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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리메르 공녀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그림/삽화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18.11.05 21:22
최근연재일 :
2019.07.28 15:06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15,072
추천수 :
237
글자수 :
421,154

작성
19.05.1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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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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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0.바할 후작 영식 (7)

DUMMY

(7)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도···!”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은 에드쉬였다. 집사가 완전히 문을 열기도 전에 문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은 에드쉬가 정면에서 낯익은 이를 마주하고는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낮게 내리 뜬 눈동자가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그 시선의 끝에는 맑게 웃는 소년이 위치했다. 공작은 제 코 끝을 향기롭게 하던 차에서 악취가 나는 것을 느끼며 찻잔을 탁 내려놓았다. 비틀린 감정이 고요히 소용돌이치는 시선이 후작을 향했다.


“쯧. 이 조그만 걸 못 죽여서는.”

“할아버님!”


뒤늦게 들어온 스베르디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잔뜩 충혈된 눈이 잔혹한 말을 내뱉은 공작과 여전히 방관의 태도를 고수하는 후작을 향했다. 제 피부를 찌르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태연히 차를 즐긴 후작이 우아한 손짓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무정한 시선이 스베르디를 향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어떤 질책의 말도 눈빛도 없이 고개를 돌린 후작이 느릿하게, 그러나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공작은 무엇이 죄송하냐 묻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말을 들었다는 듯 후작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여태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에드쉬를 눈에 담았다.


“이제 공작가에 몸을 의탁한 상태라 죽이지도 못하잖나.”


스베르디가 급히 에드쉬의 귀를 막았다. 이미 오늘 찾아온 자들에 대해 눈치채고 있었기에 태연하게 서있던 에드쉬가 귀를 감싸오는 손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개를 휙 돌리자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고 살짝 고개를 비꼈던 스베르디가 고개를 바로 세웠다. 그는 그 누구보다 상처받은 얼굴로 귀를 한 번 더 힘주어 누르며 입을 열었다.


‘듣지마.’


듣지 마. 제발 듣지 마. 저 모욕 어린 말들을 듣지 마.


두 눈에 일렁이는 증오를 말없이 들여다보던 소년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전 괜찮아요.’


스베르디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에드쉬는 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쉬며 스베르디의 손을 감쌌다.


손은 의외로 쉽게 끌려 내려왔다. 스베르디는 제 손이 어깻죽지에 닿을 때까지 절망스러운 얼굴로 에드쉬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어깨에 간신히 걸쳐 있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유약한 손자를 냉랭하게 바라본 공작이 씹어 뱉듯 말을 이었다.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이미 지났고.”

“제발 그만··· 그만 좀 하세요!”

“형님.”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렸다. 천천히 고개를 내린 스베르디의 시선이 제 손을 잡은 낯선 손을 향했다. 단단하게 굳은살이 박힌 손이 미약하게 떨리는 손을 파고들었다. 완전히 맞물린 손에서 익숙한 온기를 느끼며, 스베르디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에드쉬가 방긋 웃어 보였다.


“에드쉬······.”

“전 괜찮으니까요.”

“괜찮다니 뭐가 괜찮다는,”

“···.”

“······거야.”


괜찮다. 그 말은 진정으로 괜찮음을 피력하는 말이 아니었다. 에드쉬가 떠나고서야 ‘괜찮다’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게 된 스베르디가 분노를 표출하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마지막 날 봤을 때처럼 괜찮다며 처연하게 웃는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본질이 과연 에드쉬일까. 저 무기질한 시선은 에드쉬를 안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공작가에서부터 애써 부정해온 것이 점점 고개를 들었다.


‘아버님한테 당한 게 많으니···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으니 변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겠지.’


스베르디는 의문을 간신히 내리누르며 천천히 손에 힘을 줬다. 마치 손의 주인을 확인하는 것처럼. 그리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공작이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에드쉬의 모습에 눈썹산을 세웠다.


‘똥개 새끼가 뱀이 되어 돌아왔구나.’


그의 못마땅한 시선이 후작을 향했다.


후작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가 실수로라도 에드쉬 쪽을 바라보지 않는 것을 눈치챈 공작이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


‘자아. 이걸 어쩐다.’


공작이 부러 공격할 것도 없이 에드쉬가 먼저 시선을 맞춰왔다. 그 담담한 미소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공작이 눈을 낮게 치뜬 채 입을 열었다. 비웃음 섞인 중후한 목소리가 공간을 짓눌렀다.


“공작가를 등에 업었다고 기세가 등등하구나.”


에드쉬를 찬찬히 뜯어보던 공작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여태껏 저가 웃는 석상이라도 된다는 양 방긋방긋 잘만 웃음짓던 얼굴에 처음으로 금이 간 것이다. 그는 한껏 고양됨을 느끼며 입꼬리를 깊게 끌어올렸다.


입을 달싹이던 에드쉬가 굳은 얼굴로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이 천천히 앞으로 기울여지며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죄송합니다. 잠시 제 주제를 망각했습니다.”

“하하하!”

“······.”

“하하! 암, 그래야지!”


공작은 실로 몇 달 만에 느껴보는 우월감에 크게 웃어젖혔다. 공작의 유쾌한 목소리가 응접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스베르디는 눈을 벌겋게 물들이며 이를 악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귀를 파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스러운 음성이었다. 허나 그는 그럴 용기가 없었기에, 제 신체를 해할 정도의 용기의 없었기에 손을 떠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비참함에 고개를 숙이는 스베르디를 잡아준 것은 또다시 에드쉬였다.


맞잡은 손에 살짝 힘을 준 에드쉬가 눈물 맺힌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눈물을 찍어내던 공작이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제 주제는 아니 다행이구나.”

“···.”

“그리고 토끼 한 마리는 그 기세를 죽이는 것이 좋을 것이야.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두어 사람은 눈빛으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이 살벌하게 번뜩이던 스베르디의 눈동자가 천천히 속눈썹 아래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나타난 눈망울은 분명한 순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살짝 올라간 입에서 복종의 말이 흘러나왔다.


“예. 할아버님.”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공작이 다리를 꼬고 제 무릎 위에 깍지 낀 손을 올렸다. 본격적으로 대화를 하겠다는 모양새라 스베르디는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에드쉬의 손을 잡아당겼다.


“···?”


의아한 눈이 에드쉬를 향했다. 정작 소년은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후작과 공작이 보이는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구둣발이 지나다닌 바닥에 무릎이 닿았다.


“···! 에드쉬! 뭐하는 거야!”


놀란 눈의 스베르디가 우악스럽게 에드쉬의 팔을 잡아당겼다. 소년은 얼굴에 미소를 살짝 머금은 채 제 형을 스치듯 바라보고는 비스듬히 고개를 숙였다. 스베르디는 동그란 남색 뒤통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을 들어 에드쉬의 팔에 손을 끼우고 그대로 위로 끌어올렸다. 하나, 살짝 들어올려졌던 몸은 이내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ㅡ네 번.


“이게 지금···.”


의미 없는 반복 행동을 지속하던 소년이 에드쉬의 팔을 잡아 끌다 말고 손에서 힘을 뺐다. 에드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기사 서임을 받는 기사처럼 가슴 앞에 팔을 수평으로 눕혔다.


“···.”


스베르디의 갈 곳 잃은 손이 에드쉬의 어깨를 잡았다. 그 일련의 행위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공작이 고개를 까딱였다.


“앉아라.”

“···에드쉬.”

“앉아.”

“일어나. 에드쉬.”

“나가고 싶은 게냐?”


악 다문 입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스베르디는 거듭 비참함을 느끼며 에드쉬를 뒤로 하고 후작의 맞은 편 소파에 주저앉았다. 허벅지에 놓인 두 손이 달달 떨려왔다. 눈에 보이게 떨리는 손을 힐끗 바라본 후작이 다시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찻잔을 기울였다.


“그래서ㅡ”


공작이 한 쪽 입꼬리를 깊게 끌어올렸다.


“용케 살아는 왔는데.”

“···.”

“심지어 공작가를 등에 업고 왔는데······.”


바닥에 고정되어 있던 무심한 시선이 천천히 정면을 향했다. 마주하게 된 맑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던 공작이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실로 오만한 표정이었다.


“나는 너를 살려 둘 마음이 없구나.”

“···.”

“뭐, 네 쓸모를 증명한다면 다시 주인 노릇을 해볼까 고민해볼 수도 있긴 하다마는.”


‘기어코!’


허벅지에 올려 두었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스베르디는 이내 버릇처럼 공작과 후작의 반응을 살피고 손에서 힘을 풀었다. 밀려드는 무력감에 소년의 고개가 푹 꺾였다.


‘아무리 힘을 키워도 나는 이 정도구나.’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스베르디는 공작에게 대항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이 저택의 주인인 양 행동하지 말라고, 그 권세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냐고 소리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공작의 화를 더 이상 돋우지 않아 에드쉬에게 튀는 불똥을 최대한 줄이는 것뿐이었다.


지독하게도 현실을 마주한 스베르디가 파들거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금새 순종적인 웃음이 걸렸다.


‘쯧. 나약한 녀석.’


여태껏 보지 못했던, 잔뜩 독기 어린 눈을 번뜩이는 손자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던 공작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기다렸다는 듯 후작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공작님. 스베르디에게는 그림자가 필요합니다.”

“후작은 저 괴물이 스베르디의 그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직도?”

“네. 그렇습니다.”


공작이 낮게 웃었다. 자욱한 안개가 낀 듯 응접실 공기가 가라앉았다.


“정말이지 놀랍구나. 저것이 지금껏 살아 남아있는 것을 보면 모르겠나. 저건 주변에 기생하여 생명력을 갉아먹고 살아남은 괴물이야.”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후작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하, 운이 좋았다라.”


공작이 지금껏 보냈던 암살자들의 수를 세며 비소를 흘렸다. 과연, 50명이 넘는 암살자에게서 살아남은 것이 운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잘 되었지 않습니까.”

“잘 되었다고?”


가볍게 입술을 축인 후작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에드··· 저것이 몸을 의탁한 곳은 델리상트 공작가입니다.”

“그렇지.”

“잘만 이용하면 치워버릴 수도, 우호 관계를 다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호관계. 바할 후작가와 델리상트 공작가 사이에. 공작은 그 웃기지도 않는 조합에 그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가 매섭게 눈을 치떴다.


“후작. 후작이 이렇게 생각 없는 사람이란 것을 진즉 알았다면 절대 내 딸을 주지 않았을 걸세.”

“하지만 공녀는 에드쉬를 상당히 아낀다고 들었습니다.”


공작은 말이 통하지 않는 후작을 보는 대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당연히, 공작도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집 나간 개를 주웠던 평민이 알고 보니 공녀, 그것도 델리상트 전 공작의 딸이란 것을 알고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공녀와 저 사생아의 결혼이었다. 하지만 공작가에서 귀한 공녀를 저 천한 피와 맺어줄 리도 없거니와, 대대로 정 반대편에 위치하던 바할과 델리상트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절대 두 사람의 결합으로 쉽게 풀릴 관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공작의 시선이 얌전히 꿇어앉은 에드쉬를 향했다.


“후작은 정녕 저걸 살려 둬도 된다고 보는 모양이지?”

“그건······.”


후작이 말꼬리를 길게 늘렸다. 사실 후작도 확신을 내릴 수 없었기에.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항상 오랜만이라 면목이 없습니다ㅠㅠ

변명은 않겠습니다.

조만간 또 달려오겠습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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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10.바할 후작 영식 (10) 19.07.28 107 0 10쪽
71 10.바할 후작 영식 (9) 19.05.21 92 0 12쪽
70 10.바할 후작 영식 (8) 19.05.15 91 0 13쪽
» 10.바할 후작 영식 (7) 19.05.14 109 0 12쪽
68 10.바할 후작 영식 (6) 19.04.25 116 0 12쪽
67 10.바할 후작 영식 (5) 19.04.24 124 0 13쪽
66 10.바할 후작 영식 (4) 19.04.20 104 0 13쪽
65 10.바할 후작 영식 (3) 19.03.31 149 0 15쪽
64 10.바할 후작 영식 (2) 19.03.29 139 1 14쪽
63 10.바할 후작 영식 (1) 19.02.18 144 0 13쪽
62 9.델리상트 공작령 (12) 19.02.17 134 0 8쪽
61 9.델리상트 공작령 (11) 19.02.08 143 0 15쪽
60 9.델리상트 공작령 (10) 19.01.30 151 0 17쪽
59 9.델리상트 공작령 (9) 19.01.27 164 0 12쪽
58 9.델리상트 공작령 (8) 19.01.11 191 0 12쪽
57 9.델리상트 공작령 (7) 18.12.29 182 0 11쪽
56 9.델리상트 공작령 (6) 18.12.26 162 0 12쪽
55 9.델리상트 공작령 (5) 18.12.24 170 0 13쪽
54 9.델리상트 공작령 (4) 18.12.21 155 0 15쪽
53 9.델리상트 공작령 (3) 18.12.19 178 0 14쪽
52 9.델리상트 공작령 (2) 18.12.16 176 0 13쪽
51 9.델리상트 공작령 (1) 18.12.14 197 0 13쪽
50 8.하이브리엄 (5) 18.12.11 196 1 12쪽
49 8.하이브리엄 (4) 18.12.09 178 1 12쪽
48 8.하이브리엄 (3) 18.12.07 188 1 12쪽
47 8.하이브리엄 (2) 18.12.05 196 2 10쪽
46 8.하이브리엄 (1) 18.12.03 195 1 12쪽
45 7.신전 방문 (2) 18.12.01 197 3 16쪽
44 7.신전 방문 (1) 18.11.29 20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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