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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쿤의 서재

혈마비록(血魔悲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백랑쿤
작품등록일 :
2016.10.26 09:10
최근연재일 :
2017.01.17 17:13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171
추천수 :
491
글자수 :
218,029

작성
16.10.26 09:14
조회
2,872
추천
26
글자
11쪽

점소이

오늘도 좋은 하루되셨길 OR 되시길~




DUMMY

"대주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


취몽루의 점소이 적명(赤皿)은 씩씩거리며 나가는 세운검 이필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조금만 더 쓰게 하고 올려줄 생각이었는데,그 잠깐을 못 참고 뛰쳐나가 버렸다.


"설매가 짜증 좀 내겠는걸."


호구를 놓쳤다고 도끼눈을 뜨고 노발대발할 설매를 생각하니 적명의 정신이 아득하다.


어차피 주머니 사정 뻔한 대주, 더 오래 끌지 말고 떼어 버리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그 욕심 많은 여자는 들어먹지를 않는다.


그렇게 말을 하면 적명이 아직 어려서, 돈 귀한 줄 모른다고 비웃기 십상이다.


실제로는 적명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


"어차피 놔둬봐야 나만 피곤할 손님인데 그냥 내가 떼어내 버릴까."


설매가 떼어내 달라고 요청을 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건 점소이인 적명의 몫이었다.


까짓 조금 먼저 못할 것이 없겠다고 생각하며 적명은 조금은 묘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금방 점소이 특유의 영업용으로 바뀌었다.


귀찮은 것을 떼어 내는 것은 당장의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위층으로 보내달라고 울부짖는 저 불쌍한 손놈들을 어르고 달래야 한다.


적명은 웃는 낯으로 한 무리의 손님들에게 달려갔다.


****


일 다경 후, 취몽루 3층, 설매의 방.


"그래서? 그냥 가버렸어?"


적명의 예상대로 설매는 얼굴 가득 짜증을 내고 있었다.


살짝 흐트러진 매무새를 남자 앞에서 가다듬으면서도 그녀는 부끄럼하나 없이 당당하다.


그녀는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 부끄럼이 없다.


거기에 담담한 것은 적명도 마찬가지.


밤을 새고 간다고 하던 정대인의 모습도 그 자리엔 없었다.


기다림에 몸이 달게 만들어서 한 푼이라도 더 내놓게 하려고 설매와 적명이 꾸민 일이니.


정대인이 없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정대인이 이필보다 조금 먼저 왔던 것은 사실이니까.


적당히 흥을 내고는 집에 가버렸지만.


이필이 한 시진이 넘게 혼자 독작을 하며 속을 썩이도록 내버려둔 것은 사실 설매의 생각이었는데도, 그녀는 적명을 보며 짜증을 내는 것이다.


뭐라도 더 나올 줄 알고 이필을 기다리게 만든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않고.


'너는 그 정도도 못하는 놈이 무슨 취몽루 점소이야?'


라고 하는 눈으로 적명을 매섭게 노려본다.


적명에게 할 말이 없을 수가 없다.



"애초에 정대인이 집에 갔는데도 등골까지 우려보겠다고 시간 끈 건 너잖아. 그 아저씨 성질 급한 거 뻔히 알면서. 그러게 내가 욕심도 적당히 내라고 했잖아. 저거 다음번에 이걸로 뭐라고 하면서 나대면 그건 어떻게 감당할 거야?"


정명은 크게 언성을 높이지 않고 할 말을 털어놓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설매는 씩씩거리며 노려보긴 했지만 뭐라고 대꾸를 하지는 않았다.


이곳 취몽루에서의 짬밥은 그녀보다 적명이 위였다.


2층의 기녀로 들어온 그녀를 잘 밀어줘서 3층으로 올려준 것도 적명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도 그에게 화를 낼 형편은 아니었다.


적명이 시키는 대로 안 해서 놓친 건 맞으니까.


"나 오늘은 그만할래. 손님 올리지 말아줘."


그렇게 말하며 설매는 술상도 다 치우지 않은 자리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적명의 고개가 다시 좌우로 흔들린다.


"떼쓰지 마. 네가 잘못한 건 잘못한 거잖아."


"누가 뭐라고 했어? 오늘은 그만 한다니까?"


설매는 지금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담당 점소이가 된 적명이 아니면 이렇게 막되 먹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이, 취몽루의 기녀는 제법 대우가 좋다지만 이쪽도 화류계가 아닌 것은 아니다.


비싼 옷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지만, 본질은 돈을 주고 사람을 사려는 인간들이 손님인 곳.


지칠 만도 하다.


무엇보다 이러는 것이 자신을 그만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적명은 크게 한숨을 한번 쉬고 말았다.


"알겠어. 그만 들어가 그럼. 내가 말은 해놓을게."


그 말이 떨어지자 설매가 벌떡 일어나며 언제 심통이었냐는 듯이 화사하게 웃는다.


"진짜? 진짜지?"


저잣거리의 남정네들이 봤으면 당장에 집의 대들보를 뽑아다 바칠 웃음이었지만, 적명에게는 그저 여동생처럼 별 감흥이 없다.


이곳은 취몽루 3층.


저 정도가 아니면 방을 차지하고 앉을 수 없는 곳이니까.


'그녀'에게 한 소리 듣기는 하겠지만...

'그녀'도 적명에게 심하게 뭐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설매는 벌써 방안을 총총 뛰어다니며 짐을 싸느라 분주하다.


취몽루의 기녀들은 손님들이 보는 길로 다니지 않는다.


취몽루의 뒤로 이어지는 장원이 그녀들의 숙소로, 그녀들은 손님을 마중 하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손님과 마주치지 않는 통로로 드나든다.


그래야 쉴 때도 손님이 있다는 거짓말로 둘러대기가 편하니까.


설매가 정신 없이 짐을 챙기는 사이, 적명은 슬쩍 문을 열고 올라오는 손님이 없나 망을 본다.


어느새 짐을 다 챙긴 설매가 적명의 뒤에 딱 붙어서 적명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명은 은근히 올라오는 설매의 향을 맡으며 조용히 기다린다.


"지금."


후다닥.


설매가 쏜살같이 바깥으로 나가서 손님들이 보지 않게 복도 끝에 있는 통로로 달린다.


적명은 손님에게 보여주기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치렁치렁한 옷에 곱게 화장을 한 미녀가 치마를 걷어들고 누가 볼까, 전속력으로 복도를 질주하는 장면은 확실히 이곳에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깨는 장면이 될 것이다.


설매는 순식간에 통로에 도착해서 적명에게 손을 흔든다.


적명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 웃음을 지었다.


"에휴. 또 저질러 버렸네."


'그녀'가 좋아하지 않을게 분명하다.


얼마 전에도 설매에게 너무 무른 게 아니냐고 넌지시 비난을 받았었는데 이래서야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금까지 맡았던 기녀들 중, 초짜라고 할만한 아이는 설매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유난히 신경이 쓰이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조기퇴근까지 시켜버렸으니, 당분간은 눈치를 좀 봐야겠다."


"어머. 우리 사제가 누구 눈치를 본다는 말일까?"


인기척도 없이 적명의 뒤로 다가온 여인 하나가 적명의 귀에 속삭이듯 말을 건다.


"으익? 사, 사저?"


소스라치게 놀라 뒤돌아본 적명의 눈에 까만 궁장을 입은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망했다.'


적명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다.


"아, 그 남궁세가 외당 10대주 이필 말입니다. 이 양반이 오늘 아주 심통을 내면서 갔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책잡히지 않게 조심하려고요."


'그래?' 하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는 여인, 그녀가 입은 까만 궁장은 설매가 입는 그것의 화려함과는 다르게 장식이 거의 없이 몸에 딱 붙어 있어서 단순하면서도 그녀의 몸매를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문제는 이럴 때 눈을 어디 둘지 모르겠다는 거지.'


눈을 피하면 캥기는게 있다고 생각할 텐데 그녀의 옷은 가릴데는 다 가렸으면서도 뭔가 똑바로 보기엔 민망한 것이다.


"그 10 대주, 세운검 이필이라고 했지? 설매가 꽉 잡고 있는 걸로 아는데? 설매는 그닥 바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째서 심통을 내면서 가버렸을까?"


적명은 뒤통수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럴까?' 라고 말하며 적명의 코 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향이 날카롭게 코를 찌른다.


'어쩐지 다 알고 온듯한 불길한 기분이.'


"사제."


"네?"


"내가 설매 자꾸 편애하지 말라고 했지?"


이미 다 알고 온 게 틀림없는 추궁이다.


입이 열개라도 적명에게 할 말이 있을리,


있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세상 무너져도 그 이유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한동안은 살아도 산게 아닐 것이다.


"그게 설매가 오늘 몸이 안 좋더라고요. 오늘따라 술이 잘 안받아서 어지럽다고."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겠네. 아픈 애를 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행히 아프다는 핑계는 먹혀 든 모양이다.


적명은 삐질삐질 흐르는 식은 땀이 들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간신히 평정심을 가장하고 있는 적명의 눈앞에

불쑥 그녀의 붉은 입술이 화악 다가왔다.


적명은 코를 찌를 듯 강하게 풍겨오는 사향냄새에 날아갈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다잡았다.


"그런데."


"네? 사, 사저 얼굴 좀."


"걔 신나서 복도를 마악 뛰어가던데?"


...

...

...

...


"보셨어요?"


적명의 물음에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저라 불린 여인.


아니, 베일에 쌓여있는 취몽루의 루주.


천미연(千微燕).


"내가 전부터 누누이 말했지. 사제? 어리광 좀 적당히 받아주라고?"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울화통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 사저 아니 누님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손사래를 치는 적명, 하지만 천미연은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내가 사람들 다 있는데 서는 누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으르렁거리며 한발씩 밀고 들어오는 천미연의 발걸음에 따라 적명이 한걸음씩 뒤로 물러난다.


흡사 호랑이 앞에서 뒷걸음질 치는 초식동물 같다.


"지, 지금은 보는 사람이 없는, 커억!"


천미연의 팔꿈치가 적명의 명치에 깔끔하게 박혔다.


적명은


'죽일 생각이다. 죽일 샘이야.'


라고 생각하며 다급하게 팔로 몸통을 막았지만 다행히도 다음 공격은 없었다.


천미연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적명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한번만 더 어리광 부린다고 일 빼주면, 날 잡아서 설매랑 둘이 취몽루 대청소 시켜버린다."


"아, 안 그럴게요."


아직도 숨쉬기가 힘든지 헐떡거리며 대답하는 적명이다.


그를 바라보는 천이연의 눈에 조금은 복잡한 기색이 흐른다.


"그리고."


"네?"


이런 절차로 몇 차례 예상 못할 공격이 날아왔기 때문에 적명은 저절로 방어 태세를 취했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어떤 형태의 공격도 없었다.


"적당히 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적명은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 듯, 아무런 대답이 없다.


"대답 안 할꺼야?"


한참 동안 이어진 정적에 천미연이 대답을 재촉하자, 적명이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가 적당히 인지 알 수가 없네요."


다시 정적이 이어진다.


적명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누님, 이미 저는 선을 넘은 걸지도 몰라요."


천미연이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아래층에서 손님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이 오네요! 얼른 자리를 피하죠. 저도 일하러 가봐야겠어요."


적명은 다급하게 그리고 명백히 억지로 짜낸,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버렸다.


도망치는 모양새다.


천미연은 손님들을 피해 설매가 나간 그 통로로 들어갔다.


"사부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시지?"


등불이 은은하게 비추는 통로를 따라 내려가는 그녀의 혼잣말에는 복잡한 심경이 얽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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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불청객(不請客) 16.10.27 1,925 17 10쪽
6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16.10.27 1,956 23 8쪽
5 대장간(下) +1 16.10.27 2,073 19 7쪽
4 대장간(上) 16.10.27 2,277 19 10쪽
3 흉착귀(胸鑿鬼) +4 16.10.26 2,499 25 11쪽
» 점소이 16.10.26 2,873 26 11쪽
1 합비제일루 16.10.26 4,337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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