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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쿤의 서재

혈마비록(血魔悲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백랑쿤
작품등록일 :
2016.10.26 09:10
최근연재일 :
2017.01.17 17:13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177
추천수 :
491
글자수 :
218,029

작성
16.10.27 09:22
조회
2,073
추천
19
글자
7쪽

대장간(下)

오늘도 좋은 하루되셨길 OR 되시길~




DUMMY

사흘 후.


노인이 적토산 기슭의 대장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 남은 것은 불에 타고 남은 잔해와 아이를 감싸다 함께 타 죽은 어른의 시체뿐이었다.


타버린 대장간 터는 아직도 옅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허, 허허, 이 놈들이. 정녕.”


타고 온 수레에서 날듯이 내려 그 광경을 둘러본 노인의 표정이 참담하다.


남궁세가가 이 대장간 주인 적환(赤煥)이 만드는 특수한 철을 탐낸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최근 들어 무기를 만드는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외부의 대장장이들을 영입하여 커다란 대장간을 굴린다는 사실은 비밀도 뭣도 아니었다.


적환 같이 뛰어난 장인이라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남궁세가로 모시려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관심이 실력에 비해 빛을 못 보는 무명의 대장장이에게 출세길이 될 거라 여겨 짐짓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결과가 눈 앞의 참상이다.


어찌나 은밀히 움직였는지, 사흘간 남궁세가를 드나드는 쥐새끼 한 마리까지 감시하던 노인의 수족들이 그 행사를 눈치채지 못했다.


남궁세가는 그를 영입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고 장인 하나가 만드는 물건들이 장사에 방해가 될까 두려워 일가를 살해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대체 이놈들의 하는 짓은 변하질 않는구나.”


쿨럭, 쿨럭.


시꺼먼 잔해들 사이로 성마른 기침 소리가 세어 나왔다.


노인의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한달음에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간 노인은 믿을 수 없는 괴력을 발휘하여 타고 남은 굵은 나무 기둥을 옆으로 치워 버렸다.


그 아래는 사흘 전에 보았던 대장장이의 아들이 쓰러져 있었다.


등을 길게 후벼판 자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노인이 다급해진다.


“흑주(黑蛛). 이 아이를 몽환장으로 데리고 가라. 그리고 주경(宙瓊)선생을 불러 치료하게 해라. 내, 특별히 부탁한다고 전해라 꼭 살려달라 했다고.”


노인의 부름에 허공에서 줄을 타고 나타난 흑의인, 조용히 청년을 안아 든다.


“존명.”


흑주라 불린 자는 경공을 펼쳐 신속하게 사라졌다. 사람을 안고 있음에도 어둠 속에 녹아 들어 눈으로 쫓기가 쉽지 않다.


“흑공(黑蚣). 이곳 근방에 남아있는 흉수들의 흔적을 낱낱이 조사하라. 언제, 어느 조직에 누가, 얼마나 이끌고 왔는지 알아낸 모든 것을 보고하라. 이 일을 벌인 것이 남궁세가가 맞다면, 놈들이 하고 있는 무기사업의 규모와 현황을 모조리 파악해라.”


이번에는 땅에서 솟구치듯 나타난 다른 흑의인이 낮은 목소리로 복명을 한다.


“존명.”


흑공은 복명을 하고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무엇이냐?”


“문주께서는 그럼.”


“벗을 묻어주러 간다. 일이 끝나면 몽환장으로 돌아갈 것이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흑공은 그제서야 모습을 감췄다.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노인은 바스라지는 잔해를 밟고 들어가 적환과 딸의 시신을 안아 들었다.


“미안하네.”


짧은 사죄.


그 말에 묻어있는 노인의 후회는 그리 짧은 것이 아니었다.


남궁세가가 흉수라면, 남궁세가의 행보를 알면서도 방치한 자신의 책임이었다.


외당 5대가 움직였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에 사흘이고 하루고 시간을 주지 말고 억지로라도 내보냈어야 했다.


그 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 숨 죽여 있지만, 그가 이끄는 자들의 힘이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정말 미안하네.”


노인이 틀렸다.


밝은 빛 속에서 명분과 정의를 둘러쓰고 행사하는 그들의 칼날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들의 것보다 강했다.


조금의 낌새조차 없었다고 방심하는 사이 이런 식으로 친구를 잃을 줄은 몰랐다.



“자네의 아이는 내가 꼭 살리겠네.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노인의 발걸음이 멈췄다.


한동안 걸었을 뿐인데, 노인과 두 구의 시신은 어느덧 적토산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었다.


사람의 인적이라고는 거의 없을 곳, 횡재를 노리는 심마니라도 산짐승이 두려워 출입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언덕처럼 보이는 작은 산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노인은 조용히 두 구의 시신을 내려놓고 손으로 땅을 팠다.


맨손이건만 무슨 도구를 쓰는 것처럼 땅이 순식간에 파헤쳐진다.


노인이 두 구덩이를 파는 동안 걸릴 시간은 고작 한 식경.


고개를 들고 한숨을 내쉬는 노인의 손은 흙투성이지만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내 두 살 난 딸과 그 어미를 묻을 때, 이 짓을 처음 해봤지.”


노인은 적환의 시체에 말을 거는 듯했다.


감정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성마른 목소리였다.


“그때는 한나절도 넘게 걸렸다네, 손톱은 모조리 빠지고, 일이 끝나고 나니 손발을 움직일 수 조차 없더군. 반쯤 미쳐서 그랬던 게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아이의 시신을 작은 구덩이에 뉘였다.


“나를 가르친 사부는 그 직후에 처음 만났네. 아이와 부인의 무덤 앞에서 실성해서 울고 있는 나를 거둬 주었지.”


다음은 아이의 아버지 차례였다.


노인은 적환의 시신을 큰 구덩이에 눕혔다.


“나는 그에게 배운 것으로 복수를 했다네. 그리고 다시는 떳떳하게 밝은 세상을 나돌아 다닐 수 없는 몸이 되었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부녀의 무덤에 흙을 덮었다.



“언젠가 물어봤지? 왜 그만한 실력으로 세상에 이름이 없느냐고. 이게 대답일세.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이야기를 해주고 위로주라도 한잔 받아먹는 건데 그랬구만.”


부녀의 무덤을 완성한 노인은 한동안 그 옆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 나이를 먹도록 인연이 끊어지는 것은 어찌 이리도 괴로운지.”


노인의 말은 혼잣말인지 아니면 죽은 적환에게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혼잣말도, 적환에게 하는 말도 아니라면 그저 흘리는 회한.


노인도 그것이 무언지 몰랐을 것이다.


사방이 어두워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노인은 그곳에서 한참을 읊조려댔다.


음뭬에~


한참을 넋두리하며 앉아있던 노인의 귀에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산 등성이를 넘어 검은 소 한 마리가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노인이 슬몃 웃음을 지었다.


“나를 찾아서 온 게냐? 노인네가 어디서 대성통곡을 하다가 객사 했을 까봐?”


음메에~


소는 노인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또 한번 울었다.


“알았다. 얼른 들어가자. 하나 밖에 없는 제자 놈이 사부 죽은 줄 알고 애먼 사람을 갈구고 있겠구나.”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수레에 올랐다.


가자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 소는 알아서 걸음을 옮겼다.


“적환이, 자네 아들이 내가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내 기꺼이 힘을 빌려줌세.”


수레에 실린 노인이 넌지시 한마디를 더 흘렸다.


“그래서 미안하네.”




잘 읽고 계신가요? 맞춤법이나 오타관련 사항은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으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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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공(魔孔) 16.10.28 2,020 20 16쪽
8 오방대주(五方隊主) 16.10.28 1,842 19 9쪽
7 불청객(不請客) 16.10.27 1,926 17 10쪽
6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16.10.27 1,956 23 8쪽
» 대장간(下) +1 16.10.27 2,074 19 7쪽
4 대장간(上) 16.10.27 2,277 19 10쪽
3 흉착귀(胸鑿鬼) +4 16.10.26 2,499 25 11쪽
2 점소이 16.10.26 2,873 26 11쪽
1 합비제일루 16.10.26 4,338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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