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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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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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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407

작성
23.08.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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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레퀴엠(24)

DUMMY

Episode 23 - 첫 임무


"이제야 속이 후련하신가?"

하나가 담배 연기를 후- 뱉으며 물었다.

밤공기가 차가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몸에서 한기가 도는 것인지 윤찬은 알지 못했다.


"조금은요."

"결국 시원하게 저질러 버렸구만."

하나가 담뱃재를 털어내며 주머니에서 곽을 꺼낸다.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어 캡슐을 터트린다.

"또 줄담배를 하시네요. 그러다 빨리 병납니다."

그녀가 찢어진 눈매를 옆으로 돌려 윤찬을 노려보았다.


"지금은 담배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내가 병 걸리겠다."

윤찬이 머리를 긁적인다.

"근데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그 사람들......, 어떻게 될 지 몰랐으니까요."


"너는......"

하나가 지포라이터를 켜 담배 불을 붙였다.

치익- 소리와 함께 붉은 화염이 타오르며 회색의 연기가 공중을 날았다.


"언제쯤 제대로 된 너의 삶을 살 수 있는거야?"

사라져가는 희미한 담배 연기가 눈의 시야를 막았다.

"이런 말 하는 내 조언이 너에게는 꼰대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하나가 윤찬에게로 몸을 돌려 정면으로 응시한다.

"윤찬아,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후......"


윤찬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누나랑 똑같은 말을 하네.'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윤찬이 제복 안주머니를 뒤적거려 곧게 접힌 사진 한 장을 펼친다.


그는 아련한 표정으로 사진을 몇 초 간 쳐다보더니 하나에게로 사진을 건넨다.

"이거 받아주시겠어요?"

하나가 담뱃불을 강제로 끄고 윤찬의 사진을 받아든다.


어두운 배경에 찍혀 있는 어린 여성.

아니, 어리다고 해봤자 18살 정도인가.

하지만 조하나 본인과 띠동갑 이상의 나이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리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검은 흑백 머리를 어깨까지 길게 길어낸 모습과 함께 또렷한 눈매가 인상적이다.

한눈에 보아도 똑똑해 보인다, 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하나는 그 사진 속의 여성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하......, 야?"

하나의 기억이 아른거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생활했었던 활발한 동생의 기억이.

하나의 입술이 부르르 떨린다.

"제 염원이 있어요, 누나."

윤찬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나에게 말한다.


"우리 누나......, 엄청 착했잖아요. 누나도 친했었으니까 알고 있었죠."

"......, 그랬지. 무모할 정도로 착한 아이였지."


윤찬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간다.

"저 때문에 죽은 거였어요. 알아요?"

"뭐?"


하나가 고개를 올려 옆으로 돌려져 있는 윤찬의 얼굴을 쳐다본다.

"저 때문에 죽은거에요, 우리 누나."

"그게 무슨 소리야?"


"......, 그 날 그 건물에......, 저도 있었잖아요."

하나의 얼굴이 점점 찌그러진다.

"타올라가는 불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길은 막혀있고, 온 몸은 뜨겁지, 숨은 쉴 수가 없지.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도 단번에 알 수 있겠더라고요."



"민윤찬......!"

"죽을 수도 있겠다, 고."

"그만 말해."

"밧줄 덕분에 무사히 천장 쪽에 매달려 있을 수는 있었거든요. 그것도 일 이분 정도가 최대였지만. 점점 힘이 빠지더라고요."


"야, 민윤찬!!"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내면에 잠식되어 있는 아픈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억지로 분노를 표출했다.


평생 본 적 없는 자신의 화를 보고는 입을 다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윤찬은 멈추지 않았다.

무엇을 응시하는 건지도 모르는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말을 이었다.


"위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이제 괜찮습니다, 저희가 올려드릴게요!' 하고 외치는 남자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때의 고통, 두려움, 불안의 감정까지.


소름끼치도록 동일하게 기억한다.

"누나한테 그랬어요, '우리 이제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더니 활짝 웃더라고요. 완전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몇 센치씩 밧줄이 위로 올라가고 몸체도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겠죠."


푸른 오라가 윤찬의 주위를 서성거린다.

감정이 폭발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때 갑자기 화르르 하면서 밧줄이 점점 끊어지기 시작했어요. 불이 옮겨붙어 버려서 그만."


그 뒤의 정황은 하나 역시 알고 있었다.

밧줄이 불과 사람의 무게에 의해 점점 끊어지는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지독하게도 착한 누나가 동생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져 희생했던.

어떻게 보면 뻔한 클리셰의 이야기 아니, 사건이었다.


하지만 생판 남들이 보는 시선에서야 클리셰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남발할 수 있는 것이지 당사자에게는 한없는 고통이나 마찬가지였다.

말을 이어가고 있는 동시에 떨리는 윤찬의 입술.

신체 주위에 아른거리고 있는 오라가 그 증거물이 될 수 있으니까.


윤찬은 또박또박하게 자신의 기억을 하나에게로 전달했다.

망설임없이 끝까지.

"그 때 자신의 손으로 밧줄을 놓기 전에 누나가 저한테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뭐, 라고......, 했는데?"


하나가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윤찬은 옆으로 돌린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 하나의 두 눈에 초점을 맞췄다.

"'윤찬아, 나 있잖아......, 다음 생에는 꼭 행복할 수 있는 거지?', 라고.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으면서도 눈물 한 점 없이 말했어요."


하나가 손에 들고 있던 민도하의 사진을 바라본다.

"누나, 저는 윤회를 믿거든요. 그렇기에 도하 누나가 다시 살아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시점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집안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르지만."


윤찬의 침 넘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믿으니까 지켜보려고 합니다, 현생에서는 다시 불행하지 않도록."

"지금 세계가 어떤 상황인지 까먹은 건 아니지?"


"알아요, 너무 잘 알잖아요. 그래서 결정했어요. 누나가 환생을 해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중요한 거지만 제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게 됐습니다."

"우선순위라니?"

"......, 누나가 좋아했던 세상을 불행하게 하는 요소들을 최대한 없애볼 거에요."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너도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걸 품고 나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윤찬이 손을 내민다.

검지와 중지만을 펼치고 까딱거린다.


"뭐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당황한 하나의 눈빛이 압권이다.

"저도 한 개비만 달라구요."

"허......, 참. 네가 언제부터 담배를 폈다고 나한테 한 개비 달라고 하는 거야?"


"비밀이었어요, 키킥."

윤찬의 짧은 웃음소리에 못이긴 하나가 주머니에서 브랜드 담배곽을 꺼내 윤찬의 손에 한 개비 얹어놓는다.

하나 역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대체 한번에 몇 개를 피시는 거에요?"


"남이사, 인마."

지포라이터의 띵- 소리가 귀에 요란하게 들려온다.

윤찬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이 붙는다.

목구멍으로 담배 연기가 흡입되는 찰나.


"케헥! 콜록! 콜록! 콜록!"

얼굴이 구겨지고 눈물이 찔끔 흘러나온다.

하나가 놀란 표정으로 괴로워하는 윤찬을 바라본다.


"무, 뭐야 너? 설마 담배 처음 펴보는거야?"

잠깐의 기침 끝에 진정된 윤찬이 타오르는 담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우 씨, 누나 이거 대체 왜 피는 거에요? 목 아프고 간지럽고 맛도 없고.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도 아닌데."


"야, 이 새끼야! 처음이었으면 말을 해야 할거 아니야!"

하나가 꾸짖는 말투로 소리친다.

"그랬으면 누나, 저한테 안줬을 거 아니에요."

"당연히 안줬지, 미친놈아!"


윤찬이 담배를 흙 바닥에 비비며 껐다.

하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아아, 아까운 내 담배.....!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저 자식한테 안주는건데!"


"그러니까 꼴초 소리를 듣는 거에요, 누나. 맛도 없는 거 대체 왜 하는지 이해가 안되네."

하나가 오른손으로 윤찬의 등에 풀 스메싱을 갈겨버린다.

퍼억- 소리와 함께 윤찬이 등에 손을 얹어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다.


"아! 왜 때리는 거에요!!"

"으휴, 꼬맹이가 어떻게 어른의 맛을 알 수 있겠냐 쯧쯧."

"어른의 맛은 무슨, 그러니까 입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거지."


하나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잔뜩 심술이 났는지 두 손에 힘을 꽉 쥐어진 상태였다.

"내가 무슨 입냄새가 난다는거야??!!"


"농담, 농담. 에이 장난도 못치나요. 거의 사람 반 죽일 기세로 쳐다보시네."

"참, 나."

하나가 삐진 듯 몸을 완전히 돌려 팔짱을 꼈다.

"잘 좀 챙겨줘요, 그 사람들!"


윤찬의 말에도 아무 반응이 없는 하나였지만 경청은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저 없어도 여기서 적응 잘 하려면 누나가 필요해요."

"이젠 상관한테 명령까지 하는거야?"


"......, 진심어린 부탁이에요."

하나와 윤찬의 대화가 잠시동안 끊겼다.

그동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는 몰랐다.

"다른 곳에 가서도......, 연락하면 꼭 받아."


"......네, 알고 있어요."

"어디로 가는지는 들은 바 있어?"

윤찬이 눈알을 위로 굴려 생각에 잠기다가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는 청룡학사관이라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하, 너 꽤나 좆됐는데? 거기 어지간히 빡센 곳이잖아."

"벌 받는다고 생각해야죠, 뭐."


청룡학사관.

정부국 소속 헌터들 중 엘리트들만 모아놓은 상위급 부대였다.

미국 맨해튼에 위치해 있으며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글로벌한 부대인 것이다.


하지만 청룡학사관의 단점.

어지간한 능력자가 아니라면 버티기조차 힘든 곳이라는 점이다.

훈련과 실전을 쉬지 않고 번갈아 투입하기 때문에 제대로 쉴 시간도 없을 뿐더러 먹거나 마실 시간조차 부족한 부대였다.


"그래도 뭐, 진명대장님께서 그동안 전대 내에서 세운 업적 같은 걸 감안해서 처벌을 감면해주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래, 진짜 전출만으로 끝난 게 기적이었어."

본래 일반적이었다면 전출이 아닌 더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 정상이었다.


"그래도 공로는 인정해 주시네요. 약간은 뿌듯하다고 해야할까요?"

"그런 것도 인정 안해주면 완전히 악마지, 악마."

"이제 들어가죠."


윤찬이 먼저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하나가 따라간다.

습한 공기에 등 뒤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8월의 저녁은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무덥고 텁텁하게 지나간다.


"이제 곧 있으면 실전투입이 결정될 텐데, 걱정은 안되는거야?"

윤찬이 고개를 저었다.

"약간의 미숙함을 제외하면 활용 능력의 잠재력은 뛰어난 편이라 걱정은 되지 않아요."


"하루 동안은 얼마나 변화가 있었어?"

"사실 변화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더디게 성장했어요,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잖아요. 이제 1차 각성을 이루어낸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이번 현지 실전에는 동행시킬 예정이야."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키킥."

"푸흡, 뭐야? 자신 있나보네. 꼴에 제자라고 믿어주는 건가?"


"조금 있으면 누나도 다 알게 될거에요."

두 사람은 백조전대 2관의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복도는 윤찬과 하나의 대화와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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