엔 쿠빌린이 대답하였으나 워낙 작게 중얼거려 로혼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시간이 없었다.

중얼거린 쿠빌린이 별안간 쇄도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쿠빌린은 검술은 그의 외관과 검의 형태처럼 굉장히 유려했으나, 검의 실린 힘은 예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거칠고 패도적이었다.


휙 깡깡


얼떨결에 막아내긴 했으나 바스타드 소드가 크게 울어대자 로혼은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그만큼 쿠빌린의 공격은 위력적인 것이었다.


“윽, 이 자식이!”


검을 놓칠 뻔한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벌게진 로혼은 그 화를 쿠빌린에게로 돌렸다.

로혼이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장난감같이 가볍게 휘두르며 쿠빌린의 사방을 갈라냈지만, 쿠빌린은 제자리에서 약간의 발놀림만으로 로혼의 검을 피해냈다.

그러고는, 손목만 살짝 튼 채 검을 찔러 넣어 로혼의 검에 옆면을 쳐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기가 막힌 몸놀림.

그야말로 천재였다.

자신의 바스타드 소드가 힘을 잃고 크게 튕겨나가자 로혼은 자연스레 앞이 열리게 되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쿠빌린의 검은 어느새 로혼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었다.


“그만! 후반기 대련 평가의 우승은 우군의 쿠빌린!”


와아아아


라이컨 교수의 외침과 함께 승패가 결정되었다.

수많은 강자를 꺾고 결승까지 올라온 로혼이었으나 게임은 손쉽게 끝이 나버렸다.


“으득, 두고 보자.”


쿠빌린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를 무시하고 연무장을 내려갔다.


##


“안녕? 난 링샤야. 아까 경기 잘 봤어.”


쿠빌린은 언제나 그렇듯 주위와 어울리지 않고 항상 바람을 쐬던 학교 내 언덕에 앉아있었는데, 처음 보는 소녀가 와서 인사를 건넸다.

소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에, 흑빛 눈망울을 가졌는데 큼지막한 것이 참 시원시원해 보이는 인상을 풍겼다.

쿠빌린은 따로 대꾸하진 않았다.


“사실 몇 번 너를 봤는데 늘 여기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이번에도 혹시나 하고 와봤는데 맞췄네?”

“······.”


링샤는 계속 자신을 무시하는 쿠빌린의 태도에도 별 신경 쓰지 않고 쿠빌린 옆에 앉았다.


“쿠빌린 맞지? 난 차인 왕국에서 왔어. 물론, 너는 다들 알고 있듯이 모골린 왕국이고. 헤헤, 같은 친나에 위아래로 바로 붙어있는 나라니까 우리도 친하게 지내자?”

“······.”

“음······. 원래 그렇게 과묵······해? 헤헤, 난 주위에서 왈가닥이란 소리를 좀 많이 듣는데, 나랑은 좀 다르네. 아! 혹시 단 거 좋아하니? 나한테 사탕이 좀 있는데, 먹을래?”


그러더니 링샤는 주머니에서 사탕 몇 조각을 꺼내들고는 쿠빌린에게 권했다.

링샤의 자그마한 손을 쳐다보던 쿠빌린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귀찮게 하지마.”


너무도 차가운 목소리에 링샤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 아, 응······. 미안, 헤헤······. 내가 좀 나댔지? 미안해. 그럼······. 나 먼저 일어날게, 그래도! 이건 맛있으니까 꼭 먹어. 알았지? 또 보자.”


링샤는 기어코 쿠빌린의 손에 사탕 하나를 쥐어주고는 쪼르르 달려가 버렸다.

얼핏 닿은 링샤의 손이 매우 따뜻하다고 느낀 쿠빌린은 자그마한 사탕 봉지를 찢어서 입 안에 넣었다.

상쾌한 달콤함이 혀 위를 또르르 굴러다니는데, 부담스럽지 않은 은은함이 꽤나 감미로운 사탕이었다.


“맛있네.”


쿠빌린은 언덕 위를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퍼지는 입안의 달콤함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


이후로도 링샤는 쿠빌린이 언덕에 앉아있을 때면 늘 다가와 친한 척을 하며 말을 걸었고 처음에는 귀찮게만 느껴지던 쿠빌린도 어느새 링샤에게 서서히 마음에 문을 열고 있었고, 어느 샌가 언덕에서의 만남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꽤나 친해진 어느 날이었다.


“쿠빌린. 넌, 그 말투를 고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또 봐, 또! 늘 그렇게 툴툴거리듯이 말하고, 상대를 바라보지도 않고! 그래가지고 제대로 된 연애나 할 수 있겠어?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구! 자고로, 신사란 말이야~ 언제나 숙녀를 배려하며 눈을 마주치고, 따뜻한 목소리로 숙녀를 안심시켜야 한 단 말이야. 그런 면에서 쿠빌린은 검만 잘 쓰지, 신사로써는 빵점이야!”


짐짓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유난을 떨며 말하는 링샤가 쿠빌린은 꽤나 귀여워 보였다.


“흥, 꿈 깨라.”

“어휴······. 됐다, 됐어. 내가 누구한테 얘기하겠니? 넌 평생 여자는 못 만날 거야.”

“너랑 있으면 돼지.”

“어? 뭐라고?”


순간 링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쿠빌린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술 연습이나 하자. 너 낙제라며, 따라와. 좀 봐줄게.”

“으, 응.”


링샤는 다급하게 일어나서 앞서 가는 쿠빌린의 뒤를 따랐다.

그러고 보니 링샤는 쿠빌린이 자신에게 처음 웃는 얼굴을 보여준 걸 깨달았다.


##


링샤와 쿠빌린이 언덕에서의 만남과 검술 연습을 계속 함께 한다는 소문은 은연중에 퍼져나갔다.


“링샤라는 계집애가 그 개자식의 연인이란 말이야?”

“그렇대, 요즘 둘이 계속 붙어 다닌다고 하던데?”

“좋아, 드디어 그 자식을 엿 먹일 수 있겠군. 너 가서 애들 좀 불러와라. 아주 계집질에 환장한 것들로 말이야.”


쿠빌린과의 대련에서 패배한 후 엄청난 치욕을 느낀 로혼은 호시탐탐 쿠빌린에게 복수 할 상황만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링샤의 등장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


휙휙 휙휙


밤 늦도록 훈련장에서 눈부신 흑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어여쁜 소녀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 늘 여기에서 막히네······. 쿠빌린은 잘만 하던데, 왜 난 안되지?”


링샤는 현재 검술을 연습 중이었고 그녀가 연습하는 검술은 쿠빌린이 직접 고안한 검술로써 가녀린 사람이 강대한 일격을 가하기에 쉽게끔 구성되어 있었는데, 아직 검술 이름을 정하진 못한 상태였다.

막히던 부분을 두어 번 더 시도해보고 이내 검을 멈춘 링샤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안 되는 곳은 내일 쿠빌린한테 한 번 더 물어봐야겠다.”


대충 주위 정리를 한 링샤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숙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그녀는 멈춰서야만 했다.

앞에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길을 막고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링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지나가도 될까?”


링샤는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그러자 맨 앞 큰 키의 남학생이 씩 웃으며 대답는데, 그는 로혼이었다.


“아직은 안 돼. 링샤, 맞지? 차인의 몰락 귀족이 딸이라도 성공시키겠다고 전재산을 털어 겨우 덤폴에 입학시켰다지?”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어서 비켜줘!”

“건방진 년. 어디 비천한 계집이 감히 대 루시아의 후작가를 이을 이 로혼의 말을 막나? 요즘 니년이 그 잘난 쿠빌린과 붙어 다닌다고 제법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니는구나. 그래, 한 번 보자. 과연 쿠빌린이 더러워진 니년을 쳐다나 볼지 말이다. 잡아.”

“뭐, 뭐?”


당황한 링샤는 급하게 검을 뽑으려 했지만 먼저 달려든 남학생들에게 손목을 붙잡힌 뒤 입을 잡혔다.


“웁웁!”


아직 십대의 청소년들이라지만, 발정에 눈이 먼 수컷들의 야성은 가녀린 소녀가 떨쳐내기엔 너무나 강력했고 그 우악스러운 손들은 하나씩 하나씩 링샤의 껍질들을 찢어발겼다.


“헤헤, 다들 꼭 붙잡고 있어. 맛은 내가 먼저 볼 거니까.”


어느새 아랫도리를 벗어던진 로혼은 천천히 링샤에게 다가갔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링샤는 눈물만 쏟아낼 뿐이었다.

그 날 밤은 한 사람의 고통과 다수의 쾌락이 공존하는 밤이었다.


##


뭔가 이상한 인기척에 쿠빌린은 눈을 떴고, 자신의 방 안에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여 검을 뽑아든 쿠빌린은 바로 상대를 향해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누구냐! 아니, 링샤?!”


그 상대는 바로 링샤였는데,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옷은 전부 걸레가 되어 봉긋한 가슴과 치부가 모두 드러나 있었고, 손목과 하반신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으며 몸 전체는 끈적한 무언가로 젖어 있었다.

깜짝 놀란 쿠빌린은 서둘러 담요를 덮어주고 링샤를 눕혔다.


“링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쿠빌린······.”


링샤의 목소리엔 기운이라곤 없었다.

언제나 생기 넘치던 목소리를 듣던 쿠빌린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얘기해봐. 듣고 있어.”

“나는 차인 왕국의 몰락한 남작 가문에서 태어났어.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든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셨지. 나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가문의 부흥만을 목표로 살아왔던 것 같아.”

“링샤······.”


링샤는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쿠빌린은 다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나에게 덤폴 기사 학교의 입학 허가증을 내미셨어. 아마 많은 빚을 지셨을 거야, 덤폴의 학비는 상상을 초월하니까. 그러면서 말씀 하시더라구······. 링샤야, 네가 할 일은 덤폴의 명문가 자제들의 여인이 되어 그들의 부와 명예를 얻어내는 것이다, 라고 말이야. 하하······. 딱 우리 아버지다웠지. 맞아, 제일 처음에는 너에게 그것 때문에 말을 건거야. 넌 세계 최강의 마스터에 아들 이였고, 친나 맹주국 백작가의 아들이었으니까······.”


쿠빌린은 링샤의 손을 잡아주며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하지만 맹세코, 너를 이용해야겠단 그런 마음은 너와 처음 이야기를 나누면서 없어졌어. 너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이 너무 따뜻했고 행복했어. 진정으로 너를 사랑하게 된 거야. 그래서 크게 관심도 없던 검술도 열심히 연습했어. 쿠빌린이 만들어준 검술이었으니까 잘 해내면 쿠빌린이 기뻐해 줄 거라 생각했거든.”


점점 링샤의 손이 차가워져 갔다.


“늘 행복할 수는 없나봐. 오늘 난 몸이 더럽혀지고 말았어. 그것도 수많은 짐승들에게······. 쿠빌린과 입을 맞추고 처음을 함께 하고팠던 건 그저 나의 욕심이었나 봐. 그리고 무서웠어. 더러워진 나를 쿠빌린이 경멸하면 어떡할까 하고 말이야. 하하······. 참 멍청했지?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손목을 그어버렸어.”


쿠빌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아······. 링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쿠빌린?”

“물론이야······. 뭐든 얘기해.”

“쿠빌린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헤헤······. 많은 사람들한테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쿠빌린이 되어 줘. 알고 보면 쿠빌린은 웃고 있는 모습이 눈부시게 예쁘니까.”

“그래······. 약속할게······.”

“아······. 갑자기, 너무 졸리다. 나 여기서 자도 돼, 쿠빌린? 좋은 꿈을 꿀 것 같아. 언제나 쿠빌린과 만났었던 저 언덕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헤헤······. 쿠빌린이 서 있던 그 언덕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어. 쿠빌린, 사랑해.”


그리고 링샤는 눈을 감았다.

그 날 쿠빌린은 너무도 서럽게, 너무도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


아직 동이 트기 전, 쿠빌린은 링샤의 시신을 깨끗이 씻겨주고, 가장 좋은 비단 옷을 꺼내 입혀준 뒤, 링샤의 방에 고이 뉘이고 당직 교수에게 이 일을 알렸다.

파렴치한 범죄자들은 금방 밝혀졌지만, 가해자 대다수가 대제국 루시아의 명문가 자제들이었기에 이렇다 할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학교 측에서는 급하게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가해자의 정보와 신상을 모두 알아내고도 처벌을 하지 않은 학교와 국가 측에 큰 환멸을 느낀 쿠빌린은 마법통신구를 통해 자신의 본가에 기별을 넣었다.


“오, 도련님. 건강히 지내십니까? 어쩐 일이신지요?”


백작가의 집사 가한이 수정구 속 얼굴을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가한, 잘 지냈어요? 반가워요. 하하, 아버지 계신가요?”

“물론 계십니다. 전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런 것 같네요. 아버지를 좀 바꿔주실 수 있으실까요?”

“오, 물론이죠. 그러겠습니다. 근데······. 학교생활이 즐거우신가보군요.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이제라도 좀 밝고 예의바르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괜찮아 보이나요?”

“훨씬 보기 좋습니다. 이 늙은이가 벅차오르는군요. 백작님께 연락이 왔다 전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쿠빌린은 가한의 모습이 사라지자 쓸쓸히 웃었다.

명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냐?”

“아버지, 건강하신가요?”

“답지 않게 쓸 데 없는 인사치레는 되었다. 본론만 말해라.”


챠키즈는 오직 검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뼛속까지 무인이었기에, 가족에 대한 애착과 애정은 그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감정이었다.


“전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뜻에 반해본 적 없고, 아버지에게 이렇다 할 요구 한 번 해본 적 없습니다.”

“······.”


챠키즈는 듣기만 했다.


“늘 검만 바라보시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수련하고, 학교생활에도 최선을 다하여 임하려 하였습니다.”

“헌데?”

“오늘로 학교생활은 종료입니다. 저는 오늘 아버지에게서 배우기 시작한 이 빌어먹을 검으로 살육을 행할 것이며, 그 상대는 루시아 명문가의 자제들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관련해서 발생하는 모든 외교적, 물질적 책임을 지어주십시오.”

“푸하하하핫 좋다. 이제 좀 검사처럼 보이는구나. 죽지 말고 돌아와라.”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큰 요구를 하는 아들이었지만 챠키즈는 그 기개가 맘에 들었는지 긍정의 대답을 하였고, 통신은 이내 끊어졌다.

본론을 듣고 답한 챠키즈가 끊어버린 것이리라.

챠키즈는 언제나 이런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지독히도 싫었던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이 날만큼은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 없었다.

답을 들은 쿠빌린은 자신의 검을 뽑아들고 그들을 찾아갔다.


##


쿠빌린은 로혼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여~ 로혼, 잘 지냈나?”


그들은 따로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마침 그 자리에 모두 모여 있었다.


“큭큭큭 이게 누구야? 검술의 천재 쿠빌린 아냐? 웬일이실까, 그렇게 친한 척이나 하고 말이야?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아~ 여자친구 때문인가?”


하하하하하


주위에서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쿠빌린은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내가 딱 하나만 물어볼게. 왜 그런 거야? 링샤가 큰 잘못이라도 한 거니?”

“암, 잘못했지. 매우 큰 잘못을 했지. 바로 비루한 모골린의 삼류 검사 따위가 칼 좀 부린다고 감히 이 로혼을 쪽주었고, 그 년은 그 삼류 검사에게 알랑방귀를 뀌며 붙어 있었지. 그래서 내가 이 아랫도리의 정의에 몽둥이로 혼쭐을 내주었다.”


푸하하하하핫


더 큰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 그럼 결국 내가 미워서 그녀를······. 링샤를 건드린거네?”

“이제 잘 알았으면 앞으로 알아서 기도록 해. 건방진 자식아.”

“오케이! 잘 알았어. 그럼 나로 인해 생긴 일이니 내가 책임져야겠구나.”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쿠빌린의 검은 춤을 추었고 순식간에 두 명의 목이 떨어졌다.


“헉, 뭐, 뭐야! 이 미친놈!”


로혼과 일당들은 깜짝 놀라 검을 빼들었고, 그래도 기사 학교의 상위 클래스답게 일제히 쿠빌린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미 쿠빌린은 소드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닿아있는 고수였다.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을 가졌어도 고작 학생들이 그런 고수를 상대로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지고 로혼 하나만 남게 되자 로혼은 벌벌 떨었다.


“자, 잠깐! 내가 잘못했어! 미안하다! 내가, 그 여자의 집에 엄청난 보상금을 줄게. 그러면 그 여자 집안도 다시 부흥할거야. 사, 살려줘!”


그 말을 들은 쿠빌린은 실소를 뱉었다.


“아마 링샤도 너에게 그렇게 용서를 구했을 거야.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말이지. 근데 넌 어떻게 했지?”


자기 친구들의 핏물을 뒤집어 쓴 채 웃으며 말하는 쿠빌린의 모습은 악귀와도 같아 보였다.


“오, 오지마! 이 나쁜 자식! 시아신의 노여움이 두렵지 않냐!”

“하하하하하하 너, 너무 재밌다. 루시아 신성 제국? 신성 좋아하네. 시아? 엿이나 쳐먹어. 하는 짓은 금수만도 못한 것이 어디 약을 파니?”


그러고는 쿠빌린은 검을 곧추 세웠다.


“너에게 하나 고마운 점은 있어. 며칠 전까지 이 검술엔 이름이 없었다. 근데 네 덕에 이 검술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어. 두 눈 뜨고 똑바로 봐라.”


쿠빌린은 부드럽고 유려하게 사선으로 검을 길게 베어 넣었다.

움직임은 부드러웠으나 검에 실린 경력은 어마어마했고, 그 경력에 로혼은 바스타드 소드와 함께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말았다.

얼굴에 경악으로 가득찬 표정을 띈 로혼은 상반신이 무너져 떨어졌고, 거기에 대고 쿠빌린은 말을 이었다.


“지옥에 떨어지거든 이 검술의 이름을 절대 잊지 말고 링샤에게 용서를 구해라. 이 검술의 이름은 Hill For Lingxia (링샤를 위한 언덕) 다."


죄인들을 도륙한 쿠빌린은 그대로 학교를 벗어났고 모골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두번째 외전입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Another Korean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제16화 : 전조 - 1 +11 20.06.04 501 15 9쪽
21 제15화 외전 : 성을 나온 다델 +10 20.06.03 515 13 14쪽
20 제15화 : 다델과의 만남 +7 20.06.02 508 15 18쪽
19 제14화 : 위기를 기회로 +9 20.06.01 537 14 23쪽
18 제13화 : 타오를 향해 +7 20.05.29 538 15 16쪽
17 제12화 : 신검 +11 20.05.28 615 15 22쪽
16 제11화 외전2 : 사일라의 탄생 +5 20.05.27 580 16 19쪽
15 제11화 외전 : 혁거 +3 20.05.26 590 15 14쪽
14 제11화 : 노야의 정체 +10 20.05.25 615 15 18쪽
13 제10화 : 모골린의 별 +11 20.05.22 645 14 26쪽
12 제9화 : 소집령 +9 20.05.21 666 13 23쪽
11 제8화 : 바토르로 향하는 길 +7 20.05.19 695 16 22쪽
10 제7화 : 새로운 깨달음 +7 20.05.18 761 16 24쪽
» 제6화 외전 : 쿠빌린 +3 20.05.16 755 15 22쪽
8 제6화 : 돌리스 +1 20.05.15 784 17 20쪽
7 제5화 : 모드시에서 +1 20.05.15 867 19 23쪽
6 제4화 외전 : 용병왕의 탄생 +1 20.05.14 944 19 19쪽
5 제4화 : 보라매 +5 20.05.14 1,144 21 26쪽
4 제3화 : 준비 +9 20.05.13 1,355 25 31쪽
3 제2화 : 수련의 시작 +3 20.05.13 1,672 26 27쪽
2 제1화 : 새로운 삶 +11 20.05.12 2,150 37 26쪽
1 프롤로그 : 동화 속 만남 +37 20.05.12 4,019 67 2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