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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쿤의 서재

혈마비록(血魔悲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백랑쿤
작품등록일 :
2016.10.26 09:10
최근연재일 :
2017.01.17 17:13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176
추천수 :
491
글자수 :
218,029

작성
16.10.27 09:24
조회
1,925
추천
17
글자
10쪽

불청객(不請客)

오늘도 좋은 하루되셨길 OR 되시길~




DUMMY

남궁세가 외당 5대주, 파암철권(破巖鐵拳) 사정혁(謝正奕)은 축축한 아침공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간밤에 비가 제법 온 모양이다.


슬슬 불혹을 넘어가는 나이가 되니 이런 날씨에는 이유도 없이 어딘가 아픈 것 같았다.


이런 아침이면 이 나이를 먹도록 혼인을 하지 않은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무림인은 무공과 결혼을 한다고 했던가, 한때는 자신도 그리 알고 살았는데.


"개소리지 전부."


이제 와서 혼인을 할 생각도 별로 없지만, 기회가 더 많을 때 꼭 할걸 그랬다.


그랬으면 지금처럼 왠 미친놈이 자택 연무장에 들어와서 살기를 풀풀 풍길 때도, 대를 이을 자식이 있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이것도 개소리군."


사정혁은 혼자 낄낄 거리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동이 트자마자 찾아와서 꿈자리가 뒤숭숭할 정도의 살기를 뿌려댄 것 치고는 제법 친절하게도, 놈은 사정혁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놈에게 당한 시체만 봐서는 당장 달려들어 칼부림을 할 놈 같았는데 이건 정말이지 예상 밖이다.


'원래 미친놈들 속은 알 수가 없나?'


이제 슬슬 가을로 접어드는 아침의 공기는 제법 쌀쌀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의 공기에는 말 못할 묘한 기운까지 섞여 있어서 더욱 차갑다.


사정혁을 잠에서 깨운 살기에 섞여 있는 기운이다.


끈적거리는 듯한, 기괴한 질량감을 가지는 어떤 것이 공기 중에 섞여 떠다니고 있었다.


사정역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연무장에 도착했다.


연무장 한 가운데, 간밤에 내린 비를 맞은 것인지, 아침이슬을 맞은 것인지.


온몸이 젖은 채로 옅은 김을 피워 올리는 '그놈'이 있었다.


붉은 가면, 새까만 야행의, 오른손에 끼워진 붉은 빛이 도는 수갑(手甲).


"사람 잡는 감각만큼 옷 입는 취향이 독특한 건 아니군."


놈에게 먼저 말을 건넨 사정혁은 심히 잡배스러운 몸짓으로 목과 팔다리를 꺾으며 관절을 풀었다.


심히 불량스러운 것이 누가 보면 왈패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뭐 그래도 주화입마로 정신이 반쯤 나간 늙은이 같은 거 보다는 나은가?"


놈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뻔하다.


이 기운.


묘하게 외부와 단절되는 느낌이다.


오감에 간섭하는 것인지, 아니면 암시를 주는 종류인지 반년 동안 벌어진 열 차례가 넘는 살인행각에도 목격자가 하나도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사술(詐術)이다.


놈은 계속해서 떠드는 사정혁의 말에 일언반구 대답도 없이 조용히 서있다.


하지만, 사정혁은 아랑곳 않고 계속 입을 연다.


"어차피 싸울 거면 하나 묻자. 대답해 주겠나?"


끄덕.


녀석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귀가 먹은 건 아닌 모양이네.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거지 저 놈?'


따지고 보면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꼴로 표적이 된 자신이 화를 내야 하는 게 아닌가?


조용한 듯 보이지만, 언제라도 날뛸 듯한 놈의 살기는 녀석이 그다지 평온한 상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뭐, 연쇄살인범이 평온한 정신상태인 게 더 이상하겠군.'


"왜 다음 목표로 나를 고른 거지? 정신이 나간 놈 같지는 않으니, 외당 대주끼리도 실력차가 제법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선인검 다음에 나를 찾아오면 너무 한번에 난이도를 높이는 게 아닌가?"


사정혁은 간밤에 이필이 당했단 사실을 모른다.


알았다고 해도 비슷한 질문을 했을 것이다.


외당의 5대부터는 남궁세가가 심혈을 기울여 초빙한 외부의 고수들이 대주를 맡는다.


그 말은, 그들이 무림대파가 손수 모셔야 할 만큼의 실력자들이라는 말이다.


"당신이 합비성 밖에 사니까."


피식


사정혁의 입에서 어처구니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독박이다.


'집값이 싸다느니, 여유로워 좋다느니, 개소리 하지 말고 성안에서 살걸 그랬군.'


한동안 혼자 낄낄거리던 사정혁이 주먹을 들어 우두둑 소리를 낸다.


저잣거리에서 또래들과 싸움 박질 할 때부터의 습관, 이제 싸우겠다는 의사 표시다.


"뭐, 좋아 그렇다고 하자고."


텅!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렬한 진각음이 울리며 사정혁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다른 이야기는 이 주먹으로 듣도록 하지."


사정혁은 3장의 거리를 빠르게 압축하며 흑의인, 적명에게 짓쳐든다.


꽉 말아쥔 주먹에서 은근한 흰색의 기운이 모인다.


기습에 가까운 공격 때문인지 적명이 맞서지 않고 첫번째 주먹질을 몸을 뒤로 빼며 피한다.


그것을 예상한 듯 바로 재차 쳐오는 반대 손이다.


순간적이지만, 이필과 정욱이 놓쳤던 적명의 움직임에 완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몸을 뒤로 넘겨 두번째 주먹을 피하는 적명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발차기.


적명은 그대로 몸을 넘겨 뒤로 재주 넘듯 공격을 피하고, 다급하게 혈수갑을 내지른다.


쾅!


무거운 충돌음과 함께 다소 불안한 자세로 공격을 받아낸 적명이 뒤로 비척거리며 물러났다.


다음의 공격을 예측한 듯 자세를 잡은 적명이지만, 어째선지 사정혁은 공격해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피가 나는군. 그 수갑, 대체 뭘로 만든 물건이지?"


별호 그대로 철권이라 불리는 남자다.


이미 그 주먹이 강철이나 다름없었고, 실제로 도검을 쓰는 자들과도 숱하게 주먹을 섞어왔다.


그의 주먹이 이렇게 간단한 공방에 피를 볼 줄은 몰랐다.


피차 전력을 내지 않은 공격, 사정혁의 주먹을 해한 것은 적명이 가진 무기였다.


"당신하고 비무를 하자고 찾아온 건 아니오."


"까칠하기는."


그렇게 말하며 사정혁의 몸이 다시 움직인다.


몸을 크게 회전하며 짓쳐오는 주먹, 어설프게 보이지만 아까보다 훨씬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피를 보는 건, 한번뿐이라고 말하는 듯 강맹한 일권이다.


화려한 보법도, 변초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적을 분쇄하는 일권.


[파산권(破山拳) 반고타악(盤古打嶽) 반고가 큰 산을 때린다.]


적명이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몸을 뺀다.


하지만, 처음처럼 다급한 것이 아니다.


유령이 움직이듯 그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정혁의 연이은 주먹을 빗겨낸다.


"아.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불길한 것만 써대는 구만!"


떠들 여유가 있는 것인지, 흐르듯 몸을 피하는 적명을 따라 가며 사정혁이 불만을 내뱉는다.


그저 저주를 내리는 무당 같은 놈들이 종종 흘리곤 하는 지저분하기 만한 기운이 아니다.


적명의 기운은 그가 쓰는 무공 하나하나 동작 하나마다 흩뿌려지고 있었다.


사정혁은 직접적인 부딪침이 없었는데도 자신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퍽!


첫번째 타격은 오히려 맹공을 퍼붓던 사정혁이 먼저 당하고 말았다.


주먹을 휘두르던 사정혁이 피하지 못할 궤도로 날아온 주먹은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울혈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아냈지만, 몸 안으로 침투한 기운의 성질도 심상치가 않다.


날을 세워서 조공(爪功)의 형태로 맞았으면 살이 찢길 뻔 했다.


"마음에 안 드는네."


적명은 물러나는 사정혁을 쫓아가지 않았다.


'배를 꿰뚫을 생각이었는데.'


촘촘한 권막을 뚫고 겨우 일격을 넣었음에도 상대는 비교적 멀쩡해 보인다.


기의 충실함이 전의 목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이 정도로 수준이 다른 것인지, 아예 상대도 되지 않았던 다른 외당의 대주들과는 상대하는 감각이 상이하다.


마치 맹수를 상대로 몰이사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격을 허용하면 이쪽이 죽는다.


속상한 마음에 충동적으로 시비를 건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너, 이 무공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사정혁은 그렇게 말하고 전력으로 내공을 끌어올려 체내에서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기운들을 몰아냈다.


약간의 내상을 무시하고 기를 운용하기 때문인지 비릿한 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적이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서 속전속결로 끝을 보려고 밀어 붙인다는 것이 오히려 놈의 의도대로 날뛰어준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망신이라면 망신이다.


저 사이한 기운에 대응할 방법이 없는 이상, 모험수를 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힘의 우위는 그에게 있었지만, 이런 공격을 몇 차례 더 허용하면 위험하다.


하지만, 사정혁이 생각을 다 정리하기 전에, 적명이 먼저 몸을 움직였다.


귀신처럼 흩어지는 특유의 신법으로 흐릿한 모습만 남기며 사정혁에게 날아와 혈수갑을 휘두른 것이다.


혈수갑의 손톱궤적을 따라서 붉은 기운이 사정혁에게 쏟아진다.


[혈마공(血魔功) 혈조(血爪)]


다급하게 권막을 펼쳐 막아보려 했지만, 붉은 빛은 상상이상으로 예리해서 권막의 곳곳을 뚫고 사정혁의 몸에 상처를 만들었다.


겨우 몰아낸 사기가 다시 몸으로 침투하는 것을 느낀 사정혁은 자신이 수세라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짓쳐오는 붉은 기운을 보며, 사정혁은 전신에 기운을 긁어 모았다.


'밑천 다 까는 구만!'


[파산권(破山拳) 오의(奧義) 명명기(命名技) 파산권(破山拳)]


붉은 기운과 흰 기운이 격렬하게 어우러지며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폭음이 솟구쳤다.




잘 읽고 계신가요? 맞춤법이나 오타관련 사항은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으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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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공(魔孔) 16.10.28 2,020 20 16쪽
8 오방대주(五方隊主) 16.10.28 1,842 19 9쪽
» 불청객(不請客) 16.10.27 1,926 17 10쪽
6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16.10.27 1,956 23 8쪽
5 대장간(下) +1 16.10.27 2,073 19 7쪽
4 대장간(上) 16.10.27 2,277 19 10쪽
3 흉착귀(胸鑿鬼) +4 16.10.26 2,499 25 11쪽
2 점소이 16.10.26 2,873 26 11쪽
1 합비제일루 16.10.26 4,338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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