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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리메르 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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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그림/삽화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18.11.05 21:22
최근연재일 :
2019.07.28 15:06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15,059
추천수 :
237
글자수 :
421,154

작성
18.11.05 21:33
조회
839
추천
12
글자
10쪽

0.프롤로그

DUMMY

0. 프롤로그


타닥- 타닥- 탁···.


맹렬하게 키보드를 가로지르던 손이 멈췄다.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눈은 꿈도 희망도 없다. 혜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xx 그룹 칸에 x를 입력하였다.


"으아아아!"


절망적인 외침이 공허한 방을 울렸다. 책상에 털푸덕 엎어져 한참동안 고개를 묻고 있던 혜빈이 슬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총기가 사라진 눈에 온통 x표가 쳐진 화면이 들어왔다.


“하아.”


천천히 내려가는 고개를 따라 긴 한숨이 이어졌다.


올해 나이 스물다섯.


3학년 끝나고 휴학할 때만 해도 행복했다. 하지만 자격증 공부와 영어 공부,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어느새 휴학 생활이 끝나 있었다. 허무함을 느낄 틈도 없이 복학 후 휘몰아치는 조별 과제와 취업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혜빈의 나이는 스물 다섯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히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어찌할 수도 없는 사이에 손 틈을 빠져나가 버리는 작은 모래 알갱이들 뿐. 왜 이 몸뚱어리 하나만 취업 시장에 던져진 것 같은지 모를 일이었다.


‘왜 나만 백수 같은 거야.’


친구들에게 간간이 인턴을 하고 있다던가, 서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곤 했다. 참고로 혜빈은 방금 10번째 불합격 소식을 접한 참이었다. 물론 서류를 100개는 쓸 각오를 다지긴 했지만 10개 연속 서류 불합은 혜빈의 정신을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


"···맥주."


자리에서 일어난 혜빈이 비척거리며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오늘은 어쩔 수 없어. 마셔야 해. 작게 중얼거린 그녀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6캔의 맥주를 꺼냈다.


언젠간 맘 놓고 마실 수 있겠지ㅡ라며, 우울할 때마다 한 캔씩 사서 넣어놓은 맥주가 벌써 12캔이었다. 혜빈은 제 몸보다 소중한 맥주를 조심조심 가져와 책상에 늘어놓고 첫 번째 캔을 단숨에 들이켰다.


시원하게 톡 쏘는 느낌과 함께 눈가에서 무언가가 또륵 하고 흘러내렸다.


한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ㅡ


“어어, 너무 오랜만이라 감동했나?”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내던 혜빈이 돌연 손을 툭 떨어트렸다.


금방 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던 이 감정은 한 번 인식하고 나자 빠르게 그녀를 잠식했다. 흘러넘치는 감정을 애써 누르는 것도 지친 참이었던 터라 혜빈은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괴로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연신 맥주 캔만 배웠다. 안주도 없이.


그리고 어느 순간 기억이 끊겼다.


***


'으음··· 아, 머리야. 근데 왜 이렇게 깜깜해?'


아까 캔을 다 비우고 추가적으로 두 개를 더 꺼내 왔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런데 불을 끄고 잔 기억이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혜빈은 귀소본능이 끝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취한 와중에 화장을 지우거나 소등을 하는 등 야무진 버릇은 없었다. 그런데 얼굴은 깨끗했고, 눈을 떠도 시야는 어두웠다.


그래도 자취방에서 혼자 사는지라 결국은 내가 껐을 것이다ㅡ라고 결론 내린 혜빈이 일단 불을 켜야겠다 싶어 책상 위 스탠드가 있을 자리를 더듬었다. 그런데 이 좁은 방에서 손에 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끝은 나겠지. 생각하며 열심히 옆으로 움직여 봤는데도 닿는 벽이 없다.


'뭐야. 이것도 꿈인가.'


멈칫- 양 옆을 휘젓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생각해보니 그럴 듯했다.


'정신 차릴 때까지 잠이나 자자.'


한 번 생각하고 나니 실행은 빨랐다.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눕는데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뒤에서 감쌌다.


혜빈의 눈이 크게 띄였다. 지금 머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 사람의 손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나 이외의 손이라니?


순간 엄청난 공포감에 휩싸여 몸을 굳힌 혜빈의 귀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이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소리 좋은 건 좋은 거고, 평소에 공포물에 약했기 때문에 혜빈은 눈을 더 질끈 감았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그러고 나니 이 상황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지금 가위를 눌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서 깨기를 바라며 눈을 감고 있기를 수 분.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건만 외부의 손이 갑자기 그녀의 눈꺼풀을 강제로 들어올렸다.


혜빈은 눈꺼풀이 까뒤집히는 느낌에 필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날 좀 봐주지 그래요?"


잔뜩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씨, 미친. 제발 빨리 깨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녀는 공포 영화에 굉장히 약했다. 잔인한 것은 잘만 보는데 유독 한국 귀신들만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예의 손가락은 끈질기게 혜빈의 눈꺼풀을 올리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눈을 게슴츠레 떴다.


맨 먼저 보인 것은 새하얀 머리였다. 백발 하면 푸석푸석한 백발밖에 못 떠올리던 혜빈은 이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백발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에 보인 것은 날카로운 턱 선, 새하얀 피부, 기분 좋게 올라가 곡선을 그리고 있는 붉은 입술.


'어라, 괜찮은 것 같은데?'


쭉 시선을 위로 올려 웃음기 어린 검은색 눈동자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친 그녀가 황급히 눈을 감았다. 빛이 새어 들지 못할 정도로 두 눈을 꼭 감고 버티자 작게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아직도 혜빈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진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두 사람은 정면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그 얼굴을 감상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미모였다.


꿈은 자신의 소망 또한 보여준다더니, 내가 이런 존잘 연예인을 본 적이 있었나? 미간을 좁힌 그녀가 제 기억을 뒤졌다. 거의 반생을 덕질로 보내다 보니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였음에도, 그에게서 후광이 보였다.


하지만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렇게 생긴 사람을 현생에서 본 기억이 없었다.


“···.”


거듭 고민을 이어가던 혜빈은 결국 취업 준비하느라 외로워서 저가 아예 새로운 사람을 창조해버렸다는 생각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가 '저는 스스로 태어났어요.'라며 웃는 게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혹시 나 입 밖으로 내뱉었나?'


그녀는 황급히 입을 가렸다. 남자는 두 손으로 입을 막은 혜빈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어···. 사실 나는 '주신(主神)'이에요. 차원을 창조하고 관리하는 신."


'내가 판타지 소설을 너무 많이 읽는가 보다. 반성하자, 오혜빈.'


차라리 너무 비현실적이라 다행이었다. 혜빈은 빠르게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잠을 이끌어내기 위해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자칭 주신이 혜빈의 어깨를 움켜쥐고 앞뒤로 강하게 흔들어 댔다.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혜빈의 귀에 때려 박혔다.


"저는! 주신! 파헤프라리아스! 차원 제르하의 아버지입니다! 당신! 일! 찾고 있죠! 괜찮은 일자리 하나 있는데 해볼 생각 없어요?"


···예?


주신? 차원? 차원 제르하···요······?


요즘 흥행하는 RPG게임에 너무 깊게 빠져든 듯하여 남자를 딱한 눈으로 바라보던 혜빈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네? 아니, 전 지구에서···."

"거절은 거절합니다!"

"네? 싫은데요?"

"거절은 거절이에요!"

"···허."


당황이 서렸던 눈이 순식간에 차게 식었다. 혜빈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어디 장단을 맞춰주려고 해도 저렇게 막무가내면 맞춰줄 기분이 동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일 보 물러나서 저 말을 심도 깊게 들어준다고 해도, 이 체통 따위 집어 던진 것 같은 작자가 진짜 신이면 저 제르 뭐시기 차원은 이미 망한 것이 아닌가.


움찔- 그의 어깨가 떨렸다. 그는 작게 '아직··· 망하지는 않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결국은 망할 거라는 소리잖아.’


연신 혜빈을 힐끔거리던 남자가 그녀의 얼굴에 서린 황당함을 읽고는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남자의 다채로운 표정 변화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혜빈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저 작자는 아예 설득할 의지도 없는 것 같고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꿈 속에서 장단을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거기 가면 원래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거야 당연히 죽는 거죠."


산뜻한 질문에 산뜻한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산뜻하지 않은지라 혜빈은 살짝 표정을 굳혔다.


"역시 다시 원래대로···."


고개를 저으면서 뒤로 한 발 물러나는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혜빈의 이마에 검지와 중지를 가져다 댔다.


“아니 이게 무슨···짓······!”


당황한 혜빈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그에 반해 남자는 입술을 곱게 휘며, 부드러운 음성을 쏟아냈다.


"당신에게 주신 파헤프라리아스의 이름으로 재능의 축복을 내렸습니다. 미안하지만 거절은 거절합니다. 당신이 부디 ......의 좋은...... .. 좋겠군요."


찰나의 빛이 터지더니 혜빈의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작가의말

연재 초반에 썼던 거라 어색함이 많습니다 ㅠㅠ

이야기 진행을 위해 다듬기보다는 연재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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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0 [탈퇴계정]
    작성일
    18.11.18 14:59
    No. 1

    와! 납치범! 양아치 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n2******..
    작성일
    19.04.05 11:03
    No. 2

    왜 항상 신은 제멋대로인가 영웅 강제 취직을 해주질 않나 사람을 실수로 죽이질 않나, 수능을 좋게 보고 대학교 가는 날만 기달리는 어느 예비 대학생을 차원 이동 시키질 않나,,,, 이보쇼 신님 저도 보내주세요 흑흑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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