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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쿤의 서재

혈마비록(血魔悲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백랑쿤
작품등록일 :
2016.10.26 09:10
최근연재일 :
2017.01.17 17:13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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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74
추천수 :
491
글자수 :
218,029

작성
16.10.28 21:46
조회
1,604
추천
17
글자
12쪽

장강의 귀신

오늘도 좋은 하루되셨길 OR 되시길~




DUMMY

취몽루 3층의 기녀 설매가 비명에 목숨을 잃은 날로부터 20일 뒤, 밤.


장강 변의 어느 무인도에서 수적들의 연회가 한창이다.


커다란 모닥불을 피워놓고 동그랗게 모여앉은 험상궂은 사내들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며 뛰어다닌다.


그들의 옆에서 시중을 드는 것은 근처의 민가 어딘가에서 끌려왔을 여인네들이었다.


"크아. 술 맛 조오코!"


다들 아무렇게나 걸터앉은 자리, 홀로 그럴듯한 곰가죽을 깔고 앉은 거한이 요란스럽게 흥을 낸다.


앞섶을 풀어헤친 건장한 몸과 곁에 놓인 커다란 작살이 그가 역사(力士)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이미 비워진 술 항아리가 여러 개나 놓여있다.


자신의 말에 호응하는 다른 수적들을 만족스럽게 훑어보고는 곁에서 술을 따르는 여인의 앞섶에 다짜고짜 손을 밀어 넣는다.


여인은 두려움에 질려 반항조차 못하고 고개를 잔뜩 움츠리고 있을 뿐이다.


"아, 채주(砦主). 애들 다 보는데 뭣 하는 짓이오."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수적 하나가 그 꼴을 보고는 웃으며 야유한다.


채주라 불린 거한은 그 말을 듣고도 씩 웃기만 할 뿐 손을 뺄 기색이 없다.


'애들'이라 불린 다른 수적들도 좋은 구경을 한다는 듯 낄낄거리기만 할 뿐, 그 모양이 거슬리는 기색은 조금도 없다.


장강수로이십팔채(長江水路二十八砦) 영교채(靈鮫砦) 채주(砦主) 장강교어(長江鮫魚) 이굉(李宏)이 그였다.


"여자 품에 안고 자 본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한사코 손을 빼지 않고 능글맞은 얼굴로 이죽거리는 이굉.


슬슬 못 참겠는지 눈이 번들거리는 꼴이 영락없이 먹이를 노리는 상어다.


채주가 그렇게 나오자 곳곳에서 납치한 여자들을 두고 희롱을 하던 수하 놈들이 신나서 끼고 있던 여자를 더듬기 시작한다.


"웬 미친놈 때문에 수채에서 제대로 여자를 품어본 지 벌써 그렇게 됐단 말이지."


말하며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이굉에게 잡혀있던 여인의 표정이 구겨진다.


두려움에 차마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것 같다.


보름전, 수로이십팔채 중 하나인 백사채(百蛇砦)가 채주부터 말단까지 떼 몰살을 당했다.


흉수는 불명.


증거라고는 모조리 심장이 뽑혀나간 시체들뿐, 사람들은 합비에서의 무림인 살인이 멈춰진 것을 증거로 흉착귀(胸鑿鬼)가 장강에 나타났다고 떠들었다.


흉착귀인지 흉칙귀인지, 수적들이 알 바가 아니었지만 멀쩡하던 수채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것은 모를 바가 아니었다.


수로채연맹(水路砦聯盟)의 맹주인 백경채주(白鯨砦主) 임경한(林鯨悍)이 맹주령으로 남은 이십칠채의 수채들에게 온 장강을 샅샅이 뒤져 흉수를 찾아내 척살하라고 명을 내렸다.


연맹이라고는 이름만 걸어놓고 평소에는 상선 터는 것 만큼이나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수로채연맹이었지만, 다음에는 누구의 수채를 습격할지도 모르는 놈을 장강 어딘가에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다들 강을 돌며 놈을 찾는 중이었던 것이다.


사실, 대놓고 개기던 대룡채주(大龍砦主)가 임경한에게 맞아 뒈지지 않았으면 이렇게 열심히는 아니었겠지만...


하지만, 놈을 찾으라는 것도 우스운 것이 혼자서 50여 명이 넘는 중견 수채 하나를 싹 쓸어담은 놈을 찾아서 '뭐 어쩔 것인가?'에 대한 명도 없었다.


수로채연맹이라고 거창하게 불려봐야, 수적들이 어설프게 모인 조직이라 제대로 된 체계가 있을 리가 없다.


찾아서 봉화를 올리건 쾌속선을 띄우던 해서 신호를 보내봐야, 지원이 오는데만 한세월인 넓디넓은 장강이다.


차라리, 수채에 틀어박혀 있으면 빨리 걸려서 빨리 당하니 도망이라도 열심히 다니라고 명령을 내렸으면 모를까.


잡아오라고 하면 당최 어찌 손을 써볼 방법이 없다.


하지만, 대룡채주를 때려죽인 그 한방 때문에 장강 수적들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노숙자가 되었고, 장강 변의 마을이란 마을은 짜증이 극에 달한 수적 떼에게 말도 못할 고초를 겪고 있었다.


'먼저 찾는 놈이 독박이지.'


영교채주 이굉 뿐 아니라 다른 채주들도 마찬가지 마음이라, 보름이 되도록 놈의 흔적하나 찾지 못하고 집에도 못 들어가는 날이 길어져만 갔다.


이굉도 참다못해 오늘은 마을 하나를 털어 수하들과 이렇게 쌓인 화를 푸는 중이었던 것이다.


"히익."


이굉의 손이 앞섶에서 빠져나가자 안도의 숨을 내쉬던 여인이, 자기를 안아 드는 이굉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시끄러워."


말하며 자신의 애병인 작살을 들어 보인다.


여인은 이굉의 위협적인 태도에 놀라 입을 다물었지만, 이굉이 숲으로 들어가는 동안에 울음을 터뜨렸다.


으슥한 곳에 들어와 여인을 던져놓은 이굉이 탐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말한다.


"벗어라. 오늘 어르신이 오래간만에 술을 한잔해서 기분이 좋으니. 열심히 잘하면 곱게 집에 보내주마."


이굉의 말이 들리긴 들리는지, 그녀가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그의 얼굴 근육이 물난리 난 장강마냥 일그러진다.


이굉이 작살을 여인의 턱 끝에 들이민다.


날카로운 작살이 코앞에서 번뜩이자 여인의 울음소리가 멎었다.


'꼭 좋게 갈 일을 어렵게 만든단 말이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여인에게 다가가는 이굉.


"딸꾹."


...


...


...


"딸꾹."


겨우 울음을 멈춘 여인이 딸꾹질하자, 이굉이 기가 막힌 듯했다가 분노하는 표정이 된다.


"이게 진짜 말귀를 못 알아 처먹네."


이굉의 손이 올라간다.


이만큼 참은 것도 정말 많이 참은 것이다.


재수없는 놈을 쫓는 중이라 부정 안 타려고 나름대로 상냥하게 했는데, 이래서는 그냥 막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저, 저."


거기다 더듬더듬 뭐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여인.


"이제 와서 무슨 애걸이야. 잘하고 나면 곱게 집에 보내준다잖아."


"저기, 저기 귀, 귀신이."


"귀신 같은 소리 하네, 이년아 수작 부리지... 마아!"


이굉은 마지막 말을 힘주어 말하며 있는 힘껏 작살을 뒤로 휘둘렀다.


카앙!


불꽃이 튀기며 이굉의 뒤로 접근하던 자가 한걸음 물러난다.


허름한 야행의, 선명한 붉은 수투.


이십일 전 몽환장에서 설매를 살해하고 사라진 적명이었다.


"저런, 나름대로 편하게 보내주려고 했는데. 사서 고생을 하시네."


얼굴을 가리던 붉은 가면은 어디다 버리고 왔는지 맨얼굴을 드러내고는 이죽거리는 적명.


웃는 낯인데도 한 번씩 붉게 번뜩이는 안광에 소름이 끼친다.


"니가 그 흉착귄가 뭔가 하는 놈이냐?"


작살을 휘두른 손이 얼얼하다.


얼얼한 것을 넘어서 뭔가 꺼림칙하다.


"내 이름은 아니지만, 내가 맞는 것 같네. 근데, 그런 것도 별호로 치나? 조금 흉하지 않소?"


유쾌한 얼굴로 살벌한 자신의 이명에 대해 거론한다.


'이놈, 뭔가...'


이상하다.


험한 생활을 하면서 익히 보아온 미친놈들과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본능이 거부하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은 생소한 것이다.


이굉뿐만 아니라 수로채연맹의 모든 채주들이 두려워하는 백경채주 임경한도 살벌하게 미친놈이지만, 눈앞에 있는 살인마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승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불쾌한 기분.


"다른 질문은 없소? 내 지금은 바쁘지 않으니 물을 게 있으면 얼른 물어보시오."


여전히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적명.


언뜻 들으면 친절하기 그지없는 말투,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살벌함을 모를 리가 없다.


다 잡은 고기를 가지고 노는 모양이다.


"이 새끼가 사람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어."


말이 끝나기 전에 작살을 휘둘러오는 이굉, 다급하게 휘두른 첫 일격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확실하게 무게가 실려있다.


적명의 몸이 붉은 그림자를 남기며 흐릿해진다.


불과 한 달도 전에 보여준 신법과 같은 것이 틀림이 없는데, 한층 괴기스러워졌다.


그리고 그만큼 쾌속하다.


영교채주 이굉도 수적질을 할지언정 한 무리의 수장이라는 자리에 걸맞게 통쇠로 된 작살을 화려하게 휘두르고 있지만, 적명의 그림자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한다.


묘하게 움직임을 방해하는 이놈의 기운도 문제다.


"당신이 그, 백사채준가 하는 놈보다 좀 나은 것 같소. 이름이 채준이라고 했던가? 되지도 않는 사검(蛇劍)을 들고 한번 찔러보겠다고 애를 쓰는데, 눈뜨고 못 볼 꼴이었지."


스치지도 않는 작살 때문에 갈수록 초조해지는 이굉을 앞에 두고 여유롭게 자기 할 말을 다하는 적명, 이굉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는다.


"싸우면서."


이굉의 공세가 멈춘다.


"이빨 털지 마라."


쉴 새 없이 몰아치던 작살이 주인의 양손에 단단히 잡히고, 이굉이 창술을 하듯 작살을 앞으로 겨눈다.


어차십이투로(魚?十二鬪路)

제십로(第十路)

교어탐식(鮫魚貪食)


상어가 먹잇감을 덮치듯 포악한 기세로 쏘아지는 작살이 흉악한 궤적을 그리며 적명을 향해 날아간다.


그때까지 요리조리 몸을 피하던 적명이 철의 상어에게 혈수갑을 들이밀었다.


쇠와 쇠가 격렬하게 맞닥뜨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비산한다.


"스벌. 이런 말도 안 되는."


격렬한 충돌이 끝나자, 이굉은 자신의 작살 끝을 붙잡고 있는 적명의 수갑을 보고 욕지기를 내뱉었다.


적명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입을 놀린다.


"아, 그래, 그 백사채주란 놈 말이오. 하도 찔러보려 애를 쓰기에 내가 그놈 칼을 빼앗아서 한번 쿡 찔러 줬단 말이지. 그랬더니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더이다."


"이, 이!"


이굉의 굵은 팔뚝에 힘줄이 잔뜩 솟는다.


하지만, 적명이 잡은 작살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땀도 흘리지 않고 여전히 입을 놀리는 적명.


"알고 보니 무슨 독을 발라뒀다지 뭐요. 내, 찝찝해서 그놈 심장은 꺼내 놓고도 쓰질 못했지."


그리 말하고 작살 끝을 유심히 살핀다.


"이거 놔, 이 새끼야!"


전력으로 내공을 운용하여 작살을 떨치는 이굉, 그 서슬 퍼런 기세에 적명이 못 이기는 듯 작살을 놓는다.


어차십이투로(魚?十二鬪路)

제십이로(第十二路)

살경(殺鯨)


물러서는 적명을 향해 이굉이 전력을 다해서 작살을 투척한다.


무기를 던지는 기술, 일반적인 무림인들은 쉽게 생각하지 않는 마지막 수단이다.


빗나가면 저항할 수단이 사라지는 극단적인 기술, 하지만 애초에 고기 잡는 작살은 던지라고 만들어진 것이고 이 마지막 수 하나만은 이굉이 백경채주에게도 먹힐 것이라고 자신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쾅!


뾰족한 날붙이가 지면과 충돌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날아가는 파편, 근처에 사람이 있었다면 육편이 되었을 위력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적명의 시신은 없었다.


"당신은 독을 쓰지 않는군."


"너, 너 이 새끼."


적명의 말에 대꾸하는 이굉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배후에서 튀어나온 붉은 수갑이 어느 사이에 왼쪽 가슴을 관통한 것이다.


"미안하게 되었소. 더 놀고 싶었는데, 난데없이 굉장한 게 날아와서 놀라버렸지 뭐요."


이굉이 뭐라고 말을 하려 하지만, 입에서 뿜어지는 피 거품에 알아들을 수 없다.


적명의 손이 빠지자 이굉의 거구가 무너지듯 땅으로 쓰러진다.


혈수갑 위의 심장은 빠르게 고동을 이어가나 싶다가 이내 비쩍 말라 바스러져 버렸다.


"히익."


이굉의 뒤에서 박제된 듯 쓰러져 있던 여인이 그제야 비명을 지른다.


무표정하게 그것을 보던 적명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괜찮아요?"


더 없이 상냥한 물음.


겁에 질려있던 여인의 고개가 겨우 상하로 움직인다.


"뭐해요."


"네?"


여전히 친절한 어투로 하는 맥락 없는 이야기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여인, 적명은 친절하게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얼른 도망가야죠. 죽고 싶어요?"




잘 읽고 계신가요? 맞춤법이나 오타관련 사항은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으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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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공(魔孔) 16.10.28 2,020 20 16쪽
8 오방대주(五方隊主) 16.10.28 1,842 19 9쪽
7 불청객(不請客) 16.10.27 1,925 17 10쪽
6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16.10.27 1,956 23 8쪽
5 대장간(下) +1 16.10.27 2,073 19 7쪽
4 대장간(上) 16.10.27 2,277 19 10쪽
3 흉착귀(胸鑿鬼) +4 16.10.26 2,499 25 11쪽
2 점소이 16.10.26 2,873 26 11쪽
1 합비제일루 16.10.26 4,337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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