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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트 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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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m
작품등록일 :
2023.07.10 21:13
최근연재일 :
2024.01.07 21:21
연재수 :
1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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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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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5,407

작성
23.07.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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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레퀴엠(4)

DUMMY

Episode 3 - 기습



정적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딱히 어색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이 상황의 분위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정혁은 눈을 감은 채 후에 자신이 해야할 일들을 생각했다.


'일단 최우선 순위는 가족이야, 생사만 확인하면......'

그러다가 번뜩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정혁은 교복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와이셔츠와 마이의 안쪽 주머니.

하지만 손으로 몸 전체를 뒤적거려도 핸드폰은 나오지 않았다.


'아, 떨어트렸나.'

정혁은 해탈하며 오른손을 올려 눈을 가렸다.

'근데 뭐, 애초에 핸드폰이 있다고 해서 연락이 될 리가 없지.'


"너, 가족들은 어디 있어.....?"

윤 설이 조심스레 말했다.

정혁은 눈을 가린 손을 내렸다.

"저도 몰라요, 잘 살아 있는지......, 어디 안전한 곳에 대피라도 했는지."

"나도......"


"어, 혹시....., 어떻게 불러드려야 할까요?"

머리를 긁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


'그래도 나보다 나이도 있는데, 그냥 이름으로 부르기는 그렇지 않나?'

정혁은 잠시 동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누, 누나라고 부르면 될까요....?"

왠지 쑥쓰럽다.

살면서 이때까지 누군가를 누나라고 부른 기억이 없기 때문일까.


초등학교 남녀 분반.

중학교 남녀 분반.

고등학교는 아예 남고.

살아온 환경이 이렇다보니 여자와 이야기할 껀덕지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교회 친구였던 여자애 한 명 정도.


'근데 뭐, 걔도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사를 가버렸으니.'

"마음대로 해."

윤 설이 말했다.

정혁은 말 한 마디에 부끄러움을 잠식시켰다.


"누, 누나네 가족은요.....?"

지금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뭐, 저쪽에서 먼저 물어봤으니 상관 없겠지.

윤 설의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침대에 누운 듯했다.

"죽었어......"

"......., 아."

급하게 후회감이 몰려왔다.

아, 물어보지 말걸.


괜히 상대방의 물음에 역질문을 했다가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죄, 죄송해요."

윤 설은 그 때의 기억을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갑자기....., 불이 타올랐어. 처음에는 산불이라도 났나 싶었지. 우리 엄마....., 방에서 자고 있었거든. 난 엄마를 깨우러 방에 들어갔어. 지금 나가야 한다고. 밖에 불난 것 같다고."

처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진짜 괜히 물어봤다.'

정혁은 가슴 속으로 후회를 반복했다.

남의 가정사를 듣고 싶어서 물어본 것은 아니다.

그저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


이런 말도 안되는 현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윤 설은 계속해서 말했다.

"엄마랑 일어나서 같이 밖을 봤다? 근데 그런 건 처음 봤어. 막 괴물이 날뛰어다니고, 사람들은 도망치고 있고, 공중에서는 막 티비에서나 보던 헬리콥터가 엄청 큰 소리를 내고 있었지."


"......, 미안해요."

"......, 뭐가?"

"저 때문에 괜히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윤 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쭉 침묵이었다.

정혁은 눈을 감았다.


이 아슬아슬한 세계에서 과연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계속 이렇게 도망만 다니며 살아야 하나?

아니.

가족을 찾고 싶다.

아주 작은 확률이라지만 살아있을 수도 있다.

정혁은 그런 생각을 반복하다가 잠에 들었다.


-----


쾅-!

쾅-!

"으......!"

정혁은 커다란 굉음에 눈을 떴다.

흐릿했다. 하지만 색은 알아볼 수 있었다.

[ 일어나! ]


윤 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눈에는 주황빛이 맴돌았다.

분명히 어두컴컴한 생활관 안일텐데.

[ 어서 일어나! ]


다시 한 번 들렸다.

정혁은 눈을 곧바로 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붉은 머리의 여성이 아른거린다.

"지금 자고 있을때가 아니야!"

"ㄴ...., 네?"


정혁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어?"

불이었다.

거센 불.

이런 허름한 군 막사 따위는 한번에 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듯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정혁은 잠이 달아났다.


"지금 이 곳도 공격받고 있어, 어서 나가야해!"

윤 설이 당부했다.

이렇게 목소리가 큰 여자였나, 싶었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은 없었다.

정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윤 설은 정혁의 팔을 잡고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복도는 정전이 된 듯 어두웠으며 괴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 늦었다."

윤 설이 두려움 섞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확실히 사람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정혁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상민이 잡아먹히는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된다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불에 타오르는 주변 환경에도 차가운 공기가 느껴진다.


윤 설이 다시 한 번 정혁의 팔을 끌어 생활관 내부로 몸을 숨겼다.

몸을 숙이고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점점 가까워진다.


"쉿!"

윤 설은 검지를 올려 자신의 입에 가져다대었다.

불길에 비춰진 그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정혁은 혹여나 작은 숨소리라도 튀어나올까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철컹- 철컹-


바로 근처에 있다.

세계를 불구덩이로 몰아넣고 있는 괴물이.

눈마저 질끈 감게 된다.

'제발,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가라! 제발!'


목 놓아 외칠 수 없기에 속으로라도 소리쳐본다.

지금은 그냥 모른 채로 지나가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와이셔츠는 흐르는 땀에 조금씩 젖고 있다.

철컹- 그르르르- 철컹- 그르르르-


바로 앞이다.

두 사람은 마치 동상이라도 된 듯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가라, 그냥 가라, 그냥 가라, 그냥 가라, 그냥 가라!'

철컹- 철컹- 철컹.....


괴물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이윽고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정혁은 입막음을 했던 손을 내렸다.


"푸하, 진짜 심장이 너무 벌렁거려요."

긴장이 풀린 정혁에게 윤 설이 말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 창문 너머를 약간 봤었는데 뒷산 쪽으로 향하는 길이 보였어."

하지만 정혁은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장소가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냥 이 곳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윤 설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불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고 있어,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이 건물과 함께 통째로 재가 되어버리고 말거야."


현재로서는 어떤 판단을 내려도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막사에서 도망친다면 괴물들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건물 내부에 계속 남아있는다면 불길에 휩싸인다.


선택의 딜레마에서 정혁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알겠어요, 일단 건물 밖으로 나가요. 나가는 길은 어디인지 알죠?"

"응, 알고 있어. 그러니 넌 나를 따라와."


"하지만 아무리 급하다 하더라도 조심히 움직여야 할거에요, 막사 내부에 괴물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모르니까."

"나도 알고 있으니 걱정 마."

윤 설은 문에 귀를 갖다 대었다.


괴물의 미세한 소리라도 들으려는 듯했다.

몇 초 동안 부동자세를 취한 후 그녀는 문 손잡이를 돌렸다.

끼이익-


최소한의 데시벨을 유지한 채 생활관의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복도를 두리번 거렸다.

"괴물은 보이지 않는 것 같네요."

"그럼 일단 나가자."


복도로 빠져나온 후 윤 설은 왼쪽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이쪽이야."

정혁은 윤 설의 뒤를 따랐다.

건물 밖에서는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쾅- 파지지직- 퉁-


'하, 진짜 밖으로 나가는 게 맞는 판단이었을까.'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복도를 돌아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에 다다랐으니까.

주황색의 빛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유리로 이루어진 문이 완전히 산산조각나 있었으며 시벤트 벽면도 반파가 된 상태였다.

밖은 아수라장이었다.

멀리서는 괴물들이 날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뒷길은 저쪽인 것 같아요."

정혁이 옆으로 길게 뻗어있는 샛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가자, 혹여나 들키게 되면 큰일이야."

불길 속에서 들려왔기 때문일까.

흐릿하게 들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

그들의 앞에 2미터가 넘짓한 괴물이 서 있었다.

그르르르르르-

괴물은 날카롭고도 거대한 송곳니 사이에서 초록 계열의 액체를 뱉어냈다.

치이익- 치이익-


'염산인가?'

그르르르르르-

괴물은 팔을 뻗어 공격을 시작했다.

"피해요!"


정혁은 뻣뻣하게 굳어버린 윤 설의 몸을 잡아 몸을 돌렸다.

콰직!

괴물의 손이 대지를 그대로 관통했다.

정혁과 윤 설은 바닥에 널브러졌다.

'뭐야, 지금 바닥이 뚫린거야?'


그르르르르-

괴물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녀석은 곧장 달려들었다.

근육질 몸에 붉은 혈관이 다 드러나있는 끔찍한 모습을 보자 윤 설은 미동자세가 되어버렸다.

"뭐해요, 지금 그러고 있을때야?"


"어...., 으......!"

'젠장, 틀렸어!"

정혁은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던져 괴물의 시선을 돌렸다.

"야, 이 시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괴물아!!!"


우람한 목소리에 괴물의 시선을 끄는 데에 성공했다.

놈은 머리를 틀어 정혁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컹- 철컹- 철컹-


30cm 지름의 눈을 좌우로 옮기며 기괴한 표정을 짓는 괴물.

'일단 시선을 끌기는 했는데, 이제 어쩌지?'

사실 딱히 방법은 없었다.

'주변에 뭐라도, 무기가 될 만한 ㄱ....!'


슈욱- 퍽-

정혁의 시선이 빠르게 돌아가고 몸체가 멀찍이 날아갔다.

"커헉!"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너무 빨라, 피할 수가 없어!'


체감상으로는 시속 80 키로미터로 달리고 있는 자동차에 치인 기분이 들었다.

괴물은 다시 한 번 달려들어 주먹으로 정혁의 복부를 가격했다.

뻐억-

"크읍!"

정혁의 몸이 바닥에 쳐박힌다.


의식이 흐릿해진다.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커헉, 카학!"

입에서 여러 분비물과 함께 피가 쏟아진다.

'한대라도 더 맞으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설상가상 어깨의 통증마저 몰려온다.

두 복부를 움켜쥐고 있는 정혁에게 괴물이 다가온다.

녀석은 정혁의 머리채를 잡는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괴물이 팔을 세게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둔탁한 음이 대지를 감쌌다.

팡-!


작가의말

부족한 글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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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레퀴엠(24) 23.08.02 89 1 12쪽
23 레퀴엠(23) 23.08.01 91 3 12쪽
22 레퀴엠(22) 23.07.31 99 1 13쪽
21 레퀴엠(21) 23.07.30 102 2 12쪽
20 레퀴엠(20) 23.07.29 105 2 12쪽
19 레퀴엠(19) 23.07.28 107 1 11쪽
18 레퀴엠(18) 23.07.27 1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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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레퀴엠(10) 23.07.19 237 5 12쪽
9 레퀴엠(9) 23.07.18 254 7 12쪽
8 레퀴엠(8) 23.07.17 32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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