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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리메르 공녀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그림/삽화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18.11.05 21:22
최근연재일 :
2019.07.28 15:06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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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96
추천수 :
237
글자수 :
421,154

작성
18.12.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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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9.델리상트 공작령 (6)

DUMMY

(6)



네르온을 위시한 토벌단이 3박 4일의 토벌 일정을 위해 떠났다. 숲의 진입로에서 네르온을 배웅한 리메르와 트레비안, 에드쉬는 휴스티안 백작의 인도 아래 공작저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후 휴스티안 백작은 공작저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헤르시아가 서류와 씨름을 벌이고 있는 공작가의 집무실로 떠났다.


헤르시아는 공작령에 내려온 후부터 정신없이 바쁜 상태였다. 그녀는 공작령 방문이 결정되었을 때 모두의 앞에서 공작부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보겠다고 호기롭게 다짐했다. 하지만 그 의욕충만한 모습은 공작령에 도착함과 동시에 사그라들었는데,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양의 일거리 때문이었다.


업무 첫날, 헤르시아는 집무실을 열자마자 보인 산더미 같은 서류에 할 말을 잃었다. 멍하니 서류를 바라보고 있는 헤르시아를 다독여 자리에 앉힌 노아가 사람 좋게 웃었다.


“좀 많지요? 허허.”


괜스레 얄밉게 보인다고 생각하며 헤르시아가 노아를 향해 애써 미소 지었다.


“···왜 이렇게 많은 거지요? 위에서 처리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은데.”

“아, 아마 네르온 님께서 대부분 처리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또, 지금이 공작령의 1년 계획을 세우는 시기라서요.”


잊고 있었다. 이맘때의 이디와 전 공작부부는 항상 바빴었다는 것을.


나라 잃은 표정으로 서류를 바라보던 헤르시아가 정신을 차린 것은 잘 다녀오라며 격하게도 손을 흔들어주던 뤼르시엔을 떠올리고 난 후였다. 네르온과 뤼르시엔은 공작가를 지키기위해 지난 10년간 공작가와 후작가를 같이 운영해왔다. 후작가만 해도 벅찼을텐데, 자신이 돌아온 지금까지 그 고생을 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눈에 힘을 준 헤르시아가 팔을 쭉 뻗어 서류 뭉치 하나를 앞에 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3분만에 민망한 듯 씩 웃음지었다.


“저기, 노아. 제가 위에서 다 공부하고 오긴 했는데··· 그런데 이 물자는 어디로 가는 거였죠?”

“아, 이것은요··· .. .”


그렇게 10년 전 갓 공작부인이 되어 살림을 꾸려가던 그때를 떠올리며 서류에 고개를 파묻기 시작한 것이 불과 4일 전이었다.


헤르시아가 해야 할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4일간 그래왔던 것처럼 한동안 오찬은 가신들과, 티타임은 부인들, 영애들과 함께 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아까 있었던 티타임을 생각하며 침대에 털푸덕 몸을 뉘었다. 멍한 눈이 고급스러운 침대 휘장과 천장을 훑었다. 천장에 방긋방긋 웃으며 자신을 소개하던 부인들과 영애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뭐라뭐라 했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후에는 똑부러지는 인상의 남자가 나타났다. 어떤 제도에 대해 말했던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답했나,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를 보이며 환하게 웃는 딸이 나타났다. 그 옆에 단정하게 웃는 에드쉬도 있었다. 헤르시아는 그리운 얼굴에 살짝 미소지었다가, 금새 입꼬리를 내렸다. 요 며칠 몸이 힘들다고 밥 대신 잠을 택했더니 아이들의 얼굴이 흐릿했다.


“아이고···.”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기분이 울적해진 헤르시아가 속이 꽉 찬 베개를 안고 옆으로 몸을 뒹굴 돌렸다. 머리장식이 밀려올라가 머리를 찌르는 통에 조금 아프긴 했지만, 지금은 그것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던 그녀의 얼굴에서 조금이나마 피로가 씻겨 내려갔다.


“헤르시아님”

“응?”

“머리 장식을 빼도 괜찮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헤르시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일정에서 이런 장신구는 필요치 않았다.


사락거리며 옷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머리를 아프게 짓누르던 머리장식이 쑥 뽑혀나갔다. 이윽고 시녀가 나머지 핀들을 제거하고 리본까지 풀어버리자 시원한 느낌과 함께 갈색 머리가 사르륵 내려와 그녀의 볼을 덮었다. 알맞게 가려진 햇빛에 만족스럽게 미소지은 헤르시아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괜찮으신가요?”

“으응···. 아니, 나 안 괜찮은 것 같아. 엄청 졸려······.”


시녀는 잠에 취한 듯 나른하게 이어지는 말에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이내 그녀는 최대한 정중하게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그 사이 용케 잠들지 않은 헤르시아가 고마움을 담아 살짝 미소지었다.


“고마워. 그런데 나 일···. 일하러 가야하는데. 지금 잠들면 안되는데.”

“일··· 말이지요.”


시녀는 잠시 고민했다. 그냥 주무시라고 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녀는 돌아가기 전까지 끝내야 할 서류의 양이 적지 않을뿐더러, 하나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헤르시아가 여러 번 언급했던 것을 생각해냈다.


“제가 30분 뒤에 깨워드릴게요.”

“으응···. 그래줄래?”


잠을 방해하지는 않을까 조용히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고맙다고 웅얼거린 헤르시아의 고개가 천천히 기울여졌다. 시녀는 황금색 눈동자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장신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헤르시아가 잠든 그 시각. 리메르는 밖에 나와 있었다.


“아가씨, 과녁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아, 그래? 그럼 이제 가볼까.”


리메르가 결연한 얼굴로 손을 풀었다. 그 외에도 차례차례 이어지는 스트레칭을 보며 리비가 입술을 삐죽였다.


“너 너무 진심으로 하는거 아니야?”


쯧쯧- 검지를 좌우로 까딱인 리메르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원래 내기는 죽을 각오로 하는거랬어.”

“누가?”

“내가.”

“아주··· 지 맘대로네.”


리비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유치하다는 뜻이 다분한 시선에 리메르가 눈을 치켜떴다.


“뭐래. 고급 활을 가져온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야! 이건! 기본이지!”


민망한 듯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리비가 버럭 소리쳤다. 소년이 급하게 찾아온 장갑을 등 뒤로 숨겼다.


“자자, 이제 곧 날이 어두워질 테니까 빨리 해야 돼요.”

“그건 그래.”

“그렇지.”


서로를 죽일 듯이 쳐다보던 리메르와 리비가 못 이기는 척 에드쉬에게 밀려 시작 지점으로 이동했다. 먼저 활을 잡은 리메르가 등 뒤에서 화살을 꺼내 걸었다.


“내기 내용 변하기 없기다.”

“그럼! 제일 못한 사람은 타르트 먹는거 구경만 하기!”


그랬다. 눈싸움도 하고, 눈에서 미끄러지며 놀기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던 아이들은 모든 것이 지겨워지자 연무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칼을 들고 하는 대련은 지겨웠다. 리메르와 아이들은 슬그머니 다가와 ‘연무장 같이 도실래요?’라고 속삭이는 기사들에게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지금 당장 할만한 것을 고민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활 쏘기였다. 처음에는 그냥 활만 쏠 생각이었다. 하지만 리비가 재미있겠다면서 살을 붙인 ‘가장 못 한사람은 타르트를 먹지 않는다’에 넘어가 활 쏘기 내기로 변질되었다.


‘원래 내기는 제안한 사람이 지는 법이라지.’


리메르는 리비가 아무리 조르고, 불쌍한 표정으로 쳐다봐도 부스러기 하나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천천히 활 시위를 당겼다. 휘잉-. 바람이 매섭게 뺨을 훑고 지나갔다.


워낙 가까이 꽂아놔서 선명한 과녁을 응시하며 리메르가 설핏 미소지었다.


타앙-


화살이 탄력적으로 쏘아져나갔다. 순식간에 과녁에 꽂힌 화살은 의도와 달리 두번째 원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리메르가 짧게 혀를 찼다.


“에잉. 바람을 피한다고 했는데도.”

“풉. 리메르. 죽을 각오로 한거 맞아?”

“뭐야?”


리메르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소녀는 속으로 참을 인을 세 번 새기고는 두 번째 활을 당겼다. 그리고 상체를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리리? 그쪽은 과녁이 아닌데?”

“알아. 저기서 아까부터 시선이 느껴지는데 너무 신경쓰여서.”


서늘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곁에 있던 리드비가 난처한 듯 웃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 동생들입니다.”

“응. 알아.”


저 멀리 보이는 주황색 솜뭉치들을 겨냥하고 있던 활 시위를 천천히 내린 리메르가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집요하게 쳐다보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공작저에 도착한 날부터 꾸준히 느껴진 시선은 분명 적의를 품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메르의 속을 박박 긁어놓고 있었다.


불안한듯 혀로 입술을 축이는 리드비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는 남매를 번갈아본 소녀가 방긋 웃었다.


“리드비. 데려와.”

“아가씨. 죄송합니다.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알겠으니까 데려와. 혼내려는 게 아니니까.”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데려와.”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불안한 듯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동생들을 데리러 달려가는 리드비의 뒷모습을 보며 리메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렇게 끌고 오고 싶지는 않았다고.’


리메르는 꼬맹이들에게 꽤나 여유를 줬다. 매번 느껴지는 시선에도 모르는 척 넘겼으며, 아이들이 다가올 수 있는 틈을 여러 번 만들었다. 하지만 저 아이들은 절대로 다가오지 않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 거리는 심지어 멀기까지 해서 쟤들이 뭐하자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연무장에서 친해진 기사들에게 듣기로 저 남매들은 리드비를 보러 온 것이라고 했다. 항상 리드비를 달고 다니는 리메르 입장에서는 약간의 죄책감을 유발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곤란한 말이기도 했다. 결국 리메르가 공작령에 머무는 동안 계속 저 시선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리메르는 저 꼬마들과 슬슬 거리를 좁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받을 시선이라면 바로 옆에서 받는 것이 낫겠지. 그리고 공교롭게도 가장 집중력을 요하는 지금, 저 꼬마들의 시선이 너무나 거슬렸다.


잠시 후 리드비가 두 아이를 안고 뛰어왔다. 양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아이들은 리드비가 무릎을 굽히자 얼른 바닥에 내려와 리드비의 등 뒤로 숨었다.


“인사 드려야지. 린, 키이.”


결 좋은 주홍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후 아무 말이 없음에 의아함을 느낀 아이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가 팔짱을 끼고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서늘한 보라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했다.


아이들이 입을 헤- 벌렸고, 리메르도 순간적으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뭐야, 엄청 귀엽잖아.’


스토커같이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닥 끝까지 추락했던 꼬마들의 이미지가 조금은 개선되었다.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바들바들 떠는 것이 눈에 보여, 리메르는 감상을 그만두고 꼬마들 앞에 쪼그려 앉았다. 화들짝 놀란 아이들이 도망가려고 했으나, 도망갈 것을 대비해 옷깃을 잡고 있던 리드비 덕분에 저번과 같은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리드비.”


리드비는 아이들을 한번 꽉 안아주고는 앞으로 보냈다. 순식간에 공녀와 마주보게된 아이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너희들이 꼬마들이라면···”


주머니를 열심히 뒤적이던 리메르가 양 손을 남매 앞에 내밀었다. 불쑥 내밀어지는 무언가에 놀라 도리질을 치던 아이들이 갑자기 훅 느껴지는 맛있는 냄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과자가 가득 담긴 봉지 두 개를 내민 공녀가 씩 웃었다.


“과자를 싫어하진 않겠지.”


남매들이 홀린 듯 과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리메르는 언제 필요할지 몰라 오늘도 과자를 챙겨온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속으로.


작가의말

꼴찌는 누구일까요! 1등은 누구일까요!
맞추시는 분께 제 사랑을 드립니ㄷㅏ···(아무도 안받으시는거 아니죠?ㅜㅜ)

연말이라 할 일도 많고, 모임도 많고, 거기에 더해 춥기까지 한데 모쪼록 따뜻하고 웃음 가득한 연말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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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10.바할 후작 영식 (7) 19.05.14 105 0 12쪽
68 10.바할 후작 영식 (6) 19.04.25 113 0 12쪽
67 10.바할 후작 영식 (5) 19.04.24 122 0 13쪽
66 10.바할 후작 영식 (4) 19.04.20 100 0 13쪽
65 10.바할 후작 영식 (3) 19.03.31 147 0 15쪽
64 10.바할 후작 영식 (2) 19.03.29 135 1 14쪽
63 10.바할 후작 영식 (1) 19.02.18 142 0 13쪽
62 9.델리상트 공작령 (12) 19.02.17 133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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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9.델리상트 공작령 (9) 19.01.27 163 0 12쪽
58 9.델리상트 공작령 (8) 19.01.11 18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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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델리상트 공작령 (6) 18.12.26 161 0 12쪽
55 9.델리상트 공작령 (5) 18.12.24 169 0 13쪽
54 9.델리상트 공작령 (4) 18.12.21 153 0 15쪽
53 9.델리상트 공작령 (3) 18.12.19 177 0 14쪽
52 9.델리상트 공작령 (2) 18.12.16 17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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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8.하이브리엄 (5) 18.12.11 195 1 12쪽
49 8.하이브리엄 (4) 18.12.09 174 1 12쪽
48 8.하이브리엄 (3) 18.12.07 187 1 12쪽
47 8.하이브리엄 (2) 18.12.05 194 2 10쪽
46 8.하이브리엄 (1) 18.12.03 194 1 12쪽
45 7.신전 방문 (2) 18.12.01 195 3 16쪽
44 7.신전 방문 (1) 18.11.29 20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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