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6.03 18:22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1,469,774
추천수 :
29,516
글자수 :
2,121,592

작성
24.05.16 18:10
조회
1,330
추천
51
글자
19쪽

무극(無極)(3)

DUMMY

※※※



공손령은 눈을 떴다. 처음으로 인지되는 것은 한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타오르는 듯한 격통. 그 다음은 눈앞을 스치는 암녹빛 장포와, 한없이 냉막한 눈매였다.


“당무혁......?”

“깨어났습니까?”


그러나 곧바로 돌아온 것은 메마르고 초췌한 것이 아닌, 차갑기 그지없으면서도 훨씬 앳된 음성이었다. 그에 공손령은 깨달았다.


“......소가주?”


지독하리만치 당무혁과 닮은 그의 자식. 소가주 당소하. 힐끗 그녀를 내려다보곤 몸을 일으키는 동작이 가벼웠다. 툭 내뱉는 말에는 아무런 감정이 묻어있지 않았다.


“팔은 지혈해두었으니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겁니다. 잘려나간 것을 되찾지는 못하겠지만.”

“어찌......상황은 어찌 되었습니까?”

“네 사람이 협곡에 진입하고 일각(一刻:15분)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정신 차렸으면 저는 이만 가보지요. 친우들이 수라궁 군세를 위태하게 막고 있는지라, 힘을 보태야 해서.”


그 말을 듣고서야 공손령의 머리에는 기억들이 재빠르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붕괴하던 협곡과, 그 사이에서 그녀를 짐짝처럼 집어던지며 장포를 흩날리던 당가주의 모습까지도.


“소가주. 당신의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무혁은......!”

“모릅니다. 가주께선 궁주를 격살하고 나오시겠지요. 어떻게든 가주님의 절기를 한번만 적중시키면 궁주라 해도 죽일 수 있습니다.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무공에 대해서.”


공손령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벌떡 일어나려다 느껴지는 격통에 숨을 들이켜면서도 하나 남은 손으로 소가주의 암녹빛 장포를 붙잡는다.


“아닙니다. 소가주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무혁. 당무혁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협곡 안에 당가 무인들을 전부 투입해서 그를 지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막 보신경 경파를 일으키던 당소하가 걸음을 멈춰섰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당무혁과 똑같은 눈을 보면서 공손령이 급하게 주절거리듯 내뱉었다.


“궁주, 궁주의 권역을 파훼하고자 했습니다. 그 방도를 강구했다고. 수라진결의 권역은 체외의 진기를 정지시키는 것이니 상단전 신(神)의 영성을 쪼개어 만독을 한층 더 강화시키면......”

“가야합니다. 요점만 이야기 하십시오.”

“막대한 진기를 일거에 터트리면, 그로써 삼화취정의 경지를 한순간 극상으로 끌어올리고 일시적으로 전능(全能)을 쥘 수 있다 했습니다. 소가주. 그리하지 못하게 그를 막아주세요.”

“전능......?”

“무혁은 깨버릴 생각입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스스로의 단전을. 선천진기마저 뽑아내기 위해서.”



※※※



광대한 협곡의 틈새.


문득, 시간이 얼어붙었다.


압도적인 묵빛의 주먹은 사방 모든 빛을 빨아들일 듯한 인력(引力)으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 힘은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투명하게 바스라지는 허공의 조각조차 그 상태 그대로 얼어붙는다.


모든것이 멈췄다. 바람소리마저 숨죽인 듯 잦아들었다. 쉼없이 떨어져 내리던 낙석(落石)과 흙먼지, 튀어오르는 강물과 흩어지는 분진마저도 전부.


허공에 멈춰섰다.


‘이건.’


간극으로 쪼개진 찰나가 아니었다. 소년은 단박에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협곡 전체를 따라 휘도는 것은 거대한 진기의 회전. 만천(滿天)의 요결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마냥 사방을 휘감아 고정시켰고, 그로써 모든것에 침묵을 강제시켰다.


그야말로 초월적인 힘.


허나 동시에 소년은 이해했다. 이것은 무공을 펼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일어난 일일 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권마가.’


수라궁주 맹무진. 허공을 바스라뜨리며 전진하던 일권이 아주 느릿하게 떨리며 얼어붙어 있다. 멈춰선 시간 속에서 억지로 몸을 움직이려 애쓰는 듯한 모습인데, 그의 부릅뜬 눈에서 백연은 경악을 읽었다.


‘어떻게?’


궁주도 마찬가지로 사방에서 별안간 허공에 정지한 바윗덩이마냥 멈춰 있었는데, 그 방법만큼은 이해의 범주를 벗어났다. 그의 육신을 둘러싼 수라진결은 여전히 완벽했고, 그 잿빛 안으로는 단 하나의 진기 터럭조차 뻗어낼 수가 없었다.


초월자의 권역.


파훼되지 않았다. 사방을 휘감은 만천의 실타래는 잿빛 권역의 내부까지 침투하지 못했고, 그런 까닭에 마찬가지로 수라진결의 권역 안에 있는 백연과 검선은 움직임을 제한당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궁주만큼은 오롯이 멈춰 있었다. 눌어붙은 시간 속에 갇힌 듯이.


그리고 그 앞.


백연과 수라궁주 사이에서 솟아난 큰 키의 인영이 있었다. 암녹빛 장포는 잿빛의 세상 속에서 펄럭이고 있었고, 새카만 흑발은 옷자락 위로 물결치며 떨어져 내린다.


[아슬아슬했군.]


여전히 똑같이 메마른 목소리. 허나 그 형태는 이전과 달랐다. 귓가에 곧바로 날아와 꽂히는 음성의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전음이 아닌......?’


육합전성같은 기예도 아니었다. 뒤늦게 소년은 알아차렸다. 당가주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혜광심어?’


바로 생각났다. 불도 무문의 지고한 경지에나 이르러야 닿을 수 있을 음성. 의념을 진기 파동의 형태로 투사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영성에 그대로 때려박는 상승의 영역이다. 허나 그것은 지금의 당가주가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네가 옳다.]


그의 생각을 읽은듯 곧바로 뇌리에 새겨지는 의념의 대답에 백연은 미간을 좁혔다.


“그럼 어찌?”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 말하며 백연을 힐끗 쳐다보는 천독의 시선. 그에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콰아아-


새카만 흑안(黑眼) 위. 별무리가 춤춘다. 찰나지간 그를 스치는 시선 위로 휘도는 것은 막대한 진기와 거대한 영성의 편린.


이 세상 모든것을 오시하는 듯한 무감한 눈길 속에, 초월성이 깃들어 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의 증거가.


동시에 그 눈길이 닿는 순간, 백연은 그의 몸이 꿰뚫리는 듯한 착각을 느꼈고.


[그 몸. 비었군.]


단박에 천독이 그의 몸 상태를 통찰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낱낱이 읽힌다. 그 눈길 아래 모든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는데, 지금쯤 무엇을 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백연은 대답했다.


“여력을 남겨두고 반각을 버는 것은 불가능하니.”

“암화의 말이 맞네. 지나치게 아슬아슬했어. 조금만 더 늦었으면 노부의 동귀어진도 생각하고 있었네만......”


어느새 검을 거두고 선 검선이었다. 그의 말에 천독이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인다.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궁주와 세상을 둔 채로.


[벨 수 있겠나.]


이제 똑바로 백연을 쳐다보는 시선이 무거웠다.


지금 저 눈은 보고 있을 터였다. 소년의 몸이 진기 한톨 남기지 않고 텅 비어버렸다는 것을.


언제나 태청신공의 벼락으로 가득 차 휘돌던 전신 근맥은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졌고, 바람과 불꽃, 파도로 휘감겨 있던 하단전은 공허하게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온몸 진기가 일거에 빠져나간 탈력감은 마치 몸에 구멍이 뚫린듯한 감각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예.”


소년은 한점 망설임 없이 답했고, 고개를 끄덕인 천독은 시선을 돌려 궁주를 마주했다.


그 순간이었다.


쩌적-


무언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궁주의 입매가 비틀렸다. 동시에 대지를 따라 둔중한 진동이 발현. 지진같은 진동이 곧 하나의 육성으로 화해 일어난다.


“천독......!”

[적응이 빠르군.]

“어떻게, 분명 권역은 무결할 터인데!”


육신 전체가 굳어들었음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려 시도한다. 처음에는 눈동자가 움직였고, 뒤이어 눈썹 끝이 바르르 떨더니 이내 잿빛의 손끝이 극히 짧은 간격을 따라 움직인다.


쩌저저적-


모든 움직임 하나 하나에 허공을 따라 투명한 균열이 일어난다. 공간 자체를 찢어발길듯한 거력.


허나 담담히 그를 내려다보던 천독이 곧 손을 허공에 가볍게 휘저었고.


쩌정!


굉음과 함께 비틀리던 대기가 다시금 굳어들었다. 동시에 백연은 느꼈다. 천독으로부터 물결처럼 뻗어나온 거대한 의념. 진기 파동의 여파가 아니다. 한순간 압도적인 영성이 구름처럼 몸을 부풀리며 일어나더니, 그대로 수라궁주의 육신 전체를 둘러싸고 때려박힌다.


그와 함께 궁주의 육신에 흐르던 진기가 별안간 비틀렸다.


[네 말은 분명 옳다. 수라진결의 영역에서 내 만독은 무용(無用)하니. 그것은 아직도 유효한 바.]

“그런데 어찌......!”

[헌데 묻고싶군. 네 전신 세맥도 권역의 영향을 받나?]


영역의 적용 범위를 논하는 언행. 그와 동시에 권마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경악성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마 백연 자신의 얼굴에 깃든 표정도 저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무량만독(無量萬毒). 의념을 통한 진기 파동을 일으켜 한 사람이 접할 수 있는 모든것을 독으로 화하게 할 수 있는 신공.


그것을 만든 이가, 세맥에는 수라진결의 권역이 적용되지 않는것이 아니냐 반문한다.


그 말대로다. 수라진결은 모든곳의 진기 발출과 흐름을 틀어막지만, 체내 진기마저 막을수는 없다. 육체를 강화하고, 모든 무공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세맥을 채우고 휘도는 진기니까.


따라서 천독이 말하는 것의 의미는.


[외공제일이라 불리는 육신을 지닌 동시에, 무한한 재생 공능이라. 두가지는 껄끄럽다. 하나로 줄여야 맞겠지.]


산공독(散功毒).


원래는 내공을 흩어내거나 잠시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독의 일종. 직접 섭취하지 않으면 그 효과를 보기 어렵지만, 독공의 정점에 이른 이는 그 모든것을 뛰어넘어 눈앞에 선 괴력난신의 체내에서 독을 창조해버렸으니.


지금 이 순간, 천하 권마의 내공 진기가 봉인당했다.


그것을 인지한 잿빛 거한의 표정이 다채롭게 흔들리는 것도 찰나. 삽시간에 형형한 적안을 빛낸 그의 얼굴이 납같은 무표정으로 화하고.


그그그그그극-!


지진같은 소리와 함께였다. 바짝 굳어있던 권마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공간을 찌그러뜨리며 느릿하게 한발을 내딛은 그가 백연과 검선, 당가주의 코앞에 우뚝 서서 그들을 내려다본다.


사방을 짓누르는 압박을 육신 외공만으로 버텨내며, 천독의 기운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모습.


쿠구구구궁-


거칠게 내리찍히는 압박 사이로 맥동하는 근맥이 거칠게 꿈틀거린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내며 궁주가 입을 열었다.


“타인의 체내 진기에 의념만으로 간섭해 강제한다? 그런 짓이 아무런 대가 없이 가능할리가.”

[대가는 치뤘다.]

“네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허나 어디까지나 하단전 진기를 끌어오지 못하는 것일 뿐. 그것마저 길어봤자 일각 이내에 풀린다.”

[일각이라는군.]


이번에는 궁주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백연을 힐끗 돌아보는 당가주. 그의 눈길을 받은 소년은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고.


“충분합니다.”


대답과 함께 길다란 눈썹이 비스듬히 내리깔렸다. 자색 시선이 눈매를 타고 흘러내릴듯 묻어나왔다.


“괜찮겠나? 자네 진기가.”

“괜찮습니다. 대신 제 검을.”

“혼자 상대할 요량인가?”

“곁에 계시면 휘말리실겁니다.”


백연의 말에 수염을 쓸어내린 검선이 그에게 여휘를 건네었다. 오른손으로 그것을 건네받은 백연이 무거운 검의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시선을 들어 권마를 응시했다.


그와 함께 돌아오는 묵직한 시선. 수라진결의 권역으로 사방을 짓누르는 잿빛 거한이 백연을 내려다보며 입을 연다.


“오만하군. 무당의 늙은이와 일각 내내 달려들어 칼질을 해도 부족할 요량이다. 당장에 내 일권(一拳)을 감당할 여력조차 남지 않았을 것을. 그 몸이 텅 빈것이 보인다.”


거친 음성에 섞인 당황은 이제 사라지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이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는 듯이.


“당가주는 지금도 내 몸에 간섭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칼잡이가 아니며, 신공을 펼치는 도중에 만천까지 쥐고 자유자재로 휘두를 여력은 없다. 너는 그런 와중 나를 홀로 감당하겠다 말하는군. 기백이 아니라 만용이다.”


백연은 그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한손에 천마의 검을, 한손에 여휘를 쥐고 담담히 권마를 올려다 보았을 뿐.


아니. 소년의 눈은 눈앞의 잿빛 거한에 닿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순간 허공을 더듬은 시선은 아득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찰나지간 두개의 기억이 교차한다. 일기장 속에서 감각했던, 세상을 뒤흔들던 청년의 걸음. 그리고 무당산 위에 남겨져 있던 오랜 흔적에 깃든 천하 자연지기를 다루던 노검객까지.


그 모든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의념이 다시금 뇌리에 새겨지는 순간, 백연은 느릿하게 일보(一步)를 내딛으며 숨을 들이쉬었고.


화아아아악-!


한순간 쪼개진 간극 속에서 사방을 따라 휘돌던 자연지기가 일제히 백연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휘어든다. 휘몰아치는 거대한 기운이 태풍처럼 일었다가, 단번에 소년의 몸을 향해 짓쳐든다.


육신에 단 한점의 진기도 남지 않은 지금 찰나, 그의 몸은 오롯한 그릇이 되어 모든것을 받아낼 수 있으니.


이 순간, 태허(太虛)의 묘리 아래 휘어든 모든 자연지기가 휘돌며 소년의 몸에 쏟아지고, 북명(北冥)의 의념 아래 하나로 합일(合一)된다.


그렇게 엮어낸 무학의 한계는 무극(無極)에 이르니.


이것은 소년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사용할 수 있는 구명절초이자, 한순간 본신의 경지조차 뛰어넘어 주변의 모든 외기(外氣)를 짧은 시간이나마 그의 통제하에 둘 수 있는 초월적인 신공.


태허무극결(太虛無極結).


“네놈, 무엇을.”


성큼 다가선 권마의 신형이 별안간 천독조차 뛰어넘어 소년의 코앞에 이른다. 어느새 엮어낸 권격을 망치처럼 내리치면서였다. 그 끝에는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소년은 급해지지 않았다. 자색으로 투명하게 아롱지는 시선은 봄날 산들바람마냥 오르며 권마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찰나지간 선명하게 맥동하는 근맥의 흐름, 힘이 향하는 방향, 그리고 그 구결에 담긴 이치까지 단번에 눈에 각인된다.


그를 인지함과 동시에 소년의 몸 위를 따라 물결처럼 터져나오는 것은 새파란 별무리의 옷자락.


쩌어어어어어엉!


거칠게 내리찍힌 권마의 주먹은 성라청휘극의 옷자락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섰고, 동시에 붉은 눈동자에 의문과 경악이 깃들었다.


“진기를 전부 소진한 것이......?”


그 음성이 끝나기도 전에 백연은 여상히 이검(二劍)을 휘둘렀고, 두갈래의 벼락이 소년의 손아귀에 현현했다.


한줄기는 곧장 회전하며 엮어낸 권마의 주먹에, 한줄기는 그의 가슴팍에 떨어진다.


소년은 찰나지간 오초식 벼락을 평범한 검법마냥 손아귀에 쥐고 휘둘렀고, 그 여파는 즉각적이었다.


쩌저저저저정!


핏물이 튀어오른다. 일권을 내지른 팔이 깊숙하게 베이며 뼈까지 단숨에 드러났고, 가슴팍에 사선으로 새겨진 검상은 그 거체의 심장에 닿을 뻔 했다.


그와 함께 눈을 부릅뜬 권마가 즉시 대지를 박차며 몸을 뒤로 날렸다. 삽시간에 검권에서 벗어나는 보신경이 날랬다.


“일각이라고 했지.”


허나 여상히 뱉어진 백연의 음성은 권마의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그에 번개같이 몸을 돌린 권마가 주먹을 내치는 순간, 일곱갈래의 검로가 허공을 난자. 이미 깊숙히 베여나갔던 그의 팔뚝에 칠성섬뢰의 검식이 떨어졌다.


파바바바바박!


이번에는 뼈까지 들어갔다. 카각-하는 소리와 함께 강철같던 권마의 육신이 베여나갔다. 그와 함께 거대한 잿빛의 살덩이가 바닥으로 철퍽 떨어져 내렸고.


“아직도 그리 짧은 시간으로 느껴지는지 궁금한데.”


그에 분노한 듯 형형히 일어나는 적안. 찰나지간 이를 드러낸 권마가 씹어뱉듯 뇌까린다.


“천독의 간섭만 아니면 네놈의 검은......!”


말을 끝까지 잇지도 못했다. 찰나 몸을 뒤튼 권마가 번개같은 권격을 자아냈는데, 삽시간에 허공을 따라 십여개에 달하는 불티가 튀어나왔다. 백연이 내친 모든 검격을 검면을 후려 받아치는 신기. 그와 함께 두 사람의 인영이 희끗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일합이 교차될때마다 발디딘 땅이 쩌억-갈라진다. 연격 사이사이 흩어지는 핏물이 자욱했다. 일전 검선과 둘이서 감당하기도 어려웠던 권마의 힘을, 이제는 홀로 오롯이 압도한다.


태허무극결을 펼친 백연이 지금 이 순간 본래라면 닿을 수 없는 영역에 발디디고 있는것과 동시에, 당가주의 무량만독이 권마를 한계까지 끌어내린 까닭이었다.


그 여파는 명백했다.


길쭉하게 이어지던 푸른 별무리의 궤적과 잿빛 여파가 별안간 한 지점에서 교차.


쿠구구구궁-!


거대한 진동과 함께 우뚝 멈춰선 두 사람은 서로를 등지고 서 있었다. 두 자루 검을 쥔 소년은 그대로였으나, 권마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보신경 궤적을 따라 흐린 피안개가 운무마냥 치솟는다. 산들바람처럼 이지러진 백색 뇌광의 궤적을 따라서다. 동시에 그 궤적의 끝에 닿아있는 것은 권마의 어깻죽지였는데, 아무런 전조도 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쿠궁.


둔중한 소리와 함께 권마의 좌수(左手)가 바닥으로 낙하했다. 이번에는 다시 붙이지 못했다.


그와 함께 무감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흐린 진동과 같이 울린다.


“......본 궁(宮)은 나와 상관없이 멈추지 않는다. 그 앞에 가장 큰 걸림돌이 너라는 것은 이제 자명하니.”


한호흡에 몸을 돌리며 뱉는다. 별안간 권마를 둘러싼 주변의 대기가 색(色)을 되찾았고, 한순간 하나 남은 주먹에 압축된 것은 직전까지 사방을 뒤덮고 있던 수라진결의 잿빛 권역이었다.


“여기서 홀로 가지 않겠다.”


권역을 거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사방의 대기가 웅웅거리며 떨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껏 무량만독을 저지하기 위해 펼쳐뒀던 수라진결의 권역이 단번에 주먹 하나의 크기로 압축. 그와 함께 권마의 마지막 남은 진기가 일거에 휘몰아치며 거대한 권격 구결을 형성한다.


그와 함께 백연의 코앞으로 벼락처럼 파고든 권마가 주먹을 휘둘렀다. 여태껏 펼친 것중 가장 빠른 일격. 흐릿하게 이지러진 잿빛 권격은 인지하는 순간 소년의 앞에 다다라 있었다.


허나.


“......!”


백연의 두자루 검은 이미 그보다 먼저 뻗어져 있었다. 검신을 휘감은 것은 막대한 진기로 이루어진 꺼지지 않는 벼락.


떨어지던 권마의 주먹은 백연에게 닿기 직전에 우뚝 멈춰섰고, 그의 육신 뒤로는 희고 푸른 별빛이 멈추지 않고 뻗어나갔다.


분광뇌풍검법(分光雷風劍法).


여뢰(餘雷).


소리는 없었다.


절벽의 벽면을 따라 명멸하는 희고 푸른 검흔만이 시야를 물들일 뿐.


그리고 직후.


잿빛 거한의 육신이 천천히 갈라져 내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참대전 참여 공지-주 6회 연재 +2 23.12.04 707 0 -
공지 연재주기 변경 및 향후 작품 계획에 관한 공지 +8 23.07.31 2,233 0 -
공지 후원인명록(後援人名錄) 23.07.06 1,323 0 -
공지 연재주기 공지-주 6일 오후 18시 10분(12/04자로 변경)입니다 23.05.11 22,971 0 -
277 천살문(2) NEW +3 8시간 전 338 14 12쪽
276 천살문 +5 24.06.01 827 38 18쪽
275 떠나는 바람 +4 24.05.31 910 35 15쪽
274 휴식(3) +6 24.05.30 1,005 36 16쪽
273 휴식(2) +6 24.05.29 1,036 46 17쪽
272 휴식 +9 24.05.28 1,093 50 16쪽
271 검흔(3) +7 24.05.27 1,169 46 16쪽
270 검흔(2) +8 24.05.24 1,337 52 20쪽
269 검흔 +7 24.05.23 1,257 52 15쪽
268 천라방(2) +6 24.05.22 1,281 46 16쪽
267 천라방 +5 24.05.21 1,265 48 15쪽
266 천독(3) +6 24.05.20 1,234 47 15쪽
265 천독(2) +7 24.05.18 1,415 47 18쪽
264 천독 +7 24.05.17 1,278 50 15쪽
» 무극(無極)(3) +10 24.05.16 1,331 51 19쪽
262 무극(無極)(2) +6 24.05.15 1,357 49 22쪽
261 무극(無極) +8 24.05.14 1,375 54 20쪽
260 권마(拳魔)(5) +8 24.05.13 1,355 52 17쪽
259 권마(拳魔)(4) +9 24.05.11 1,485 52 18쪽
258 권마(拳魔)(3) +8 24.05.10 1,351 51 15쪽
257 권마(拳魔)(2) +6 24.05.09 1,370 50 16쪽
256 권마(拳魔) +6 24.05.08 1,440 52 16쪽
255 서주(4) +6 24.05.07 1,462 54 16쪽
254 서주(3) +7 24.05.06 1,471 53 14쪽
253 서주(2) +7 24.05.03 1,712 54 17쪽
252 서주 +6 24.05.02 1,634 52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