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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한스그레텔 님의 서재입니다.

검마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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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그레텔
작품등록일 :
2024.01.23 19:39
최근연재일 :
2024.06.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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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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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태동(2)

DUMMY

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는 이유는 휴식도 있지만,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도 있다.


무인도 마찬가지다.

일반인보다 뛰어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있어도,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휴식은 당연했다.

전생의 무현은 쉬지 않았다.

아니, 쉴 수 없었다.

매일 지옥과도 같은 일과를 버텨내면 또 다른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교는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자신들의 수족으로 만들기 위해,

마교의 적을 죽이기 위한 검으로 벼려 휘두르기 위해서.

그들은 무현을 무림이라는 광기의 세계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그 폐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전생과 다른 점이라면 그 대상이 감숙의 무인들에게 향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만 가뒀다는 점?

그 외에는 무현은 성검련의 무인들을 보살피고, 가르쳤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진 못했다.

신체는 굳건하지만, 정작 정신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전생의 검마도 이룬 것은 많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다.

온 마음을 눈앞의 결과물에만 집착했다.

때때로 검을 휘두르던 중에도.

정작 그들과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주군으로서 실격이었다.


근본도 없는 검을 휘두르고 다닌 개망나니.

그것이 무현이었다.

초식도 형식도 없는 무정(無定)의 검.

전생의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와중에도.

무현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고작 이것에 지나지 않았나?

-검의 끝을 보고 싶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사방에서 울려대는 개소리를 한 귀로 흘린 채 무현은 자신을 검처럼 갈고 닦았다.

처음엔 높디높은 이상향만을 생각했다가, 때로는 나 자신이 훌륭한 무인으로서 성장하길 기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현의 세계에서도 낮과 밤이 수없이 교차했다.

어둠이 저물다가 여명이 피어오르고.

지평선 너머의 황혼이 가득 찼다가 포근한 어둠이 물들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의 흐름,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 속에서 검을 계속 휘둘렀다.


처음에는 낮과 밤이 시간대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방팔방이 온통 짙은 하얀빛이었다.


그 순간.


죽은 황무지의 균열 사이로 검은색의 액체가 떠오른다.

무현은 이것이 심상의 구축 과정임을 깨닫고, 먹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일검(一劍)에 한 획을 긋고.

이검(二劍)에 땅을 적시며.

삼검(三劍)엔 산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그렸다.

그러자 세계는 구축되었다.

그리고···.


건곤신결.

정신과 육체와 근원이 만나 합일을 이루니.

어느 순간 세계의 구축은 멈추고, 건곤신결을 멈췄다.

이제 심계가 또렷하게 더욱 잘 보였다.

산과 강, 하늘과 구름, 동식물들이 노니며 심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우우우우웅-!!


무현의 전신에서 폭풍의 기류가 휩싸이기 시작했다.

기류가 솟구치는 빛줄기가 되어 마치 반투명한 칼날이 된 것처럼 보였다.


심검(心劍)의 경지.


그리고 첫걸음.


생애 처음으로 무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새벽 공기가 그리 차갑지 않았다.

눈을 감고 일어나보니 몸 여기저기에 식은땀이 잔뜩 서려 있었다.

기분 좋은 꿈처럼, 달콤하기 그지없는 여운을 벗어 던지고 무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관철했다.


'현경인가.'


손짓만으로 산을 쪼개가 장강을 가를 수 있는 경지.

무인으로서의 초월점(超越點)이자, 용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

전생의 경지와 같은 선상에 올랐으니, 이제 무림에서도 움직이기 수월할 터.


무현은 검을 휘둘렀다.

하늘의 구름이 갈라졌다.

하늘을 가르는 용의 포효처럼 퍼져 나가고, 땅과 건물들이 흔들리는 와중에 오직 폐허의 중심지에서 고고한 자태로 서 있었다.

무현은 그런 현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털레털레 폐허 사이를 유영하듯 걸어 나갔다.


"이제 한 발 짝 내딛었구나."


부러지지 않은 목검을 바라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저 되뇔 뿐이었다.


***


"련주님!"


연공을 마치고 돌아온 무현을 율백이 반갑게 맞이했다.


“···벽을 넘으셨습니까?"


율백은 의원이지만, 그 역시 무인을 치료하기 위해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해서 그 어떤 무인보다 내공의 흐름을 잘 볼 수 있었다.

헌데, 눈앞의 무현은 흐름이 보이지 않았다.

이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의도적으로 감춘 경우.

둘째는 상대의 경지가 자신보다 아득히 높을 때였다.


"성공했습니다. 선생."

“···후우, 다행이군요."


율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주시면 감사히 받아먹겠소."

"차 종류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속이 편한 걸로. 여태까지 밥을 먹지 못해서 말이오."

"알겠습니다. 여기 련주께 차 한 잔을 내오거라."


한 의녀가 대꾸했다.


"예."


잠시 뒤 의녀가 찻잔과 찻물을 담은 주전자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의녀는 무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전부 선생의 제자들이오?"

"아직은 수발만 드는 정도입니다. 몇 년이 지난다면 제각각의 역할은 잘 수행하겠지요."


율백은 주전자에 있는 차를 찻잔에 따랐다.

그러자 입구 밖으로 맑은 찻물이 찻잔을 타고 흘러내렸다.


"드시지요."

"잘 마시겠소."


무현은 입가에 찻잔을 가져다 댔다.

입안으로 퍼지는 맑고 섬세한 향미를 품은 찻물.

간만에 물이나 술이 아닌, 차를 마시니 마음의 평화가 깃드는 것 같았다.

차를 절반만 마시고, 무현은 율백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원래 혼원단의 효능이 이랬소?"

"그저 단전을 튼튼하게 만들고, 육신을 탈바꿈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경지를 돌파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율백은 말하다 말고 상념에 잠겨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무현은 그의 입이 열리기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러자···


"아무래도 혼원단은 련주께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혼원단의 효능은 그릇을 튼튼하게 하고, 육체를 탈바꿈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결코 무인의 벽과 벽을 넘어서는 효능은 없습니다."

"그럼 내가 현경의 벽을 넘어선 이유가 무엇이오?"

"제 생각엔 련주께서 이미 현경의 벽을 이미 경험하신 듯합니다."


율백은 설명을 덧붙였다.


"쉽게 말해서 혼원단은 그저 부족한 내공만 채울 뿐 벽을 넘어선 계기는 련주께서 스스로 해내신 게 맞다 생각이 듭니다."

"그렇군."


율백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전생의 기억에서도 혼원단의 효능은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혼원단을 손에 넣기 위해 무림에 피바람이 불었을 뿐.

그 어떤 효능도 입증되지 않은 채로 무림인들은 혼원단이라는 미끼에 잔뜩 몰려들었다.


"아무튼 일단 잘 해결된 거 같소."

"저도 긴가민가했으나···아무래도 성공한 거 같습니다."

"만약 혼원단을 만들 수 있다면 만들 것이오?"


그 말에 처음 고민하던 율백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재료도 재료지만, 이런 효능이 있다는 것이 중원 무림에 알려지게 된다면 전 필시 놈들의 표적이 되고 말겠지요. 이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기보단 현재에 만족하려고 합니다."

"선생의 뜻을 존중하겠소."


무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혼원단의 주인은 율백이고 그가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이 이상 개입하는 건 무인으로서도, 련주로서도 꼴불견에 지나지 않는다.

무현은 남은 찻물을 입으로 들이켰다.


"차는 잘 마셨소. 선생."


무현은 맞은편을 가리켰다.

그는 자허초가 든 자루를 내밀면서 말했다.

율백이 자루를 보면서 말했다.


"이게 뭡니까?"

"자허초요."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율백은 상자를 열자마자, 자허초 다발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너무 많군요. 전부 몇 개입니까?"

"대략 15근 정도 될 것이오."

"이걸 전부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섬서에서 좋은 연이 닿았습니다."

"좋은 인연을 두셨군요."


율백은 자허조 다발을 살펴보곤 자루에 다시 집어넣었다.


"련주께선 제게 이것을 준 이유가 성검련을 위해서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그렇소. 근데 양은 충분하오?"

"차고 넘칩니다. 혼원단에 쓸 때 넉 냥이 들어갔으니, 이 정도면 한동안 좋은 품질의 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당분간 수고 좀 해주시오."


율백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히려 이런 귀한 재료를 주셨으니 오히려 제가 더 영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련주님."


***


아침 댓바람부터 소리 없이 돌아다니던 무현은 호진이 운영하는 객잔으로 향했다.

몇 날 며칠을 계속해서 운공에 집중했더니, 밥을 못 먹어서였다.


"객잔에 이름이 생겼네?"


호진이 대답했다.


"어. 명색에 객잔인데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그래서 호진객잔이라고 지은 거야?"

"천자문도 못 뗐는데 이름을 어떻게 짓겠냐. 그냥 내 이름을 붙여서 짓지 뭘."


그러곤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뭐 줄까?"

"국수 있냐?"

"있어, 담백한 걸로 줘?"

"어. 그리고 수육도 하나."

"좀만 기다려."


호진이 주방에 들어가자, 무현은 아무 자리에 앉았다.

객잔의 분위기는 확실히 전에 왔을 때와 비교했을 때 확연히 밝았다.

사람들도 웃고, 이젠 물류도 어느 정도 유통되다시피 하니 먹을거리가 다양해졌다.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되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불모지에 불과했던 영등현은, 어느새 활기로 가득했다.


무현이 일군 결과물이 점차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자, 고기국수랑 수육 나왔다."


호진은 탁자 위로 뽀얀 국물의 국수와 먹음직스러운 기름기가 좔좔한 수육을 내놓았다.


젓가락으로 국수 가닥을 마저 들어 올리며 입으로 흡입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먹자, 국물로 한 번 입가심하고 수육을 몇 점 집어 먹었다.

무현의 입가엔 돼지기름이 덕지덕지 묻었다.

고기국수에 수육 한 점을 싸서 먹으면서 호진에게 물었다.


"요새 장사가 잘되나 봐?"

"물류가 원활해지니까 재료 수급도 잘 되더라고."

"그러니까 차림표에 보지 못한 요리가 있었던 거구나."


무현의 시선엔 벽면에 걸린 차림표가 있었다.

서너 개에 불과했던 차림표가 금세 일곱 개 이상으로 바뀌었다.

호진이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요리를 할 줄은 몰랐다.


"직원은 구했어?"

"몇 놈은 구했어. 다들 어리바리하긴 해도, 일머리는 똑똑하더라고."

"너도 옛날에 숙수한테 존나 갈굼받았잖아.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냐고."

"아이 씨. 야 그때는 숙수가 워낙 개차반이어서 그랬지. 지금은 다르잖아."

"내가 보기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구석이 없는 거 같은데."


킬킬거리다가 국수와 수육을 마저 먹어 치운 다음에 호진에게 물었다.


"거리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었네?"

"너가 감숙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많이 구했잖아."

"고작 그거 때문에?"

"너는 네가 한 일이 정확히 뭔지 모르는구나?"


호진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사람을 구했잖아. 그냥 구한 것도 아니고, 감숙에 발을 뻗친 흑도랑 사도천 놈들도 다 죽이고 재물을 풀었는데, 사람들이 널 영웅으로 칭송하는 이유지."

"영웅은 무슨···."

"근데 사람들은 널 영웅으로 생각하는걸. 무림맹도 황실에서도 손을 뗀 이런 불모지에서. 이 정도면 개천에 용 난 거나 다름없는 거지."

“······."

"세상살이라는 게 혼자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 네가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주니까, 널 믿고 따르는 일들이 계속 생기는 거야. 네가 영웅적인 행보를 보일수록. 사람들이 너의 존재를 환영하는걸.”


호진은 빈 그릇을 치우고 말했다.


"그리고 가끔은 쉬어. 너 요새 자꾸 돌아다니고, 사건 사고 다 해결하는 건 좋은데 몸은 하나잖아. 나머진 얘들에게 맡기고 너는 우선 쉬어. 괜히 너 아파서 얘들 속상해하는 거 보기 싫으면."

"새끼···누가 보면 너가 이곳 주인인 줄 알겠네."


낄낄거리는 웃음으로 식사를 마무리한 무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맙다. 덕분에 속이 조금 편해졌네."

"배고프면 언제든지 와."

"알겠다. 장사 잘하고."


빙그레 웃으며 주방으로 다시 돌아가는 호진을 보면서···무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성검련은 성장했다.

이제 무인들은 개개인의 삶을 충족해 나가며 성장할 것이다.


무현도 마찬가지고.


이제야 조금은 여유롭게 나아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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