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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쿤의 서재

혈마비록(血魔悲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백랑쿤
작품등록일 :
2016.10.26 09:10
최근연재일 :
2017.01.17 17:13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259
추천수 :
491
글자수 :
218,029

작성
16.10.27 09:22
조회
2,279
추천
19
글자
10쪽

대장간(上)

오늘도 좋은 하루되셨길 OR 되시길~




DUMMY

합비에 흉착귀가 나타나기 2년 전.


가을.


합비성 북문 밖.


딸랑 딸랑.


검정 소가 끄는 수레 하나가 천천히 합비성을 등지고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소는 길이 익숙하다는 듯이 이끄는 사람이 없는데도 자신만만하게 인적이 드문 길을 잘도 나아갔다.


곳곳에서는 추수철을 맞은 농민들이 분주하게 수확을 하고 있었다.


헌데, 소의 주인은 어디에 있을까.


"하이고오. 아직 멀었나?"


수레에서 백발을 아무렇게나 기른 노인이 기지개를 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수레의 주인인 듯싶다.


"에잉? 아직 이것 밖에 오지 못한 것이냐? 네놈이 가을이 되어서 게으름이 늘었구나."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고 옆에 있던 작대기를 들어 소의 엉덩이를 쿡쿡 찌르며 타박한다.


소가 불만스럽게 투레질해댄다.


"뭐시라, 가을이 되어서 이 늙은이 근수가 늘어 그렇다는 게냐?"


음뭬에~


소는 노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적절하게 긴 울음을 하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충직한 녀석인 것 같다.


노인은 소와 노닥거리며 실없이 웃고는 덜컹거리며 더디 움직이는 수레에 앉아서 완연히 가을이 된 풍광을 감상한다.


뒤로는 수확이 한창이 논과 밭, 앞으로는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산.


노인이 오르는 나지막한 산은 적토산이라 하였다.


예로부터 붉은 흙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황토로 칭해지는 옅은 붉은 색, 혹은 갈색의 흙이 아니라 선혈처럼 붉은 흙이 땅을 파다보면 나타나서 붙은 이름이다.


그럴 바엔 혈토산이 어떨까 싶지만.


"이름을 그 따위로 지어 놓으면 너무 재수 없겠지?"


음메~


소는 자신의 주인이 하는 말을 알아 듣기는 하는 것인지.


맥락 없이 떠들어대는 소리에도 기세 좋게 대꾸를 해준다.


저잣에 떠도는 이야기꾼들은, 저 옛날 위나라 장수 장료와 그가 이끄는 기마 8백에 도륙 당한 오군의 피가 원한 때문에 땅에 서려서 흙이 그렇게 붉어 졌다는 소리를 했다.


"그것도 헛소리들이지."


노인이 이곳의 토박이가 아니라서 장료가 어디서 오군과 싸웠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합비성 북문 근처에 있는 이 산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대단한 양반 아니었느냐? 나였으면 10만 군대에 돌격하기 전에 불알이 오그라들어서 죽어버렸을 것이다."


홀로 말하고 홀로 웃는 노인.


따박따박 말동무를 해주던 소도 그 실없는 소리에는 대꾸를 하지 않는다.


자신을 무시 하는 것 같은 소의 태도에 셀쭉 하니 입을 내밀던 노인의 눈에 산 위에서 경공으로 내려오는 한 무리의 청의 무사들이 보였다.


청색. 남궁세가의 색이다.


이런 곳에 저들이 무슨 볼일인가.


한둘도 아니고 외당의 1개 대쯤은 모두 몰고 온 것 같았다.


그 수가 서른 명은 족히 되어 보인다.


"어이 노인장."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무사들은 경공으로 순식간에 노인의 지척에 와서

그를 불렀다.


소는 당황하지도 않고 자리에 멈춰서 주인의 명령을 기다린다.


"예? 왜 그러십니까 나리들?"


호탕한 기세로 소와 대화를 주고 받던 노인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힘없는 촌로의 그것이 되어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눈을 내리깔고 좌우로 살피는 모양이 영락없다.


"남궁세가 외당 5대주, 파암철권(破巖鐵拳) 사정혁(謝正奕)이라 하오. 어디로 가는 길이오?"


남궁세가는 합비의 법이다.


관인들은 그저 적법한 절차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합비의 치안에 관한 대부분의 사항은 남궁세가에서 관리했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불쑥 사람을 붙잡아 두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칼을 찬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이 무서울 수 밖에 없다.


노인의 허리가 더욱 땅으로 굽어 들어갔다.


"쩌, 쩌기 중턱에 대장간에 갑니다."


손을 들어 숲의 어딘가를 가리키는 노인, 대장간의 존재를 이미 아는 모양인지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노인의 손을 볼 생각조차 않는다.


"거기엔 무엇을 하러 가오?"


"이, 이놈을 고치러 갑니다요."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수레에 실려있던 낫을 꺼내 보여주었다.


농사철에 농기구가 망가진 모양이다.


"흐음? 날이 망가진 것 같지는 않소만?"


사정혁 말 그대로 노인이 들어 보인 낫은 망가지기는커녕 몹시 예리해 보였다.


덜그럭.


사정혁의 말에 노인은 낫의 날과 자루를 분리시킨다.


연결부가 망가진 모양이다.


저래서는 쓸 수가 없다.


"이래 놔서 뭘 벨 수가 있어야지요."


"그렇군."


'괜히 불러 세웠네. 부하들 앞에서 민망하게시리.'


사정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노인을 보내주고는 부하들을 인솔하여 가던 길을 재촉했다.


"사정혁에 외당 5대를 몽땅 딸려서 보냈다? 남궁세가 이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게지?"


음메~


그들이 지나치자 노인의 목소리가 아까 마냥 호탕하게 변한다.


게다가 이미 그들의 자세한 소속까지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아까 대장간 이야길 할 때 눈치를 보니, 거길 다녀온 모양인데 조금 서둘러야겠다."


하지만 소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번 멈추고 나니 만사 귀찮다는 듯하다.


"이놈아 어서 가자고!"


노인이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낫으로 엉덩이를 콕 찌르자 그제서야 소가 움직인다.


음메에~


소의 울음 소리가 몹시도 불만스럽다.



****



노인의 수레가 목적지에 다다른 것은 그로부터 반 시진 쯤 지난 후였다.


산등성이에 있는 간판조차 없는 허름한 대장간이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음메이~


소의 울음 소리를 들었는지, 대장간 안에서 열두어 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뛰어나왔다.


"영감님 왔다! 아버지 영감님 오셨어요."


"어허 노야라고 하라니까."


아이의 뒤를 따라서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내 노인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노야."


"그래, 그래. 잘 지냈나?"


노인도 반갑게 아이와 중년인을 맞으며 인사를 건넸다.


깡! 깡! 깡!


대장간 안에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에 노인이 중년인에게 물었다.


"자네 아들놈 이제 망치질도 하나?"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이는 중년인이다.


"예, 같이 나와서 인사를 올려야 하는데 지금 나오면 안 되는 작업 중이라 남겨놓고 나왔습니다."


노인은 껄껄 웃으며 손사래로 괜찮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중년인도 그런 노인을 보며 멋쩍게 웃는다.


"헌데 오늘은 무슨 일로?"


"아, 이거."


하고 아까 사정혁에게 보여준 자루 빠진 낫을 보여주는 노인.


"그러게 제가 따로 만들어 드린다고 했잖습니까. 진짜 농사꾼들 쓰는걸 가져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2년은 넘게 썼잖아."


"제가 작정하고 만들었으면 10년도 문제 없겠습니다."


서운해 하는 듯한 중년인의 태도에 노인이 껄껄 웃는다.


"자네 실력이 못미더워서 그런 건 아니니 화내지 말게나. 이번에 제대로 고쳐주면 될 것 아닌가."


"알겠습니다."


대강 방문 목적이 이뤄지자 노인이 마음에 걸리는 것을 묻는다.


사실 그자들을 만나고부터는 낫을 맡기는 것 보다 이쪽이 더 신경이 쓰였다.


"헌데, 남궁세가의 외당 사람들이 이곳에는 왜 왔나?"


노인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우물쭈물하는 중년인.


그 말을 가로채는 목소리가 대장간에서 들려왔다.


"적철의 생산 비법을 넘기던가, 아니면 전량을 자신들에게 팔라더군요."


망치소리는 멈춰있었다.


대장간 입구에 서서 말을 끊은 호리호리한 청년은 중년인의 아들이 틀림없다.


청년은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저, 그게 안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웃으며 말하는 중년인과 다르게 노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자네 적철이고 나발이고 이곳을 떠나야겠네."


다급하게 떨어지는 노인의 말에 중년인의 웃음이 끊긴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남궁세가의 외당의 1대에서 5대는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하는 승냥이들이야. 그자들을 보내서 해온 요구를 거부하면 무사하기 힘들 거라는 말일세. 내가 이것저것 알아봐줄 테니 당장 합비를 떠나게, 아예 안휘성 바깥으로 갈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게야. 근처 어디 객잔에라도 숨어 있으면 내가 사람을 보내서 적당한 장소로 안내해 줌세."


더없이 강경한 노인의 말투에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여자아이가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노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시화(是花)야 걱정하지 마라 영감님이 금방 편하게 살수 있는 데로 보내줄게."


시화라 불린 여아를 안아 들고 달래면서도 노인의 눈은 중년인을 다그치고 있었다.


그 눈빛에 못 이긴 듯 중년인이 무거운 입술을 연다.


"사흘, 사흘만 주십시오. 이곳을 정리하고 그 낫도 고쳐놓겠습니다. 그때 떠나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그간 보아온 남궁세가의 움직임에 비추어 보자면 못 기다릴 시간은 아니다.


혹시나 모를 일은 자신이 적당히 막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느긋하게 있다 가려고 했지만, 당장 봐야겠네. 나도 할 일이 많겠어."


"살펴가십시오."


두 남매와 중년인의 환송을 받으며 노인은 소를 재촉했다.


녀석도 주인의 마음을 아는 듯, 토 한 번 달지 않고 무거운 엉덩이를 바삐 움직여준다.


올 때는 아름답게만 보이던 가을의 풍광이 온통 불길하게 보였다.




잘 읽고 계신가요? 맞춤법이나 오타관련 사항은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으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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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장간(下) +1 16.10.27 2,076 19 7쪽
» 대장간(上) 16.10.27 2,280 19 10쪽
3 흉착귀(胸鑿鬼) +4 16.10.26 2,501 25 11쪽
2 점소이 16.10.26 2,877 26 11쪽
1 합비제일루 16.10.26 4,344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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