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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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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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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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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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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레퀴엠(10)

DUMMY

Episode 9 - 발현자 1



"으.....!"

밝은 다운 라이트 조명에 눈을 뜬다.

초록 매트리스가 깔린 병상에서 눈을 돌려보니 윤 설이 함께 누워있다.

'여긴 어디지?'


정혁이 기억을 곱씹어본다.

쓰러진 순간 윤찬의 주먹에 의해 기절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실패했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성공 확률이 낮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이 있는 것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구나......'


테스트에 실패했으니 이제 이 전대를 떠나야한다.

'어떻게 해야하지? 괴물들의 눈을 피할 곳도, 가족을 찾을 방법도, 하나도 모르겠어.'

앞길에는 가시밭길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후우......"


정혁은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긁적인 채로 한숨을 뱉었다.

그런데.

'어, 그러고 보니 몸이.....?'

통증이 없다.


그렇게나 많이 두들겨 맞았는데.

체감상 콘크리트 바닥에 깔리고 코끼리와 정면 충돌을 당해 날아가는 것 같은 고통을 계속해서 느꼈는데도.

'아프지 않아.'


정혁은 몸을 돌려 신체 여기저기를 만지거나 훒어보았다.

타박상도, 찰과상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할 수 있는거지?"

정혁의 머릿속에서 궁금증이 빗발칠 때 쯤.


윤찬이 치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어딘가 많이 심란해 보이는 표정을 지닌 채로.

"아....., 윤찬씨."


윤찬은 정혁의 앞에 선다.

"몸은 좀 어때요?"

정혁은 자신의 팔을 들어 몸 여기저기를 훒어보며 말한다.


"진짜 신기해요, 기절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온 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팠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듯 멀쩡해요."

왼팔을 이리저리 돌리며 관절 소리를 낸다.

"움직이는 데에도 별 문제 없는 것 같구요."


"포션이 효과가 있었나보군요. 이번에 새로 과학대대에서 내려온 신상 포션을 주입했거든요."

신상.

뭔가 비쌀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단어를 사용했다.

"어, 혹시 조금 비싼 약품을 사용하신 것 아닌가요?"

정혁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윤찬이 웃어보인다.

"어차피 공용 물품이기 때문에 딱히 가격 측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 측면에 있어서는 안심하세요."

"휴우, 다행이네요."

정혁의 수중에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만약 값을 지불해야하는 일이 생겼더라면 큰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결국 저는 실패한거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네, 실패했습니다."

역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윤 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저 누나도 마찬가지이죠?"

"네."


단호한 대답이 돌아오자 정혁은 멋쩍은 웃음을 내보였다.

사실 실패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에서 기적을 바랐다.

이것 말고는 정말 살아갈 의미를 느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신도 무참하시지.


결국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윤찬의 주먹을 한 두대씩 맞을 때마다 조금씩 붕괴되고 있던 정신이 완전히 무너진다.

"하아, 그렇죠......? 실패한거죠?"


"네, 뭐 예상은 했습니다. 1회차부터 발현에 성공하는 그런 미친 사람은 없으니까요."

윤찬의 대답에 대한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한 채 헛웃음을 터트리는 정혁이었다.

"하하, 맞죠. 돌연변이도 아니고 1회차부터 발현에 성공하는 미친 사람이 있을ㄲ......?"


어?

방금, 뭐라고.

정혁은 두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1회차라고 들었다.

그 말은 즉슨.


"저기, 윤찬씨. 혹시나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말하는데 방금 1회차라고 하셨나요?"

윤찬은 모르는 척하며 정혁의 혼란함이라는 감정에 돌을 던졌다.

"네, 들으신 그 말이 맞습니다만."


정혁의 뇌리에서 수백개의 물음표가 지나갔다.

"그렇다는 말은......, 2회차가 있다는 뜻?"

저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지만 윤찬은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2회차라뇨, 성공할때까지 하는 거죠."


"그, 그런......"

신체를 가득 메우고 있던 불안과 혼란의 감정이 사라진다.

"하,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하나......!"

"하지만."


윤찬이 정혁의 말을 끊었다.

"한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최정혁씨."

"어떤 뜻이죠?"


"저는 정혁씨가 몇십번, 몇백번 동안 테스트를 치루던 전혀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전대 측 윗선들의 생각은 저와 다르죠."

정혁은 자신이 윤찬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냐는 듯 되물었다.

"그러니까 윤찬씨 말은, 저희가 테스트를 보는 것에 있어 윗선에서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는 거죠."

하긴.

갑자기 웬 불청객이 찾아와 소속에 끼워달라는 명분으로 테스트를 보고 있는데 어떤 보스가 그 상황을 납득할 수 있을까.


'낭패다, 그런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생각이 짧았다.

헬기 내에서 한석이 윤찬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 형님, 지금 일반인을 끌어들이신 겁니다. 대장님에게 보고했으니 망정이지 자칫 잘못해서 국장님 귀에 들어가게 되면 큰일이라고요. ]

"저, 혹시!"

정혁의 눈빛이 돌변해 있다.


"저희 때문에 윤찬 씨가 많이 곤란한 상황인가요?"

윤찬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사실 정혁의 질문에 비수가 꽂힌 것은 맞다.


지휘대장인 하진명의 귀에 일반인을 백조전대에 입성시켰다는 말이 들어갔고, 곧이어 전대장에게도 보고가 갈 것이다.

곤란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억지 미소를 선보이는 윤찬이 거짓말을 내뱉는다.

"아니요, 딱히 곤란한 상황이 생길리가 없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짓말.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거짓말을 했다.

정혁과 윤설을 백조전대에 데리고 오기 전의 대화에서도.

과거 '그 일'을 겪었을 때도.


살면서 처음으로 하는 거짓말인데도 굉장히 능숙하다.

원래 이렇게 쉬운 것인가.

사람 하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


그런 윤찬의 대답으로 인해 정혁이 안심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영혼이.

그저 순진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무쪼록 힘드신 일이 있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뭐 보잘 것 없지만....., 위로 정도는 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자신감이 넘치는 말투.

윤 설이 깨어있었다면 그녀 또한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아니면 계속해서 윤찬을 추궁하였을까.


해답은 알지 못했지만 앞으로 정혁에게 어떤 모습만을 보여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일단 지금은 휴식을 조금 취하시고 계세요. 지금 급히 떠나야 해서요"

최대한 덤덤하게 말한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인 마냥.

"괴물과 싸우러 가는 건가요?"

"그게 저의 임무니까요."


윤찬은 몸을 돌려 치료실의 문 앞으로 걸어간다.

철컥-

"아 그리고, 윤 설씨가 깨어나면 2회차 테스트를 치뤄야 한다고 간단히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네, 맡겨주세요."


치료실의 문을 닫는다.

고요한 정적이 덮쳐온다.

3층의 10생활실.

정확히는 윤찬이 생활하는 지휘관들의 보금자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하나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 강남 쪽에 위치한 게이트에서 증폭 현상이 나타났대. 아마 지금까지와는 다른 괴물이 나타나나봐. ]

[ 그럼 병력은 얼마나 출전시키는 거에요? ]

하나가 한 쪽 손으로 턱을 짚는다.


[ 아마 지휘관을 포함한 1지휘대부터 8지휘대까지 전부 작전지로 이동해야 할거야. ]

[ 나머지 9번대와 10번대는요? ]


[ 아주 소수의 병력은 전대를 지키고 있어야한다고 지휘대장님께서 말씀하셨어. ]

[ 몇시에 출발해야 할까요, 증폭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할텐데 말이죠. ]

하나가 시계를 들여다본다.

[ 30분 뒤네, 어서 가서 필요한 물품들 챙겨. ]


윤찬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오전 7시 28분.

집합 시간까지 12분 정도가 남아있다.

"후, 그럼 가볼까?"

윤찬은 안주머니에서 글러브를 꺼낸다.


------


"어, 깨어났다."

정혁의 말에 윤 설이 눈을 떴다.

그녀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올려 뒷통수를 어루만진다.

"아야야, 응? 아프지 않잖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혁을 응시한다.

상처자국이 없다.

마치 방금 막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은 사람처럼 말끔한 피부가 눈에 들어온다.

"뭐야, 우리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맞지 않았어? 꿈이라도 꾼거야?"


"푸흡, 꿈이라뇨. 진짜 먼지나도록 얻어맞은건 기억나시잖아요."

"그래, 그리고. 너가 나보다 먼저 기절하는 것도 봤지."

"윽!"


정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건 윤찬씨가 저를 먼저 기절시켜서 그런거죠!"

"네네, 아무렴요. 그래봤자 내가 너보다 체력이 더 좋은 건 맞는 것 같은데."


윤 설은 그렇게 정혁을 놀리고는 킥킥 웃음소리를 내었다.

처음 만났을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제 조금 편해졌다고 아주 그냥 사람이 달라지네요."


"엉? 당연하지. 너는 처음 본 낯선 사람한테 살갗게 대할 수 있냐?"

"누나 MBTI I죠?"

"미안한테 사람 특성상 E여도 그렇게는 못해."

몇초 후 윤 설이 몸을 돌려 엎드렸다.


"이제 어쩌냐, 우리 발현 테스트에 실패했잖아."

아, 말해줘야 하지.

"여기서 벗어나도 숨어 지낼 마땅한 장소도 없는데 어쩌지?"

"윤찬 씨가 그러는데요, 저희보고 2회차 테스트를 준비하래요."

"2회차?"


윤 설의 동공이 커졌다.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그녀는 몸을 일으켜 병상에 걸터앉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테스트는 원래 한 번만 하는 거 아니었어?"

정혁이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아니에요, 최대한 되는 데까지는 시도해볼거래요."

"하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윤 설의 고개를 숙여진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윤 설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 정혁을 노려보았다.

"너, 그 주먹에 한 번이라도 더 맞고 싶어?"

"아."


좆됐다.

그 생각을 미처 못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코끼리와 정면으로 승부하는 느낌.

곰의 풀스윙을 받아치는 타격감.


다시 한 번 그런 통증을 견뎌내야 한다.

아니, 2회차에도 실패하게 된다면 3회, 4회..... 더 많이 겪게 될 것이다.


"하하....., 사실 진짜로 윤찬씨가 그렇게 세게 때릴 줄은 몰랐는데요."

"어이구, 실제로 죽을 위기를 경험해야 한다잖아. 어차피 너도 각오하고 있던 일 아니야?"

"그렇게 아플 줄은 상상도 못했죠."


"그래, 더럽게 아프긴 하더라."

정혁은 무언가를 곱씹으며 생각한다.

"근데요, 누나. 그런 표정은 언제 짓는 거에요?"

"에? 무슨 표정?"


윤 설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한 쪽 눈썹을 올렸다.

"뭐랄까, 아련하면서도 덤덤해보인다고나 할까. 자세히 설명은 못하겠지만 맞는데 아닌 척 하는 그런 표정?"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네?"

"설명이 이상해서 죄송해요, 제가 말하는 쪽으로는 재주가 딱히 없어서."

윤 설은 나지막하게 그런 거 같았어, 라고 말했다.


"흐음, 네가 말하는 게 정확히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그거잖은데? '선의의 거짓말'을 말할 때 짓는 표정."

"선의의 거짓말이요?"


"나쁜 이유가 아닌 남들에게 들키면 안되는 것을 숨겨야 할 때 나오는 표정이지. 포커페이스는 유지하고 있지만 그게 어색한 사람들이 그런 표정을 자신도 모르게 짓게 돼."


'그렇다면......, 그 때 윤찬씨가 나에게 괜찮다고 했던 게?'

윤 설의 답변에 정혁은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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