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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랑쿤의 서재

혈마비록(血魔悲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백랑쿤
작품등록일 :
2016.10.26 09:10
최근연재일 :
2017.01.17 17:13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52,258
추천수 :
491
글자수 :
218,029

작성
16.10.27 09:23
조회
1,958
추천
23
글자
8쪽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오늘도 좋은 하루되셨길 OR 되시길~




DUMMY

남궁세가 외당 10대주 세운검 이필이 주검이 된 날, 새벽.


자정을 넘어서부터 조금씩 달과 씨름하던 구름은 인시(寅時-새벽 3-5시)가 넘어서자 희미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빗방울이 되어 떨어지지 못하고 가늘게 부서져 날리는 비는, 소리 없이 합비의 밤거리를 채워 나갔다.


비와 함께 거리, 골목마다 안개가 피어올라 합비는 구름 위의 도시가 되었다.


몽중로의 가게들도 모두 영업을 마친 시각.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거리의 구석을 따라서 흐릿하게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안개비 속을 조용히 해치는 그림자는, 악몽 속에 나오는 귀신처럼 소리 없이 밤의 거리를 지나 한 저택의 담벼락을 넘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육중한 철장갑을 끼고 있는데도 덜그럭 거리는 소리 한번 나지 않는다.


몽환장(夢幻莊).


취몽루의 기녀들과 그곳에서 먹고 자는 일꾼들이 머무는 곳이다.


꿈 속의 환상이라는 이름은 그저 취몽루와 이름을 맞추려는 것이겠지만, 흐릿하게 피어 오르는 안개 속에 희미하게 듬성듬성 보이는 몽환장 건물들의 지붕은 적어도 오늘 밤에는 그 이름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정원에 만들어진 연못 때문인지, 유독 몽환장의 안개는 짙다.


오늘 같은 밤이면 지척에 있었다고 해도 조용히 담을 넘은 그림자를 눈치채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몽환장의 담을 넘은 그림자는 얼굴에 뒤집어쓴 붉은 가면을 벗어 품에 집어 넣었다.


드러난 얼굴은 취몽루의 점소이, 적명의 그것이었다.


'때마침 비가 와줘서 다행이다.'


그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담을 넘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움직이는 적명의 발걸음을 갑자기 들린 목소리가 잡아 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누님?"


안개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자신의 궁장과 같은 검은 우산을 받쳐든 여인, 취몽루주이자 적명의 사저인 천미연이었다.


"아, 저 밤 마실을 좀 다녀왔어요. 기분이 조금 울적해서."


멋쩍게 웃는 적명, 본인도 택도 없을 소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무엇을 하고 왔는지 말 할 수는 없다.


"내가, 밤에 했던 이야기. 이 정도로 흘려 들은 거야?"


웃는 적명과 달리 싸늘한 표정을 짓는 천미연.


"아니요. 아닙니다. 밤 마실 적당히 다닐게요. 너무 화내지 마세요."


천미연의 태도에 어쩔 줄 모르는 적명, 태연하게 웃고 있지만 마음까지 편하지는 못하다.


"우리 얼른 들어가죠. 이렇게 비 맞고 있으면 감기라도 걸릴 것 같은데."


라고 말하고 팔을 잡아 끄는 적명의 손을 천미연이 거칠게 뿌리쳤다.


그녀가 들고 있던 우산이 바닥에 뒹군다.


"누님?"


"너, 내가 바보로 보여?"


"그럴 리가..."


"그게 아니면, 대체 뭔데? 한 달에 몇 번씩 안 나가던 밤 산책을 핑계로 조용히 몽환장을 빠져나가고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피냄새를 지울 때 쓰는 향 냄새를 풍기면서 들어오는 거. 모를 줄 알았어? 혈수갑(血手甲)까지 끼고 밤 산책을 다녀온다고? 그리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발견되는 시체들은 또 뭔데?"


쏘아지는 그녀의 말에 적명이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다.


천미연이 그녀답지 않게 반쯤 울먹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만둬 이런 짓. 지금 와서 이러는 이유가 뭔데? 복수니 뭐니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누님..."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라고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좋지 않은 것들도, 막상 닥치고 보면 어찌 할 바를 모를 때가 있다.


적명이 지금 그렇다.


들릴 듯 말듯 천미연을 불러보지만, 입에서 그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는다.


말 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그만둬. 복수하겠다고 그 저주받은 무공 더 익혀봤자. 너도 취몽루 식구들도, 우리 문도들도 행복할 사람 하나도 없어. 이보다 더 커져서 멈출 수 없기 전에 그만두자. 응?"


우는 것인지, 화를 내는 것인지, 부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을 한번에 하는 것이리라.


적명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우산을 주워 그녀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비 맞으면 몸에 나빠요. 얼른 들어가죠."


"그만둬."


검은 옷의 남녀가 한 우산을 쓰고 서 있다.


언뜻 보면 포옹이라도 하고 있는 듯 보일 그 가까운 거리.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 대화를 이어갈수록 조금씩 찢어지는 마음의 거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요."


억지로 내뱉는 듯한 적명의 대답에 울먹이던 천미연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그 눈을 볼 수가 없어서, 적명은 애써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사방은 온통 안개, 안개 뿐이다.


답답하다.


"어째서야...? 우리 식구들보다, 아니, 나보다 그게 더 중요한 거야?"


적명은 말이 없다.


천미연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듯 고개를 숙인다.


"제 아버지와 여동생을 죽인, 그 놈들요. 남궁세가에서 토벌했다고 발표했던 그 산적들."


여전히 사방을 갑갑하게 둘러싼 안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적명이 애써 담담히 입을 연다.


"멀쩡하게 살아있더라고요. 남궁세가 외당에."


천미연이 고개를 들어 적명의 얼굴을 살핀다.


점소이 생활에서 익힌 표정 감추기는 여전하지만, 그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반 년 전, 남궁세가 외당 총 회식을 한다고 취몽루를 빌렸을 때 1층에서 그 놈들의 얼굴을 봤어요."


몰랐던 사실에 토끼 눈이 된 천미연.


"한동안 정신 나간 놈처럼 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니, 벌써 첫번째 시체가 제 손에 있더군요."


"그만."


"그때 멈출 수 있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만해."


"그 놈들도 모두 죽었다고, 결국 이놈이고 저놈이고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거라고, 여기서 멈추는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그렇지 않았잖아요."


"그만 하라고 하잖아! 그게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 피를 볼만큼 대단한 일인 거야?"


비명을 지르듯 내뱉는 그녀의 말에도 적명은 무표정할 뿐이다.


언젠가는 해야 했을 말, 모르는 사람의 가슴팍을 헤집을 때 각오했던 말이다.


단지 비 오는 이 밤이 그날일 뿐이다.


별것 아니다.


"세상이 그렇잖아요. 우리 문도들, 저를 포함한 하오문 식구들, 모두 죄 없이 그저 세상이 우리에게 지옥이어서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세상이 지옥이라면, 그 세상 걸맞게 살아야겠어요. 그러지 못해서 다치기만 했으니까."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이 미친 자식아."


적명이 든 우산아래 서있는 천미연의 몸이 가늘게 떨린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다.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안개가 가라앉고 있다.


"세상이 지옥이라면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야차가 되야 하지 않을까요?"


적명은 그녀의 손에 우산을 쥐어주고 천미연을 지나쳐갔다.


"저들도 알아야 하잖아요.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걸."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적명은 흩어지는 안개 속에 녹아들 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남기고 간 불길한 기운은 내리는 비에도 흩어지지 않고 맴돈다.


적명이 떠난 그 자리에 한참을 서있던 천미연이, 뭔가 결심한 듯 다급하게 어디론가 향했다.




잘 읽고 계신가요? 맞춤법이나 오타관련 사항은 알려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으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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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16.10.27 1,959 23 8쪽
5 대장간(下) +1 16.10.27 2,076 19 7쪽
4 대장간(上) 16.10.27 2,279 19 10쪽
3 흉착귀(胸鑿鬼) +4 16.10.26 2,501 25 11쪽
2 점소이 16.10.26 2,877 26 11쪽
1 합비제일루 16.10.26 4,344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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